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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센타 님의 서재입니다.

내 일상


[내 일상] 위키 본편

‘5분만 더 보자.’

 

이미 시계는 4시를 가리키고 있었지만, 기적은 모니터에서 눈을 때지 못했다.

 

사실 5분만 더 보자라는 결심은 이미 4시간 전인 밤 12시부터 몇 번이고 반복되고 있었지만, 이 놈의 위키가 문제였다.

 

안되는데. 오늘은 아르바이트라도 찾아야 하는데.’

 

딸칵. 딸칵.

 

머릿속에는 현실적이고 지극히 일반적인 판단이 오고 갔지만, 그 판단이 그를 모니터에게서 떨어지게 만들어 주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그는 지금 보고 있는 항목의 연결항목을 새 탭으로 쭉 펼쳐 놓고 있었다.

 

위잉! 위잉! 위잉!

주민 여러분께 알립니다! 주민 여러분께 알립니다! 인근에 게이트가 발생하였으니 주민 여러분은 바깥 출입을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알립니다…”

 

그렇게 그가 위키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밖에서 경보음이 들려왔다. 이어서 경고 방송문이 골목 안에 울렸고, 그것은 잠시나마 그의 주의를 돌렸다.

 

괴수 경보인가?’

 

위키에는 일명 대재앙이라는 항목으로 적혀 있는 직접 날짜를 말할 수 없는 그날 이후, 세상은 한차례 바뀌었다.

 

그전까지 비현실로만 느껴졌던 일들이 현실이 되었고, 만화 속에서나 나올 것 같은 괴수들이 현실에서 돌아다녔다.

 

정말로 뜬금 없는 일이었지만, 인간은 늘 그랬던 것처럼 이 상황에 적응했다.

 

이념과 사상 그리고 종교를 두고 늘 다투어 왔던 인류는 전세계적으로 침공을 해온 괴수들에 대해 공동전선을 펼쳤고, 핵을 포함한 모든 가용병기를 사용해 그들을 공격했다.

 

그리고 상황이 안정화 된 것은 2년 전.

 

세계에는 여전히 5개의 거대한 게이트가 열려 있었고, 지금 이 상황처럼 종종 도심의 한 가운데 게이트가 열리는 일이 벌어지고는 했지만 이미 그것은 일상이 되어 있었다.

 

어차피 나가긴 글렀네. 보던 거나 마저 보자.’

 

괴수 경보는 기적에게 있어 아주 좋은 핑계거리가 되었고, 그는 오늘도 아르바이트를 찾으러 나가지 않은 것은 다 괴수 탓이라고 자신을 납득시키며 다시 위키에 집중했다.

 

어라? 괴수경보가 나올 때 대처방법이 뭐였더라? 이럴 때는 위키지!’

 

그는 보고 있던 항목들을 제쳐놓고 괴수의 항목을 펼쳤다.

 

시대가 시대인지라 괴수 항목은 거의 하나의 카테고리가 되어 있었고, 그것을 일일이 확인하던 그는 한국에서 자주 등장하는 괴수라는 항목에 주목했다.

 

어쩌면 내가 군대에 있을 때 봤던 녀석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정말로 아이러니한 일이었지만, 한국이 있는 동북아는 대재앙에서 가장 피해를 덜 입은 지역 중 하나였다.

 

남북 대치라는 특수한 상황과 주변에 강대국이 몰려 있다는 지형적 조건 탓에, 한국, 중국, 일본,북한, 미국, 러시아는 사태가 발생한지 얼마 되지 않아 초유의 6개국 연합군을 만들어, 만주지역에 열린 게이트로 진격했고, 그 막강한 군사력으로 어떻게든 괴수들의 침공을 막아내었다.

 

그리고 여전히 게이트는 열려 있지만 이 지역은 그나마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지역이 될 수 있었다.

 

다만 그렇다 하더라도, 후방인 도심지역에도 종종 대형 게이트가 무작위로 생겨나는 일이 있었고 그것을 처리하는 것은 당연히 군대의 몫 이였다.

  

기적의 경우는 다행히 자신이 배치 받은 부대가 만주에서 빠져 나온 시기에 근무를 했기에, 최전방인 만주에는 가보지 않았지만 종종 부대 인근에 게이트가 열릴 때면 완전 무장으로 출동을 하고는 했다.

 

그리고 동료들과 함께였지만, 나름 괴수를 상대해서 쓰러뜨린 적도 있었다.

 

물론 자신들이 쓰러뜨린 것은 보통 구제대상 3급 이하였고, 그 이상은 헌터라는 괴수에 특화된 집단들이 처리하기는 했지만.

 

! 배불뚝이!’

 

한참 한국에서 자주 등장하는 괴수 항목을 보던 기적은 문뜩 자신이 군대에 있던 시절 자주 봤던 괴수를 발견했다.

 

보통 그와 동료들은 녀석을 배불뚝이라고 부르곤 했는데, 녀석의 정식명칭은 구제대상 3071호 두발 오름이었다.

 

보통 괴수의 명칭은 그것을 처음 발견한 국가에서 붙이고는 했는데, 이 녀석 같은 경우는 한국에서 가장 먼저 발견 되었던 지라 한글 이름이 붙어있었지만, 보통 누구도 두발 오름이란 이름으로는 부르지 않았다.

 

대신 마치 커다란 두 다리 위에 올려놓은 커다란 살덩어리 같은 녀석의 모습을 따, 배불뚝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곤 했다.

 

오랜만에 보니 그립네.’

 

사실 그렇게 오랜만인 것도 아니었다. 기적이 제대 한 것은 고작 6개월 전, 그리고 그는 말년에도 이 녀석을 만나 교전을 벌인 적이 있었다.

 

보자, 약점이 하체 가운데 있는 연한 살. 일반적으로 부비트랩이나 수류탄등을 이용해서 잡는다.’

 

기적은 두발 오름의 약점에 대한 항목을 읽고는 자신의 기억을 떠올렸다.

 

. 그렇지. 그때도 수류탄으로 잡았었지.’

 

그는 자신이 유일하게 혼자 괴수를 쓰러뜨렸던 그 순간을 기억해 냈고, 그때의 상황이 머릿속에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러고 보면 참 운이 좋았어.’

 

분명 그때는 일단의 토벌이 끝난 후 사후 정리를 하는 과정이었는데, 이미 토벌이 끝난 다는 안도감에 그와 그의 부대원들은 설마하니 남아 있는 괴수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했고, 총기를 한 곳에 모아 비치해 둔 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 바로 이 두발 오름이 나타났고, 모든 부대원들이 패닉에 빠져 있던 그때 혹시나 싶어 항상 여분의 수류탄을 들고 다니던 그가, 두발 오름의 두 다리 사이에 수류탄을 집어 던졌고 우연히 그 수류탄의 파편들이 두발 오름의 약한 살을 파고든 덕분에 그와 부대원들은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더불어 그 공적으로 기적은 사병인데도 불구하고 무공훈장을 수여 받았다. 거기다 거의 한달에 가까운 포상휴가는 덤이었다.

 

다만 그 일 이후 휴식 중에도 항상 총기와 수류탄을 휴대해야 한다는 규칙이 생겼고, 휴식 군기에 대한 검열이 이어져, 다른 현역병들은 꽤나 고생을 하게 되었지만 그건 오롯이 기적의 책임은 아니었다.

 

기적은 오랜만에 자신에게 행운을 가져다 준 괴수녀석을 보게 되자, 기분이 좋아졌다.

 

사실 그 때도 기적이 녀석의 두 다리 사이로 수류탄을 집어 던졌던 것은, 그가 미리 위키에서 녀석의 약점이 무엇인지를 확인했었기에 가능했던 행동이었다.

 

거기다 애초에 늘 수류탄을 가지고 다닌 것도 괴수와 싸울 때의 주의점이라는 위키 항목에서 본 주의사항 때문이었고, 그는 그전에도 그랬지만 그 뒤에는 더더욱 위키 홀릭이 되었다.

 

. 일단 아침을 좀 먹어 볼까?”

 

한참을 위키에 집중하던 그가 시계를 보자 이미 시간은 아침 8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밤을 샌 탓인지 은근히 피로가 몰려오고 있었고, 배도 고파 왔던지라 그는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사와 아침을 먹고 난 뒤 잠을 청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가벼운 반바지 차림으로 지갑을 챙겨 살고 있던 원룸의 1층으로 내려갔다.

 

그러고 보니 경보는 끝났나?’

 

그는 그제서야 문뜩 괴수경보가 해체 되었다는 방송을 듣지 못했다는 것을 떠올렸지만, 그는 그것을 좀 더 일찍 떠올렸어야 했다.

 

후욱! 후욱!”

어라? 이 소리는!?’

 

그가 맨션의 계단을 다 내려오는 순간, 옆에서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고 그는 이미 그 숨소리를 들어본 기억이 있었다.

 

으아아아아악!”

쿠어어어!”

카아악!!

 

기적은 비명을 지르며 정말 무의식적으로 몸을 굴렸고, 그 뒤에 괴수의 괴성과 함께 마치 가래침을 뱉어 내는 것 같은 소리가 튀어나왔다.

 

치이이익!

 

그리고 기적이 그곳을 향해 눈을 돌리자, 기적이 서 있던 자리의 뒤에 있던 차량이 녹아 내리고 있는 장면이 보였다.

 

배불뚝이! 어째서!’

 

그는 새삼 괴수경보가 해제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렸고, 자신의 부주의를 탓했지만 이미 상황은 늦었다. 거기다 몸을 피한다고 한 것이 오히려 주차장의 안쪽으로 몸을 던져 버린 탓에, 이미 입구는 괴수의 몸으로 막혀 버린 상태였다.

 

어쩌지? 어쩌지? 그러니까 이녀석을 만나면…’

 

기적은 거의 패닉상태였지만, 그 상황에서도 그는 위키에 적혀 있던 괴수를 만났을 때의 대처법이란 항목을 떠올렸다.

 

일단은 은폐!’

 

그리고 그는 곧장 포복으로 주차 되어 있는 차량의 뒤로 몸을 숨겼다.

 

위키에는 분명 두발 오름은 시각보다는 청각과 후각에 의존해서 적을 찾아 낸다고 되어 있었고, 만약 대항할 수 없다면 최대한 숨을 죽인 채 냄새를 숨길 수 있는 곳에 숨으라고 되어 있었다.

 

그는 위키에 나온 대처법에 따라 숨을 죽인 채 녀석이 자신을 발견하지 못하기만을 바랬다.

 

하지만 그를 공격했던 두발 오름은 천천히 기적이 숨어 있는 차가 있는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고, 기적은 오롯이 행운만을 바랄 수는 없게 되었다.

 

뭔가 방법이…’

 

기적은 주변으로 눈을 돌려 무기가 될 수 있을 법한 것을 찾아 보았고, 그나마 주차장 벽에 놓인 쇠파이프들을 찾을 수 있었다.

 

이거라도.’

 

그는 숨을 죽인 채 몸을 움직여 쇠파이프를 하나 집어 들었다. 하지만 그가 그렇게 주의를 기울였음에도 그가 집어 든 쇠파이프는 다른 쇠파이프들을 지탱하고 있었던 것이었던 지라, 쇠파이프들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엎어졌다.

 

떵그렁!!

 

쿠오오오!”

카아악!!

 

그리고 곧장 두발 오름이 그 소리가 난 쪽으로 산성액을 토해내었다.

 

망했다!’

 

! 콰직!

 

다행히 산성액은 기적이 있는 쪽으로 떨어지지 않았지만, 괴수는 곧장 기적이 몸을 기댄 차 위로 뛰어 올랐고, 그가 들키는 것은 시간문제인 것 만 같았다.

 

침착해. 침착해. 아직 못 봤어.’

 

보통 사람들 같으면 이미 패닉상태로 접어 들었겠지만, 그는 자신이 읽은 위키의 내용을 신뢰하고 있었고 분명 녀석은 아직 자신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그 믿음대로 두말 오름은 아직도 기적을 찾고 있었다.

 

! 콰직!! 쩌억!

 

녀석은 차량의 위에서 천천히 기적이 있는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고, 녀석의 한쪽다리가 차량의 트렁크 위에 올라서자, 기적은 숨을 꾹 참고 쇠 파이프를 세게 움켜 쥐었다.

 

약점은 아랫배. 한번에 가야 해.’

 

이어서 녀석의 다른 다리가 트렁크 위로 내려 서는 순간, 기적은 몸을 벌떡 일으키며 들고 있던 쇠파이프를 녀석의 아랫배로 찔러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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