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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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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해
작품등록일 :
2011.11.10 19:59
최근연재일 :
2015.12.11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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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09.06.12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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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2쪽

사냥이야기 13 - 마수 삼두견인

DUMMY

*

모두 쉽게 식당에서 자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 껄끄러운 조바심을 깨뜨린 건 철장패였다. 자리에서 일어나 숙소로 올라갔다.


긴장이 감돌던 식당이 다시 활발해졌다.


날카롭게 부막차와 냉적표를 노려보던 검사 허남평은 체포하겠다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이미, 귀왕도 조호로가 애병을 꺼내 목을 위협하고 있었다. 함께 행동하는 세 명의 무관마저 혈랑채의 부채주에게 붙잡혀 부막차 앞에 무릎을 꿇린 상태였다.


옆에서 자치대장이 서둘러 만류했지만 듣는 척도 하지 않았다.


심하게 몸싸움을 하며 가로막는 자치대장을 귀찮아 하면서도 죽이지 않았다. 혈랑채에 있는 마적들도 노명탄 마을 사람들은 건드리는 걸 꺼렸다. 마을이 없어지면 식량이나 필수품을 구입하기 어려웠다. 오히려 암묵적으로 노명탄 마을에서 무법자끼리 칼부림을 벌이면 막았다.


심안호는 동료와 술을 기울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같은 관원이 핍박을 당하는 게 싫었다.

``그만 칼을 치우지. 마을 안에서 건드리지 못하게 할 테니... 마을 밖에서 너희끼리 알아서 해."


칼이 목을 위혐해도 전혀 기세가 죽지 않은 검사 허남평이 소리쳤다.

``감찰단이라면 이놈들을 체포하는데 협조하라. 우리는 한 놈이라도 잡아서 끌고 가야 한다."


심안호는 싸늘한 시선으로 허남평을 노려보았다.

``처음부터 반말하는 건 못써. 남작님이라고 부르든, 심과장님이라고 불러. 그리고... 우리는 조용히 비밀 임무를 수행 중이다. 사소한 일에 신경 쓰지 마라는 명령이 떨어진 상태이다. 추포단의 문제는 추포단이 알아서 해."


남작이라는 소리에 검사 허남평은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다물었다.


허남평을 보던 심안호는 부막차에게 잡힌 세 무관을 손짓으로 가리켰다.

``관원들을 풀었으면 좋겠다. 같은 관원이라 보고 있을 수 없다. 우리가 안 보는 곳에서, 목을 삭둑하던 뭐하던 알아서 해라. 특히, 이곳 객잔은 공자님께서 머무시니 조용했으면 좋겠다."


부막차는 세 무관을 붙잡은 부채주들에게 지시했다.

``풀어줘, 산채로 돌아가자."


돌아가는 부막차를 잡은 건 마을의 촌장인 노충전이었다.

``혈랑채주님, 잠시만요. 그리고 은하령 냉적표님도 동행하시죠. 어차피 이곳은 하나로 통합이 되어야 할 시기였습니다. 서로 할 말이 많을 테니 조용한 곳으로 가서 의견을 나누었으면 합니다."


사라지는 부막차와 냉적표를 향해 검사 허남평의 고함 소리가 요란했지만 심안호의 꾸짖음에 조용해졌다.


``진짜, 붙잡고 싶으면 마을 밖에서 놈들을 기다려라. 괜히 고함을 지르지 말아라. 식당에는 나보다 높으신 분이 두 분이나 계신다. 그분들도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는데 네가 떠들 상황이 아니다."


심안호가 턱짓으로 가리킨 방향에는 여포와 청오가 우악스럽게 고기를 뜯고 있었다. 오랜만에 술과 고기를 마음껏 먹으며 술 시합을 벌이는 중이었다. 허남평의 눈에는 전혀 높은 양반처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가볍게 꾸짖는 심안호가 무게감이 컸다.


술을 마시는 심안호 옆에 앉아 조심히 물었다.

``감찰단이라고 하셨는데 어느 감찰단입니까? 국무부? 저희 칙령부는 아닌 게 분명합니다. 어딘지 모르겠습니다."

``군부 소속이다. 설립된 날은 이번 3월 3일이다. 제7 감찰단으로 설립이 되었고 관할지역은 패제국 전체이다. 감찰관이 한 지방만 감찰하던 경우와 차원이 다르다."


빙그레 웃으며 심안호는 입에 술을 넣었다.

``감찰의 한계도 없다. 군부와 관계되는 경우라면 어느 곳, 어느 소속이라도 감찰한다. 영지에 소속된 기사단부터 국경에 배치된 왕국군까지 감찰한다. 심지어, 칙령부와 국무부, 재정부의 관원이 비리를 저질렀다면 군부에 소속되었지만 제7 감찰단은 관여할 수 있다. 더 말할까?"


입이 함지박만큼 커진 허남평의 뺨을 심안호는 술잔으로 두드렸다.

``어느 영지의 후작이나 백작이 비리를 저질렀다면 임의로 다스릴 수 있다. 이는 황제께서 직접 허락한 훈시였다."


너무 황당한 말을 들어 허남평은 믿을 수 없었다.

``그게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까?"


잠시 침묵하던 심안호는 술잔에 담긴 술을 빙그르르 돌렸다.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공자님이 계시니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같이 옆에서 듣던 마르쿠스가 뭔가 물으려고 했지만 심안호가 고개를 흔드는 모습에 입을 다물었다.

``우리에게 감찰이 주된 목적이 아니다. 마수를 잡는 게 주된 목적이다. 감찰단이 되어 움직이는 건 보다 쉽게 움직이기 위한 수단이다. 감찰은 부차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니 마적들을 풀어준 것에 대해 너무 화를 내지 마라. 이곳에 있는 범죄자를 잡지 않는다고 탓하지도 마라. 마수를 잡는 게 그런 일보다 더 시급하다."


취한 기색이 역력한 심안호가 한마디를 더 하고 입을 다물었다.

``오랜만에 술을 마셨더니 술이 달콤하네. 여기까지 알려주겠다. 그 이상은 말해 줄 수 없다. 권한도 없고, 말해서도 안 된다."


조용히 하루가 지나고 있었다. 어두운 밤에 켜진 호롱불이 주위를 밝혔다. 바람이 불면 흔들리는 호롱불에 따라 식당에서 대작하는 술꾼의 그림자도 흔들렸다.


바람이 거세게 부는 밤이었다. 먼 거리에서 달려온 상인은 잠에 빠졌지만 철장패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마적 수십 명을 한꺼번에 죽인 기억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때 위화감을 느꼈었다.


잠에 들지 않고 좌정해서 도깨비불과 동조했다. 온몸의 마나로드를 따라 `지옥겁화력'이 미세하게 흐르고 있었다. 마수 소환이 적힌 소책자에서 `지옥겁화력'이 조금씩 몸 안으로 침투했다. 수많은 사람을 한꺼번에 죽였음에도 양심의 가책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서 의아했었다. 역시나 `지옥겁화력'이 체내를 움직이며 인간의 심성을 변화시켰다.


소책자를 푸른 도깨비불에 감쌌다고 안심을 했었는데 너무 쉽게 구멍이 뚫렸다. 실처럼 작은 구멍을 통해 몸 안으로 `지옥겁화력'이 스미고 있었다.


아픔을 느낀다는 건 중요했다. 피가 흐르면 놀라야 했고, 상처가 벌어지면 아파야 했다. 그와 같은 감각은 피를 멈추게 하고 상처를 아물게 한다. 감각이 없다면 좀비와 구울과 다름이 없었다. 감각이 무디어져 살점이 너덜너덜해진 인간은 죽음만 기다렸다. 점점 살인에 대해 무감각해져, 비정한 감각으로 변한다면 인간으로서 죽음이었다. `지옥겁화력'에 취해 움직이는 존재는, 인간이 아닌 `살인기계'에 불과했다.


철장패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지옥겁화력'를 자신의 의지 아래에 놓으려고 노력했다. 딱딱한 바위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아침이 밝아오는 무렵에서야 아주 미세하게 철장패의 뜻을 따랐다. 몸 안으로 스미는 양보다 작은 소량이어서 걱정이 태산과 같았다. 그러나, 방법이 생겼다는 느낌에 희망을 가졌다.


철장패는 이틀을 더 휴식한 다음, 출발하겠다고 심안호에게 일렀다. 이틀 동안, 숙소에 박힌 철장패는 `지옥겁화력'과 씨름했다.


제7 감찰단이 노명탄 마을에서 조용할 때, 진천황야는 난데없이 닥친 소문에 정신이 없었다. 진천황야를 하나로 통합한 자, 자유도시의 남작으로 오른다는 소문에 진실 여부를 놓고 술렁거렸다.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는 곳은 세 곳이었다. 노명탄 마을의 촌장을 중심으로 주변 마을을 오가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마을 촌장끼리 모여 의논하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였다. 노충전 촌장이 돌아다니는 곳은 원주민 마을과 정착민 마을이었다. 힘을 합친다면 보다 살기 좋은 도시에서 살 수 있다고 부르짖으며 다녔다.


혈랑채는 종요산 마적과 구풍곡 무리와 의견을 나누거나 통보했다. 종요산 마적에게는 밑으로 들어오라고 통보했고, 구풍곡 무리에게는 같이 힘을 합치자며 종용했다. 구풍곡의 무리는 네크로맨서, 흑마법사, 연금술사, 가짜 치료술사, 사기꾼 점쟁이 등등 힘으로 굴복시키기 어려운 무리였다. 잘못하면 해골 떼거지에게 공격을 당할 수도 있었고, 저주를 받아 밤잠을 설칠 수도 있었다. 될 수 있으면 조용조용 타일러야 했다.


은하령의 냉적표는 근처의 세 곳을 은밀히 접촉하고 다녔다.


`진천황야'에서 힘깨나 쓴다는 수장들은 한 달 뒤에 노명탄 마을에서 전격적으로 만나 회의하자는 것에 합의했다. 마적질을 하러 떠나려는 무리는 노충전 촌장의 충고를 듣고 나설 수 없게 되었다. `새로운 자유도시에서 살려면 더 이상 마적으로 살아갈 수 없다. 식량을 내줄 테니, 그동안 다른 먹을거리를 찾으라'며 단속했다.


할 줄 아는 건 칼과 도끼를 휘두르는 재주밖에 없는데 뭘 해서 먹고 살라는지 도통 찾을 길이 없었다. 그렇지만 회의가 끝나기 전까지 잠시 마적으로서의 본업은 멈추기로 했다.


이틀이 지나 제7 감찰단이 마을에서 떠나려 하자, 동행이 늘었다. 마을 촌장 노충전이 확고부동한 자세로 동행을 요구했다.

``감찰관님을 이대로 보낼 수 없습니다. 이곳에 다시 온다고 하셨지만 마수를 잡으러 간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마수를 잡고 이곳으로 돌아와 하나로 통합된 진천황야를 보셔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제가 쫓는 건 당연한 의무입니다."


말은 반지르르했지만 도망치지 못하게 감시하겠다는 뜻이었다.


철장패는 빙그레 웃으며 허락했다.

``마음대로 해라. 하지만, 목숨까지 지켜주지 못하니 알아서 챙겨라."


수행하는 무리까지 가려고 하자 철장패는 반대했다. 동행은 혈랑채주와 부채주까지 두 명이 더 늘어 세 명이 합류했다.


어찌어찌 출발한 무리는 사막과 인접한 `흑선곡'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곳에 마수 `쌍면갑 삼두견인'이 있었다.


진천황야는 의외로 늪이 많았다. 잘못 밟으면 발이 쑥쑥 빠졌다. 잘못해서 전기뱀장어을 밟기라도 하면 강렬한 전기충격에 온몸이 얼얼해졌다. 작은 전기뱀장어는 괜찮지만 큰 녀석은 죽을 위험이 있었다. 그래서 가장 앞장서서 걷게 된 건 노명탄 마을의 촌장인 노충전이었다. 그가 앞서서 걷자 늪에 빠지는 경우는 사라졌다.


저녁이 가까울 무렵 노촌장이 이끌고 간 곳은 괴상한 식물농장이었다. 희귀한 꽃으로 전체의 골짜기가 도배가 되었다. 갖가지 기괴한 식물들이 꽃을 피웠다. 장미, 튤립, 데이지, 목련과 같이 눈에 익은 꽃부터 처음으로 구경하는 화려한 꽃들도 많았다.


``이곳은 뭔가?"


노촌장은 긍지가 어린 미소로 소개했다.

``식충식물을 연구하는 곳입니다. 식인식물도 많으니 오른쪽으로 가시지요."


그곳에서 구풍곡의 칠장로 한농잠을 만났다.


골짜기를 지키는 것도 식인식물이었다. 뿌리를 입구에 박고 커다란 입을 벌렸다가 닫았다. 칠장로 한농잠이 지팡이로 툭툭 건드리자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었다. 입을 다물자 들어갈 공간이 생겼다. 그 사이로 걸어서 들어갔다. 마법진을 대신한 방법이었지만 참으로 특색이 있는 출입구였다.


칠장로의 문하에 일곱 명이 있어 식물농장을 관리하고 있었다. 칠장로에게서 마법을 배우며 식충식물에 대한 식견을 높였다.


마법사 셋이 만나자 허심탄회한 토론이 벌어졌다. 조노야, 노촌장, 칠장로가 서로에게 궁금한 점을 묻기도 했고 의견을 개진하기도 했다. 저녁을 먹고 한가하자 무인들은 심심했다. 각자, 마련된 숙소에 들어가거나 여포처럼 혈랑채주를 붙잡고 대련을 하기도 했다.


철장패는 숙소에 들어가자마자 좌정해서 `지옥겁화력'을 다스렸다. 미봉책으로 체내의 마나로드를 깨끗이 했지만 소책자에서 뿜어지는 `지옥겁화력'도 점점 농도를 진하게 늘렸다. 철장패의 목적은 단순했다. `지옥겁화력'의 힘을 얻고 싶었다. 자신의 뜻에 따라 움직이도록 `지옥겁화력'을 일정한 크기로 뭉친 다음 다독였다. 강하게 지옥겁화력이 반발하면 어쩔 수 없이 체내의 마나와 융합하거나 마나의 힘으로 녹였다. 그럼, 본래의 지옥겁화력은 사라지고 맑은 마나만 남았다. 철장패가 원하는 건 `지옥겁화력' 그 자체였다. 그래서 일정한 크기로 뭉친 다음 계속 타이르고 다독였지만 쉽게 따르지 않았다. 소책자에 있는 전체 `지옥겁화력'을 다독이는 건 엄두도 내지 못했다.


철장패가 나름대로 `지옥겁화력'으로 고민하는 동안, 여포와 혈랑채주의 대련은 살벌하게 이어졌다. 서로 대련을 가볍게 여기며 상대했는데, 뚜껑을 열자 서로의 실력에 놀랐다.

``나와 제대로 싸울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니, 일곱 번째입니다."

``저도 일개 호위의 실력에 놀라고 있습니다."

``호위라고 약하다는 생각은 버리셔야겠습니다. 하하하!"


자세를 잡던 혈랑채주는 여포에게 물었다.

``지금의 실력이라면 귀왕도와 싸울 때 본 실력을 발휘하지 않았군요."

``실력을 발휘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신선한 방식으로 공격하고 대응해서 열심히 구경하며 살폈습니다. 재밌는 수법을 써서 죽이기 아까울 정도였습니다. 실력이 없었다면 단번에 죽였겠지만 아까운 생각이 들어 이런저런 방법으로 귀왕도라고 불리는 무사의 실력을 가늠했었습니다."


혈랑채주의 눈동자가 새파랗게 변했다. 덩달아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저는 어떻습니까?"

``저보다 아래의 실력인 건 알겠지만 판단하기 어려울 정도로 수법이 잔인하면서 깔끔합니다. 한 번 거세게 부딪혀야 확실히 알겠습니다."


여포의 말에 자존심이 상한 혈랑채주는 이를 악물었다.

``그럼, 한 번 거세게 나가겠습니다. 저보다 강하다고 하니, 온 힘을 다해서 공격해도 괜찮겠지요?"

``하하하! 좋습니다. 좋습니다! 무척이나 좋은 말입니다."


솔직하고 호탕한 대답이라는 걸 혈랑채주는 모르지 않았다. 그렇지만 들을수록 자존심이 상하는 건 뭐란 말인가.


한쪽에서 거친 박투가 벌어진다면 감찰단의 조노야는 우습게 생각했던 진천황야에 와서 새로운 친구를 사귈 순간이라는 걸 깨달았다. 조촌장과 칠장로는 각각의 길에서 대가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었다.


조노야가 놀란 만큼 조촌장과 칠장로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스스로 자신보다 잘난 사람은 없을 거라는 자긍심이 강했는데, 감찰단이나 쫓는 조노야의 탁월한 식견에 세상이 넓다는 걸 발견했다. 옆에서 문하생과 추적꾼 한예상이 열심히 경청했다.


밤은 깊은 줄 모르고 가고 있었다. 그럴수록 아침은 가까이 왔다.


칠장로마저 감찰단과 동행했다. 차마 이대로 헤어지기 아쉬운 점도 있었지만, 찾아가는 게 마수 베이모스라는 점에서 마법사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숲과 황야를 지나느라 사흘을 소모해 `흑선곡'에 도착했다. 계곡 입구로 들어가는 게 쉽지 않아 보였다. 괴수 지렁이들이 떼로 모여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마수 베이모스의 기운에 잠식이 되어 이상하게 변질된 모습이었다.


앞장서서 안내하던 추밀용병단 서탁본 단장이 감찰단에게 난처한 표정을 드러냈다.

``이제부터 내가 앞장서겠다. 추밀용병단은 이곳에 계속 있어도 좋다. 그리고 김호위 외에 소드마스터가 아닌 아홉 명은 이곳에서 대기하라. 우리와 동행을 하게 된 다섯 명은 마수를 잡는 과정 중에 일단 내려진 명령을 거역해선 안 된다. 잘못 마수를 자극해 동료를 죽음으로 내몰아선 안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원하지 않는다면 이곳에 남아라. 그리고... 빨간머리와 올빼미 소년도 남은 호위와 함께 기다려라."


철장패의 말에 감찰단은 허리를 숙여 복종했다. 그건 기사로서 주군을 향한 맹종이었다.


마음을 다하여 극상의 예를 취하는 기사들을 뒤로 하고 철장패는 나섰다. 세 명의 마법사들은 서둘러 부유 마법을 펼쳐서 일정 높이의 상공으로 솟구쳤다.


속속 앞으로 나선 기사들에게서 마갑기가 소환이 되었다. 마르쿠스의 마갑기까지 포함해 스물한 대의 마갑기가 나타났다. 그렇지만 혈랑채주와 부채주는 난감한 시선으로 어물거렸다.

``마갑기를 소환해도 괜찮다. 앞으로 남작이 될 사람이 너무 배포가 작은 게 아닌가."


월령에 올라타며 철장패가 하는 말에 혈랑채주는 감찰단의 눈치를 더 이상 살피지 않았다. 신이 나서 마갑기를 소환했다. 옆에 있던 부채주도 마갑기를 소환해 올라탔다. 불법으로 얻은 마갑기이기에 감찰단 앞에서 타는 게 쑥스러웠지만 허락이 떨어져 부담이 덜했다.


뒤에 남은 다섯 명의 골드나이트와 다섯 명의 부관은 괜히 서러웠다. 함께 왔는데, 함께 이곳까지 왔는데 실력이 없어 같이 가지 못하자 입이 저절로 악 다물어졌다.

``기분이 더러운데... 같이 가자고 말하자니 죽을 게 뻔하고, 환장하겠네!"


어느 호위의 투덜거림이 모두의 마음이었다.


그에 반해 추밀용병단은 편한 마음으로 안전한 곳을 찾아 올라갔다.

``여기에 있는 것보다 멀리서라도 마수를 구경할 수 있는 곳으로 가시죠. 그곳까지 간다면 격투를 볼 수 있습니다."


서탁본 단장은 남은 호위들을 가볍게 대할 수 없었다. 너무나 수상한 감찰단이었다. 처음에는 멋모르고 무시했었지만 지금은 본능적으로 말을 삼갔다. 그래서 몸조심하느라 알아서 존댓말까지 붙이며 몸을 굽히고 있었다. 가늘고 길게 살아가는 것도 하나의 인생살이였다. 작은 창피함을 버린다면 가족이 행복할 수 있었다.


사방에서 몸이 딱딱해진 괴수 지렁이들이 솟구쳤다. 강한 이빨과 거대한 입을 벌리며 공격했다. 그 사이를 철장패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걸었다. 어디로 피하라는 지시도 내리지 않았다. 각각 알아서 처리하라는 태도로 거침없이 전진했다.


철장패 주변은 괴수 지렁이가 일부러 공격를 피하는 것 같았다. 거세게 공격해도 일직선으로 나아가는 철장패를 맞추지 못했다. 그렇다고 일부러 공격을 외면하는 것도 아니었다. 철장패가 걷는 길을 쫓아 열심히 땅을 뚫고 솟구치는 괴수 지렁이가 벌써 아홉 마리가 넘어섰다. 먹고 싶어 줄줄 침을 흘리며 공격하는 데도 철장패를 맞추지 못했다.


그 뒤를 쫓는 여포는 가까이 온 괴수 지렁이를 발 밑에 울리는 진동으로 알 수 있자 힘껏 땅을 밟았다. 미처 땅을 뚫고 여포의 흑갑을 삼키지 못한 괴수 지렁이가 아파서 비명을 질렀다.


공중 부양 마법에 의해 허공 이십 미터의 높이에 오른 노촌장은 철장패의 뒤를 쫓으며 신기한 눈치였다.


``신기하네요. `대왕혈선'의 공격을 저런 식으로 피할 수 있나요?"

``무사라서 우리 마법사와 피하는 방식이 완연히 다르군요. 그래도 우리 마법사들이 더 품위가 넘치게 대왕혈선을 피해 움직이지 않습니까. 하하하!"


칠장로가 마법사가 되었다는 게 뿌듯하다는 태도로 시원하게 웃었다. 혼자가 아닌 세 마법사가 함께 부유 마법으로 움직이는 게 못내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조노야도 슬며시 웃다가 그냥 입을 다물었다. 철장패 대공을 몰라서 하는 이야기라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그는 살아 움직이는 신화였다.


괴수 지렁이의 숫자가 점점 많아졌다. 아홉 마리가 쫓던 것이 이제는 서른 마리가 넘게 철장패에게 덤볐다. 철장패에게 많은 숫자가 몰릴수록 뒤에서 쫓는 기사들은 편해졌다.


유독, 세 사람은 편한 기색이 아니라고 항변하는 움직임이었다. 전직 치안관이었던 마르쿠스, 혈왕 조모고가 가명으로 행세하는 부막차, `황금쌍검'이라는 호칭을 갖고 있는 주호민은 괴수 지렁이와 악전 고투를 치루었다.


마갑기의 발목이 괴수 지렁이의 입에 들어가면 벌려서 빼냈고, 앞을 가로막으면 피하거나 걷어찼다. 그렇다고 하나를 계속 붙들고 있을 수 없었다. 열아홉 명의 기사들이 앞으로 성큼성큼 나아갔다. 잠깐이라도 멈추면 거리가 쑥쑥 멀어졌다. 철장패와의 거리는 많이 떨어진 후였다. 차마, 천천히 걸음을 움직이라고 외칠 수도 없어서 부지런히 움직였다.


열아홉 명으로 구성된 마갑기들은 3열종대의 Y진형을 구축한 상태였다. 여포와 청오가 앞서고, 심안호와 맹곤이 다음을 이어 움직였다. 그 뒤로 3열종대가 뒤따랐다. Y진형은 숙달된 진형이었다. 괴수 지렁이가 얼굴을 내밀 틈이 없을 정도로 발걸음이 일정하게 일치했다. 가운데로 나와도 마갑기의 무거운 발바닥에 차여 다시 들어가야 했다. 나타난다면 외곽인데 왼편과 오른편으로 나누어져 대응하기 쉬웠다. 한편이 어려울 것 같으면 가운데에서 보조했다. 자연스럽게 숙달된 협동으로 거침없이 나아가고 있었다. 그렇지만 뒤를 따르는 세 명은 혼자서 괴수 지렁이를 뚫으니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철장패는 마수 `쌍면갑 삼두견인'이 보이자, 귀찮게 하는 괴수 지렁이를 정리할 필요성을 느꼈다. 몸에서 거대한 검풍탄 오십 개를 한꺼번에 뽑았다. 일제히 허공으로 솟구친 검풍탄을 대기시켰다. 무릎을 꿇고 손바닥은 땅바닥에 대었다.


흙바닥에 불과했지만 때로 마나를 집어넣어 일정한 면적을 바위처럼 강하게 만들 수 있었다. 이를 잘난 사람들은 `반탄강기'의 응용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굳이 고급기술인 반탄강기까지 사용하지 않아도 `철포삼'의 응용으로 가능했다. 입고 있는 옷을 `강철'처럼 강하게 만드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일정한 면적의 흙바닥을 끈끈한 마나로 밀집시켜 순간적으로 강한 압력을 가하면 일시적이지만 바위처럼 딱딱해진다. `철포삼'의 비밀은 입고 있는 옷에 줄기차게 마나를 쏟아붓는 것에 있지 않고 끈적끈적한 마나를 차곡차곡 쌓는 것에 있었다. 쌓은 마나를 일시적으로 강하게 압축하면 순간적으로 입은 옷이 강철처럼 단단해졌다.


철장패는 딱딱해진 흙바닥을 뚫기 위해 괴수 지렁이들이 분노한 것을 느꼈다. 점점 강하게 부딪히는 마흔두 마리가 일제히 딱딱한 흙바닥을 깨고 솟구쳤다. 강한 힘으로 올라선 탓에 한꺼번에 꼬리까지 드러내며 허공으로 솟구쳤다. 때를 같이 해, 대기시켰던 오십 개의 검풍탄은 소나기처럼 떨어졌다. 대나무를 쪼개듯 수직으로 갈랐다. 괴수 지렁이는 솟구친 자세 그대로 반쪽이 나서 사방으로 후두둑 떨어졌다.


불행히도 마수는 괴수 지렁이가 아니었다. 검풍탄으로 몸뚱이는 갈라지지도 않았고 상처를 입지도 않았다. 검강만이 상처를 입혔다. 강기를 검풍탄강으로 사용해도, 검강이 맺힌 마갑대검으로 내려친 것보다 약했다. 상처를 입었다는 실금만 생겼었다.


눈앞에 마수 베이모스가 있었다. `쌍면갑 삼두견인'이 있었다. 부하 겸 식량으로 쓰던 괴수 지렁이들이 죽자, 흉맹한 기세를 드러냈다. 그리고 철장패를 향해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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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 사냥이야기 25 - 삼백 년 묵은 저주 +12 09.07.01 9,239 73 19쪽
146 사냥이야기 24 - 잘못된 재판 4 +12 09.06.30 8,853 75 19쪽
145 사냥이야기 23 - 잘못된 재판 3 +9 09.06.29 8,611 69 16쪽
144 사냥이야기 22 - 잘못된 재판 2 +11 09.06.26 8,679 64 24쪽
143 사냥이야기 21 - 잘못된 재판 +15 09.06.25 9,010 68 29쪽
142 사냥이야기 20 - 올빼미 소년 2 +10 09.06.24 8,536 68 16쪽
141 사냥이야기 19 - 올빼미 소년 +13 09.06.22 8,801 66 19쪽
140 사냥이야기 18 - 마수 삼두견인 6 +19 09.06.19 9,052 68 24쪽
139 사냥이야기 17 - 마수 삼두견인 5 +12 09.06.18 8,599 56 17쪽
138 사냥이야기 16 - 마수 삼두견인 4 +11 09.06.17 8,801 68 23쪽
137 사냥이야기 15 - 마수 삼두견인 3 +11 09.06.16 8,508 63 17쪽
136 사냥이야기 14 - 마수 삼두견인 2 +15 09.06.15 8,899 62 25쪽
» 사냥이야기 13 - 마수 삼두견인 +13 09.06.12 9,505 71 22쪽
134 사냥이야기 12 - 버려진 땅 5 +7 09.06.12 9,165 68 25쪽
133 사냥이야기 11 - 버려진 땅 4 +7 09.06.09 8,835 72 21쪽
132 사냥이야기 10 - 버려진 땅 3 +7 09.06.08 9,051 68 17쪽
131 사냥이야기 9 - 버려진 땅 2 +7 09.06.07 9,018 59 18쪽
130 사냥이야기 8 - 버려진 땅 +4 09.06.05 9,595 67 17쪽
129 사냥이야기 7 - 되찾은 월령 2 +8 09.06.03 9,683 78 19쪽
128 사냥이야기 6 - 되찾은 월령 +8 09.06.01 9,650 63 21쪽
127 사냥이야기 5 - 예정된 출발 5 +6 09.05.29 9,197 62 15쪽
126 사냥이야기 4 - 예정된 출발 4 +5 09.05.28 9,289 59 12쪽
125 사냥이야기 3 - 예정된 출발 3 +4 09.05.28 9,201 69 22쪽
124 사냥이야기 2 - 예정된 출발 2 +7 09.05.26 10,354 66 13쪽
123 사냥이야기 1 - 예정된 출발 +10 09.05.23 12,864 62 4쪽
122 전쟁이야기 122 - 새로운 시대 5 +13 09.05.20 11,253 66 16쪽
121 전쟁이야기 121 - 새로운 시대 4 +8 09.05.15 9,819 71 14쪽
120 전쟁이야기 120 - 새로운 시대 3 +8 09.05.14 9,765 71 23쪽
119 전쟁이야기 119 - 새로운 시대 2 +6 09.05.12 9,994 66 15쪽
118 전쟁이야기 118 - 새로운 시대 +10 09.05.09 10,728 6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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