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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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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해
작품등록일 :
2011.11.10 19:59
최근연재일 :
2015.12.11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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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6.01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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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사냥이야기 6 - 되찾은 월령

DUMMY

*

마수 베이모스를 향해 사람들이 몰렸다. 숨은 장소가 확인이 되어 너도나도 한 곳으로 움직였다.


그 무리 중에는 추밀용병단의 조심스런 움직임도 섞여 있었다. 종리정탐의 시선에서 스산한 기운이 솟았다. 더불어 네 명의 추적꾼은 용의자에게 들키지 않게 숨어서 살폈다.


범죄자를 쫓는 추밀용병단은 드문 용병단이었다. 추적꾼 다섯 명과 호위 용병 두 명의 구성은 극단적이고 독특한 구성이었다. 비슷한 구성으로 같은 일을 하는 용병단은 추밀용병단을 포함해서 세 곳밖에 없었다. 나머지 용병단은 대체로 추적꾼 하나에서 둘밖에 두지 않았다.


범죄자를 쫓는 용병들은 의외로 많았다. 그렇지만 오래 하는 용병은 드물었다. 그것도 용병단을 구성해서 범죄자를 쫓는 단체는 용병본부에서 확인된 것만으로 한다면 마흔네 곳이었다. 실제로 추산되는 숫자는 오백이 넘었지만 여럿이 움직여서 한다고 해도 용병본부에 등록하지 않고 살았다. 조원이 수시로 이탈하거나 들어와 그 때마다 용병지부에 등록하기 귀찮다는 점도 있었고, 잡고자 하는 범죄자의 특성에 따라 추격하는 동료가 시시각각으로 바뀌었다.


``어떤가?"

조바심이 담긴 심안호의 질문에 추적꾼 한예상은 인상을 찌푸렸다.

용의자로 지목된 존재가 마법사의 특징이 없었다. 아예, 전무하다는 게 옳았다. 마수를 소환하기 위해 필수 불가결한 `마나'가 없었다.

``마법사가 아닙니다!"


의심이 가는 부분이 많았지만 용의자는 마법사가 아니었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다. 다시 소환자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한숨을 내쉬는 무사들과 달리 추적꾼들은 마법사가 아닌 용의자에게서 시선을 놓지 않았다. 특히, 종리정탐은 신중하게 용의자와 관련이 되었던 여러 가지를 떠올리며 고민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소환자가 맞다고 생각됩니다. 증거물은 그가 소환했다고 말합니다. 마나가 없어 소환을 못한다고 지레짐작해서는 안 됩니다."


심안호는 추적꾼 종리정탐의 말에 노마법사 조덕화에게 기대의 시선을 던졌다. 추적꾼 한예상마저 노마법사를 응시했다.

``마나가 없다고 해도 마법진을 마나석으로 작동시킬 수 있어. 그리고 피로서도 가능하고, 의지가 강하다면 의지의 힘으로도 마법진은 움직여. 마법진이 새겨진 마갑기는 기사의 힘으로 강한 능력을 발휘해. 여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지 마나가 없는 용의자가 소환했다고 말할 수는 없어. 거대한 마수를 소환하려면 마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거든...."


설왕설래 말들이 많았다. 이야기를 할수록 용의자는 소환자가 아니라는 결론으로 치달았다.


옥신각신하는 일행을 벗어나 철장패는 걸었다. 수십 명의 용병에게 둘러쌓여 토벌대와 싸우는 마수 베이모스를 광기가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용의자에게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섰다.


낯선 사람이 다가오자 용의자는 뒤로 물러섰다. 둘러선 용병 틈 속에 숨었다. 용의자를 보호하기 위해 용병들이 철장패를 가로막았다. 거친 말투로 찍찍 침을 뱉었다.

``뭐하는 귀족인지 몰라도 걸음을 멈추어 주쇼. 할 말이 있으면 나에게 말하쇼."


나선 용병을 여포가 옆으로 밀었다. 주군에게 하는 행동이 거슬렸다. 여포의 행동에 용의자를 보호하는 용병들이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러나 심안호가 하나의 신분패를 보이자 무기를 빼어들던 용병들이 당혹스러워 했다.

``군부 소속의 감찰단에서 나왔다. 잠시, 질문만 하고 가겠다."


용의자가 거리를 벌리며 도망치려고 하자 심안호와 김현우는 용의자의 퇴로를 막았다.


시야에 다시 들어온 용의자에게 철장패는 다가서며 물었다.

``어째서, 마수를 소환했나?"


느닷없는 질문에 놀란 건 용의자가 아닌 일행이었다. 소환자가 아니라는 쪽으로 결론이 나던 차였다. 그래서 소환된 장소에서 무엇을 보았느냐며 탐문할 줄 알았다.

``무슨, 무슨 말입니까? 난 아무 것도 모릅니다!"


긴장된 기색이 완연한 가운데 큰소리로 부정했다.


철장패는 용의자의 말에도 불구하고 두려움과 당혹으로 얼룩진 눈동자를 보았다. 그 속에 감추어진 이그러진 내면을 엿보았다.

``마수를 왜 소환했나?"

``난 그런 거 몰라. 알지도 못하고 처음 듣는 이름이야."


너무나 강한 부정은 긍정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경색된 태도로 안절부절못하는 용의자를 묵묵히 보던 철장패는 다시 물었다.

``마지막으로 묻겠다. 이번 질문에도 적절한 대답을 하지 않는다면 소환 현장에 있었다는 이유로 연행부터 하겠다. 마수를 왜 소환했나?"


마수를 소환했던 용의자에게 있어 철장패의 태도는 모든 걸 알고 있다는 시선이었다. 도둑이 제 발 저린 격으로 가슴이 내려앉았다. 소환 현장에 없었다는 변명부터 해야 했다.

``소환이 되었다는 곳에 간 적은 있어도 마수가 소환이 되는 장면은 본 적이 없습니다. 저에게는 잘못이 없습니다!"


엉겁결에 변명하느라 해서는 안 될 말을 꺼냈다.


군부 감찰단에서 나왔다며 윽박지르는 자들에게 좋지 않은 감정이 생기던 용병들은 용의자의 대답에 눈동자가 커졌다. 용의자와 함께 스무 날이 넘게 행동했었다. 그래서 마수가 소환되었던 당일의 끔찍한 기억도 공유했다.

``뭐가 어쩌고 어째? 처음 소환이 될 때 나도 본 놈을 못 봤다니 무슨 말입니까? 아니, 무슨 말이냐?"


의뢰주에게 좋은 감정이던 붉은 코 용병이 불안한 예상에 저절로 목소리가 높아졌다. 마수 베이모스에게 소중한 친구 두 명을 잃었었다. 그중에 한 명은 고향에서 돈을 벌자고 함께 나온 친구였다. 그런데, 그 비참한 일이 눈앞에 있는 의뢰주 때문이라고 생각하자 아찔해졌다.


첫단추부터 잘못 꿴 용의자는 몇 가지의 의혹과 질문이 속사포처럼 쏟아지자 무너져 내렸다. 어디까지나 용의자는 평범했던 존재였다. 평범한 삶을 살아가던 사람이었다. 단지, 누구보다 호기심이 강한 사람이었을 뿐이었다. 남의 돈을 우려 먹자고 사기를 치는 사기꾼도 아니었고, 노련한 연극배우처럼 뛰어난 연기실력도 없었다. 옆에 있는 이웃처럼 평범했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용의자의 행적들은 듣는 사람을 소스라치게 만들었다. 평범했던 사람이 마수 베이모스를 소환하기 위해 벌인 집념보다 광기에 할 말을 잃었다.


아무래도 주변은 사람이 많았다. 이야기를 더 듣기 위해 자리를 이동했다. 조용한 자리에 도달하자 철장패의 일행과 추밀용병단의 추적꾼 다섯 명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근처에 오지 못하게 했다. 추적꾼은 다른 소환자를 탐색하는 데 좋은 예증을 주기 위함이었다.


이야기가 들을수록 사람이 얼마나 잔인하게 변할 수 있나를 듣는 기분이었다. 세상을 살아가는 시선을 반대로 바꾸었을 뿐인데 인생이 바뀌었다. 사람이 바뀌었다. 담담히 행적을 드러내는 용의자에게서 삶을 체념한 기세가 묻어 나왔다.


장시간에 걸친 이야기가 끝나자 해가 서산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아직도 토벌대와 마수 베이모스가 싸우는 소리는 간간이 들려왔다.


철장패는 곤혹스러웠다. 평범한 사람이 하루 아침에 바뀌었다. 이야기를 하는 사이사이에 살인하는 방법까지 자세하게 설명하는 면모를 보였다. 피에 미친 살인자라고 스스로 인정하고 있었지만 말처럼 간단하지 않다.


어느 날, 갑자기 눈을 떠 보니 살인자가 되었다라고 말하는 것은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이질적이었다. 뭔가 본능을 자극하는 섬뜩한 게 있었다.


더 이상 들을 게 없다고 판단한 철장패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용의자에게서 벗어나려다가 문득 끈적끈적한 느낌과 어떤 생각에 조심히 손바닥 위에 `도깨비불'을 생성시켰다. 가만히 있어야 할 도깨비불이 미친 듯이 요동쳤다. 누가 자신에게 저주를 건 흔적도 없는데 무서운 것에서 도망이라도 가려는 태도로 발버둥을 쳤다. 도깨비불이 도망치려고 하는 반대 방향에는 노마법사가 용의자에게서 얻은 소책자가 있었다. 노마법사가 소책자를 읽고 있었다.


``그 책을 저에게 주시겠습니까?"

노마법사는 소책자를 집중해서 보다가 부탁하는 철장패에게 선뜻 소책자를 건네지 못했다. 소환술이 전문인 노마법사로서는 소책자야말로 다시 없는 보물이었다. 주춤거리며 망설이는 노마법사에게 도깨비불을 보여 주었다.


``이 녀석이 그 책에게서 멀어지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아마도, 저주가 걸린 책인 거 같습니다."

싸늘한 광망을 뿜고 있는 철장패의 기세에 노마법사는 어쩔 수 없이 소책자를 내밀었다. 철장패가 대공의 작위를 갖고 있기에 거절할 방법이 없었다. 눈물을 머금고 소책자를 건네주었다.


소책자를 읽지도 않고 품속에 넣었다. 순간, 온몸이 불에 데인 것처럼 화끈거렸다. 도깨비불이 자신의 영역을 침범한 소책자에게서, 도망을 가지 않고 싸우기에 생기는 현상이었다. 철장패의 몸속에서 벌어지는 일이라 아무도 몰랐다.


용의자에게서 벗어나던 철장패는 다시 용의자에게 다가섰다. 노마법사와 추적꾼들에게 여러 질문을 받던 용의자는 답변을 멈추고 긴 그림자가 다가오자 올려보았다.

``마수 소환진이 적힌 소책자를 받을 때, 책을 건네던 거지를 기억하나?"


용의자의 울먹이던 얼굴은 먼지가 끼어 지저분했다.

``그 거지를 기억한다면 자세하게 얼굴이나 체형을 설명하라."

``오래 전의 일이었지만 그 거지는 너무 독특해서 기억이 납니다. 다만, 자세히 떠오르지 않습니다."


김현우가 나름대로 용의자의 말을 메모하다가 철장패의 시선에 거지의 체형과 얼굴까지 그려야 했다. 여러 번의 수정과 반복을 통해 거지의 모습이 그려졌다.


스케치가 된 거지의 모습에 용의자가 탄성을 질렀다.

``바로, 이 자입니다. 그때의 거지가 맞습니다!"


수첩에서 거지의 모습이 그려진 부분만 건네받았다. 거지는 미남자였다. 거친 늑대를 연상시켰다. 눈빛은 먹이를 찾아 헤매는 것처럼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잠시 거지를 노려보던 철장패는 품속에 있던 소책자 안에 스케치가 된 그림을 책갈피했다.


만약, 소책자로 인해서 저주에 걸린 것이라면 희생양은 도서관의 사서를 했던 평범한 사람이었다. 세상은 아무 이유도 없이 일반인이 살인자로 돌변하는 세계가 아니었다. 변하는 건 변해야 하는 이유가 있기 마련이었다. 평범한 도서관 사서를 미치광이 살인자로 만들었던 소책자. 저주가 깃든 소책자를 베끼었다는 거지. 수상한 느낌이었다.


몸속은 도깨비불이 난장판을 벌였다. 소책자는 꿈쩍도 하지 않는데 도깨비불은 생존의 위협을 느낀 것처럼 소책자를 공격했다. 조용한 자리를 찾아 정령의 세계를 응시할 필요가 있었다.

``잠시, 몸속의 마나를 돌리기 위해 좌정을 해야겠다. 나를 아무도 만지지 마라."

``네, 알겠습니다!"


용의자의 심문은 하지 않고 한편에 서서 마수 베이모스와 토벌대의 격투를 지켜보던 여포와 청오가 일행을 대신해 대답했다.


평평한 돌바닥에 앉았다. 끊임없이 품속의 소책자를 공격하는 도깨비불을 응시했다. 그리고 도깨비불의 마음과 동조했다. 도깨비불의 새끼가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있는 위치를 파악하는 수법이기도 했다. 도깨비불의 눈으로 세상을 보았다. 그러자 세상은 온통 바뀌었다. 태양에 의해 빛과 어둠으로 분류가 되었던 세계는 사라지고 수많은 색색으로 세상은 빛을 뿜었다. 도깨비불의 시선으로 소책자를 보자 어둠밖에 없었다. 마계에 존재한다는 지저의 깊은 지옥처럼 어두웠다.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어둠이었다.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떠올랐다. 마수사냥을 하기로 작정하게 만들었던 `지옥겁화'의 어둠이었다.


선명하고 윤기가 스며 있는 어둠, 검은 빛으로 빛나는 어둠, 수많은 계곡 물줄기가 꿈틀거리며 움직이는 듯한 모습, 한자리에 있지 않고 계속 불꽃처럼 솟구치는 흐름, 모든 게 `지옥겁화'와 닮았다. 인간의 눈에는 평범한 소책자였지만 도깨비불이라는 정령의 눈으로 보자 소책자는 `지옥겁화'의 모태가 되는 마나의 파편처럼 느껴졌다. 일단, 소책자에 담겨진 힘을 `지옥겁화력'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정체가 드러나겠지만 `지옥겁화력'이라는 단어가 가장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왜 `지옥겁화력'이 마수 베이모스에게 있지 않고 소책자에 스며 있는 것일까. 갖가지 의문이 솟구쳤다.


그것보다 가슴이 떨리게 만드는 건 소환자의 소책자에서 `지옥겁화'의 실마리를 얻었다. 어쩌면 지옥겁화에 무력하게 당하지 않아도 된다는 희망이 의심과 함께 가슴에서 솟구쳤다.


지금은 도깨비불을 진정시켰다. 괜히 위험한 존재를 건드려 폭발하게 할 상황이 아니었다. `지옥겁화력'이 몸 안으로 스미지 않게 도깨비불을 다독였다. 몸속에 스미려는 기색이 보이면 알 수 있도록 도깨비불을 소책자 주변으로 꽁꽁 감쌌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지옥겁화력'에 휩싸여 미친 살인마로 돌변하고 싶지 않았다. 빠른 시간 안에 시간을 내어 `지옥겁화력'의 정체를 파악해야 했다. 다시 한 번, `지옥겁화력'의 움직임을 살피고 도깨비불과의 동조에서 벗어났다. 당장은 마수 베이모스를 관찰하는 게 우선이었다.


천천히 눈을 뜬 철장패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수 소환자에게 하는 질문은 나중에 하도록 한다. 지금은 마수 베이모스를 살피자."


철장패의 단언에 모두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노마법사만 소환자를 붙잡고 소환 마법진에 대해 자세히 묻고 있었다. 그때마다 문답으로 아는 대로 성심성의껏 살인마는 대답했다. 서탁본의 질문에는 지친 태도로 답변한다면 노마법사와는 학구적인 친구가 되어 대화하고 있었다.


도서관 사서였던 살인마는 더 이상 피에 미친 살인마로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포승줄로 몸을 결박하고 손을 뒤로 해서 수갑을 채운 살인마는 일행과 함께 움직였다.


그 앞을 막은 건 살인마의 신변 보호를 담당하던 용병 수십 명이었다. 추밀용병단의 두 절정무인과 여포와 청오에게 막혀 다가서지 못하다가 살인마가 모습을 드러내자 다가왔다.

``마수를 소환했던 놈이든 아니든 일한 만큼의 품삯은 받아야겠습니다. 하루 먹고 하루 살아가는 저희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돈입니다."


수갑이 채워진 살인마를 대신해 심안호가 살인마의 품속을 뒤져 돈주머니를 꺼낸 다음, 대가를 치루었다. 용병 각각에게 돈을 지급하고 몇몇은 죽은 용병까지의 품삯을 원해 같이 내밀었다. 돈을 받는 용병은 한숨과 허망함 그리고 슬픔이 얼굴에 깊게 밴 체 등을 돌렸다. 또 어떤 용병들은 살인마를 향해 분노의 괴성을 터뜨렸지만 여포와 청오에게 막혀 날뛰었다.


철장패는 용병들의 행사는 잠깐 보다가 마수 베이모스와 싸우는 곳으로 터벅터벅 걸었다.


해가 저물고 있었다. 그런데 격투는 점점 치열하게 변했다. 어제처럼 `쌍면갑호'가 도망가지 못하게 두 겹의 포위망이 구축된 상황이었다. 용병단이나 기사단에 속한 마법사들은 '라이트' 마법을 사용해 빛을 발하는 마법구를 허공으로 띄웠다. 대부분 구경꾼으로 온 마법사들이었지만 `쌍면갑호'를 잡기를 원하는 건 모두 같았다. 한 마리라도 많이 죽여야 괴물의 도발을 줄이고 나아가서 위기에서 패제국이 벗어난다는 공통된 인식이 있었다.


밤을 새울 각오인지 박현상 백작의 참모인 소만보 책사가 부지런히 주변의 구경꾼들과 접촉했다. 깊은 산에 구경꾼으로 왔다면 나름대로 실력에 자신감이 있는 무사일 게 분명했다. 여러 곳으로 나누어진 구경꾼들을 찾아다니며 밤에 밀어닥칠 몬스터를 막아달라며 호소하고 있었다.


마침내, 철장패의 일행에게까지 도착한 소만보 책사가 앞으로 나선 심안호에게 부탁했다.

``오늘 기필코 잡겠습니다. 도와주십시오. 잡게 되면 후사할 테니 도와주십시오."


부죽립을 쓴 심안호는 철장패에게 고개를 돌렸다. 작게 끄덕이는 태도에 심안호는 박현상 백작의 참모에게 허락했다.

``알겠습니다. 저희가 있어야 할 위치는 어디입니까?"

``제가 직접 안내하겠습니다."


죄인을 묶은 포승줄과 수갑, 삿갓을 쓰고 정체를 감춘 네 명의 죽립인은 수상하기 그지없었다. 일행으로 보이는 청년귀족과 노마법사는 처음으로 보는 얼굴이었다. 몇 번의 접촉으로 알고 있는 추밀용병단이 함께 하고 있자 범죄자의 얼굴을 보았지만 착하게 생겼다. 사람의 마음은 겉모습만 보아서는 알 수 없다고 생각하며 철장패 일행을 안내했다.


가까이 갈수록 마수 베이모스의 난동이 실감나게 다가왔다. 어제처럼 쉽게 도망가지 못하자 불같이 화를 내며 드잡이를 벌였다. 철장패 일행이 자리를 잡은 위치는 최후의 방어선이었다. 그리고 몬스터가 들이닥치면 최전선으로 변하는 곳이었다.


날이 점점 어두워 태양이 서산에 걸리자 노마법사 조덕화는 `라이트' 마법을 사용해 주변을 밝혔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마갑기를 갖고 있는 기사들은 모두 마갑기에 올라탔다. 용병단 속에서도 다수의 마갑기를 드러냈다.


용병이라고 해도, 굳이 절정무인이 되지 않아도, 이류무사가 되어 검기를 뿜을 실력이면 국가에서 허락하는 자유기사에 도전할 수 있었다. 자유기사가 되는 게 쉽지 않았지만 못할 것도 없었다. 자유기사가 되는 게 절정무인이 되는 것보다 어렵다는 소문도 돌았지만 뛰어난 인재라면 충분히 자유기사로 올라섰다. 많은 용병들은 예절과 작전을 수행하는 방법 등등의 문제로 실력은 되더라도 자유기사가 되는 걸 포기했다. 검강을 뿜는 절정무인이 된다면 몇 가지 약속으로 자유기사로 허락해서 그때 되려고 마음을 바꾸는 사람도 많았다.


마수 베이모스에 대해 소문을 들었으니 마갑기를 드러낸 용병들은 대부분 절정무인이었다. 마수와 싸우지 않고 구경꾼으로 온 용병도 많아 실버나이트와 골드나이트를 상징하는 깃털투구가 여기저기서 보였다. 후방에서 나타날 몬스터를 막기 위해 꺼낸 모양이었다.


철장패도 마갑기를 꺼냈다. `쌍면갑호'가 상처를 많이 입었다. 이제 얼마 후면 악마의 얼굴이 드러날 차례였다.

``곧 있으면 악마의 얼굴이 드러난다. 모두 조심해라. 될 수 있으면 악마의 입에서 뿜어지는 브레스는 피해라. 피하지 못한다면 마갑기가 녹는다."


재삼재사 말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만큼 위험했다.


토벌대를 이끄는 박현상 백작의 기사단은 드래곤 군단과 싸우는 상중상의 무력이었다.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렇지만 마수 베이모스는 절대 드래곤보다 약한 몬스터가 아니었다. 오히려 알려지지 않았다는 면에서는 더 무서웠다. `쌍면갑호'가 마갑기를 뛰어넘어 도망갈 수 있다는 걸 몰랐기에 포위망이 쉽게 뚫렸던 것처럼 위험은 상존했다.


마침내, 해가 완전히 기울어 주변이 어둠에 잠식되자 `쌍면갑호'는 하룻동안의 전투에 지쳐 악마의 얼굴이 드러났다. 호랑이의 얼굴은 꼬리가 되어 달랑거렸고, 악마의 얼굴은 높게 세워져 사방을 훑었다.

``먹이에 불과한 인,간, 따위가 나를 아프게 하다니... 단숨에 없애주겠다!"


듣기 거북한 목소리가 악마의 얼굴에서 나왔다. 듣는 것만으로도 뱃속이 느글느글 뒤집어졌다. 몬스터에게서 들을 거라 생각하지도 못했던 목소리에 모두 깜짝 놀랐다.


거미처럼 움직이던 다리가 호랑이처럼 변했다. 조심히 앞으로 나서는 발걸음과 뒤로 갈수록 낮아지는 다리가 영 낯설었다. 악마의 얼굴에서 예상했던 브레스가 뿜어졌다. 독연기처럼 뿜어지는 브레스가, 마법사들이 높이 세운 빛의 마법구 속에서 드러났다.


박현상 백작이 준비한 것은 장창이었다. 기사마다 마갑대검을 집어넣고 장창을 소환해 `쌍면갑호'와의 거리를 벌렸다. 브레스에 장창이 녹아내리면 다른 장창을 소환해 대응했다. 마갑기마다 소환이 되는 무게에 한계가 있었다. 아무리 무게를 줄이기 위해 장창을 가늘고 길게 제작했다고 하지만 임시방편이었다. 브레스를 막는 장창이 끝도 없이 나올 수 없었다.


목숨을 걸고 열 자루의 장창이 악마의 얼굴을 향해 한꺼번에 나아갔다. 후미에 있던 기사들도 `쌍면갑호'의 엉덩이를 힘껏 찔렀다. 일순간 피가 솟구치다가 빠르게 `쌍면갑호'의 상처가 아물었다. 그동안 격투가 끊이지 않고 지속시켰던 건 쌍면갑호의 엄청난 재생력이었다. 가끔 운이 좋아 갈라진 상처를 내어 아물지 않도록 연달아 공격했지만 몸을 이리저리 틀어 헛동작으로 변했었다.


긴 시간을 소모해 겨우 `쌍면갑호'에게 큰 부상을 입혔다. 그 와중에 소중한 스물한 명의 부하를 잃었다. 악마의 브레스로 시간을 번 쌍면갑호가 엄청난 재생력으로 낫게 할 수 없었다. 결심을 선 박현상 백작은 앞으로 나섰다. 그와 함께 약속된 신호가 올라가자 일곱 명의 기사가 `쌍면갑호'를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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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 사냥이야기 10 - 버려진 땅 3 +7 09.06.08 9,051 68 17쪽
131 사냥이야기 9 - 버려진 땅 2 +7 09.06.07 9,018 59 18쪽
130 사냥이야기 8 - 버려진 땅 +4 09.06.05 9,595 67 17쪽
129 사냥이야기 7 - 되찾은 월령 2 +8 09.06.03 9,683 78 19쪽
» 사냥이야기 6 - 되찾은 월령 +8 09.06.01 9,651 63 21쪽
127 사냥이야기 5 - 예정된 출발 5 +6 09.05.29 9,197 62 15쪽
126 사냥이야기 4 - 예정된 출발 4 +5 09.05.28 9,289 59 12쪽
125 사냥이야기 3 - 예정된 출발 3 +4 09.05.28 9,201 69 22쪽
124 사냥이야기 2 - 예정된 출발 2 +7 09.05.26 10,354 66 13쪽
123 사냥이야기 1 - 예정된 출발 +10 09.05.23 12,864 62 4쪽
122 전쟁이야기 122 - 새로운 시대 5 +13 09.05.20 11,254 66 16쪽
121 전쟁이야기 121 - 새로운 시대 4 +8 09.05.15 9,819 71 14쪽
120 전쟁이야기 120 - 새로운 시대 3 +8 09.05.14 9,765 71 23쪽
119 전쟁이야기 119 - 새로운 시대 2 +6 09.05.12 9,994 66 15쪽
118 전쟁이야기 118 - 새로운 시대 +10 09.05.09 10,728 6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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