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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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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해
작품등록일 :
2011.11.10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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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11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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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09.06.08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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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사냥이야기 10 - 버려진 땅 3

DUMMY

*

명령이 떨어지자 기다렸다는 듯 심안호는 앞으로 나섰다.

``정체가 불분명한 놈들에게 듣기가 껄끄러운 말이다. 왕하군남작의 심복이라고 하였으니, 정확한 신분을 밝혀라!"


대답은 들리지 않고 칼잡이 오십 명 뒤로 수상한 모습의 궁수 수백 명이 나타나 화살을 당겼다. 그리고 머리카락을 빨갛게 염색한 빨간 머리의 지시를 기다렸다.

``낄낄낄, 수상한 건 너희들이다. 마음이 착한 우리는 있는 그.대.로... 입고 다니지 않느냐. 진정으로 거지발싸개와 같은 놈들은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찬 네놈들이 아니겠어. 고귀한 기사 나으리들!"


얼굴에 흉터가 많은 빨간머리가 손짓하자 궁수들의 화살이 감찰단 앞에 꽂혔다. 몇 개의 화살은 고의적으로 감찰단에게 쏘았다. 다행히 몇 개의 화살이라 막아냈다. 맞으면 죽는 화살이 쏟아지자 공격하려고 뛰쳐나가는 호위들을 철장패는 다독였다.


위협 사격을 가한 후, 빨간머리가 하늘을 안을 태세로 두 팔을 힘껏 벌렸다.

``나는 말이야, 항복을 권하는 게 아니야. 순순히 항복하면 심심하거든. 제발, 우리와 싸워. 싸우는 너희들이 귀여워서라도 모두 죽여줄게!"


막상, 위협을 당하는 철장패 일행은 가만히 있는데, 멀리서 구경하는 왕국군들이 분노해서 저마다 뛰쳐나가려고 했다. 그들을 제지한 건 주변의 다른 왕국군이었다. 이미, 군영에 있는 가족들은 볼모로 화한 후였다. 무엇보다 왕하군 남작은 이상한 놈들을 두둔했다. 명령이 떨어진다면 죽음을 불사하고 공격할 생각밖에 없었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다. 갑옷과 무기도 압수가 된 상태였다. 빼앗기지 않은 건 군인을 상징하는 제복뿐이었다.


빨간머리는 주위를 둘러보며 조소를 지었다.

``어이구, 사방에서 귀여워 해달라고 야단이네."


빨간머리의 광기가 서린 눈동자가 주변을 훑자 구경하던 왕국군들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방금 전까지 분노에 찼던 모습은 사라지고, 밤을 새며 찬서리에 맞은 강아지처럼 몸을 움츠렸다.


주위의 반응에 기쁜 미소를 활짝 짓던 빨간머리가 감찰단에게 호통쳤다.

``당장, 갑옷과 무기를 던져라. 신분을 말하는 건 감찰단이라고 속이고 온 너희들을 포박한 후에 해도 늦지 않다."


빨간머리의 외침은 희망을 갖고 감찰단을 주시하던 왕국군에게 잠깐 동안 절망이란 감정이 스며들게 했다. 그래도 희망을 버릴 수 없었다. `보염진'을 지옥처럼 만든 저놈들의 마수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싸늘한 눈매의 심안호는 저절로 얼굴이 찌푸려졌다. 외양이 흑곰처럼 느껴지는 마르쿠스가 옆에 서서 소곤거렸다.

``뭔가 심상치 않다. 대화할 목적으로 잡혀선 안 된다. 그럼, 끝장이다!"

``무슨 소리야? 뭐라도 느껴지는 게 있어?"


안면을 정면으로 향한 채 심안호는 마르쿠스에게 물었다.

``비싸고 좋은 옷을 입었다고 해도 행동하는 게 마적이나 다름없다."


심안호는 마르쿠스의 대답을 듣자마자 빨간머리에게 외쳤다.

``무슨 헛소리냐! 네놈의 신분부터 들어야겠다. 정확한 신분을 말하지 않는다면... 감찰단의 권한으로 체포하겠다."


심안호의 신호가 올라가자 스물한 명의 호위는 검을 빼어들고 원형으로 나섰다.


본격적인 격투가 벌어지려 하자 철장패는 근처에 있던 의자를 가져다 놓고 앉았다. 호주머니에서 군것질하려고 챙겼던 육포를 들고 깨작였다. 육포는 적당히 양념이 되어 맛있었다. 심심할 때, 배고픔을 없앨 겸 먹기 좋았다.


반항적인 감찰단의 모습에 빨간머리의 눈동자가 광기에 휩싸였다. 입가는 길쭉하게 찢어져 희열에 들떴다. 부하들에게 공격하라고 명령하기 직전, 한 사람이 두 무리의 사이로 걸어왔다.

``싸우면 안 되지. 우리는 피를 멀리 해. 평화롭게 살기를 희망하는 사람이야."


빨간머리는 나타난 사람을 보자 천천히 고개를 조아렸다.

``남작님을 뵙.습.니다.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걱정을 마시고 들어가시죠."


반항 끼가 넘실거리는 어투로 빨간머리는 왕하군 남작의 등장을 싫어 했다.

``요즘은 너무 평화로와 몸이 근질근질해. 감찰단이라고 속인 놈들이 있다고 하기에 구경하러 왔지."


마르쿠스는 왕하군 남작을 보았지만 틀림없는 남작이었다.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변할 수 있나 모를 정도로 변해 있었다. 얼굴을 몰랐다면 전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바뀐 복장과 헤어스타일이었다.


남작에게 다급히 뛰쳐나가려는 마르쿠스를 철장패가 붙잡았다.

``가만히 여기에 있어요. 명령이 떨어지기 전까지 개인행동을 금합니다. 지금은 심호위에게 맡깁니다."


맛있게 육포를 뜯는 행동과 목소리는 여유로웠다. 말과 달리 범접하기 힘든 기세가 드러나서 마르쿠스는 옮기던 발걸음을 멈춰야 했다.


똥줄이 탈 정도로 다급한 상황에 답답한 정도로 느린 대처였다. 주위를 살폈더니 여포와 청오는 물론이고 나이가 어린 다섯 명의 호위마저도 침착했다. 노마법사는 철장패의 곁에 바짝 붙었다. 마음에 맞는 건 추적꾼 종리정탐뿐이었다. 그가 주위를 불안한 시선으로 살피고 있었다. 마르쿠스는 저절로 종리정탐의 곁에 섰다.


뒤에서 의자에 앉아 느긋하게 구경하는 철장패에게 시선을 두던 왕하군 남작은 요란스럽게 소리쳤다.

``너희들이 말하는 제7 감찰단이라는 존재는 없다. 통합참모본부에 있는 감찰단은 여섯 개밖에 없다. 어디서 거짓말을 하는 것이야?"


심안호는 남작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처음으로 뵙겠습니다. 제7 감찰단은 이번 3월 3일부터 설립이 되었습니다. 사실 여부를 확인하고자 한다면 마법통신으로 연락하면 판명이 날 것입니다만... 남작이라고 하지만 누구에게 반말하는 것이냐. 설마 나에게 하는 건 아니겠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는 심안호의 시선이 매섭게 부릅떴다.

``이것 봐, 왕남작. 같은 남작에게 하는 말치고 듣는 사람의 기분을 나쁘게 한다. 변경에 위치한 남작 주제에 죽고 싶냐?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곱지 않겠어."


새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매서운 기세로 심안호가 위협했다. 일반인이라면 무사가 뿜는 살기에 숨이 멎었다. 갑자기 왕하군 남작은 벌러덩 뒤로 넘어졌다. 너무 당황하는 왕하군 남작에게 의아한 감정까지 들었다. 그렇다고 찾아온 기회를 나 몰라라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우리에게 벌인 무례한 행동을 책임져야겠어!"


심안호는 빠르게 맹곤에게 눈짓했다. 열혈남아 맹곤은 신호를 받자마자 쏜살같이 달려가 허둥거리는 왕하군 남작의 팔을 꺾어 붙잡았다.


갑작스런 사태에 칼잡이 오십 명이 득달같이 달려왔지만 왕하군 남작은 맹곤에 의해 철장패 앞까지 질질 끌려갔다. 다가오는 칼잡이들과 호위들의 접전이 벌어진 건 순식간이었다.


빨간머리는 어처구니없어 조용히 혀를 찼다.

``쯧쯧쯧, 배운 거라곤 변신술밖에 없으면서 나서긴 왜 나서나 모르겠어."


긴 혓바닥을 내밀며 입술을 핥던 빨간머리는 느리게 걷던 걸음을 빨리해 격투에 참가했다.


심안호는 빨간머리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다가오는 칼잡이야 험상궂고 숫자도 많지만 상대할 마음이 없었다. 그렇지만 빨간머리는 호기심이 생길 만큼 실력이 있어 보였다. 다가서는 심안호를 제치고 호위 풍호각이 앞질러 달렸다.

``제가 먹겠습니다. 저렇게 마음에 들지 않는 놈은 두드려야 속이 풀리겠습니다."


커다랗게 말하며 다가서는 풍호각을 말리지 못했다. 벌써, 빨간머리와 다투고 있었다. 풍호각은 호위 중에서 가장 걸음이 빨랐다.


이제 남은 건 이백 명 가량의 궁수였다. 심안호는 흉갑 하단에 박힌 일곱 개의 보석에서 흉갑을 제외한 `일주육갑'을 꺼내어 착용했다. 간단히 순번에 맞게 마법 시동어를 소리낸다면 알아서 착용이 되었다. 찰칵, 소리를 내며 온몸을 전신갑주로 보호하자 궁수들에게 향했다.


호위 풍호각은 쉽게 생각했던 빨간머리에게 연타로 얻어맞았다. 급하게 피하지 않았다면 목에 날카로운 `혈랑조'가 박혔다. 간담이 싸늘하게 식은 풍호각은 정신을 바짝 차렸다. 늑대의 손톱처럼 생긴 날카로운 `혈랑조'는 특이한 기능을 갖고 있었다. 갑자기 이중으로 손톱이 늘어나 목구멍을 뚫으려 했다. 마치, 호랑이 손톱처럼 근육 속에 있을 때는 앙증맞지만 공격할 때는 위협적으로 길다란 손톱이었다.


빨간머리는 잡았던 고기를 놓쳐 아쉬웠다. 자신도 모르게 혓바닥으로 입술을 핥았다.

``어쭈, 제법 하는 놈인데... 우리 신나게 놀아보자고."


`혈랑조'에서 검풍탄이 기습적으로 튀어나왔다. 직선으로 향하지 않고 부메랑처럼 휘어서 돌았다. 피했다고 안심을 하는 순간, 크게 돌아온 검풍탄은 등뒤를 급습했다. 날아온 검풍탄을 재차 날린 빨간머리가 또 하나의 검풍탄을 뽑아 날렸다. 숫자가 여섯 개를 넘어서자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부메랑처럼 생긴 검풍탄을 검기를 담아 잘랐다.


호위 풍호각의 실력에 빨간머리는 시니컬해졌다.

``캬캬캬, 사람 환장하게 만드네. 나를 귀찮게 하지 말고 그냥 죽어!"


버럭 소리치는 빨간머리의 `혈랑조'에서 강기가 이슬방울처럼 둥글게 맺혔다. 그리고 검풍탄처럼 날렸다.


몇 번의 부딪힘 뒤에 여섯 개로 늘어난 강기 덩어리에 풍호각은 물씬 긴장했다. 검에 푸르스름한 강기를 형성하며 부메랑처럼 움직이는 새빨간 강기를 향해 온힘을 쏟아 갈랐다. 검강과 `검풍탄강'이 부딪히며 폭발하자 공기가 울렸다.


죽일 수 있다고 여겼던 상대가 죽지 않자 빨간머리는 뒤로 물러섰다.

``네놈들 도대체 뭐하는 놈들이냐. 실버나이트가 검강을 뿜다니, 무슨 개 같은 일이야!"


물러선 빨간머리에게 풍호각은 대답도 하지 않고 공격했지만 쉽게 붙잡지 못했다. 피하는 실력도 미꾸라지처럼 장난이 아니었다.


빨간머리는 서둘러 주변을 살폈다. 같은 편이 모두 나자빠졌다. 도망치려고 해도 주변의 왕국군이 아무 거나 들고 포위한 형국이었다. 왕국군까지 감찰단과 힘을 합해 주변의 궁수들을 때려잡고 있었다. 왕국군을 확실하게 제압했다고 여겼는데 아니었다.


``네놈들이 발버둥을 쳐 봤자 가족들은 어떻게 하려고 그러나 몰라. 내 동료들이 오기 전에 항복해라."

``못하겠다. 개자식아! 이제는 더 이상 못 참겠다."


어느 혈기왕성한 왕국군이 소리쳤다. 오히려, 반발심에 맨손임에도 불구하고 싸움을 거들자 너도나도 소리치며 감찰단에 합세했다.


상황이 급반전으로 변하자 빨간머리는 싸울 생각을 포기했다. 목숨은 어디까지나 하나였다. 빨간머리는 왕국군이 다가오는 곳으로 도망쳤다. 수상한 감찰단이 있는 곳보다 안전하게 느껴졌다. 도망치는 건 좋았지만 날렵하게 쫓아오는 풍호각을 제칠 수 없었다.

``이런 썅, 나 같은 착한 놈을 잡아서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그냥 보내줘."


방금 전까지 피에 굶주린 늑대가 되어 움직이더니 애처롭게 순진한 양으로 행세했다. 그러나 생긴 게 워낙 날카롭고 위험해서 얼굴에 아양을 떨며 미소를 지을 때마다 흉터 자국이 꿈틀거렸다.


풍호각은 긴장을 풀 수 없었다. 빨간머리와 같은 녀석들은 안심하는 순간 기습해서 위험했다. 진지한 표정으로 애원하는 빨간머리의 말을 흘려듣고 검에 집중했다. 푸르스름한 검강이 점점 진해졌다. 빨간머리에게서 틈이 보이자 단숨에 거리를 좁혀 찔렀다.


`삼점두'라 일컬어지는 풍호각의 필살기였다. 세 곳을 동시에 점하며 찌르는 수법으로 쾌검의 극치를 맛본 무사만이 쓸 수 있었다.


``나참, 싸우기 싫다니깐 그러네. 적당히 항복할 테니 보내줘!"

연신 입으로 떠들면서도 피하는 것만큼은 화려하고 예리했다.


빨간머리가 공격을 피할 때마다 풍호각의 얼굴은 진중하고 심각하게 변했다. 여태껏 온전한 실력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생각에, 무법자라고 무시했던 마음이 점점 사라졌다. 말은 더럽고 험악하게 하고 있었지만 빨간머리는 실력이 있는 무사로써 대접해야 했다.


풍호각은 움직임을 멈추었다. 빨간머리를 노려보는 시선이 새삼 맑아졌다.

``제가 무시했던 점이 없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부터 한 사람의 무인을 상대로 제대로 싸우겠습니다. 마음속으로나마 가볍게 생각했던 점을 용서하십시오."


빨간머리는 얼굴이 시뻘겋게 변했다.

``아따, 그런 거 필요없다니깐! 개발이고 소발이고 격식을 차리는 건 짜증나서 콧구멍이 근질거려. 그냥 싸우기 싫으니 보내줘~~~!"


애달프게 울려퍼지는 외침에도 풍호각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빨간머리의 도망가며 외치는 소리가 주변을 울렸다. 성문 입구와 주변은 합세한 왕국군에 의해 점령될 때까지도 빨간머리의 고함은 끊이지 않았다.


자꾸 듣다 보면 짜증이 나기 마련이었다. 여포는 왕국군의 고함보다 빨간머리의 외침이 듣기 싫었다. 끈덕지게 소리치는 빨간머리에게 몇 번이고 다가서려 했지만 무인으로서 싸우는 풍호각의 체면 때문에 참을 수밖에 없었다.

``저놈 되게 시끄럽네. 드래곤 염통이라도 삶아 먹었나!"


결국 참다 못한 심안호가 합세해서 빨간머리를 붙잡았다. 풍호각은 결투가 깨끗하게 끝나지 않아 얼굴을 찌푸렸지만 심안호는 못 본 척 넘어갔다.


주변이 정리가 되어 왕국군은 다가왔다. 포승줄에 묶인 왕하군 남작을 보자 오는 걸음을 멈추었다.

``아무리 감찰단이라고 해도 우리가 모신 분입니다. 풀어주시기 바랍니다."


사십 대의 건장한 중년사내가 감찰단의 중앙에 앉아 있는 철장패에게 요청했다.

``신분은?"


짦막한 물음에 중년사내는 허리를 곧추세웠다.

``보염진의 부대장을 맡고 있는 수석천인장 고현입니다."


잠시 철장패는 수석천인장을 살폈다. 당당한 태도와 차분한 어투, 안정된 자세에서 나오는 관록을 통해 괜찮은 사내로 여겨졌다.


``왕하군 남작으로 가장한 놈은 나중에 따지자."

철장패의 선언에 수석천인장과 귀를 기울이고 있던 왕국군은 깜짝 놀랐다. 놀라는 왕국군을 내버려두지 않고 철장패의 말은 이어졌다.


``부대장의 판단으로 당장 우리가 해야할 일은 뭔가?"


수석천인장은 왕하군 남작이 가짜라는 말에 놀랐지만 감찰단을 이끄는 청년 귀족에게 대답부터 해야한다는 걸 인식했다. 자연스럽게 권위가 묻어나오는 청년귀족에게 소견을 밝혔다.


``안전한 위치에서 마적단으로 여겨지는 백오십 명과 싸울 태세를 갖추어야 합니다. 그들은 위험한 자들입니다."

``그것을 제외하면 없나?"


잠깐 수석천인장의 얼굴에 먹구름이 스쳤다.

``인질로 잡힌 마을로 달려가, 사람들을 구하면 좋겠지만 시간이 없습니다. 섣부른 행동보다는 안전한 장소에서 마적단을 기다리는 게 옳습니다."

``알았다! 충고를 받아들이겠다.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


성문 입구에서 벌어진 난동에 마적단으로 여겨지는 일단의 무리가 다가오고 있었다. 오백 명이 넘는 왕국군이 반항을 했건만 여유가 넘치는 발걸음과 주변을 살피는 시선에서 차가운 예기가 뿜어졌다. 돈에 미치고, 피에 미친 마적단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철장패는 포승줄에 묶인 채 꿈틀거리는 빨간머리를 툭툭 발로 찼다.


고약한 발길질에 빨간머리가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치켜들었다.

``뭐냐? 가만히 있는 사람을 건들지 마. 죽일 생각이면 빨리 죽이고, 어쨌든 짜증나게 하지 말아 줘."


철장패는 빨간머리가 귀여웠다. 이유 같은 건 없었다.

``저기 오는 놈들 중에서 살아도 괜찮은 놈이 있냐? 있다면 지금 말해라."


처음에는 철장패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던 빨간머리는 낄낄 웃었다.

``전부 죽일 자신이라도 있는 모양이네. 크크크! 뭐, 질문했으니... 대답할게. 저기 뒤에서 주춤거리며 눈알을 굴리는 꼬맹이를 제외하면 다 죽어도 싸! 됐지?"


가만히 빨간머리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던 철장패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빨간 머리의 대답을 들었을 것이다. 뒤에 있는 꼬맹이는 내버려두고, 나머지는 빠른 시간 안에 죽여라. 한 사람도 빠지지 말고 나가서 실력을 발휘해라. 쉽지 않은 상대이니 조심하기 바란다. 나는 너희들의 실력을 의자에 앉아서 구경하겠다."


철장패의 시선은 호위와 부관까지 하나하나 훑었다.여포와 청오에게까지 시선이 갔다.

``호위장과 부호위장은 적당히 먹을거리를 남겨 놓고 죽여라. 다른 호위들이 싸울 상대가 없는 것도 심심한 일이다."


드디어 몸을 푼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 여포와 청오는 입이 큼지막하게 벌어졌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빨간머리와 같은 녀석들이 저리도 많다니 흥분이 되는군요. 다녀 오겠습니다."


청오가 잽싸게 말하고 먼저 나섰다. 그 뒤로 여포가 대답할 기회를 놓쳐 쑥스러운 태도로 쫓았다. 호위 스물두 명까지 나서자 부관 다섯은 긴장되어 벌벌 떨었다. 실버나이트의 실력에 불과한데 빨간머리와 비등한 마적들과 싸우라고 하니 앞이 깜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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