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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礎(고초) 님의 서재입니다.

단천문(檀天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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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礎(고초)
작품등록일 :
2024.05.08 10:22
최근연재일 :
2024.09.19 06:30
연재수 :
110 회
조회수 :
43,766
추천수 :
1,027
글자수 :
623,744

작성
24.06.05 06:30
조회
399
추천
10
글자
12쪽

5-1

DUMMY

"소광아 오늘은 아저씨하고 떨어져 일해야겠다.”

"에?"

"백씨 아줌마 부엌에 물을 길어다가 놓아야겠어."

"배씨?"

"백씨 아줌마! 이놈아!"


수십 번을 일러도 까먹는 소광을 장씨는 미친 아이가 아닌 빛나는 아이라는 뜻으로 소광(少光)이라 고쳐 불렀다.


장씨는 소광을 백씨에게 데려갔다.


그가 부르자 부엌에서 뚱뚱하지만 넉넉한 중년 여인이 얼굴을 내밀었다.


"찾으셨어요?"

"집사장 어른이 시키신 일인데 우리 소광이에게 주방에 쓸 물을 길어 오라 하시더구먼."

"어이쿠, 집사장이 어쩐 일이랴, 그런 걸 다 챙겨 주게···."


평소 그렇게 말해도 들은 척도 안 하던 사람이기에 의아했다.


"마침, 물이 떨어져 길어 와야 하는데 잘됐네."

"어느 정도 길어다 놔야 하오?"

"글쎄요. 평소처럼 3, 4일 치만 있으면 좋겠지만 힘이 들어 많이는 부탁드리지 못하겠네요."

"집사장 어른은 7일 치 길어다 놓으라 하시던데?"


놀란 눈치의 여인, 너무 많냐며 되물으니.


"많죠, 물 긷는 데가 꽤 멀고 한꺼번에 많이 길어다 놓으면 오래 묵어 냄새도 나고 좋지 않아요."


손사래 친 그녀는 대뜸, 그에게 다가와 속삭였다.


"소광이가 집사장 어른한테 무슨 큰 잘못이라고 했습니까?"

"에? 그게 무슨 말이요?"

"이렇게 요청도 안 했는데 사람을 보내질 않나, 3일 치면 충분할 걸 7일 치나··· 그건 집사장의 상투적인 벌(罰)주는 방식인데···."


머리를 싸매고 생각해 봤지만, 최근 소광이 잘못한 건 없었다.


장씨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그것참! 나야 뭐 물 길어 주면 좋지만."

"그래 길어다 놔야 할 독은 어디 있소?"

"저쪽 담장 옆 큰독 있지요! 그것하고 옆에 작은 독 세 개, 가득 채우면 7일 치 될 거요."

"아니! 저렇게 큰 독에다 말이요?"


백씨가 가리킨 독은 높이가 무려 5척에 지름 또한 5척에 이르러 보통 어른 키만 했다.


독이 크다 보니 독에는 물을 길어 올리는데 쓰는 대도 설치되어 있었다.


"물지게는?"

"그 옆에 보이지요?"


독 옆에는 참나무로 단단하게 만들어진 지게와 양 끝으로 커다란 대나무 물통이 쇠고리에 걸려 놓여 있었다.


한숨을 쉰 장씨는 소광을 독 옆에 데려갔다.


"소광아! 너 오늘 중으로 이 장독하고 여기, 여기 작은 장독에 물 가득 채워 놓아야 한다. 알았지!"

"배고파···."

"아, 녀석아 좀 전에 먹고 벌써 배가 고파? (끄덕끄덕) 알았어, 인석아! 백씨에게 말해 새참 꼭 챙겨 주라 할 테니 딴청 부리지 말고 열심히 일해야 한다. 알았지?"


대답 대신 장소광은 헤벌쭉 웃으며 마당을 펄쩍펄쩍 뛰었다.


"한심한 녀석 무에 그리 좋은 일이라고···."


혀를 끌끌 차는 장씨를 뒤로하고 소광은 독 옆에 있던 지게를 털썩 짊어지고 우물로 향했다.


지난 2년 동안 산에서 나무를 많이 해 봤기 때문에 지게 지는 건 별로 어려워하지 않았다.


우물은 공동우물에서 길어 쓰는데 이 지역 특성상 물이 귀하다 보니 공동 우물물을 온 마을 식수로 함께 사용했다.


거리는 왕복 200장(600m)이 넘어 보통 장정도 한번 물을 지고 갔다 오면 맥이 풀려 한참을 쉬고 나야 또 갈 수 있었다.


해는 어느덧 서산에 뉘엿뉘엿 지고 어둠이 집과 들판을 까맣게 도색 하는 늦은 시간인 술시 말(오후 9시). 다른 사람들 같으면 지쳐 쓰러질 만도 하건만 장소광은 아직도 힘이 쌩쌩한지 여전히 퍼 나르고 있었다.


그 큰 독도 이젠 꽉 차고 작은 독 3개 중 2개까지 채워 1개만 채우면 끝이었다.


정말 지칠 줄 모르는 대단한 괴력의 소유자가 아닐 수 없다.


처음부터 지고 나르는 모습을 지켜보던 백씨 아줌마는 설마설마했는데 하루도 지나기 전 끝내는 광경에,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벌써 2번 새참을 차려 주었는데 줄 때마다 얼마나 복스럽게 잘 먹던지 밥 먹을 때 소광의 등을 토닥여 주며 좋아했다.


'정신만 온전했다면 자식 삼고 싶은 녀석인데···.'


그러나 그놈의 나쁜 버릇은 도돌이표. 와장창! 그때마다 쫓아가 잔소리하지만, 소귀에 경 읽기 아무 소용이 없었다.


"헤이그···. 그래도 일만 잘하면 되지 뭐."


새참 먹은 지 두 시진 이상이 지나 백씨는 서둘러 새참을 챙겨 들고 나왔다.


들마루 위에 상을 놓고 소광이 언제 오나 기다리는데 허드렛일 하는 진씨가 잠깐 이야기하자며 불렀다.


"백씨! 할 말이 있는데···."


진씨는 50대 초반의 늙은 총각으로 젊을 때 혼인했었지만 몇 달 살지 못하고 이혼했는데 괴팍한 성격 때문에 헤어졌다고 들었다.


오랜 독신생활에 싫증이 났는지 요즘 주방에 가끔 들러 백씨를 불러내는 일이 잦았다.


'저 인간, 좋으면 좋다고 솔직히 말하지, 매일 밤 자꾸 불러···'


입술을 씰룩였지만 싫지 않은 표정인 것을 보니 그녀도 마음에 없지는 않았는지 잠시 머뭇대다 헝클어진 옷매무새를 단정히 꾸민 뒤 부엌 뒤뜰로 사라진 진씨를 조심스레 쫓아갔다.


두 사람이 사라지기 무섭게 20대로 보이는 젊은 사내 하나가 담 옆 쪽문에 불쑥 나타나더니 주방에 살금살금 접근, 사방을 훑어본 후 들마루 위 밥상에 놓인 국에 하얀 가루를 툭툭 털어 넣었다.


"잘 자라, 이놈아! 히히히!"


혼자 중얼중얼 시시덕거린 그는 인기척이 들리자 쏜살같이 튀어 들어왔던 담 옆 쪽문을 통해 다시 빠져나갔다.


"누군가 있었던 것 같은 데······."


마침 뒤뜰에 나온 백씨는 사람인지 동물인지 모를 시커먼 물체가 쪽문을 통해 빠르게 사라진 걸 목격하고 급히 뒤를 쫓았다.


"어? 아무도 없는데 이상하다"


촤아악! 물통에 물 붓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장소광이 지게에서 물통을 꺼내 독에 붓는 소리였다.


"저 녀석이었나?"


고개를 갸웃갸웃하며 그에게 다가갔다.


큰독은 물론 작은 독까지 거의 가득 차 넘친 물이 바닥에 흥건했다.


"소광아! 새참 차렸으니 먹고 푹 쉬어, 오늘 수고했다"

"헤헤···. 응!"


지게를 패대기치듯 던져 놓은 그는 들마루에 차려진 밥과 국을 허겁지겁 퍼먹었다.


천천히 먹으라 잔소리했지만 들리지 않는지 힐끗 눈길을 던지고는 다시 작업(?)에 열중했다.


"진씨, 기껏 한다는 말이 내일 소고기 무침 챙겨 달라고? 에이!"


섭섭했는지 혀를 끌끌 차던 여인은 부엌에 다시 들어가 무엇을 찾는지 덜그럭덜그럭 요란한 소리를 냈다.


잠시 후 부엌에서 나온 백씨는 들마루에 대자로 뻗은 장소광을 발견하고 소리쳤다.


"소광아! 장소광! 일어나, 들어가서 자야지"


아무리 흔들어 깨워도 일어나지 않자 결국 포기, 밥상만 치워놓고 여인은 숙소로 들어갔다.


부엉부엉! 어디선가 부엉이 우는 소리가 들리고 이어 담 옆 쪽문이 열리며 아까 그 청년과 또 다른 이 둘이 얼굴을 삐쭉 내밀어 동정을 살핀 뒤 아무도 없음이 확인되자 살금살금 다가와 큰 독 물을 왈칵 마당에 쏟아부었다.


콰아!


나머지 작은 독 물까지 모두 엎어 버린 청년은 장소광에게 다가와 회심의 미소와 함께 얼굴에 손을 대고 확인했다.


"흐흐, 자식! 세상모르고 자고 있구만. 내일 참 볼만한 일이 아주 많이 있을 것이다. 큭큭큭!"


얼굴 가득 조소를 머금은 청년은 기분 나쁜 웃음과 함께 왔던 쪽문을 통해 훌쩍 빠져나갔다.


장씨는 집사장이 이웃 마을로 물건 배달을 시켜 아무리 빨리 와도 아침나절이 되어야 올 판이다.


아침,

벌써 해가 두둥실 떠올랐다.


어둠이 가시자 사람들이 아침 식사를 위해 웅성웅성 부엌으로 모여들었다.


개중에는 집사장 황구도 눈에 띄었다.


들마루에 대자로 누워 잠을 자던 장소광을 발견한 집사장은 황급히 독을 향해 다가갔다.


괴청년이 쏟아 버렸으니 있을 턱이 있나. 독이 빈 걸 확인한 그는 씩씩대며 장소광을 향해 달려와 흙 묻은 발로 냅다 엉덩이를 걷어찼다.


"이 개새끼! 하라는 일은 안 하고 자빠져 잠만 자!"


잠결에 채인 소광은 눈을 비비며 어슬렁어슬렁 일어났다.


주변에 많은 사람이 모인 걸 확인한 그는 어리둥절 사방을 둘러보다 이내 헤픈 웃음을 지었다.


"야!! 웃음이 나오냐 이 새끼야! 당장 무릎 꿇어!"


땅에 억지로 꿇린 집사장, 거친 숨을 몰아쉬더니 곧바로 달려들어 발로 그의 옆구리를 강하게 가격했다.


퍽! 아이고!


때린 사람은 집사장인데 아프다며 펄쩍펄쩍 비명 지른 사람은 오히려 집사장 그 자신.


"야! 이 새끼! 옷에다 딱딱한 것 감췄지?"

"어, 아니···."

"아니긴 뭐가 아니야 새끼야! 이런 놈은 뜨거운 맛을 봐야 해!"


얼얼해진 발을 감싸 쥔 그는 주변의 장정을 향해 소리쳤다.


"야! 진, 장! 가서 곤장 틀 가져와!"

"고, 곤장 틀이오?"

"그래 인마, 못 알아들어!"


화가 치민 그는 장정을 향해 주먹을 불끈 쥐며 꽥 호통쳤다.


화들짝 놀란 그들이 일제히 발에 불이 나도록 뛰며 사라진 뒤 황구는 도끼 눈을 부릅뜨고 소광을 노려봤다.


"분명! 어제까지 물 길어놓으라 했어! 안 했어! 하나도 길어놓지 않고 자빠져 잠이나 자.고.있.어!"

"아, 아니···다. 나, 난··· 진···."


더듬더듬 상기된 얼굴로 손짓 발짓하며 알아듣지 못할 변명을 두서없이 나열하는 이때 부엌에서 백씨 여인이 허둥지둥 달려왔다.


"이상하다? 어제 분명 소광이 물 다 길어놓은 걸 제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어요. 사실입니다."


억울했던 소광은 맞다며 자신의 가슴을 쿵쿵 쳤다.


"백씨! 그 말 보증할 수 있어?" "물론이죠!"

"그래? 그럼 저기 저 독에 가서 눈으로 똑. 똑. 히. 확인해봐!"


대답과 함께 장독대로 간 백씨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독 안을 재삼, 재사 확인, 또 확인한 그녀, 맥 빠진 음성으로 말했다.


"정말 하나도 없네···." "맞지!"


사실 확인을 마친 집사장은 설치된 곤장 틀을 보고 소리쳤다.


"진가, 나가, 이가 장소광 저놈을 여기 형틀에 묶어!"


호명 받은 20대 장한 세 명이 그의 팔과 다리를 번쩍 들어 형틀에 꽁꽁 묶는데 일절 반항하지 않고 순순히 따랐다.


'소광아! 너는 집사장 어른이 네게 어떤 일을 시키든 또는 때리든 절대 반항하거나 명을 어겨서는 안 된다. 알았지!'


간곡한 아저씨 말이 떠오른 소광은 묵묵히 따랐다.


튼튼히 묶인 걸 확인한 집사장은 얼굴만 겨우 쳐든 그를 노려보며.


"네 이놈! 네 잘못, 너도 잘 알지?"

"부부부···."


묶여서 겨우 목만 들 수 있는 상태인 장소광은 힘겹게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부인했다.


소광의 반응에 말라 갈라진 음성이 뒤룩뒤룩 살찐 황구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이놈이 모자란 놈이라 사실인정을 하면 때리지 않으려 했건만 도무지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으니···. 좋다! 몽둥이찜질을 당한다 하더라도 내를 원망치는 말 거라!"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명을 내렸다.


"진가! 나가! 저놈이 잘못을 뉘우칠 때까지 엄하게 쳐라!"


두 명의 청년이 형틀 좌, 우로 마주 보고서더니 참나무로 만든 곤장을 교차로 내려쳤다.


바람을 가르는 윙, 소리와 살에 닿을 때마다 발생하는, 쩍! 하는 파열음에 지켜보는 중인들 모두 차마 똑바로 보지 못해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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