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3화 귀향(2)
제73화 귀향(2)
제72화에 이어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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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파주 문산읍 캠프 보니파스 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보니파스
플라자.
6.25 전쟁에 참전했던 참전국 21개국의 국기
들이 각각 길다란 봉들에 매달려 펄럭이고
있고 40여년전 거대한 미루나무가 서 있었던
그 곳에는 사각형의 콘크리트 바닥이 들어서
있었다.
그 바닥 위로 대리석으로 된 추모비가 세워
져 있고 추모비에는 미군장교 두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그 중에는 ‘아서 보니파스‘ 라는
이름도 보인다.
추모비 저쪽 끝에서 한 가이드가 판문점을 견
학하러 온 해외 관광객들을 상대로 추모비의
내용을 설명해 주고 있었다.
“저 쪽에 보이는 추모비는 1976년 북측이 자
행한 도끼만행사건에 의해 희생된 유엔군 장
교 두명을 추모하기위해 세워진 것입니다. 예
전에는 저 자리에 거대한 미루나무가 있었는
데.....“
그때, 추모식 행사를 거행하기 위해 이들 뒷
쪽에서 대한민국 제1사단 장병들과 미 제2사
단 장병들이 오와 열을 맞춰 추모비 앞으로
행군하기 시작했다.
그 바로 뒤쪽 연설무대 근처에는 오래간만에
할머니와 가족들을 만난 박대리(보니파스)가
가족들과 함께 무대 제일 앞쪽에 위치에 앉
자 추모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 바로 뒤쪽으로는 한미연합사령관, 대한
민국육군 참모총장및 JSA 관계자들이 경건한
자세로 서 있다.
그 옆편으로 검정정장 차림의 이부장이 휠체
어에 타고 있는 정과장, 그 뒤에 휠체어를 잡
고 있는 엄대리와 함께 엄숙한 태도로 묵례를
하고 있었다.
묵례가 끝나자 휠체어에 앉아 있던 정과장이
옆에 있던 이부장에게 조심스레 묻는다.
“저...이부장님..”
“왜? 뱀 잡아준다는 약속 지키라고?”
“네? 아..네? 그것도 그렇구유...저...”
“휠체어 타고 있는데 특명 떨어지면 나가야
하냐고?“
“네? 아...네.. 그것도 그렇네유...그리고...
저...“
정과장의 망설임에 가슴이 답답했는지 휠체
어 뒤에서 정과장의 뒷통수를 물끄러미 바
라보던 엄대리가 휠체어를 좌우로 여러번 들
썩 거린다.
“왜 그려?! 엄대리가 뱀잡아 줄겨?”
“이부장님. 이번에 나가시냐고 물어보려고
하는거 아니에요?“
“내가? 아니여! 아니....기여....”
이부장이 웃음을 지어 보이며 정과장 옆쪽으
로 무릎을 꿇고 앉아 묻는다.
“내가 나갔으면 좋겠지?”
정과장이 정색하며 말을 더듬는다.
“아...아니여유...그럴리가 있겠시유...제가 얼
매 얼매나 이부장님 좋아하는데...엄대리. 그
런 말하면 천벌 받는겨..“
라고 말하며 이부장의 눈치를 살짝 본다.
“정과장. 내가 나가면 너 갈굴사람 딱 한명
뿐인데? 김단장님 빼고 없잖아? 다 니 동기
거나 밑인데?“
“그런 말하지 마셔유, 섭해유. 요즘엔 동기
들도 갈궈유. 많이 먹는다고..”
엄대리가 이부장을 쳐다보며 말을 꺼낸다.
“제 부장님은 이부장님 한분이세요. 정과장
님이 우리팀 장이 되시면 저도 나갈래요.“
엄대리의 말에 휠체어에 타고 있던 정과장
이 벌떡 일어나는 시늉을 하며 언성을 높
인다.
“뭐여? 보자보자하니께...직속상관을 보자
기로 보는 거여? 뭐여?“
그때, 이부장이 정과장의 뒷통수를 때리며
조용히 말을 꺼낸다.
“조용히해. 임마. 여기가 어떤 자린데 큰소
리를 쳐.“
장병들의 추모식행사가 끝나고 박대리의 할
머니가 추모연설을 하기위해 단상에 올라
연설을 준비중이다.
바로 이때, JSA경비 대대장이 재빨리 주위를
돌아보더니 어느 틈엔가 잽사게 이부장 일행
쪽으로 다가와 인사를 나누며 이부장의 손을
양손으로 붙잡고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
었다.
주변을 철저하게 경계하며 경계병들를 지휘하
고 있던 JSA 경비대대 미군장교들이 평소 보
이지 않던 과격한 제스처로 한국인들과 대화
하는 경비대대 대대장을 바라보며 의아한 표
정을 짓고 있다.
경비대대 장교가 옆에 있던 또 다른 장교에
게 말을 건넨다.
“우리 레인저보이(대대장별칭). 오늘 왜 저
래? 한국사람들 한테 돈이라도 빌리셨나?
왜 저렇게 오버를 하셔?“
옆에 있던 장교가 웃으며 답한다.
“소문 못 들었냐?”
“무슨 소문?”
“저기 같이 얘기하고 있는 한국인들중 어느
한명한테 목숨을 빚졌었데. 우리 레인저보이
가.“
“어디서? 한국서? 에이...우리 대대장 오래전
에 한국서 잠깐 근무하고 대부분을 중동에서
근무 하셨다던데...올해 발령 받아서 오셨잖
아?“
“우리 대대장이 어디 출신인지 모르냐?”
“75레인저 잖어?”
“그래. 우리 대대장이 소위인가 중위일때 이
스라엘에서 팔레스타인 무장조직들한테 포
로로 잡힌 적이 있었는데. 한국인이 구해줬
다는 소문이 있어.“
이말을 듣던 경비대대 장교가 옆에 있던 장교
를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며 조용히 답
한다.
“소설을 써라. 소설을...”
박대리 할머니의 추모사 연설이 끝나고, 한미
연합사령관을 지낸 미대통령 노먼 슈왈츠코프
대통령이 단상에 올라 연설을 하기 시작한다.
“1976년 X월 그 날...전...웨스트포인트(미육군
사관학교)를 갓 졸업하고...C-5(C-5A: 그 당시
미수송기)를 타고 특명이 떨어지기를 기다리
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저의 심경은 이루 말
할 수 없이 찹찹했고...사나이로서 보이지 말
아야할 눈물도 흘렸습니다.“
“이곳에 계신 많은 장성분들과 장병 여러분
들은 이러한 저의 말을 들으시면서 행여나
속으로 ‘저 자식 푸시(pussy: 미군속어로 칭
얼대는 기집아이)아니야!‘ 라고 생각하실 수
도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군중속에서 때아닌 웃음소리가 터져 나온다.
미국 대통령이 청중과 함께 한참을 같이 웃
다가, 계속 연설을 이어간다.
“네. 그렇습니다. 저는 그 당시 아주 잠깐
이었지만 푸시(pussy)였습니다. 긴박했던
그때! 잠깐이나마 푸시(pussy)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곳 추모비에 새겨진 분들
중 한분이...저를 훈련시켜 주시고 저를 참
다운 군인으로 만들어 주셨던 최고의 교관
님이자 뜨거운 전우애를 함께나눈 나의 소
중한 형제였기 때문입니다.“
다시 분위기가 숙연해 진다.
“그분은! 항상 저를 아껴주시고... 참다운 군
인이 무엇인지를 일깨워 주셨습니다. 국민들
이 국가를 비판하고 나라를 지키다 순국하신
분들을 비하해도! 더 나아가 자신의 아이들
만은 뭐같은 군대에 보내고 싶지 않다고 말
해도!“
“우리는 그들을 위해...그들이 사는 조국!
나아가 그들이 사는 세계의 평화를 위해!
목숨을 아껴서는 안된다는 굳은 결의도
심어주셨습니다.“
“군인은 군에 있는 동안에는 국민의 종이며!
국민의 군대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영웅이어야 합니다!“
“왜냐면 그것이 우리의 숙명이자...”
라고 말한 뒤, 고(故) 보니파스 소령의 유가
족들을 바라보며 감정에 북받쳤는지 한참을
뜸드리다가 말을 이어간다.
“........우리 가족을 위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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