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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증영대근

더 싸운드 오브 싸일런쓰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스포츠

정증영대근
작품등록일 :
2024.02.29 07:49
최근연재일 :
2024.04.03 18:52
연재수 :
65 회
조회수 :
1,368
추천수 :
1
글자수 :
314,787

작성
24.03.21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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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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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국제시합의 추억

DUMMY

“그래. 사람 시야라는 게 양옆으로는 넓어도 위아래로는 되게 좁거든. 앞손을 이렇게 내려놓고 있으면 허점이 굉장히 많아질 것 같지만, 의외로 큰 문제가 없는 거지. 몇 가지만 더 조심하면 된다고. 근데 이렇게 앞손 내려놓고 하는 놈이랑 시합하는 입장에서는 답답하지. 특히 접근전하려는 인파이터들은 더 그렇고., 시야 아래까지 주먹이 내려와 있으니까 안 보여가지고 더 신경이 쓰인단 말이야. 원래 못 보고 맞은 주먹에 다운이 나오는 법이니까. 게다가 크랩 가드 쓰는 놈들은 하체를 가만 놔두고 머리 어깨만 스웨이백 해도, 상대입장에서는 표적이 홱 멀어진다고.”


“맞아요! 진수가 그렇게 하던데? 앞손을 이렇게 내리진 않았었지만, 뒤로 머리만 젖혀서 쓱 빼도 난감했어요!”


어라? 그걸 다 기억을 하네? 이 자식 뭐야? 자기가 당해본 기술은 다 아는 거야? 이건 눈이 좋은 건가, 아니면 기억력이 좋은 건가...?


“크랩 가드를 제대로 써먹으려면, 반사신경하고 눈이 미친 듯이 좋아야 돼. 탄력 좋은 흑인선수들이라고 해도 다 쓸 수 있는 게 아니야. 로이 존스 주니어Roy Jones Jr.라고, 이 스타일 제대로 썼던 선수가 있으니까 시간 나면 영상 한 번 찾아봐라. 그리고 이 헐랭이 스타일 복싱은 사실 탄력과 순발력이 전부야. 내가 아는 애들 중에도 이거 쓰던 애가 있었는데, 흑인선수들처럼 내내 쓰지는 못하고 시합이 잘 풀릴 때에만 조금씩 썼었지. 그 시절엔 앞손 내리고 경기를 하면, 종종 상대방 농락하는 듯한 느낌이 나와서 그런지 채점이 후해질 때가 있었거든. 그런데 이 헐랭이라는 건, 맨주먹으로 하면 아무 의미가 없어. 글러브를 빼고 맨주먹으로 칠 생각을 하면, 그냥 손목 탁 튕겨서 한 번 파닥거리고 끝나는 거야. 맞아도 안 아파.”


맨주먹으로 하면 안 아프다고? 정말?


“그러면... 힘을 안 주고 손목만 튕기는데도 글러브 무게 때문에 타격력이 생기는 건가요?”


“그렇지! 너도 이제 풍월을 읊는구나? 물론 20년 전 부드러운 글러브를 쓰던 경기에서는 훌륭한 전술이었지. 글러브 손목 벨크로가 짧아서 손목이 자유로웠고, 뭣보다 채점기준이 요즘이랑 달랐어. 그때는 2분 4라운드 경기였는데, 깨끗한 타격이 한 번 들어갈 때마다 1점씩 올라가는 시스템이었다고. 손목만 탁 튕겨도, 일단 꽂히면 유효타 나잖아.”


“아하. 그래서 그거 없애려고 글러브 디자인을...!”


“그래. 적어도 나는 그렇게 추측하고 있어. 결과론적으로 보면, 이 글러브로 바꾼 다음부터 아마추어에서는 헐랭이들이 거의 전멸하다시피 했으니까. 지금까지도 잘 없어. 프로에도 많지 않고.”


“그런데 최근 디자인은... 15년 전 글러브보다는 손목 부분이 짧아지고 있는 것 같은데요?”


“그렇지. 말하자면 15년 전, 나 선수 하던시절이 과도기였던 거야. 손목 스냅을 그렇게 다 죽여 놓고 나니까 헐랭이들이 사라진 건 좋았는데, 새로운 문제가 생겨나는 바람에 또 이번에는 벨크로를 짧게 고치기 시작했던 거지.”


“어떤 문제요?”


“바로 오늘 배울! 훅이 문제가 됐던 거다! 옛날 글러브는 훅을 치기가 좋았어. 손목이 자유로웠으니까. 그런데 헐랭이 잡자고 글러브 벨크로를 키우고 손목을 꽉 붙잡아 매놓게 되니까, 이제 훅 치기가 아주 더러워졌던 거애. 훅이라는 게 단순히 팔만 구부려주면 되는 게 아니라, 위력을 내기 위해서는 손목까지 잘 써야 되는 기술이거든. 너도 곧 알게 되겠지만.”


“그러면 어떻게 해요? 저 같은 경우에는 훅을 제대로 못 치게 되면 손해가 더 커지잖아요.”


이야... 이해력도 나쁘지 않네. 혹시 공부도 잘하는 건가? 세상 불공평하구만, 진짜.


“너무 걱정하지는 말고. 다 방법이 있으니까. 내가 누구냐? 하핫! 그리고 요즘 글러브 손목 부분은, 헐랭이를 못 쓰게 하면서도 훅은 제대로 칠 수 있는 디자인으로 맞춰져 가고 있으니까 곧 안정되겠지. 내가 이 얘기 왜 했는지 알겠지?”


“예. 훅은 손목이 중요하다 이 말씀이죠? 손목 힘 좋아지게 하는 운동 있냐고 현민이한테 물어 볼게요.”


이제 오태영이 질문을 한다.


“뭐? 현민이가 누구야?”


이현민에 관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요약할 필요는 없다. 유온이 낸 숙제가 많기는 하지만 어차피 주말이니까.


정강준은 이현민 덕분에 아침마다 열심히 체력 운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자랑을 좀 섞어 이야기를 마친다.


오태영은 불쾌하지 않은 기색이다. 이미 굴다리 밑에서 이현민의 실력을 본 처지다.


“하하! 재미있네. 유도 스타일로 인터벌을 하는 복싱선수라니. 그게 지난 번 스파링에서 영향이 있었나? 어째 좀... 이제는 지칠 때가 된 것 같은데도 잘 버티는 느낌이더라고?”


잠시 재미있어 하기는 하지만, 금세 눈살을 찌푸린다.


“지금으로서는... 그게 제일 좋은 방법인 것 같기는 해. 미세먼지 영향 없이 하드하게 런닝을 할 수 있는 트레드밀이라 하니까. 그렇지만 그건 미봉책일 수도 있어. 곧 문제가 생길 거야. 그게 4개월 안에 벌어질 일일 수도 있고, 그 이후에 벌어질 일일 수도 있는데... 지금은 일정이 너무 촉박하니까! 그건 그때 가서 걱정하기로 하자. 넌 아무 걱정하지 말고 지금 하는 대로 열심히 해봐. 그런 애가 집에 들어와 산다니 운이 좋았구나.”


문제가 터진다고? 궁금하기는 하지만 나중에 어차피 알게 될 일이리니 호기심을 접는다.


궁금한 건 따로 있거든? 공격기술! 훅! 어떻게 치는 거냐고?


“하지만 이건 알아 둬. 전국체전 시작할 때까지 제대로 준비가 되지 않으면, 나는 널 링에 올려 보낼 수가 없다. 그냥 기권해버릴 거야. 아무것도 모르고 맨땅에 헤딩하는 건 내가 겪은 것만으로도 충분해.”


도대체 무슨 일을 겪어 오신 건가요?


“나는, 아니 우리는 20년 전에 아무런 예고도 못 받고 이 바뀐 글러브로 시합을 했었어. 채점 기준 변경된 것도 모르고 말이야. 내가 청소년대표 하던 시절 일인데... 생애 첫 국제시합이었단 말이야. 비행기 타고 멀리까지 갔었는데, 전부 다 광탈해 버렸지. 아무 것도 몰랐거든. 글러브, 채점기준 다 바뀌어 있었는데. 특히 헐랭이 쓰던 애는 아무것도 못해보고 RSC로 내려왔어.”


“RSC가 뭐예요?”


“야구의 콜드게임 같은 거지. 그때 한 대에 1점씩 올라가던 시절 채점기준으로... 15점이었나? 아무튼 그 이상 점수 차이가 나게 되면, 그냥 주심이 거기서 경기를 끊어버렸거든. 시합 더 해 봤자 못 이길 거 아니까, 그냥 내려가라 이거지. 그때는 세계의 벽이라는 게 그렇게까지 높았던 건가 싶어서 좌절했었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까 그게 아니었던 것 같더라고. 아무도 준비를 안 해줬었단 말이야. 그렇게 아무 대책 없이 선수를 링에 올려 보내는 어떡해? 나는 그런 주먹구구식은 절대 용납 못해. 네가 원하든 원치 않든 간에, 10월에 네가 준비가 안 된 것 같다 싶으면 나는 주저 없이 기권하고 내년 전국체전을 준비할 거야. 미리 알아둬라.”


분위기가 무거워진다.


혹시 이 인간... 유온보다 한 술 더 뜨는 꼰대였던 거 아닌가.


“솔직히 나는 현역 시절 훅을 많이 잘 쓰지 않는 편이었는데, 은퇴하고 나서 더 배우게 된 것들이 있지. 운동 그만두고 나니까 선수시절에는 몰랐던 것들이 계속 눈에 들어와가지고... 뭐, 은퇴한 뒤에도 복싱은 늘 내 관심사였으니까. 지금 알게 된 걸 그때 써먹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 생각을 많이 했었지. 아, 아무튼 잘 봐. 이게 훅이야.”


눈앞에서 오태영이 시범을 보인다.


붕! 붕!


복싱 식 낸 훅을 지켜본 정강준은 어리둥절해진다. 맨주먹을 휘둘러 사람을 때릴 때와는 거의 모든 것이 달라서다.


어? 주먹을 왜 그렇게 가깝게 내요? 주먹이 얼굴 바로 앞을 지나다니는 것 같은데. 뭐지? 고양이가 세수하는 것도 아니고.


라고 하려다가 그 말을 참고 넘긴다. 왜 그런지 스스로 깨닫게 되었기 때문.


글러브 무게 때문일까? 아하. 팔을 저렇게 많이 구부려서 휘둘러도 글러브를 끼면 그 무게 때문에 팔이 알아서 벌어지기 때문에...? 저렇게 내야 맞는 건가? 어째! 지난번 스파링할 때는 암만 주먹을 휘둘러도 걸리는 게 없더라니.


“훅은 높이가 중요해. 훅을 칠 수 있는 높이를 여러 가지 만들어놔야 된다. 훅은 절대로 한 가지가 아니야. 옛날 세계챔피언인데, 아이크 쿼테이Ike Quartey 같은 선수는 잽만 해도 여섯 가지를 쓸 줄 알았댄다. 훅도 잘 파고들어서 연구하면 그 이상이 되겠지? 그런데 우리나라는 무슨 가라데 카타 가르치듯이 정해진 형태만 가르치려고 해서 문제야. 그건 너무 낡고 게으른 방식이야. 자기가 해본 것들만 가르치려고 드니까. 사실 그런 지도자들이 이 변화무쌍한 훅의 생명력을 제한하고 있는 거지. 훅이라는 건 절대 한 가지 폼이라고 볼 수가 없어.”


“높이... 라는 건 뭐예요?”


“네가 훅으로 맞추려는 표적이, 어느 정도의 높이에 있느냐의 문제다. 높이에 따라서, 훅을 치면서 힘을 실을 수 있는 방법이 달라지거든. 멕시칸 훅은, 높이가 낮은 표적을 칠 때는 상대적으로 힘을 싣기가 어려워. 반대로 아메리칸 훅은 너무 높은 표적을 때리면, 적중한다고 해도 포인트가 엇나가서 힘을 실을 수가 없고. 훅은 높이에 따라서 달라지는 거야. 상체를 숙이고 경기하다가 펴면서 훅을 던질 때하고, 상체를 펴고 경기하다가 훅 쓸 때가 또 달라.”


“그렇구나... 높이. 저도 좀 알죠.”


저번에 그것 때문에 고생 좀 했거든요. 갑자기 상대방 키가 커진 것 같아가지고.


“라이트 오버 핸드를 크게 쑤셔 박을 때하고, 링 줄에 널려 있는 놈 탈곡할 때하고도 또 달라지지. 그렇게 천변만화하는 기술이 훅이야. 그런데 자기가 써먹어본 경로 하나 가지고 그걸 다 잡아 묶어놓으려고 하니...”


그런데 그렇게 깊이 있다는 기술은... 배우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을까?


“훅 칠 때, 반드시 손등이 어느 쪽을 보게 해야 된다는 소리 같은 건 다 잊어. 소용없으니까. 봐라. 복부 찍는 것도 사실은 훅이잖아, 안 그래? 그때는 주먹을 뒤집어서 아예 손등이 땅을 바라보게 해서 치는데 그건 어떻게 되는 거야? 그때도 손등이 하늘을 봐야 채점이 되겠냐?”


후음... 지금 보니까 맺힌 게 많으시네? 하긴. 제대로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어서 현역생활 끝나고 난 뒤에야 훅에 대해서 깨닫게 됐다면... 화가 날 만도 하지. 현역 때 써먹었으면 훨씬 성적이 잘 나왔을 거 아니야.


“아니 몸에서 주먹 내기 편한 폼만 가르치고 있으면 어쩌자는 거냐고? 답답하잖아! 상대가 내 훅 지나가는 자리에 가드를 올리고 있으면 그때는 어떡할 건데? 어떻게 될 것 같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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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폭발적 반응 24.04.01 6 0 11쪽
63 공이 울린다 24.03.30 6 0 11쪽
62 어퍼컷 24.03.29 8 0 11쪽
61 대박 이후 24.03.28 8 0 11쪽
60 거대한 링 24.03.26 8 0 11쪽
59 소의 성추행 24.03.23 15 0 11쪽
58 소고기집 상남자들 24.03.22 11 0 11쪽
» 국제시합의 추억 24.03.21 13 0 11쪽
56 훅이 시작됨 24.03.20 11 0 12쪽
55 두 번째 24.03.19 8 0 12쪽
54 참패 24.03.16 9 0 11쪽
53 높이의 문제 24.03.15 10 0 11쪽
52 욕구불만 24.03.14 13 0 11쪽
51 이상하게 당겨 24.03.13 11 0 11쪽
50 물물교환 24.03.12 14 0 11쪽
49 시합체중 24.03.11 13 0 11쪽
48 아이템 상점 24.03.08 13 0 11쪽
47 군식구가 있네 24.03.07 11 0 11쪽
46 폭파범들 24.03.06 13 0 11쪽
45 전학생이 왔 24.03.06 11 0 11쪽
44 착해진 아이 24.03.06 10 0 11쪽
43 무역수지 24.03.05 13 0 11쪽
42 자리가 났다고 24.03.05 10 0 11쪽
41 링의 악마 24.03.05 10 0 11쪽
40 왜 안 아프지 24.03.05 8 0 12쪽
39 스파링 세션 24.03.05 12 0 11쪽
38 아나콘다 24.03.05 9 0 11쪽
37 친구가 온 건 처음 24.03.05 10 0 11쪽
36 현질 24.03.05 10 0 11쪽
35 재주는 곰이 넘고 24.03.04 13 0 11쪽
34 우주인 24.03.04 11 0 11쪽
33 반칙왕 24.03.04 15 0 11쪽
32 맹점과 타이밍 24.03.04 11 0 11쪽
31 결전 24.03.04 11 0 11쪽
30 더티 복싱 24.03.03 13 0 10쪽
29 생전 처음 24.03.03 12 0 10쪽
28 달라진 분위기 24.03.03 12 0 10쪽
27 남자 대 남자라서 24.03.03 12 0 10쪽
26 만두귀랑 예약되셨지 24.03.02 16 0 10쪽
25 이상한 놈이 나와 24.03.02 18 0 10쪽
24 수상한 회복 24.03.02 19 0 10쪽
23 이어진 테스트 24.03.02 16 0 10쪽
22 자퇴하고 싶어요 24.03.01 18 0 10쪽
21 이상하게 엮여 24.03.01 21 0 10쪽
20 피가 붉다 24.03.01 17 0 11쪽
19 첫 다운 24.03.01 18 0 10쪽
18 첫 스파링 24.03.01 28 0 10쪽
17 스파링 세션 24.03.01 22 0 10쪽
16 낙관주의자 24.03.01 24 0 10쪽
15 천원권투체육관 24.03.01 27 0 10쪽
14 무미건조한 24.03.01 27 0 10쪽
13 투명 올가미 24.03.01 31 0 10쪽
12 슬기로운 입원생활 24.03.01 33 0 10쪽
11 심리적 안전장치 24.03.01 36 0 10쪽
10 똘마니들 24.02.29 39 0 10쪽
9 오직 시간이 문제 24.02.29 37 0 10쪽
8 살인연습 24.02.29 40 0 11쪽
7 이제 와서 어쩔 24.02.29 42 0 10쪽
6 아리가또오 24.02.29 46 0 10쪽
5 실험성공 24.02.29 54 0 10쪽
4 책과 사진과 아버지 24.02.29 61 0 10쪽
3 뭐가 들어있는지 24.02.29 62 0 10쪽
2 유산은 백억 24.02.29 78 0 10쪽
1 사라진 아버지 24.02.29 121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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