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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증영대근

더 싸운드 오브 싸일런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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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증영대근
작품등록일 :
2024.02.29 07:49
최근연재일 :
2024.04.03 18:52
연재수 :
6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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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수 :
314,7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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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02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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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만두귀랑 예약되셨지

DUMMY

그렇게 얘기하면 내가 뭐 잘못한 것 같잖아? 김명진이랑 붙으려고 했다는 얘기도 진담이었던 거야?


말문을 잃은 정강준에게 이현민이 눈을 마주쳐온다.


김명진의 눈과는 완전히 다르다.


눈에 난폭함이 없다. 사납고 악한 기운을 내뿜으며 상대를 억누르지도 않을 뿐더러, 정강준이 그랬던 것처럼 악에 받쳐 시선으로 사람을 찌르듯 노려보지도 않는다.


그저 호기심과 장난기를 눈에 담은 채로 싸움을 걸고 있는 거다. 재미있는 장난이라도 하자는 듯 두려움 없이.


5월 셋째 주 일요일 11시 경. 미세먼지가 심하기는 해도 따스한 날이다.


*


그날 오후다. 우성고 운동장에서 초미세먼지 맛을 보고 온 정강준이 천원권투체육관으로 올라간다.


오태영은 밤샘알바 후유증에 여전히 헤롱거리고 있다.


“오늘도 왔냐? 야. 운동이라는 건, 3분의 1이 훈련하는 거고 3분의 1이 먹는 거고 3분의 1이 쉬는 거야. 휴일에 운동 나온다고 좋은 게 아니라고.”

“알아요. 주말에 운동 집중해서 하고 주중에 이틀 쉴 거예요.”


그새 줄넘기가 꽤 안정적이 돼 있다. 발을 낮게 놀릴 줄 아는 법을 알게 되면서 두 번 연속 넘기도 자유자재다. 어려워하는 기색이 없다.


가만 있자. 3일 만에 줄넘기를 저렇게 능숙하게 하던 놈이... 있었던가?


줄넘기 3라운드가 끝나자 오태영이 손짓을 해 줄넘기를 손에서 놓게 한다.


“자, 이제 스텝! 스텝으로 들어갈 거야. 시범 보여줄 테니까 잘 봐.”


원래는 시범까지 보여줄 필요는 없지만... 왠지 이놈한테는 도움이 될 것 같단 말이야? 자기 고집대로 하는 놈이 아니라 눈으로 보고 흉내 내는 놈이니까.


사삭! 스스슥!


오태영이 정강준의 눈앞에서 스텝을 밟으며 움직이기 시작한다. 발 움직임이 많고 현란하다. 바닥을 거의 미끄러지듯이 움직인다.


거리를 두고 떨어져서 보면 어떻게 보일지 몰라도, 가까이서 보면 눈에 잘 비치지도 않는 속도다.


은퇴한 복서지만 복싱초짜 정강준을 현혹시키기에는 충분한 움직임이다. 앞으로 달려드는 줄 알았는데 어느덧 옆으로 홱 돌고 있고, 옆에 서 있는 줄 알았더니 순식간에 거리를 두고 멀어져 있다. 펀치 사정거리 밖에 있던 몸이 어느새 간격 안으로 뛰어 들어와 머리를 가까이 갖다대는가 싶더니 잽싸게 또 돌아나간다.


마치 방향을 자유자재로 바꾸며 날아다니는 화살 같다. 조금만 더 빨리 움직였다면 잔상이 생기지 않을까 싶어질 정도.


우와.


정강준이 헛숨을 토한다. 이미 김명진과 임정권을 겪은 정강준은, 오태영이 자신의 주먹으로는 도저히 맞출 수 없는 상대라는 것을 깨닫는다.


현재로서는. 현재로서는 그런 거지만.


오태영이 피식 웃으며 우쭐해한다.


“해봐.”


정강준은 대답도 없이 오만상을 팍 찡그린다. 오태영이 파하하, 웃음을 터뜨린다.


“스텝이라는 건, 복싱이라는 게 기동하는 형식이야.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기동성이거든? 그건 인류가 지금까지 만들어온 전쟁무기들을 봐도 알 수 있는 거고. 언뜻 보기에는 공격력과 살상력을 향상시키는 방향으로만 발달한 것 같지만, 가만 보면 그보다 더 비약적으로 발달돼온 건 사실 기동력이었단 말이지. 복싱도 전쟁과 마찬가지. 복싱이, 발차기를 포기하면서까지 스텝에 공을 들여왔던 건, 이런 기동성 향상을 위해서였으니까.”


하지만 설명을 들어도 난감한 건 매한가지.


“가장 먼저 해볼 건, 앞뒤로 움직이는 거야. 인스텝하고 아웃스텝. 상대의 주먹이 닿지 않는 간격에 있다가, 네가 때릴 수 있는 곳까지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는 동작인데... 아 맞다. 너 정권이한테 잽 게임 털려봐서 잘 알지? 직선으로 깔린 철도 레일을 탄다고 생각하면 쉬워. 이렇게. 인, 아웃. 인, 아웃.”


따라 해보려 하지만, 정강준은 마치 양옆에 다리가 달린 게처럼 어기적거리기만 한다.


“아니 그게 아니고! 복싱 스텝은, 걷는 거하고는 정반대야. 앞으로 나가려고 할 때는 뒷발을 차주고, 뒤로 빠져나가고 싶을 때는 앞발로 밀어줘야 돼. 그래야 나처럼 움직일 수 있어. 발바닥을 최대한 낮게 깔아. 그래야 체중이 뜨지 않으니까. 발날로 땅을 딛고 서려고 하지 말고, 발 안쪽으로 서는 느낌으로 움직이면 좀 쉬워지지.”


옆에 서서 천천히 시범을 보여주고 난 뒤에야 따라한다.


“아니지. 급하다고 해서 그렇게 보폭이 넓어지면 돼. 보폭은 늘 일정하게 유지해야 돼. 그래야 스탠스라는 게 형성이 되는 거니까. 움직일 때마다 양다리 사이 간격이 달라지고 스탠스가 흔들리면, 약한 앞손은 몰라도 센 뒷손은 낼 수가 없어. 억지로 주먹 내 봐야 힘도 안 실리고 거리도 못 맞춘다. 스탠스라는 건, 대포 얹어놓는 받침대 같은 거야. 그리고 뒷손은 비장의 무기 같은 거여서, 골프 스윙처럼 홱 질러줘야 체중이 실리거든? 그러니까 두 다리는, 언제나 온몸을 확 비틀어 짤 수 있는 준비를 하고 움직여야 돼.”


인스텝 아웃스텝을 가르치고 나서 오태영은 장난삼아 좌우로 사이드스텝을 밟고 피봇Pivot까지 넣는다.


삐빅! 삑!


슈즈 밑창이 바닥과 마찰하면서 귀를 찌르는 소리가 난다.


정말 정강준에게 해보라는 게 아니라 다음 단계에는 이런 게 있다는 걸 보여주려는 거였는데, 그걸 눈여겨 본 정강준이 바로 다음 순간 오태영과 똑같이 돌아 나간다.


오태영은 움찔 놀라지만 애써 내색하지 않고 넘긴다.


허! 이게 아예 기본 동작은 아닌데. 이걸 따라하네?


“연습해. 정신이 아득해질 때까지. 이건 많이 하면 할수록 좋은 거니까. 반드시 몸으로 익히고 뼈에 새겨야 된다. 알았냐?”



정강준은 대답도 하지 않고 스텝을 반복한다. 교육성과는 마음에 들지만 이 불량한 학습태도 때문에 다시 은근한 분노에 사로잡히는 오태영.


*


스텝 연습을 하던 정강준에게서 산만함을 감지한 오태영이 눈살을 잔뜩 찌푸린다.


저 자식 오늘 왜 저러지? 집중력이 영 꽝인데.


안 보는 척을 하고 있지만 다 알고 있다.


줄넘기를 하던 녀석에게 스텝을 가르쳐 줬으니 재미를 느끼고 열심히 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게 아니다. 연습을 하기는 하는데 딴 짓을 해가면서 한다.


스텝을 밟다가 휴대폰을 매만지고, 조금 더 있으니 갑자기 아령을 들다가 난데없이 팔굽혀펴기를 한다.


아니 운동 시작한 지 며칠이나 됐다고? 흥미를 잃었나? 이상하잖아. 지루한 줄넘기는 군말 없이 잘 하더니만.


초심자들의 경우, 정강준처럼 우직하게 시키는 것만 하는 경우는 잘 없다. 보는 눈이 없으면 멋대로 샌드백도 두들겨보고 글러브도 껴본다. 관장 모르게 친구를 데려와 몰래 스파링을 해보는 경우도 왕왕 있다.


뭐하냐? 아 이게 정말?


오태영은 소리 없이 사무실 밖으로 나가서 정강준에게 눈치를 준다. 그래도 정강준은 전혀 긴장하는 기색이 없다.


지쳤나? 그냥 마음대로 하게 놔둘까? 저렇게 집중을 못하면 그냥 집에 가서 쉬는 게 더 나을 텐데.


오태영이 연습을 멈추게 하려던 순간, 질문이 날아온다.


“유도선수랑 싸울 때는 어떻게 해야 이겨요?”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던 질문이다.


“어? 뭐라고?”

“유도하는 애랑 싸울 때 쓰는 팁 같은 거 없어요?”

“어허... 갑자기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쥬도까들이랑은 싸우는 거 아니야. 지금 배우는 거나 제대로 해.”

“다음 주에 붙기로 했어요.”


컥! 아니 이런 신박한 새끼가 다 있나. 암만 봐도 정상은 아닌 것 같아.


“뭐라고? 어디 뭐 동네 체육관 다니는 애냐?”

“아니요. 고등학교 유도부라고 그러던데요. 둥지고 다닌다고 그랬던가.”

“야이 미친...! 환장하겠네 정말! 귀는? 혹시 그놈 귀가 어떻게 생겨먹었었는지 기억 나?”

“으음... 그러고 보니 뭐랄까... 좀 이상하게 생겨가지고... 아무튼 예쁜 모양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요.”

“아 그래? 만두귀였구나? 맞지.”


오태영이 입을 떡 벌린다. 아니 도대체 어떻게 된 놈이길래 운동 시작한지 5일 만에 만두귀 고등부 유도선수랑 스케쥴을 짜? 너 혹시 전생에 달타냥이었냐.


“자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 쥬도까들이랑은 싸우는 거 아니야. 그러는 거 아니라고. 사람 귀를 딱 봤을 때, 귀가 이렇게 안쪽으로 말려들어가 가지고 만두처럼 생겨먹은 놈들 있잖아, 그런 놈들이랑도 싸우면 안 돼.”

“왜요?”

“그냥 어른이 그렇다면 그런 줄 알아 이것아! 끄응... 어떻게 하지? 아 그렇지. 유도하는 애들은 MMA하는 애들을 좀 무서워하니까, 정 일이 꼬여서 싸워야 될 것 같으면 정권이한테 연락해서 같이 가달라고 해. 도움이 될 거야. 그놈도 나름 유명한 놈이니까 상황 잘 정리해 주겠지.”

“근데 왜 유도하는 애들이랑은 싸우면 안 돼요? 만두귀라는 건 또 뭔데요?”

“만두귀라는 게 뭐냐면... 왜 유도 레슬링 주짓수처럼 매트에 몸이 심하게 문질러지면서 하는 투기종목들 있잖아? 그런 운동을 몇 년이고 하다보면 귀가 매트에 문질러지는 날이 꽤 있을 거 아니냐. 안 그래?”

“그렇... 겠죠?”

“그러면 마찰열 때문에 귀 모세혈관이 터지고 귓바퀴 속에 피가 찬다고. 그래서 그렇게 모양이 이상해지는 거야. 이성규 그놈 말로는, 그게 천천히 조금씩 진행되는 게 아니라 재수 없으면 한 큐에도 그렇게 된다고 하던데, 나는 그것까진 잘 모르겠고.”

“그런데 코치님 친구 분은 귀 멀쩡하신 것 같던데.”

“그놈 귀가 멀쩡한 건, 어릴 때부터 이어가드를 끼고 운동을 해서 그런 거고. 그놈이 그렇게 생겼어도 알고 보면 되게 약아. 하여간 개인차는 있겠지만, 만두귀들은 대체로 사람을 매트에 내동댕이치고 올라타고 조르고 꺾는 운동을 아주 오랫동안 혹독하게 해온 놈들이란 말이야. 절대 붙으면 안 된다. 팔굽혀펴기나 아령 몇 번 한다고 해결될 놈들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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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훅이 시작됨 24.03.20 11 0 12쪽
55 두 번째 24.03.19 8 0 12쪽
54 참패 24.03.16 9 0 11쪽
53 높이의 문제 24.03.15 9 0 11쪽
52 욕구불만 24.03.14 13 0 11쪽
51 이상하게 당겨 24.03.13 11 0 11쪽
50 물물교환 24.03.12 14 0 11쪽
49 시합체중 24.03.11 13 0 11쪽
48 아이템 상점 24.03.08 13 0 11쪽
47 군식구가 있네 24.03.07 11 0 11쪽
46 폭파범들 24.03.06 13 0 11쪽
45 전학생이 왔 24.03.06 11 0 11쪽
44 착해진 아이 24.03.06 10 0 11쪽
43 무역수지 24.03.05 13 0 11쪽
42 자리가 났다고 24.03.05 10 0 11쪽
41 링의 악마 24.03.05 10 0 11쪽
40 왜 안 아프지 24.03.05 8 0 12쪽
39 스파링 세션 24.03.05 12 0 11쪽
38 아나콘다 24.03.05 9 0 11쪽
37 친구가 온 건 처음 24.03.05 10 0 11쪽
36 현질 24.03.05 10 0 11쪽
35 재주는 곰이 넘고 24.03.04 12 0 11쪽
34 우주인 24.03.04 11 0 11쪽
33 반칙왕 24.03.04 15 0 11쪽
32 맹점과 타이밍 24.03.04 11 0 11쪽
31 결전 24.03.04 11 0 11쪽
30 더티 복싱 24.03.03 13 0 10쪽
29 생전 처음 24.03.03 12 0 10쪽
28 달라진 분위기 24.03.03 12 0 10쪽
27 남자 대 남자라서 24.03.03 12 0 10쪽
» 만두귀랑 예약되셨지 24.03.02 16 0 10쪽
25 이상한 놈이 나와 24.03.02 17 0 10쪽
24 수상한 회복 24.03.02 19 0 10쪽
23 이어진 테스트 24.03.02 16 0 10쪽
22 자퇴하고 싶어요 24.03.01 18 0 10쪽
21 이상하게 엮여 24.03.01 21 0 10쪽
20 피가 붉다 24.03.01 17 0 11쪽
19 첫 다운 24.03.01 18 0 10쪽
18 첫 스파링 24.03.01 28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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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낙관주의자 24.03.01 24 0 10쪽
15 천원권투체육관 24.03.01 27 0 10쪽
14 무미건조한 24.03.01 27 0 10쪽
13 투명 올가미 24.03.01 31 0 10쪽
12 슬기로운 입원생활 24.03.01 33 0 10쪽
11 심리적 안전장치 24.03.01 36 0 10쪽
10 똘마니들 24.02.29 39 0 10쪽
9 오직 시간이 문제 24.02.29 37 0 10쪽
8 살인연습 24.02.29 40 0 11쪽
7 이제 와서 어쩔 24.02.29 42 0 10쪽
6 아리가또오 24.02.29 46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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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뭐가 들어있는지 24.02.29 62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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