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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증영대근

더 싸운드 오브 싸일런쓰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스포츠

정증영대근
작품등록일 :
2024.02.29 07:49
최근연재일 :
2024.04.03 18:52
연재수 :
65 회
조회수 :
1,367
추천수 :
1
글자수 :
314,787

작성
24.03.04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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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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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재주는 곰이 넘고

DUMMY

후두부에 막 내리꽂히려던 정강준의 주먹을 오태영이 붙들고 떼어내던 순간, 잠시나마 이현민의 정신이 되돌아오지 않았었더라면 시간이 지난 뒤에도 영영 알아차릴 수 없었을 것이다.


그날 싸움에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이현민이 자기 발로 일어선다. 걸어서 후배1 2에게 다가간다.


비틀거리고는 있지만 당당하다. 피격당해 불길과 연기를 피워 올리면서도 기어이 갈 데까지 가는 항공모함을 닮았다.


“뭐하고 앉아있던 기가.”


자신의 안위를 걱정해 싸우다가 쓰러진 후배들에게 고맙다고 하기는커녕 오히려 나무란다.


“멍청하기는... 으데까지 망신을 시킬라꼬.”


후배들을 부축해 일으켜 세우고 부끄러워한다.


맞은 건 옆머리였는데 코피를 흘리고 있다. 그러고도 기어이 정강준에게로 걸어간다.


그때쯤 임정권의 부축을 받은 정강준도 자리에서 일어난다. 이현민이 손을 내민다.


“여까지 하자. 내가 졌다.”


정강준은 그 악수를 거절한다. 기가 막혀진 임정권이 푸하, 깊이 한숨을 쉰다.


멋쩍어진 이현민이 정강준에게 내밀던 손 궤도를 틀어서 코피를 닦는다. 마치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던 것처럼.


자연스러웠어, 그리고


“...졌다고. 오늘은.”


이라는 단서를 붙인다.


오태영은 한참 어린 이현민에게 고개까지 꾸벅 숙여가며 사과를 한다.


“미안하다. 내가 애를 잘못 가르쳤어.”


얼결에 사과를 받은 이현민의 얼굴도 복잡해진다. 이현민의 입장에서는 기억에 없는 얼굴이어서다. 정강준에게 물을 수밖에 없다.


“누고 이 사람들은?”


그렇지만 정강준으로도 그 나쁜 어른들이 쪽팔린 건 매한가지.


그러니까 내 싸움 구경하겠다고 와서 숨어있었다 이거지? 그럴 거였으면 진작 좀 도와주든가!


아니 이현민이 패배를 부끄러워하는 것 이상으로, 정강준에게 홀쭉이 뚱똥이 멀대는 망신스럽다.


“...모르는 놈들이야.”


그 말에 악당들은 찔끔 놀란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돼 눈살만 찌푸리고 있던 이현민이 후배1과 2에게 손짓을 한다.


“절마들 인자 돌려보내라. 또 힘없는 아 괴롭히다가 내한테 걸리면 그땐 진짜 죽는다고 하고.”


그 소릴 들은 정강준은 누구라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대놓고 깜짝 놀란다.


잉? 뭐야. 저것들 나쁜 놈들이었어?


하지만 이미 이현민을 다치게 하고 악수까지 거절한 마당이라 뭐라고 말을 덧붙이지는 못한다.


굴다리 안은 난장판이다. 그 누가 와도 수습할 수 없는 상황. 어색한 침묵만이 흐르고 있다.


그때 이성규가 얄밉게 히죽 웃으며 오태영에게 손을 내민다.


“내놔.”

“뭘?”

“뭐긴 뭐야? 내기 졌으니까 돈 줘야지. 어제 네가 다 챙겨갔잖아, 보관한다고.”


내기?


정강준의 눈썹 끝이 한 번 꿈틀한다.


모르는 놈들이야.


잠시 정강준의 눈치를 보던 오태영이 주머니에서 5만 원짜리 여섯 장을 주섬주섬 꺼내 이성규에게 내민다.


정강준의 얼굴색이 확 변한다.


“뭐하는 거예요 지금?”

“아니 그게... 그...”


돈을 따서 신이 난 이성규가 설명을 한다.


“내기에서 졌거든. 네 트레이너님이.”


정강준은 상황판단이 빠른 편. 원초적이고도 격렬한 분노에 사로잡힌다.


“뭐라고!? 나 싸움하는 거 가지고 돈 내기를 했어요? 거기다 내가 깨지는 쪽에다가 걸었단 말이야!?”


거의 반말이다. 오태영은 우물쭈물하지만 변명할 말을 찾기 어렵다.


“...미얀.”


어디 그뿐인가. 이성규가 손을 까딱하자 임정권도 5만원짜리 한 장을 꺼내 이성규에게 내민다.


“너도 걸었어?”


두 살 위고 뭐고 입에서 나오는 대로 너라고 했는데 임정권은 대거리도 못한다.


“...미얀.”


5만원이면 학생 입장에서는 꽤 큰돈이다. 반드시 정강준이 깨질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는 뜻.


정강준은 이를 악문다. 이성규는 돈을 센다.


오호 이거 짭짤하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엉뚱한 놈이 벌어가는 부조리의 현장. 자본주의가 낳은 참극이다.


탁!


이 참상에 분노한 정강준이, 이성규의 손에서 돈을 홱 낚아채 빼앗는다.


앗! 하는 사이에 내기 돈을 다 빼앗긴 이성규가 억! 하고 돈을 되찾기 위해 손을 뻗지만, 벌써 정강준은 스텝까지 써서 사정거리를 벗어난 뒤.


어? 복싱 스텝은 이럴 때 유용하구나...?


타격기에 능숙하지 않은 이성규는 대응하지 못한다. 그런데 즉각적으로 대응을 못해놓고 보니, 그걸 또 끝까지 쫓아가서 악착같이 돈을 뺏어내는 건 어쩐지 부끄럽다.


그 옆에서 고소하다는 듯 실실 웃던 임정권은, 이성규의 눈총을 맞은 뒤에야 찔끔 쪼그라든다.


정강준은 35만원을 고스란히 이현민에게 넘겨준다.


“...병원에 가봐야 될 거야. 이걸로 해.”


물론 오해해서 미안하다는 말 같은 건 하지 않는다. 이현민은 뜻밖인 듯 망설이고 머리를 긁적이다가


“...그럴까 그럼...?”


이라고 조그맣게 말하고 돈을 받는다.


현장에서 검거된 악당들은 고개를 숙인다.


“아니, 그, 우리는... 혹시 치료비가 필요해질까 싶어서 미리 돈을 걷어놨던 건데...”


임정권이 되지도 않는 변명을 어물거리는 동안, 오태영은 입을 닫고 휴대전화 플래시를 켜 동공검사를 한다.


“셋 다 뇌에는 이상 없는 것 같은데, 너는 눈에 피 찼다. 꼭 가봐라, 병원. 지금 빼내야 돼.”


눈 핏줄이 터진 이현민의 눈 흰자위가 검붉게 물들어 있다.


그 끔찍한 광경을 보면서, 정강준은 조금 더 신중해져야겠다는 교훈을 얻는다. 물론 이나마도 이현민에 대한 미안함이나 걱정 때문은 아니다.


하마터면 감방에 갈 뻔했잖아? 증오라는 감정은 조금... 위험하구나.


그리고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구실로 자신의 실수를 정당화시킨다. 마치 범죄자들이 그러하듯.


“그럼 이제 우리... 그만 헤어져도 되는 건가?”


대답도 동의도 없다. 그냥 다들 고개만 끄덕이고는 도망치듯 굴다리를 빠져나간다.


굴다리 안으로 들어갈 때는 정강준 혼자였지만, 나올 때는 일곱이다.


그렇지만 그 파티는, 쏟아지는 햇빛 속으로 나오자마자 황급히 해산해버린다. 말은 하지 않아도 하고 있는 생각은 같다.


잘 가. 함께해서 참 족 같았고 우리 다시는 만나지 말자.


이현민은 일진들을 그만 집에 보내라고 했지만, 후배1과 2는 그 말을 깜빡하고 만다. 그 바람에 일진이 엉망으로 꼬이고 만 일진들은 굴다리 밑에 그대로 남겨진다.


사람들이 죄다 빠져나가자, 죽은 체하고 있던 일진이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털고 가오를 잡는다.


“아오 이 시발롬들 진짜! 내가 정신만 일찍 차렸으면 다 죽여놨는데!”


그 그림자 속에서, 이현민에게 제일 세게 얻어맞았던 놈은 소리 죽여 울고 있다.


*


“끄악...!”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온 정강준이 신음한다. 통증은 뒤늦게 찾아온다. 싸움에서 지지 않기 위해 되는대로 막 휘둘렀던 주먹과 팔다리의 관절들이 외상값을 달라고 보채는 중.


일주일 동안이나 개고생을 해가며 준비했는데 싸운 시간은 채 2분도 되지 않았다.


허탈하고 온몸이 다 쑤시지만, 승리의 쾌감에 가슴이 부풀어 오른다.



드잡이를 벌이던 중 찢어진 체육복 상의를 홱 벗어던지고 거울 앞에 선다. 마르고 가벼운 몸이지만 그래도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리며 승리포즈를 취한다. 세상 그만한 기쁨이 있을까 싶은 순간.


잘했어. 정강준.


그러나 밤에는 또 공부를 해 학습량을 맞춰야 한다. 그렇지만 샤워를 하고 나와서 평소에 벼르고 벼르던 대로 낮잠을 청해도 잠이 오지 않는다.


아 맞다. 힘을 다 빼고 자야한다고 했었지? 그런데 운동을 더하는 건 싫은데.


그냥 억지로 눈을 감아본다. 싸움의 기억이 스멀스멀 되살아난다.


굴다리 안이 어두웠기 때문인지 이번 싸움은 시각보다는 청각으로 아로새겨진다.


굴다리 전체가 마치 스피커가 된 것처럼 싸움의 소음을 증폭시키고 있었다. 바닥 긁히는 소리가 꼭... 짐승이 이를 가는 소리 같았지.


게다가 이제까지 나온 그 어떤 영화의 효과음도 따라가지 못할 타격음까지. 정강준에게는 음악이나 마찬가지다.


손목이 아플 정도로 세게 꽂히던 주먹의 감촉도 어둠 속이어서 더 강렬하고 선명했던 듯싶다. 다친 손목과 손의 감각은 아직 온전히 돌아오지 않고 있다. 꼭 다른 사람의 손 같다.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할 심사임을 스스로도 알면서, 정강준은 정성껏 자신을 어루만지고 위로하기 시작한다. 자신이 쓰다듬고 있는 것이 자신의 기억인지 몸인지 욕망인지도 모르는 채로.


이현민에게 가해하던 순간을 되새기자, 세상의 온갖 질서에 얽매여 있던 몸과 마음이 차츰 자유로워진다. 그 해방의 순간이 하늘로 올라가는 동아줄이라도 되는 양 두 손으로 꼭 부여잡고 있는데도, 육신과 정신을 연결하고 있는 실은 점점 더 풀려나고 풀어헤쳐진다.


몸이 내려주는 결론이 성큼 가까워져 있다.


그러나 정강준이 마지막 한 계단만을 남겨놓고 있던 순간, 전화벨이 울린다.


혼비백산한 정강준의 집중력이 흩어진다. 한없이 가까워져있던 몸도 다시금 멀어진다.


임정권의 전화다. 정강준은 자신도 모르게 혼잣말을 한다.


아이 씨. 죽여 버릴까 진짜.


전화를 건 임정권은 말을 좀 더듬는다. 아무래도 낮의 일이 미안했던 모양.


어투와 음성에서 임정권 특유의 선한 성품이 묻어나온다. 그러나 내용은 되지도 않는 변명이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나는 그러려고 했던 게 아니었는데 분위기에 휩쓸려 그렇게 되었으며,

절대로 나쁜 뜻 같은 건 없었고,

다들 재미로 한 번 해보자고 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정강준이 대뜸 그 말을 자른다.


“그럼 동영상은 왜 찍었냐?”


아아 그것은... 그 영상을 미튜브에 올리면 조회수가 많이 올라가서 한국 종합격투기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여...


“얼른 지워라 소송 걸기 전에? 나 변호사랑 친하거든?”


물론 그 악마 같은 여자와 정서적으로까지 친한 건 아니지만. 어쨌든 가깝게 지내고 있는 것만은 사실 아니던가.


그렇지만 그것은 너무나 아까운 소재여서... 살다가 한두 번 찍어볼까 말까한 진귀한 영상이다 보니...


“도대체 두개골 속에 뇌가 들어있는 거야 안 들어있는 거야? 거기 범죄 현장이었다고! 다 같이 경찰서에서 정모하고 싶어?”


...미얀.


쭈뼛대면서 알았다고 말하는 소리를 들으니 거짓말 같지는 않아서 더는 몰아세우지 않기로 한다.


“아 참! 내 메일 아이디 알려줄 테니까, 지우기 전에 그 영상 내 메일로 보내. 확인해볼 게 있어서... 그... 뭐지? 맞아. 기술 같은 거 있잖아.”


그 동영상이 있으면 더 흥분될 거야.


정강준에게는 살색 동영상보다 더 좋은 교재다.


지 할 말만 다하고 전화를 끊으려는데 임정권이 뜻밖의 이야기를 꺼낸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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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두 번째 24.03.19 8 0 12쪽
54 참패 24.03.16 9 0 11쪽
53 높이의 문제 24.03.15 10 0 11쪽
52 욕구불만 24.03.14 13 0 11쪽
51 이상하게 당겨 24.03.13 11 0 11쪽
50 물물교환 24.03.12 14 0 11쪽
49 시합체중 24.03.11 13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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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폭파범들 24.03.06 13 0 11쪽
45 전학생이 왔 24.03.06 11 0 11쪽
44 착해진 아이 24.03.06 10 0 11쪽
43 무역수지 24.03.05 13 0 11쪽
42 자리가 났다고 24.03.05 10 0 11쪽
41 링의 악마 24.03.05 10 0 11쪽
40 왜 안 아프지 24.03.05 8 0 12쪽
39 스파링 세션 24.03.05 12 0 11쪽
38 아나콘다 24.03.05 9 0 11쪽
37 친구가 온 건 처음 24.03.05 10 0 11쪽
36 현질 24.03.05 10 0 11쪽
» 재주는 곰이 넘고 24.03.04 13 0 11쪽
34 우주인 24.03.04 11 0 11쪽
33 반칙왕 24.03.04 15 0 11쪽
32 맹점과 타이밍 24.03.04 11 0 11쪽
31 결전 24.03.04 11 0 11쪽
30 더티 복싱 24.03.03 13 0 10쪽
29 생전 처음 24.03.03 12 0 10쪽
28 달라진 분위기 24.03.03 12 0 10쪽
27 남자 대 남자라서 24.03.03 12 0 10쪽
26 만두귀랑 예약되셨지 24.03.02 16 0 10쪽
25 이상한 놈이 나와 24.03.02 18 0 10쪽
24 수상한 회복 24.03.02 19 0 10쪽
23 이어진 테스트 24.03.02 16 0 10쪽
22 자퇴하고 싶어요 24.03.01 18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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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무미건조한 24.03.01 27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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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슬기로운 입원생활 24.03.01 33 0 10쪽
11 심리적 안전장치 24.03.01 36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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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오직 시간이 문제 24.02.29 37 0 10쪽
8 살인연습 24.02.29 40 0 11쪽
7 이제 와서 어쩔 24.02.29 42 0 10쪽
6 아리가또오 24.02.29 46 0 10쪽
5 실험성공 24.02.29 54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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