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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증영대근

주인공인 줄 알았는데 빌런이었음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스포츠

정증영대근
작품등록일 :
2024.02.01 12:52
최근연재일 :
2024.04.03 18:52
연재수 :
65 회
조회수 :
3,213
추천수 :
26
글자수 :
320,181

작성
24.03.06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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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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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폭파범들

DUMMY

그러더니 아예 잠이라도 자려는 것처럼 눈까지 감는다.


“돈 줄 때까지! 내 이라고 안 일어날 기다! 계속 누워있을 거니까! 마음대로 해 바라!”

“너 2학년이라며? 1학년 교실에 이렇게 나자빠져 있겠다고?”

“당연하지. 못할 게 뭐 있나? 당장 오늘밤 잘 데가 없는데!”


마침 수업시작 벨이 울린다. 그래도 이현민은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실눈을 뜨고 슬슬 눈치를 보고는 있다.


그렇지만 누군가 떴다! 라고 소리를 지르니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셋 모두 도망치듯 교실을 떠난다.


황망히 몸을 빼내던 이현민이 돌아서더니 문 안으로 머리만 집어넣고 기세 좋게 소리를 지른다.


“내는 다시 돌아온다! 참말로! 돈 안 주면! 니네 교실 한복판에다가 똥을 쌀 기다!”


그 말에 충격을 받은 여학생들이 입을 떡 벌리고 얼굴들을 일그러뜨린다. 그걸 보고 흠칫한 이현민이 어색한 미소를 띄우며 이미지 관리를 시도한다.


“쬐끔만 쌀 기다. 필요한 만큼만.”


그리고는 더러운 윙크와 함께 사라지는 곰탱이 일당.


집주인은 말없이 이를 악문다.


아 이거 뭐냐고. 집에 수맥이라도 흐르는 건가?


*


“니네 집 좀 사는갑제? 이 근처 집값 겁나 비싸다더만. 이야...! 집 억수로 좋다. 내는 평생 이런 집에서 엄마랑 살아보는 게 소원이었다.”


정강준은 대답하지 않는다. 대신 영정사진에 말을 거는 중.


엄마 미안해. 이런 불한당새끼들을 집에 들이다니.


감탄도 지나치면 때론 독이 된다. 한참 오버를 해가며 감탄하던 이현민의 옆구리를 황선이 쿡 찌른다. 그나마 셋 중 가장 눈치가 빠른 편.


찔끔 놀란 이현민의 눈앞에 손을 가져가 영정사진이 놓여있는 곳을 가리킨다. 이현민은 단번에 쪼그라든다.


“...미안타.”


잠시 쭈그러져 있는 것 같더니 이번에는 또 트레드밀을 보고 호들갑을 떨기 시작한다. 멋대로 올라가 달려보려는 것 같더니만 천만 원짜리라는 말을 듣더니 바로 조용히 내려온다.


“집 안에서는 조용히 하지? 나 공부해야 되니까.”

“근데 집에 묵을 것 좀 없나? 아니 무슨 놈의 부엌이 이따위고?”

“그야... 야간 자습할 때는 급식비 내고 학식 먹었고, 야자 안 하게 되면서부터는 배달 시켜먹거나 나가서 사먹었으니까 그렇지.”

“뭐라꼬? 아니 사람이 그라고도 살 수 있나? 야 좌우간 우리 배고프다 먹을 것 좀 도.”


한숨이 나온다. 주문을 하려고 보니 머릿수가 넷이다. 비상금도 다 써버린 마당에 식비가 네 배 이상으로 들게 되면...


조만간 통장 빵꾸날 것 같은데?


먹성이 안 좋을래야 안 좋을 수 없는 나이의 운동선수들이다. 더군다나 전학 온 뒤로는 제대로 먹지도 못했다니 메뉴 정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래도 첫날이니 족발이라도 먹자고 주문을 하려는데, 이현민이 냉큼 휴대전화를 잡아챈다. 족발 시킬 돈을 자기한테 달라는 거다. 그 돈으로 장을 봐서 밥을 해주겠다나.


현금을 주자 셋은 신이 나서 뛰어나간다. 쌀과 달걀과 고기를 사오더니 셋이 함께 끓이고 지지고 볶는다.


기대도 안 했는데 웬일로 먹을 만한 걸 만들어 테이블에 차린다. 인공감미료를 넣지 않은 음식이어서 정강준의 입에도 나쁘지 않다.


넷은 게 눈 감추듯 먹어치운다. 그렇게 밥을 먹여놓고 정강준의 눈치를 보던 이현민이 재차 하소연을 한다.


“부탁한다. 인자 알바 자리만 구하면 된다. 돈 좀 모이면 고시원에라도 들어가 살면 될 거 아이가. 그때 되면 얘네들은 친척집으로 가면 되니까, 걱정 말고.”


그러나 정강준은 냉철하다.


“거짓말 하고 있네. 친척들이 오라고 했으면 지금쯤 셋 다 거기 가 있겠지. 얼굴에 다 쓰여 있거든? 친척 집으로는 못 가게 됐다고.”

“아 그게... 그래 마음의 준비가 좀 덜 되가 그런 기다. 아무리 친척집이라 캐도 그렇지 어떻게 이래 무턱대고 쳐들어간단 말이고? 조금만 기다려 바라. 그라모...”

“내 집에는 이렇게 들어와도 되고?”

“...그거는 쪼까 미안하게 됐다.”

“아 됐고. 왜 여기까지 전학 온 건지나 얘기해 봐.”


죽을상이던 이현민이 표정을 확 바꾸고 히히 웃는다. 그 얼굴이 아예 밉지가 않아서 정강준은 또 인상을 찌푸린다.


“말은 그래 해도 역시 궁금했던 기지?”

“그냥 참고삼아서 알고 있으려고 그러는 거니까, 빨리 말해 봐.”


이현민의 사연은 이렇다.


“유도부 폭파? 그건 또 무슨 소리야?”

“그 말 그대로다. 선수들이랑 학부모들이 다 짜고 전학가기로 했다. 유도부 폭파시킬라꼬.”

“아니 왜?”


망설이는 기색도 없이 이현민은 술술 썰을 푼다.


“우리 엄마랑 얘네들 엄마가, 나이가 어리다. 그 중에서도 우리 엄마는 내 나이 때 나를 임신해가... 젤로 어리다.”


으잉? 고등학교 2학년 때 임신? 정강준은 깜짝 놀랐지만 부모 얘기에는 쉽게 말을 덧댈 수가 없다. 애써 표정을 관리한다.


이현민과 쌍둥이는 어릴 때부터 늘 기운이 넘쳤지만, 집에 돈이 없었다. 그래서 골프 축구 야구 같은 운동을 다 놔두고 굳이 유도를 시작했던 것.


도복이랑 띠만 사면 끝날 줄 알고 유도를 시작한 것이었지만, 지도자를 잘못 만나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각종 기발한 명목을 발명해 학부모들에게 돈을 뜯는 것만 해도 이가 갈리는 판이었는데, 엄마한테 집적거리기까지 하니 견딜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밤에 학부모한테 전화를 해 코치 숙소로 불러내거나, 자기가 다니는 산악회에 가입하라고 강요하기까지. 물론 순수한 산악회가 아니라 불륜으로 점철된 더러운 곳이었다.


엄마가 거절을 하면 후환이 따랐다. 얼차려를 주거나 빠따 정도 때리고 끝나는 게 아니라, 선수로서의 앞날을 망쳐놓을 수도 있는 보복이 돌아왔다. 적정 체급이 아닌 엉뚱한 체급으로 출전을 시켜버리는 황당한 짓까지 자행했다.


체급이 나뉘어있는 아마추어 투기 종목들은, 대개 경기 당일 오전에 계체량을 한다. 시합 준비하는 동안 죽어라고 살을 빤 다음 경기 당일 아침에 체중을 재고 휴식을 취하다가 오후에 시합을 하는 거다.


그래서 시합 24시간 전에 계체를 하고 그 다음날 경기를 갖는 프로격투기 시합과는 체중감량 폭이 다르다.


프로선수들은 적게는 7~8킬로그램에서 많게는 10~13킬로그램까지 감량을 하면서 시합을 준비한다. 하지만 아무래도 리게인을 할 휴식시간이 짧은 아마추어선수들은 대체로 5킬로그램 미만의 감량을 하는 편.


더군다나 선수의 안전문제 때문에 하루에 딱 한 경기만 하는 복싱과는 달리, 레슬링과 유도는 하루에 결승까지 모든 경기를 다 소화해야 한다. 감량고가 배가될 수밖에 없다.


중량급이었던 이현민은 그런 식의 체급 조절이 아예 불가능한 체중이었기 때문에 그나마 괜찮은 편이었지만, 황충과 황선은 그렇지 않았다. 코치가 엉뚱한 체급을 찍어놓는 바람에 감량이 너무 어려워 늘 허덕였다.


그런 곳에서 좋은 성적이 나올 리가 없다. 유도부 성적은 날이 갈수록 저조해졌지만, 그래도 코치는 음욕을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유도부 전체가 하위권 팀이 되어가자, 학부모들과 선수들이 몰래 결의를 해 아예 팀을 깨기로 했던 것.


이때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것이 이현민이었다.


“울 엄마가 내를 혼자서 키웠거든? 그러다 우울증 앓아서 약 먹은 적도 있고, 몸도 약하다. 학력이 중졸인데 누가 일하러 오라 카겠노? 힘든 데 가서 돈 번다고 고생하는 것만도 미안한데...”


무슨 그런 가축 같은 놈들이 다 있나 싶어 정강준도 분개한다. 그러나 이현민은 그 얼굴을 보고 오해를 한 모양.


“얼굴 좀 펴라. 기왕 이렇게 된 거 우짜겠노? 니도 나쁠 거 없지. 집세 대신 우리가 밥 청소 다 해줄 테니까, 괜히 밖에서 몸에 안 좋은 거 사먹지 말고...”

“알았어. 근데 저 방은 엄마가 쓰던 방이니까 들어가지 마.”


단박에 승낙이 나자 의외였던 듯 이현민은 찔끔 놀라지만, 곧 안심한 듯 씩 웃는다.


“고오맙데이.”


이현민이 웃자 황충 황선도 따라서 마음을 놓는다.


늦은 시각 초인종이 울린다. 유온인가 해서 긴장했는데 임정권이다. 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온 임정권이 화들짝 놀라며 인상을 쓴다.


이현민을 다시 만나고도 못 알아본 정강준과는 달리, 임정권은 이현민과 그 일당을 단번에 알아본 것. 그야 안면인식장애가 있지 않다면 당연한 일이다.


“너희들 뭐야!? 여긴 왜 왔어!?”


살벌하게 노려보면서 목소리를 깐다.


만일 길거리를 지나가던 중에 누가 그런 식으로 험하게 굴었다면 이현민과 쌍둥이도 밀리지 않았을 것이지만, 남의 집에 와서 얹혀있다 보니 제 입으로 누구라고 말도 못하고 쭈뼛대기만 한다.


정강준에게서 사정 설명을 다 듣고 난 임정권이 비로소 얼굴을 푼다.


“아아 그래? 나는 또... 보복이라도 하려고 찾아왔나 했지. 자, 이거 받아. 팔다 남은 고기가 있어서 가져왔어. 나 트레드밀 좀 써도 되지? 오늘도 미세먼지 심했잖아.”

“고기가 저번보다 많네?”


고마워서 한 말이었는데 임정권의 얼굴이 어두워진다. 조그맣게 혀를 차고 속삭이듯 말한다.


“요즘은 장사가 잘 안 돼...”


이현민 황충 황선이 쇠고기를 보고 반색을 한다. 임정권의 나이를 묻더니 바로 형님이라고 부른다. 넉살이 좋다.


형님 소리에 기분이 좋아진 임정권이 선심을 쓴다.


“혹시 생활비 부족하면 내가 빌려줄게. 세뱃돈 모아놓은 거 좀 있어. 운동기구 사용료라고 생각해도 좋고.”



듣던 중 반가운 소리.


“사실은... 트레드밀 사고 나서는 많이 쪼들려 가지고... 거기다 갑자기 이렇게 군식구까지 딸리고 보니...”

“행님! 다 구웠어예. 같이 드이소.”


운이 안 따라줘서 여기까지 도망쳐 왔지만, 먹을 복은 있는 놈들인가 싶어 정강준이 슬며시 웃는다.


조금 전 저녁을 다 먹어놓고도 전혀 식욕이 줄지 않았던 운동선수들 앞이다. 고기는 비눗방울처럼 사라진다. 아무래도 이현민이 접시에 묻은 기름을 핥으려 들 것 같아서 정강준은 한 발 앞서 슬쩍 접시를 치운다.


엄마랑 둘이서 살 때부터 쓰던 그릇이니까.


한편 미튜브에 구독자수 29명의 격투기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 임정권은, 언젠가 이놈들을 데리고 먹방을 한 번 찍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 중이다. 그러다 이내 머리를 절레절레 내젓는다.


소 한 마리를 잡아서 한 번에 다 굽지 않는 한은... 어림없지 않을까.


쇠고기는 살짝만 익혀도 먹을 만하고, 소년들은 서로의 이름만 알게 되어도 대뜸 속을 다 터놓는 법이다.


더군다나 정강준의 집에 모이게 된 소년들은,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 한에서 인간이 어디까지 강해질 수 있는가, 라는 공통의 의문점을 해결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던 처지.


유도선수들은 MMA에 대해서 궁금한 게 많고, MMA선수는 유도의 기술들이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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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국제시합의 추억 24.03.21 12 0 11쪽
56 훅이 시작됨 24.03.20 15 0 12쪽
55 두 번째 24.03.19 12 0 12쪽
54 참패 24.03.16 16 0 11쪽
53 높이의 문제 24.03.15 15 0 11쪽
52 욕구불만 24.03.14 17 0 13쪽
51 이상하게 당겨 24.03.13 18 0 11쪽
50 물물교환 24.03.12 18 0 11쪽
49 시합체중 24.03.11 17 0 11쪽
48 아이템 상점 24.03.08 17 0 11쪽
47 군식구가 있네 24.03.07 16 0 11쪽
» 폭파범들 24.03.06 29 0 11쪽
45 전학생이 왔 24.03.05 30 0 11쪽
44 착해진 아이 24.03.02 17 0 11쪽
43 무역수지 24.03.01 20 0 11쪽
42 자리가 났다고 24.02.29 21 0 11쪽
41 링의 악마 24.02.28 27 0 11쪽
40 왜 안 아프지 24.02.27 20 0 12쪽
39 스파링 세션 24.02.24 24 0 11쪽
38 아나콘다 24.02.23 43 0 11쪽
37 친구가 온 건 처음 24.02.22 26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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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재주는 곰이 넘고 24.02.20 28 0 11쪽
34 우주인 24.02.20 30 0 11쪽
33 반칙왕 24.02.18 32 0 11쪽
32 맹점과 타이밍 24.02.17 27 0 11쪽
31 결전 24.02.17 26 0 11쪽
30 더티 복싱 24.02.16 32 0 10쪽
29 생전 처음 24.02.16 27 0 10쪽
28 달라진 분위기 24.02.15 58 0 10쪽
27 남자 대 남자라서 24.02.15 34 0 10쪽
26 만두귀랑 예약되셨지 24.02.15 41 0 10쪽
25 이상한 놈이 나와 24.02.15 32 0 20쪽
24 수상한 회복 24.02.15 57 0 10쪽
23 이어진 테스트 24.02.15 35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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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투명 올가미 +2 24.02.13 88 0 10쪽
12 슬기로운 입원생활 +2 24.02.12 64 1 10쪽
11 심리적 안전장치 +1 24.02.12 69 2 10쪽
10 똘마니들 +1 24.02.12 89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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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이제 와서 어쩔 +1 24.02.08 93 1 10쪽
6 아리가또오 +1 24.02.03 127 1 10쪽
5 실험성공 +1 24.02.03 165 2 10쪽
4 책과 사진과 아버지 +1 24.02.02 156 3 10쪽
3 뭐가 들어있는지 +2 24.02.02 173 3 10쪽
2 유산은 백억 +2 24.02.02 217 4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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