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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증영대근

주인공인 줄 알았는데 빌런이었음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스포츠

정증영대근
작품등록일 :
2024.02.01 12:52
최근연재일 :
2024.04.03 18:52
연재수 :
65 회
조회수 :
3,216
추천수 :
26
글자수 :
320,181

작성
24.02.13 16:46
조회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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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천원권투체육관

DUMMY

엥? 1초에 7억을 벌었다고?


궁금증을 느낀 정강준은 줄라이웨더가 이제까지 한 번 싸울 때마다 대전료를 얼마씩 받았는지도 검색해 본다. 이쪽은 더 상상을 초월하는 고액이다.


“고작 한 시합 뛰고 천육백억?”


일당이 천육백억 원이면... 로또 맞는 정도가 아니잖아?


나는 2억도 안 되는 유산 때문에 후견인한테 발목 잡혀서 애완동물처럼 살아야하는데.


허무 위에 자괴감이 덧칠되면서 소년의 세상은 무채색이 된다.


그런데 맥없이 침대에 누워 있던 정강준의 머리에 불이 들어온다. 반짝.


잠깐만. 복싱 시합은 하루에 한 번씩만 하지 않나?


만약 시합 도중에 시간을 멈출 수만 있다면... 나는 누구든지 이길 수 있을 거 아니야? 시간 멈춰놓고 상대가 멍하니 서 있을 때 빵! 세게 때려 버리면 되잖아.


아마 지금 이대로 링에 올라가도 다 이길 수 있을 걸? 못할 게 뭐야. 김명진 같은 커다란 놈도 식물인간 만들었는데.


누가 상대로 올라온다고 해도 상관없지. 시간정지만 제대로 발동시킨다면... 그거야 뭐 상처에 피만 잘 내면 되는 거고.


그렇게 한 번도 안 지고 계속 이겨나가다 보면 줄라이웨더만큼 돈을 많이 벌 수도 있지 않을까?


일당을 천육백억씩 받으면 금방 재벌 될 거 아니야? 그러면 이 인성문제 있는 변호사는 당장 해고해 버리고 차장검사 아저씨처럼 제대로 된 사람을 고용할 수 있잖아.


집 가까운 데 복싱 배울 수 있는 곳이 있던가? 지도검색 좀 해봐야겠는데.


회색 물빛이던 정강준의 마음속에 붉은 잉크 한 방울이 똑 떨어진다. 급격히 퍼져나가기 시작한다. 당장의 변화는 없지만, 그 한 방울만으로도 온 세상이 변한 것 같은 기분에 소년의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잉크의 본색이 분홍일지 핏빛일지는 알 수 없는 일. 하지만 정강준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정말 큰돈을 벌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심심하지 않게는 지낼 수 있겠지.


확실해.


*


5월 중순.


구시가지 끄트머리에 있는 3층 건물이다. 그 작은 건물보다 더 낡은 복싱체육관의 계단을 올라가는 소년이 있다. 교복차림에 책가방을 메고 있다.


천원권투체육관.



금방이라도 떨어져버릴 것 같은 간판을 확인한 소년이 위쪽 절반만 유리로 된, 섀시 문 안쪽을 흘깃 살핀다. 길지 않은 시간이다. 소년은 고민하지 않는다.


문이 벌컥 열린다.


조심성 없이, 그리고 주저하는 기색도 없이 정강준이 안으로 들어간다. 태도만 봐서는 개선장군이 따로 없다.


관원 없는 체육관 사무실에서 컴퓨터게임에 열중해있던 트레이너 오태영이 이상을 감지한다. 본인도 그런 스스로를 이상해한다.


뭐야? 그냥 꼬맹이 한 놈 들어온 건데 왜 이렇게 신경이 쓰이지?


이제까지 그런 식으로 문을 열고 들어온 놈이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아는 게 없는 놈이라고 해도, 복싱이라는 종목이 주먹으로 턱과 머리를 가격하는 험한 운동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그러니 아무리 센 척하는 놈이라도 처음 체육관에 들어올 때는 겁을 먹고 조심스럽게 굴기 마련.


그러나 방금 들어온 침입자는, 애초에 겸손이라는 게 애초에 뭔지 모르는 놈처럼 거만하게 들어와 허락도 구하지 않고 체육관을 둘러보고 있다.


집중력이 흐트러지자 게임은 금세 개판이 된다.


“어어어? 아이 씨...!”


갑자기 집중력을 잃은 오태영이 걱정스러웠던 모양. 게임 속에서 함께 동고동락하던 파티원들이 일제히 오태영 부모의 안부를 묻는 메시지를 날리기 시작한다.


“아 이 시발 ㅈ만 한 새끼들이 패드립을 쳐?!”


빗발치는 안부 인사를 받던 오태영이 아버지의 안부를 확인해본다. 응접실 탁자에 바둑판을 가져다놓고 묘수풀이 책을 보고 있던 오천원 관장의 의자 등받이를 발로 두 번 걷어찬 것.


“아이, 아빠! 호구 왔잖... 아니 관원 왔잖아. 빨리 나가봐요.”


난데없이 의자 등을 걷어차인 오천원의 손에 쥐여있던 흑돌 몇 알이 좌르륵 바둑판 위로 떨어진다.


“아니 이런 호로쌍놈의 새끼가 다 있나... 아니구나. 내 핏줄이었지? 이런 니미.”


천원권투체육관의 총관장이 책과 돌을 놓고 근엄하게 자리에서 일어난다.


바둑판의 한가운데에 있는 천원점은 원래 비어 있었으나, 이때 오천원에게서 떨어진 돌 중 하나가 우연히 굴러 그 천원점 위에 놓인다.


오천원은 그 흑돌을 보고 난 뒤에야 고개를 돌린다. 정강준은 어느새 그 돌처럼, 멋대로 링 안까지 들어가 그 한가운데에 서 있다. 오천원 관장은 그런 정강준을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본다.


그 순간, 사망의 골짜기를 건넌 오태영의 게임 캐릭터가 단말마의 비명을 내지른다.


*


낡아서 배가 터진 헤비백에 청테이프가 감겨 있다.


동영상 속의 세계챔피언들이 트레이닝을 하던, 넓고 깔끔한 짐Gym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사무실은 생활공간을 겸하고 있어 침대는 물론이고 가재도구까지 널려 있다. 책상에 와 앉은 정강준이 미간을 잔뜩 찌푸린다. 그렇게 노골적으로 실망하고 있는데도 오천원 총관장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입관 안내를 시작한다.


“에... 천원이라는 말은, 내 이름이기도 하지만 바둑판의 한가운데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거든? 바둑에서는 불리하기 때문에 먼저 네 귀퉁이부터 돌을 놓고 제일 나중에 천원점을 취하는 게 상식이지만, 권투는 그렇지가 않아. 링 중앙을 점한 사람이 시합을 지배하고 트로피를 가져가는 거니까.”


늙은 대학교수의 강의노트처럼, 이제껏 토씨 하나의 수정도 없이 관원들에게 되풀이되었던 낡은 레퍼토리가 정강준에게 쏟아진다.


정강준은 빠른 속도로 흥미를 잃는다.


여기는 좀... 아닌 것 같네. 더 나은 체육관이 있겠지.


게임에 지고 패드립에 시달리다 결국 열이 올라 게임을 꺼버린 오태영이 아버지의 뒤에서 무심히 정강준의 얼굴을 바라본다.


“왜. 복수하려고?”


정강준이 움찔한다.


후견인에게 달달 볶이는 병원생활이 하도 지긋지긋해 의사에게 고집을 피워 이른 퇴원을 하기는 했어도, 얼굴의 상처는 다 나은 뒤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맨주먹으로 싸우면 얼굴 그렇게 돼. 상처가 아물어도 남는 흔적이 있거든.”


'그리고 눈빛이 달라지지.'라고 말하려다 오태영은 그냥 입을 다문다.


체육관을 보고 크게 실망을 했던 정강준지만, 오태영의 눈썰미에는 반응을 할 수밖에 없다.


오태영은 정강준이 보는 앞에서 스스럼없이 상의와 하의를 다 갈아입고 아르바이트 하러 나갈 준비를 한다. 정강준에게서는 아예 등을 돌린 채다.


“번지수를 잘못 찾아왔어. 싸움을 배울 거면 MMA체육관으로 가야지. 여기서 세 정거장만 더 가면 종합격투기 체육관이 있는데, 거기 관장이 내 동기야. 민국체대 레슬링특기생이었는데 실력 괜찮아. 뭐, 타격기는 젬병이지만. 그냥 레슬링 배워. 안 다치고 강해질 수 있으니까.”

“아 이 미친놈의 새끼가!”


오천원 관장이 빗자루를 집어 들고 아들의 하반신을 마구 후려갈긴다.


정강준의 입장에서는, 그 좋다는 주먹을 놔두고 빗자루로 사람을 때리는 권투체육관 관장이 잘 이해가 안 간다.


“아! 악! 왜 때려? 에익! 요즘은 종합격투기가 대세야! 그리고 쟤한테도 그게 좋을 거라고! 애 얼굴 좀 봐요, 얌전하게 공부나 하게 생긴 애인데! 단기간에 벼락치기해서 두들겨 맞은 거 복수하고 다시 학업에 열중하게... 아! 아프다고!”


정강준은 상황 정리의 필요성을 느낀다. 강렬하게.


“저는 돈을 벌려고 온 건데요.”


아들을 두들겨 패던 오천원 관장이 놀라서 빗자루를 놓친다.


“뭐라고?”


오태영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린다. 오천원 관장의 입도 헤 벌어진다. 잠시 말이 없다가 간신히 내뱉듯 말한다.


“권투를 해서 돈을 벌어...? 아이고... 많이 맞았던 모양이구나. 머리 다친 거지?”


여기는 글렀나 봐.


정강준은 다시 책가방을 한쪽 어깨에 걸친다. 그런데 이번에는 오태영이 정강준에게 흥미를 느낀다.


“얼굴은 어쩌다 그렇게 된 건데?”

“...지나간 일이에요.”

“권투를 해서 돈을 벌겠다고? 야. 그런 건 불가능해. 이걸 봐. 이러고 사는 꼴을.”

“두 분 다 선수셨던 건가요?”

“...지나간 일이지.”


정강준이 소리 없이 웃는다. 나갈 채비를 마친 오태영이 정강준을 손짓으로 일으켜 세워 데리고 나간다.


호구, 아니 예비관원을 빼앗긴 오천원 관장이 끙, 하고 앓는 소리를 낸다.


정강준과 어깨동무를 하고 계단을 내려가면서, 오태영이 간단하게 안내를 한다.


“크게 나누자면 복싱에는 두 가지 리그가 있어. 야구에 마이너리그랑 메이저리그랑은 좀 다르지만... 어쨌든. 하나는 아마추어복싱이고, 하나는 프로복싱. 아마추어는 직접 복싱을 해서 돈을 벌 수가 없게 돼 있는데, 지금 여기는 아마추어협회에 등록된 체육관이야. 프로협회등록은 한참 전에 말소됐거든. 아마도 해외 프로복싱 챔피언들 돈 만지는 거 보고 찾아온 모양인데, 우리 체육관 같은 경우에는 실력이 돼도 바로 프로테스트를 볼 수가 없어. 아마추어에서 성적 올리고 그거 인정받아서 라이센스 받는 수밖에 없다고. 그나마도 아버지가 협회 사람들이랑 사이가 안 좋아서 백 프로 보장은 못하겠고.”

“싸워서 이기면 계속 올라가는 거 아니에요?”

“아니지 당연히. 아버지는 프로였고 플라이급 한국랭킹 1위였어. 한국챔피언은 못했지만, 전적도 괜찮았고 정중구나 유성우 같은 세계챔피언들 스파링파트너도 했었지. 그런데도 돈은 구경도 못하고 지금 이렇게 살고 있는 거야. 나는 프로 생활하던 아버지가 더러운 꼴 당하는 걸 워낙 많이 보고 자라서, 프로시합은 안 하고 아마추어 경기만 뛰었었는데, 알고 보니까 아마추어도 비슷하더라. 실업팀 들어가서 연봉 받아봐야 은퇴하면 그냥 실업자 되는 거니까. 어디 운 좋게 중고등학교 코치 자리 얻어봐야 최저임금도 못 받는 거고. 봐. 지금도 이러고 알바 하러 가잖아.”


나란히 걷던 오태영이 편의점 앞에서 멈춘다. 오태영의 현 직장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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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47 흑전사
    작성일
    24.03.11 11:28
    No. 1

    복싱실력은 있는데 마케팅 비즈니스가 안따라주는군요. 그럼 마케팅 비즈니스 강한사람이 파트너해야 되겠네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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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생전 처음 24.02.16 27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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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원권투체육관 +1 24.02.13 56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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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투명 올가미 +2 24.02.13 88 0 10쪽
12 슬기로운 입원생활 +2 24.02.12 64 1 10쪽
11 심리적 안전장치 +1 24.02.12 69 2 10쪽
10 똘마니들 +1 24.02.12 89 1 10쪽
9 오직 시간이 문제 +1 24.02.12 87 2 10쪽
8 살인연습 +1 24.02.08 79 1 11쪽
7 이제 와서 어쩔 +1 24.02.08 93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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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책과 사진과 아버지 +1 24.02.02 156 3 10쪽
3 뭐가 들어있는지 +2 24.02.02 173 3 10쪽
2 유산은 백억 +2 24.02.02 217 4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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