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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증영대근

주인공인 줄 알았는데 빌런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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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증영대근
작품등록일 :
2024.02.01 12:52
최근연재일 :
2024.04.03 18:52
연재수 :
65 회
조회수 :
3,229
추천수 :
26
글자수 :
320,181

작성
24.02.08 19:58
조회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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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0쪽

이제 와서 어쩔

DUMMY

집에 와서도 걱정은 계속된다. 그러나 정강준은 유온의 연락처를 휴대폰 액정화면에 띄워놓고도 정작 전화를 걸지는 못한다. 폼이 안 나는 일 같아서다.


조금 더 기다렸다가 대강 견적 나오고 난 다음에 지나가듯 전화를 거는 게 낫지 않나? 그놈들 목적이 합의금이라면 내가 상속받을 유산에서 제해달라고 하면 되잖아. 아깝기는 해도... 내가 번 돈은 아니니까 뭐.


*


수요일도 조용하다.


오늘만 같으면 학교생활도 할 만할 것 같다는 생각에 살며시 마음을 놓으려던 찰나, 교실 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부서질 것처럼 열린다.


그리고 정강준이 평생 봐온 인간들 중 가장 커다란 놈이 안으로 들어와 눈으로 교실을 쓱 훑는다.


정강준도 작은 키가 아니지만 그보다 머리 하나가 더 크다. 키만 큰 게 아니라 몸피도 대단히 두껍다. 그냥 살이 쪄서 부풀어 오른, 풍선 같은 몸이 아니다. 몸의 말단까지 힘이 꽉 들어차 있는, 장사형 체형.


그 뒤를 따라 들어온 임수산이, 뒷자리에 앉아있던 정강준을 향해 삿대질을 해가며 천한 욕지거리를 내뱉는다. 정강준은 살인충동을 느끼지만 즉각적으로 반응하지는 못한다. 앞서 들어온 거구에게 압도되었기 때문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의자 하나를 뺏어든 육식동물이 천천히 눈앞까지 와 앉는다. 손이 범 발처럼 크고 두껍다.


그놈 하나만 해도 버거울 것 같은데, 학교의 논다는 놈들이 전부 다 모였는지 열 명도 넘는 놈들이 그 뒤를 따라 들어와 버티고 선다.


이 책상 저 책상에 멋대로 걸터앉아 정강준이 앉은 자리를 노려본다. 항의하는 학생은 없다. 숨소리도 나지 않는다.


꿀꺽.


정강준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킨다.


“얘 얼굴 이렇게 만든 게 너냐?”


어려운 질문은 아니지만, 정강준은 그냥 대답 없이 놈의 얼굴을 노려보기만 한다.


말과 논리가 먹히지 않는 순간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정강준은 뭐라고 말해도 이 일이 해결되지 않을 것임을 확신하고 있다.


시냇가에서 물을 마시던 양 앞에 늑대가 나타나 시비를 거는 순간과 같다.


‘네가 발로 물을 흙탕물로 만들어서 물을 마실 수가 없잖아!’

‘저는 아래쪽에 있어서 윗물을 흐릴 수가 없는데요.’

‘너 작년에 내 아버지 욕을 했다며?’

‘저는 올해 태어났어요.’


양의 말은 사리에 맞았지만 결국 늑대에게 죽임을 당한다. 이유 같은 건 없다.


그처럼 말 한 마디 섞는 순간 놈들에게 말려들게 되는 더러운 게임이다. 그럴 때는 당연히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편이 낫다. 괜히 어설프게 항변하다가 목소리가 떨리기라도 하면 그것만도 개망신이다.


정강준은 팔짱을 끼고 상반신을 슬쩍 뒤로 눕힌다. 전에 임수산 앞에서 보였던 행동과 동일한 움직임이지만, 정강준은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하품을 한다. 정말 졸려서 한 것이 아니라, 심리적으로 위축됐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한 필사적인 연기다.


덩치 큰 놈이 어이없다는 듯 웃는다. 그리고 얼굴을 험악하게 일그러뜨린다.


정강준은 그 눈을 피하지 않는다. 체급 차이가 부담스럽기는 해도 왠지 거기서 눈을 깔았다간 남은 학창생활, 아니 남아있는 전 생애가 다 시궁창 속으로 굴러 떨어질 것만 같다.


가만히 앉아서 말없이 서로의 얼굴을 노려보는 시간이 길어진다. 교실 전체에 적막이 깔린다.


“웃기는 새끼네 이거?”


거구가 먼저 눈살을 찌푸리며 픽 쪼갠다.


또다시 초면에 새끼 소리를 듣고 만 정강준이 이를 악문다. 당장 그 아가리를 찢어놓고 싶어지지만, 그것도 사람 봐가면서 할 수 있는 일이다.


아쉽게도 맨주먹으로는 상당히 어려울 듯싶다. 그냥 가만히 앉아있기만 해도 위압감이 상당하다.


뭐냐고 이 미친 덩어리는? 몽키스패너 같은 거라도 가져오지 않으면 상대할 수 없을 것 같은데.


발로 차면 어디 한 군데 부러지게 생겨먹은 멸치새끼가 무슨 깡으로 쳐들어와서 패드립을 날렸던 건지 비로소 알 것 같다.


저 새끼는 유인책이었구나? 옛날이야기에 나오는 창귀 같은 거.


“때린 거는... 지난 일이니까 어쩔 수 없고. 그거 넘어가 주는 대신 니네 집을 우리가 좀 써야겠다. 일주일 줄 테니까 집 비워. 원룸 하나 구해서 나가면 되잖아.”


어이가 없어진 정강준이 코웃음을 친다. 그러자 뒤에 서 있던 떨거지들이 눈알을 부라리고 욕을 하고 고성을 질러 교실이 온통 시끄러워진다.


그렇지만 정강준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뭐야 이 치와와 같은 새끼들은? 알고 보니까 다 계획적이었던 거잖아. 고작 자해공갈 이벤트를 하는 놈들이었어?


보복을 하자고 온 거였으면 모르지만, 매 값을 달라고 온 놈들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들은 체도 않는 정강준에게, 놈은 또 한 마디를 보탠다.


"너 돈 좀 있다며? 그 정도면 나쁠 거 없잖아?"


놈은 생활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까지 알고 있다.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알게 된 걸까.


그 면전에다 대고


“개소리 지껄이지 마라.”


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며칠 전과는 모든 것이 달라져 있다. 도와주는 사람은 없다. 정강준은 심한 외로움을 느낀다.


놈이 자리에서 일어선다.


“일주일 준다. 다음 주 수요일까지 비워라.”


정강준은 대답 없이 기지개를 켠다.


대답하지 않았으니까 그놈 말대로 집을 비워줄 필요도 없지. 앞으로도 그냥 쌩까고 지내면 별일 없을 것 같은데...?


*


이틀이 지나고 난 뒤에야 다른 학생들로부터 정보를 얻어 사태를 파악한 정강준의 얼굴이 사색이 된다.


덩치 큰 놈의 이름은 김명진. 이번에 고3 올라간 놈인데, 193에 100킬로그램이 넘는 거구다.


원래는 씨름을 했다고 하는데 중학교 때 폭력사건을 일으켜 강제로 은퇴. 당연히 그냥 덩치만 큰 돼지가 아니다.


온몸에 문신이 있으며 폭력배들과 친한 것도 사실. 졸업하면 바로 그쪽으로 취업할 거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죄 없는 애들을 잡아다가 몇 시간 내내 두들겨 팬 적이 있다고 하며, 아마 사람을 죽여본 적도 있을 거라는 말도 있다.


그놈한테 강간당하고도 후환이 두려워 신고 못한 희생자가 여럿이라고 하며, 원룸에 감금한 뒤 구타와 고문을 가하다가 강간하는 수법을 많이 쓴다는 것. 여자뿐만 아니라 남자도 강간한 적이 있다고 하며, 이놈 때문에 작년에는 자살한 남학생까지 하나 나왔다는 거다.


정강준의 정신이 혼미해진다.


아니 무슨 놈의 학교가 이따위야? 그런 새끼가 어떻게 안 짤리고 학교엘 다녀? 학교 재단이랑 깡패새끼들이랑 동업이라도 해먹고 있는 거냐고?


아니 어떻게 이런 학교가 계속 장사를 해먹지?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 게 아니고서야.


보자보자하니까 이 돼지새끼가 정말...! 그런 일들을 저지르고 다녔으면 미리 말을 해줘야 될 거 아니야? 왜 사람을 오해하게 만들어?


진작 그 얘기를 했으면 진작 무릎 꿇고 잘못했다고 빌었을 거 아니냐고? 이런 시발! 학기 초라고 괜히 객기부리다가 지옥 뒤뜰에 파묻히게 생겼어!


엄마. 나 엄마 다시 만날 날이 가까워진 것 같아. 이제 어떻게 하지?


지금이라도 원룸 알아볼까? 엄마도 알잖아. 나 원래 원룸 좋아했던 거. 어릴 때부터 원룸 살았으면 좋겠다고 노래 부르고 그러지 않았을까? 기억은 없지만.


*


온종일 고심하지만 그런다고 답이 나올 리 없다. 칼자루를 쥐고 있는 건 양이 아니라 늑대니까.


싸워볼 생각을 하니 일대일로는 그놈을 이길 방법이 없다. 처음에 왔던 임수산이 정강준에게 가소로워보였던 것 이상으로, 김명진에게 정강준은 너무나 작고 만만할 것이었다.


그래도 원룸을 알아볼 생각은 없다. 집을 비우고 나가도 해결이 안 될 문제임을 알기 때문이다.


정강준의 형편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놈들이다. 세세한 사정까지 다 알고 있는 건 아니겠지만, 어쨌든 혼자 살아갈만한 돈이 있다는 것까지도 알고 있다. 원룸을 구해 집을 비우고 나간다고 해서 그래 고맙구나 앞으로는 안 괴롭힐게 땡, 하고 놓아줄 리 만무하다.


빨대를 꽂고 계속 빨아먹으려 들 것이 분명하다. 한 번이라도 꼬리를 내리면 끝이다. 계속 더러운 일들을 당하면서 개처럼 질질 끌려 다니게 된다.


감금당한 채 강간당하다가 자살했다는 애가 처음부터 그런 험한 일을 당했을 리 없다. 초장에 그런 미친 짓을 하려 들었다면 당연히 신고를 했을 것이다.


사소한 걸로 시작했겠지.


삼만 원만 빌려줘 봐. 금방 갚을게.

신발 좋네, 오늘만 바꿔 신자.

그거 비싼 거냐? 이야, 좋다. 며칠만 쓰고 줄게.


그러다 희생자가 저항할 의지를 잃게 되면 그때부터 사람이 해서는 안 될 짓들을 저질렀을 터. 그것이 정강준이 살아오면서 목격한 악의 속성이었다.


이번에는 내가 부모 없는 고아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 처음부터 세게 지른 거겠지.


원룸 얻어서 집 비워라. 그럼 우리 애 팬 건 없던 일로 해줄게.


애초에 그렇게 첫인사를 튼 놈들이 나중에는 얼마나 더 또라이 같은 짓을 저지를지 알 수 없다. 돈이 된다고 하면 장기까지 꺼내 팔아버릴지도 모르는 일.


더군다나 장례식이 끝난 지 며칠 지나지도 않았건만, 엄마랑 살던 집이 양아치새끼들의 아지트가 되게 생겼다.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뭘 어떻게 해야 집을 지킬 수 있지?


칼로 찔러 버릴까? 나도 잃을 거 없는 놈인 건 똑같잖아.


그냥 죽여 버리고 변호사 도움 받아서 잘 소명한다면?


학원폭력 피해에 시달리다가 홧김에 술을 마시고 심신미약 상태에 빠져 우발적으로 범행. 여기에다 청소년보호법까지 적용된다면...


돈이 부족할 것 같은데? 이복동생들에게 상속된다는 유산을 나에게 물려줬다면 집행유예 정도로 끝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 작성자
    Lv.48 흑전사
    작성일
    24.02.14 17:38
    No. 1

    재미있습니다. 쓰잘데없는 상상은 용기를 죽여버리지요. 죽을려고 하면 산다는 이치를 배워야겠지요. 인간에게는 상상할수도 없는 힘이 잠재되어 있지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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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만두귀랑 예약되셨지 24.02.15 41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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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투명 올가미 +2 24.02.13 88 0 10쪽
12 슬기로운 입원생활 +2 24.02.12 64 1 10쪽
11 심리적 안전장치 +1 24.02.12 69 2 10쪽
10 똘마니들 +1 24.02.12 89 1 10쪽
9 오직 시간이 문제 +1 24.02.12 87 2 10쪽
8 살인연습 +1 24.02.08 79 1 11쪽
» 이제 와서 어쩔 +1 24.02.08 94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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