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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9일생 님의 서재입니다.

잊혀진 자의 이야기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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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9일생
작품등록일 :
2023.01.06 17:04
최근연재일 :
2024.01.05 08:00
연재수 :
25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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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515,958

작성
23.02.2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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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화 보이지 않는 위험 - 8

DUMMY

한편 오틀린을 따라간 서지터와 카데스는 신전 지하의 허름한 작은 방에서 두 번째 저녁 식사를 하는 중이다. 이미 초저녁에 먹은 저녁이 소화가 다 되지 않은 서지터는 돼지고기 스튜를 카데스에게 덜어주며 밝게 웃었다.


“형이 더 먹어. 배고프잖아.”


카데스는 충실히 말 못 하는 연기를 하며 고개만 끄덕였다. 그 모습을 짠하게 지켜보던 오틀린이 따뜻한 형제애를 보며 말을 꺼냈다.


“형제치고는 하나도 안 닮았는데 너희 우애가 보통이 아닌 모양이구나. 부모님은 몇 살 때 돌아가신 거냐?”


“형이 7살 때, 제가 6살 때 돌아가셨습니다. 그 뒤로 도적 길드가 바글거리는 빈민가에서 거지처럼 생활하다가 싸움은 조금 자신 있어서 용병이 됐습니다. 적어도 굶고 지낼 거 같진 않아서요.”


“그랬군. 네 형은 언제부터 말을 못 한 거야?”


서지터는 슬픈 표정을 지으며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했다.


“어릴 때 부모님 돌아가신 후부터 말을 못 했습니다. 형에게는 꽤 충격이었던 거 같습니다. 여기저기 알아보니 실어증이라고 하더라고요.”


“부모도 잃고 충격받아 말 못 하는 형도 챙기면서 네가 고생이 많았겠구나.”


“아닙니다. 저희를 거둬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서지터는 넙죽 엎드려 또다시 감사한 마음을 표현했다. 이제 다 넘어온 오틀린에게 최대한 잘 보여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됐다. 나도 너희처럼 고생하며 살아서 그 심정 잘 알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여길 찾아왔겠군. 세상살이가 다 그래. 절망만이 남았다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한 줄기 빛이 보이는 법이지. 여기가 바로 그런 곳이야.”


“형님 말씀 새겨듣겠습니다.”


“그럼 식사하고 그릇은 문밖에 내놔라. 그리고 아직 너희를 거둬주는 것도 확정은 아니니까 집회가 끝나고 길던 형님이 올 때까지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


“네, 그래도 이렇게 한 끼 식사를 주신 것만으로도 정말 감사할 뿐입니다.”


오틀린은 손을 들어 괜찮다는 표시를 하며 밖으로 나갔다. 서지터는 발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까지 그대로 엎어져 있다가 재빨리 문을 살짝 열어 주변을 살폈다. 사병들이 머무르는 곳은 아닌 듯 주변은 조용했다.


“후아아, 불쌍한 척 연기하기 더럽게 힘드네.”


서지터는 여전히 밖을 경계하며 드디어 본심을 드러냈다. 그릇을 싹싹 비우는 카데스를 한심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 넌 이 상황에서 그게 넘어가냐?”


“나 말해도 돼?”


“어, 주변에 아무도 없어. 말해도 돼.”


“뭐야. 갑자기. 후루룹. 미리 말이라도 해주고 거짓말을 하지. 당황했잖아.”


“들어가지도 못하고 입구에서 잡혀버렸는데 말할 시간이 어디 있냐? 둘러대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는데.”


“대체 이 설정은 뭐야. 나 계속 다물고 있어야 해?”


“왜? 히히. 마음에 안 들어? 어차피 너 말도 잘 안 하는데 어울리잖아. 게다가 나 딱히 거짓말한 거 없다? 먹고 살기 위해서 용병이 된 것도 사실. 카데스 네가 식탐이 많은 것도 사실이고, 용병 일하면서 팔라고스 왕국에 돈도 떼먹힌 것도 사실이고.”


“갑자기 형제는 또 무슨 설정이야.”


“그냥 문득 생각이 났어. 우리 검은 늑대 아트록스 부대장 알지? 어릴 때 부모님 돌아가시고 동생이랑 힘들게 살았나 봐. 그러다 우연히 아더 대장님 눈에 들어서 용병단에 들어간 거고. 갑자기 그게 번뜩 떠올랐지. 잘 됐잖아. 동정심을 유발해서 여기까지 별 탈 없이 들어왔으니 말이야.”


“그 상황에서 거짓말을 능구렁이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치는 네가 참 대단한 거 같아.”


“히히히. 내가 또 잔머리 하나는 기가 막히잖아. 그건 그렇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라나. 여기는 지하 2층인 건 확실하고 대사제라는 놈은 어디 있으려나.”


서지터는 허름한 방안을 훑어보며 말했다. 지하 2층까지 내려온 거로 봐서는 이곳에 빛 한 줌도 들어오지 않을 만큼 어둡고 축축한 느낌이 가득한 공간이었다. 오면서 오틀린의 말은 대사제와는 부딪힐 일이 없다고 하니 아무래도 그의 거처가 지하에 있지는 않을 거 같았다.


“일단 아직 여기에 머무르는 것도 확실하진 않으니까 조용히 대기하고 있자.”


“혹시 모르잖아. 위에서 허락 안 해서 쫓겨날지 누가 또 알아? 그냥 지금 엎어버릴까?”


드래곤의 이빨을 양치해주듯 무모함이 하늘을 치솟는 발언이었다.


“대사제라는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 병력이 몇이나 되는지 아무것도 모르잖아. 게다가 우리는 무기도 없이 단검 한 자루만 가지고 있고.”


“무기는 아무나 몇 놈 때려잡으면 금방 구하는 건데 뭘. 꼴에 나도 머리 좀 커졌다고 굽신거리기도 쉽지 않다.”


“일단 상황을 좀 지켜보자. 며칠 정도 있어야 할 거 같지만 그동안 얌전히 정보만 찾아내자. 명심해. 사고 치면 절대 안 돼.”


“알았어.”


혹시나 또 어떤 사고를 칠지 걱정이 된 카데스가 미리 단단히 주의시켰다. 그의 말처럼 아직 어떤 정보도 알아내지 못한 상태에서 움직이면 위험하기만 할 뿐이다. 대사제라는 인물이 어디에 있고, 경비병들의 규모도 모른 상태에서 섣불리 움직이기는 쉽지 않았다.


“어디 보자. 그럼 일단 대사제라는 놈 면상부터 확인하고, 여기 내부 구조도 좀 정확하게 파악하고, 경비병들 숫자도 대략 얼마나 되는지 알아내면 되겠지? 아! 대사제 방이 어디인지도 알아내야겠다. 아마 거기에서 디스펠 매직을 썼을 가능성이 가장 크니까. 그러면 거기가 신전 중심일 거고.”


서지터는 손가락을 접으며 차근차근히 해야 할 일들을 정리했다. 외곽 경비만 아니라면 신전 내부를 꼼꼼하게 파악하는 데 크게 무리가 없을 거라 생각이 되었다. 그럴 수만 있다면 한스에게 가장 큰 도움이 될 만한 정보 역시 알아내기 어렵지 않으니 말이다.


“어떻게 알아볼까?”


“카데스 너는 말 못 하는 설정이니까 아마 나랑 계속 같이 묶겠지? 경비를 어떻게 서는지 아직 알 수는 없지만 하나는 망보고, 하나는 구석구석 뒤지면 되지 않겠냐?”


“그래, 그럼.”


그렇게 한참 동안 계획을 세웠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마치 동굴 속에서 울리듯 발소리가 들려왔다. 둘은 조그맣게 얘기를 나누던 것을 멈추고 곧장 얌전하게 각을 잡고 자리에 앉았다.


- 끼이익.


문이 열리며 촛불에 비친 얼굴은 그늘이 잔뜩 들어있었지만 두 사람 중 한 명은 누구인지 알 수는 있었다. 신전 입구에서 끝까지 의심의 끈을 놓지 않던 길던이라는 자와 낯선 사내가 함께 들어왔다.


낯선 사내는 입고 있는 옷이나 가죽 갑옷이 제법 고급으로 보였고, 얼굴은 살점이라고는 없는 깡마른 모습이었다. 그가 둘을 보며 씨익 웃자 야비한 인상이 들었다.


“너희가 여기 경비병이 되고 싶다고?”


서지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허리를 숙이자 카데스도 똑같이 따라 했다.


“안녕하십니까. 제 이름은 체이스, 제 형님 이름은 아스쿤이라고 합니다. 형님은 말을 못 해서 제가 대신 인사드리겠습니다.”


서지터는 또 눈 깜짝할 사이에 거짓으로 가명을 지어내었다. 갑자기 왜 그 이름이 생각났는지는 모르지만, 아리엘의 집에서 보았던 일기장 주인의 이름을 써먹었다. 카데스의 이름은 검은 늑대 동료였던 애꾸눈 아스쿤의 이름을 천연덕스럽게 사용했다.


“오면서 길던한테 얘기는 들었다. 용병 생활을 했다는데 주로 무슨 일을 했지?”


“주로 상인 길드 호위 임무를 맡아 5년 정도 용병 생활을 했습니다. 몬스터들을 많이 상대해봐서 싸움에는 조금 자신이 있습니다. 그런데 가진 돈을 빚쟁이한테 다 뺏기고 사기도 당해서 빈털터리가 됐습니다. 그간 모아두었던 돈도 모두 잃은 탓에 제 형님이 말 못 하는 것도 치료를 받았으면 해서 이렇게 염치 불구하고 찾아왔습니다.”


“당장 치료받기 힘든 건 얘기 들었겠지?”


“네! 여기 계신 길던 형님께 들었습니다. 몇 년이 지나도 괜찮습니다. 열심히 일하면서 끼니만 거르지 않게만 해주셔도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저희는 보수 같은 것도 필요 없습니다.”


“좋아! 받아주도록 하지. 길던?”


“네, 경비대장님.”


“자네 소대에서 외곽 경비로 빠진 인원이 가장 많지? 저 둘 데려가서 이것저것 가르치고 일을 시키도록 해.”


“그런데 대사제님께서 외부인들 때문에 요즘 예민하시던데 말씀 안 드려도 괜찮은 겁니까?”


여전히 조심성이 많은 길던의 말에 경비대장은 이빨을 드러내며 그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자네 죽고 싶나?”


“죄, 죄송합니다.”


길던이 고개를 숙이자 기분 나쁘게 그의 머리를 툭툭 치며 경비대장이 말했다.


“날 이 정도 힘도 없는 놈으로 본단 말이지? 상당히 기분 나쁘군.”


“아, 아닙니다!”


경비대장은 한쪽 입꼬리가 올라가며 비열한 미소로 길던을 나무랐다.


“대사제님도 내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란 말이야. 이 신전을 여기까지 키운 건 다 내 덕이란 말이지. 그러니 내 앞에선 말 가려 하는 게 좋을 거야.”


“그, 그게! 지난번에 죽인 놈들 때문에 대사제님께서 워낙 예민하시다 보니 저는 걱정이 돼서! 정말 죄송합니다.”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자네가 건방지게 나서지 않으면 좋겠는데?”


“주의하겠습니다.”


경비대장은 계속해서 야비한 표정을 지으며 밖으로 말없이 나가버렸다. 발소리가 사라지자 길던은 한숨을 내쉬며 욕을 해댔다.


“쓰레기 같은 자식! 퉤!”


서지터가 달려가 길던이 괜찮은지 상태를 살폈다.


“형님! 괜찮으십니까?”


“후우, 이런 꼴을 보여서 쪽팔리군.”


“저분이 경비대장입니까?”


“그래, 경비대장 모릭이라는 자야. 돈과 권력밖에 모르는 인간이지. 너희도 저 인간한테 밉보이는 짓은 안 하는 게 좋을 거야. 괜히 눈 밖에 나면 여기서 쫓겨나는 거로 끝나지는 않지. 죽을 수도 있으니 말이야. 조심해라.”


“네, 감사합니다.”


서지터는 고개를 숙여 감사 인사를 하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저런 자가 경비대장이라면 분명 경비병들을 부추길 수도 있을 거 같은 판단이었고, 생각보다 일이 순조롭게 흘러가는 것이 만족스러웠다.


“가방들 챙겨서 나와라. 경비대 숙소로 가자. 숙소에선 내가 이런 꼴을 당했다는 건 말하지 말고.”


“네, 네. 형, 가방 챙겨. 길던 형님 따라가야 해.”


둘은 가방을 챙겨 메고 길던을 따라나섰다. 허름한 방에서 나가자마자 서지터가 바로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길던 형님, 저희가 머물 곳은 어딥니까?”


“바로 위 지하 1층. 그곳에 경비병들 숙소가 있다. 오십여 명 정도 지내는 곳이지. 너희 실력이 뛰어나다면 4층에 대사제님이 머무는 곳에 경비병으로 뽑히겠지만 거긴 보통 실력이 아니면 갈 수 없지. 물론 신앙심 역시 두터워야 하고.”


“그렇군요.”


서지터는 카데스와 눈빛을 주고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에 머무르는 경비병들의 숫자가 50명 정도라면 외곽 경비를 맡은 자들 역시 비슷한 숫자일 거라 생각되었다. 대부분 경비병의 실력은 별 볼 일 없을 것이다. 디스펠 매직만 깰 수 있다면 여섯이서 충분히 상대할 수도 있을 거 같았다. 분명 둘이서도 많은 경비병을 쓰러뜨릴 실력을 갖추고 있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둘이 첩자라는 사실을 꿈에도 모르고 있는 길던은 대사제 방의 위치까지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말은 실력이 좋아야 4층 경비병으로 갈 수 있다지만 두 사람이 마음만 먹으면 이길 상대는 그렇게 많지 않을 게 뻔했다.


“오늘은 첫날에다 시간도 늦었으니 숙소에 가면 푹 쉬고, 내일부터 내가 이것저것 알려주마.”


“네! 형님.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서지터는 굽신거리는 게 쉽지 않다고는 말했지만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비굴한 행동만큼은 타고난 듯 보였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은 피드백과 충고, 오타 지적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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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2화 보이지 않는 위험 - 9 23.03.01 41 3 12쪽
» 2화 보이지 않는 위험 - 8 23.02.28 46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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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1화 돌아오다 - 25 23.02.15 46 3 16쪽
24 1화 돌아오다 - 24 23.02.14 43 3 12쪽
23 1화 돌아오다 - 23 23.02.13 45 3 12쪽
22 1화 돌아오다 - 22 23.02.10 44 3 13쪽
21 1화 돌아오다 - 21 23.02.09 49 3 12쪽
20 1화 돌아오다 - 20 23.02.08 58 3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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