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 아버님이 누구니. (feat. 나야 나!)
열심히 하겠습니다.
9-3. 아버님이 누구니. (feat. 나야 나!)
“이사님 지시대로 최익면이라는 사람의 구직활동은 철저하게 방해하고 있습니다.”
“알바낙원 실무자. 입단속은 잘 시켰지?”
“네.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런데 왜 굳이 이렇게 까지 하십니까?”
“그 자식은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왠지 모르게 ‘사딸라’를 연상케 하는 어조였다.
망나니 인생 30년 동안 가족들을 제외하면 그 누구에게도 싫은 소리 한 번 들어본 적 없는 그였다. 선생님부터 친구들까지 하나같이 망나니의 눈치를 살피기 바빴으니까.
그러니 몇 주 전 병원 화장실에서 마주한 익면의 개드립은 망나니에겐 쉽게 잊을 수 없는 산뜻한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망나니가 쥐고 있는 부와 권력이면 일반인하나 거지꼴 만드는 건 손바닥 뒤집기보다도 쉬운 일이다.
뭐, 망나니의 입장에서 서민이면 이미 다 똑같은 거지이긴 했지만서도 말이다.
전생의 덕이든 신의 축복이던 간에 재벌로 태어난 그는 인간들에겐 당연히 수긍하고 따라야 할 계급이라는 게 존재한다고 믿었다.
본인이 최상위 계층인 ‘천룡인’이라면 알바로 연명하는 최익면 따위는 보이지도 않을 무저갱의 제일 밑바닥이나 박박 긁고 있을 노예.
버러지만도 못한 존재가 허울뿐인 ‘같은 인간’이라는 이유로, 주제도 모르고 고결하고 존귀한 본인을 비꼬았으니 이는 처절하게 굶어 죽어 마땅할 중죄임이 확실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사회 고위층 인사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에 대한 강한 책임감으로 주제 파악 못하고 기어오르는 잡놈의 새끼들은 그 싹부터 철저하게 밟아, 현실 감각을 키워줘야만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그나저나 이사님. 3일 후면 회장님의 공판 법원출석일입니다. 혹시 잘못돼 일선 복귀가 힘들어지시면 실권은 모두 전무님께 넘어갈 텐데요. 그냥 이대로 보고만 계실 겁니까?”
“뭘 보고만 있어?! 나한테도 생각이 다 있어! 내가 괜히 아버지 옆에 붙어 허드렛일을 해온 줄 알아?”
망나니가 움켜쥐고 있는 비장의 카드는 뇌물 비리 장부였다. 그룹의 실질 경영권이 장남인 전무에게 집중되자, 망나니는 아버지의 수족처럼 따라붙으며 지저분한 뒷일 처리를 해왔던 것.
정치권과 정부 관계자들에게 거액의 현금을 직접 실어 나르며, 그 사진과 증거물들을 몰래 만들어 취합 해 놓았다.
물론 회장이 관리하고 있는 장부까지 사진으로 찍어, 야무지게 모아 USB에 담아놨다.
세상에 공개되면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어 놓을 게이트의 열쇠이자 정재계의 지축을 흔들 판도라의 상자였다.
만약 회장의 수감이 길어져 퇴진이라도 하게 되면 그룹 내 실권이 전혀 없는 자기는 개털이 되어버릴게 아닌가.
협상을 하던, 협박을 하던. 형님과 누님을 상대로 자기 몫을 당당하게 주장하기위한 비책을 미리 마련해 둔 것.
과연 이 USB의 정체를 알고도 망나니의 요구를 무시할 수 있을까?
앞으로도 천룡인으로 무탈히 살아가려면 막대한 돈이 무조건 필요할 수밖에..
유비무환(有費無患). 돈이 있어야(유비) 근심이 없지(무환).
망나니의 유일한 좌우명이었다.
*
‘그 잘난 대한민국이 하늘에서 떨어졌어? 땅에서 솟아올랐어? 우리 재벌들이 없었으면 가당키나 하냔 말이야?’
대한민국의 성장에 그들의 기여도 분명히 있었으니 무조건 틀렸다고도 말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창업주도 아니고 재벌 2세에 불과한 그의 머릿속에서 나올만한 생각은 아니지 않을까?
그들의 성장에 갈려 들어간 노동자들의 삶과 국민의 혈세는 어찌 설명할 런지..
진상그룹 양승연 회장의 1차 공판일.
오늘 이 순간을 위해 팔자에도 없을 다이어트를 20일이나 강행해왔다.
이번 참에 축 늘어진 뱃살도 조금 정리했으니 억울하기만 할 일은 아니었지만 답답한 마스크 착용에 휠체어까지 대동한 지금의 상황이 달갑지만은 않았다.
법원 앞을 가득 메운 기자들과 시민단체들이 눈에 들어오자 양회장이 황급히 마스크를 올렸다.
‘버러지 새끼들.. 이런 꼴을 보려고 우리 아버지가 월남전에서 그 개고생을 하며 그룹을 일으켜 세운 줄 아나.. 아니, 내 회사의 내 돈을 내가 내 맘대로 쓰겠다는데 지들이 뭐라고 참견 질이야? 참견이..’
부의 대물림과 권력의 세습이 자유민주주의 공화국인 대한민국에서 무슨 문제가 되느냐는 말이었다.
이건 체제만의 문제는 아닐 터. 좀 더 북쪽의 상황을 봐도 완전 다른 체제이지만, 최고 권력은 삼 대째 대물림 중이지 않던가. 그냥 인간의 본성이자 본능이 그러한 것이다.
평등이라는 감언이설도 결국 나와 내 가족은 제외한 주장일 뿐. 남이사 붕구리로 살던 개돼지로 살든 이미 돈과 권력을 손에 쥔 인간들에게는 세뇌와 선동이 필요한 순간을 빼고 나면 지구 반대편 99세 노인의 장례식에 불과했다. 즉 아무 관심이 없다는 뜻이다.
그러니 양회장에게 죄의식이란 재벌로서 누리지 않는 유일한 사치 정도에 불과했다.
“회장님 이제 정차하겠습니다.”
보조석의 비서가 도착을 알리자 양회장은 온몸에 힘을 빼며 좌석으로 파고들었다.
남우주연상이나 연기대상 같은 걸 노리는 걸까? 보조석에서 하차한 비서가 뒷좌석의 문을 열자, 송광호나 이병헌에 빙의된 듯 병자 연기를 하는 양회장의 모습이 드러났다.
경호원의 팔에 안긴 꼴이 영락없이 백마탄 왕자 품에 안긴 비련의 여주인공이랄까? 여하튼 꼴이 사나웠다.
경호원이 메소드 연기에 심취한 양회장을 휠체어에 올려놓자, 기다렸다는 듯 기자들의 수많은 카메라 플래시가 싸이키 조명처럼 터져 나왔다.
“양회장님! 5500억 횡령과 배임의 혐의 인정하십니까?”
“지나가겠습니다.”
“탈세 혐의도 받고 계신데, 인정하십니까?”
“비켜주세요.”
“최근 지병악화가 꼼수라는 의혹들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기자들과 경호원들의 실랑이가 시작됐다. 쏟아지는 기자들의 질문세례에도 주어진 배역에 혼신의 힘을 다하여 몰입중인 양회장. 입은 굳게 다물고 기운이 없다는 듯 먼 산만 바라봤다.
“부패 재벌 구속하라!”
“양승연 회장을 구속하라!”
멀리서 시민단체들이 양회장의 구속을 촉구하는 외침이 들려왔다.
이때, 기자들이 내민 마이크들 사이로 하얀 손이 하나 섞여들어, 양회장의 몸을 살짝 건들고 사라졌다.
이윽고 양회장 가까이서 기자의 질문이 아닌 낯선 구호가 들렸다.
“양승연 회장은! 병자 연기 그만하고! 범죄를 자백하라!”
양회장과 그 일행이 눈을 돌린 그곳엔 어떻게 들어왔는지, 어그로의 문관우가 껌을 씹으며 시위 피켓을 흔들고 있었다.
바로 옆까지 파고든 시위꾼의 행태가 허벌라게 거슬렸던 탓일까.
간신히, 그것도 억지로 짓누르고 있던 분노가 부글부글 끌어 오르기 시작했다.
‘저런 거렁뱅이 새끼들을 제멋대로 떠들게 놔두는 거 잣!체가 문제야!’
개뿔, 쥐뿔도 없는 비렁뱅이 놈들이, 가서 밥벌이나 할 것이지. 뭐 대단한 영웅 나셨다고 이런 곳까지 몰려와서 지랄들을 해대는가. 그러니 백날, 천날을 살아봤자 계속 거지꼴을 못 면하는 게 아닌가!
내 아버지와 내가 그룹을 위해 피, 땀, 눈물 흘릴 동안은 어디서 뭐하고 굴러먹다가 이제 와서 저런 개소리들을 지껄이는지 도저히 그냥 들어주기가 힘겨웠다.
주변의 경호원들이 재빠르게 문관우를 끌어내려 다가가는 순간.
“비이 켜어어어어!!!”
수 갑자 내공을 상회하는 무림고수의 사자후 같은 고성이 법원 앞 넓은 현관을 채우며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그 목청이 얼마나 좋은지, 금모사왕 사손의 싸대기를 100대라도 후려치고 남을 성량이었다.
아무도 예기치 못했던 돌발 상황으로 요란했던 법원 앞이 한순간에 침묵으로 굳어갔다.
“야~~~! 이 잡놈의 새끼야! 니깟게 뭔데?! 그따위로 씨부려?!”
연이어 터진 고수의 음파신공이 사위의 정적을 깨뜨리자, 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시가 다시 한 번 연거푸 불꽃들을 터뜨렸다.
“죽어! 죽어! 죽어버리라고 이 버러지 새끼야!”
휠체어에서 벌떡 일어나 문관우를 가격한 양회장이 쓰러져 특유의 방어자세를 취하고 있는 어그로를 계속 짓밟고 있는 것.
참으로 안타까운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양회장이 그토록 바라던(?) 오스카와 아카데미의 연기상이 물거품이 돼 사라져버리는 순간이었으니까.
주변의 경호원들이 어쩔 줄 몰라 하는 사이. 양회장의 곁에 있던 비서와 변호사가 양회장의 양팔을 잡으며 저지를 시도했다.
살이 좀 빠졌다고 그동안 수없이 먹어 채운, 고가의 귀한 보약들의 효능마저 사라져 버렸겠는가.
칠순을 넘긴 양회장은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하며 숨겨왔던 기운으로 양팔에 붙은 비서와 변호사를 한 방에 떨쳐냈다.
“뭐해?! 얼른 회장님을 막지 않고!”
밀려났던 비서가 멍 때리고 있는 경호원들을 닦달했다. 덩치 좋은 경호원들이 달라붙고 나서야 겨우 문관우에게서 떨어지는 양회장.
“놔! 안놔! 이거 놓으라고!”
“안 됩니다. 회장님!”
양회장은 아직도 분이 덜 풀렸는지 경호원들에게 양팔이 들린 채로 발버둥을 쳤다.
엎어져있던 관우가 힘겹게 몸을 일으켜 앉으며, 껌을 뱉고는 꺼이꺼이 울음을 터뜨렸다.
순간 현타가 양회장의 뒤통수를 강타했다.
휘둥그레진 눈동자를 마구 굴리며 두 팔로 얼굴을 가리는 양회장.
쥐구멍이 아니라 지렁이 똥구멍이라도 가능하다면 들어가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이게 다 무슨 소용이겠는가. 차라리 폭풍 속에서 바람을 피하지.
주변에 바글거리는 사람의 50%이상이 기자들인 것을..
세상 끝났다는 듯 펑펑 울고 있는 관우는 생각했다.
‘아싸~ 과연 재벌의 합의금은 얼마나 될까?’
*
황당의 수준을 아득히 넘어선 엽기적인 법원 난동은 매스컴을 타고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장이 기자들 천지였지 않은가.
생동감 넘치는 영상과 사진들이 말 그대로 차고도 넘쳤다.
비록 양회장의 세계적인 연기자로의 꿈은 빛을 보진 못했지만, 그 대신 그 위용만은 대한민국을 넘어 전 세계에 떨칠 수 있었다.
이번 사건이 ‘K-재벌’, ‘한국판 예수님의 기적’등 다양한 이름으로 해외토픽을 장식했던 것.
독특한 재벌 경영방식이 이슈가 된 것과 더불어 누가 봐도 중증환자로 걷지도 못했던 노인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 액션 씬을 찍지 않았는가.
그러니 한순간에 병자를 치유하셨다는 예수님의 기적에 비견 될 수밖에.
당시에 찍힌 수많은 사진들은 각종 짤로 편집되어 SNS에 쏟아졌으니, 사회 뉴스엔 큰 관심이 없을 젊은 세대들까지 이 소동을 모르는 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비록 재판은 연기되고, 양회장은 현행범으로 체포됐지만, 명실공히 월드스타의 반열에 이름을 올린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되었다.
차준혁의 사무실.
“관우씨의 활약으로 일단 1차 작전은 대성공이네요. 자 그럼 우리는 이제 2차 작전에 돌입해 볼까요?”
“그런데 그 정보 확실한 거가 맞겠죠?”
“그 정보의 근원지가 제 독심술입니다만...”
음. 궁예의 안대와 관심법.
차준혁 이 남자는 여러 가지 의미로 궁예의 두 배 이상의 능력자임이 확실했다.
선작, 추천, 댓글 환영! 악플도 받아요~
- 작가의말
음.... 저는 왜 멀쩡한 낮엔 놀고 밤에 머릴 쥐어짜고 있을까요?
독자님들의 조회와 선작, 그리고 댓글은 사랑이자 희망입니다~
감사합니다.
Comment '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