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 탑 6 결정전
오후 4시 55분. 공연 5분전이라는 안내방송과 함께 가설무대에는 한 밴드의 공연을 위한 준비가 마무리 되어 있었다. 거대한 윙바디 트럭을 이용한 가설무대의 뒤쪽에는 밴드를 알리는 거대한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주위에선 오- 오- 하며 감탄하는 목소리들이 들렸다.
“저 밴드 유명한가?”
“음- 나도 잘 모르겠는 걸.”
현수막은 검은 바탕에 잘생긴 해골이 반만 딱 갈라 왼편에서 사람들을 째려보고 있었다. 단지 이것만 보고서 감탄을 자아낼 정도라면 그 만큼 유명하단 이야기잖아. 근데 난 모르겠어. 언니도 모르는 눈치야. 대체 누구길래? 어떤 밴드길래? 이럴 줄 알았으면 팝송이라도 좀 들어둘 걸 그랬어, 싶었다. 사람들이 무대를 즐기기 위해 서킷의 중앙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얼떨결에 사람들 인파에 갇혀 공연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근육이 우락부락하고 황비홍 머리를 한 체 썬글라스를 쓴 이상한 사람이 마이크를 잡고 듬성듬성 무대 위로 걸어나왔다. 비율이 엄청 좋은 데다가 온 몸엔 문신까지 있었다. 전형적인 나쁜 남자같은 인상이었다.
“헤이! BOMC 마더퍼커쓰-!!”
함성이 들려왔다. 뭐야? 대체 왜 여기가 함성이 나올 부분인건데?
“Yeah- It's Fuxx Amazing(이야- 존나 놀랍네), 대체 어떤 미친 놈이 서킷에다가 무대 세울 생각을 한 거야? 어? 총장이 누군지 몰라도 한 마디 해줘야겠어. 그치?”
주변에서 기타를 매고 나온 두 사람을 번갈아가며 묻더니 그는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You Fucking AWESOME(존나 멋져). 그리고 너희들도.”
소리가 떠나가라 지르는 주변사람들. 뒤에 사람들이 더 오는 지 스테프들에 의해 무대와 조금 더 가까워졌다. 잠시 정적이 흐르고 난 뒤에 우리의 귀에 교회 오르간처럼 성스런 소리가 꽃히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환호한다. 곧 기타 현이 멜로디를 연주하며 이 노래가 범상치 않다는 걸 알려준다. 보컬이 팔을 쳐들어 올리길 반복하자 사람들이 오르간 멜로디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언니와 나는 이 밴드가 어떤 밴드인지 이름조차 모른 체 라이브 공연에 빠져들었다. 처음부터 시끄럽게 소리를 지르더니 평범하지 않은 가사와 함께 밴드 공연이 시작되었다. 1절이 끝나고 난 뒤 갑자기 주먹을 들고 호응을 유도했다. 어이! 어이! 어이! 하면서 목소리에 맞춰 소리를 질렀다. 영문도 모른 체 비장한 밴드의 첫 음악이 끝나자, 쉴 틈도 주지 않고 그가 외쳤다.
“I'm not insane-!”
“I'm not insane-!"
“WE ARE NOT Fuxxing INSANE!!!(난 미치지 않았어, 우린 절대 미친게 아니라고!)”
시끄럽게 목소리를 질러대며 빠른 리듬으로 기타반주가 시작되었고, 그는 말했다. 원을 만들어 돌라고, 말 나오기 무섭게 주변 사람들이 소용돌이치듯 돌기 시작했다. 돌고, 돌고 마구 돌기 시작한다. 뭐야 이거, 무서워. 숨 헐떡이는 소리까지 들리는 가운데 노랫소리가 우리 귀를 자극한다. 아, 이 노래. 엄청 빠르고 기타소리도 엄청 빠르게 지나가고, 흥분되기 시작했다. 알고보니 보컬이 내지른 한 마디는 노래 가사였다. 중간에 난 미치지 않았다고 호소라는 내용이 나온 뒤엔 검은 가죽자켓에 매력적으로 생긴 남자 기타리스트가 속주를 하기 시작한다.
영문도 모르겠고, 밴드 이름도 모르겠고, 모르는 것 투성이지만 일단 즐겼다. 사람들 사이에 부대껴 놀기 시작하니 이젠 무슨 밴드이고, 내 취향이고 아니고를 따지지 못하게 됐다. 그러기엔 나는 너무 멀리 오고 말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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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이 끝나고. 소리를 너무 질러 목이 좀 쉬었다. 캑캑 기침을 하고 나서 밴드의 정체를 알았다. 미국에서 잘 나가는 헤비메탈 밴드, 어벤지드 세븐폴드라는 밴드라고. 주위에선 설마 이 밴드가 우리 학교에 올 줄은 몰랐다고 기뻐하는 사람들이 오지게 많았다.
“아- 아아- 아아아-”
목소리 확인. 말할 때마다 목이 갈라진다. 내 안에 록 스피릿이 이렇게 잠들어있는지 나도 몰랐다. 왠갖 소리를 다 내며 좋아해서 그랬나, 갑자기 ‘저 밴드를 알고 있었냐, 팬이냐?’ 라고 묻는 초면은 외국인도 있었다. 짧은 영어로 몰랐는데 좋았다고 하니 뭘 좀 안다면서 활짝 웃는 그. 뭐야 대체.
“언니. 나 갈래.”
“왜? 그렇게 좋아했으면서.”
“한 번 더 즐겼다간 입학식 하기도 전에 죽을 것 같아.”
빠져나가려하니 사회자란 사람이 나와서 두 번째 밴드가 공연할 건데, 전공연보다 사람이 적으면 삐친다고 설득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새로운 밴드를 소개했다. 영어로 속사포 랩을 펼치며 시작하는 그들의 이름은 ‘스타일 오브 비욘드’ 라고 한다.
안 그래도 쇼미더머니라는 프로그램 덕분에 조금 관심이 생긴 아메리칸 힙합 같은 음악이 눈 앞에 떡하니 라이브로 펼쳐졌다. 안 보고 갈 수가 없잖아! 본토의 힙합이라니. 아닌가? 몰라. 즐기면 장땡이잖아! 이야야아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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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입학식 행사는 시작도 안 됐는데... 하얗게 불태웠다. 하- 만족했어. 풀썩 바닥에 엉덩방아 찍을 뻔한 걸 겨우 버텨냈다. 다리가 풀릴만큼 풀려서 주저앉은 체 하늘만 올려다보았다. 아직 하늘은 이렇게 밝은데, 벌써 행복하게 지쳐있다니. 온 몸이 땀에 젖어서 기껏 입은 게 무용지물이 되어버렸어도 여전히 몸엔 엔돌핀이 돌고 있었다.
“너 진짜......”
“하하하-”
“아무리 즐겁다고 그렇게까지 무리하면 어떻게 해.”
“모두가 뛰고 노는 데 슬쩍 빠져있는 건 예의가 아니야.”
“아, 그러셔. 미안하네요.”
언니를 노리고 한 말은 아니었다. 아니야. 사실 언니한테 뭐라고 한 게 맞다.
“세린아, 지영아!”
때마침 근육질 언니가 어디선가 우리한테 다가왔다.
“세희언니! 언니도 여기 있었어요?”
“응- 차 점검 끝내고 바로 왔지. 세상에 이번 초대가수 어벤지드 세븐폴드더라?!”
“네에......”
“나 진짜 좋아하는 밴드였거든! 내한공연 안 오나 싶었는데~”
“전 처음 보는 밴든데요...”
“어벤지드 세븐폴드는 나두 잘 알아-”
뭐야. 내가 모르는 게 비정상인 것처럼 흘러가고 있잖아.
“대체 어떻게 아는 거야?”
“니드포스피드란 게임에서 그 밴드 노래가 나오거든. 꽤 유명해.”
“니드포스피드?”
세희 언니가 눈을 반쯤 감은 체 미간을 좁힌다.
“너, 니드포스피드 몰라?”
“웅....”
게임이란 걸 해봤어야 알지... 세희언니는 한 숨을 내쉰다.
“그래. 니드포스피드 모를 수도 있지.”
“그치그치. 탑 6 결정전 준비는 다 끝났어?”
“그럼! 오랜만에 느껴보는 바깥공기라 너무 좋아!”
세희언니는 엄청 기뻐했다.
“저기 탑 6 결정전 출전차들 전시하고 있는데 가봤어?”
“아직이야.”
“구경하러 가자.”
나는 이제 곧 클럽타임이라는 사회자의 말에 솔깃해서 무대 근처에서 있으려 했다. 하지만 세린언니가 내 손을 잡아당기고 세희언니는 근육질에서 나오는 힘으로 내 어깨를 꽉 눌러 안 따라가고는 못배기게 했다. 아- 더 놀고 싶단 말야! 아아!
결국 서킷 전체가 클럽처럼 오색빛이 찬란하게 빛나는 순간에도 서킷을 터덜터덜 걸어가고 있었다. 의외로 이 시간을 즐기지 않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다. 탑 6 결정전에 출전하는 차는 총 12대, 그 차들이 도로의 한 쪽을 점거한 체 대각선으로 정렬되어 있었다. 순위순으로 정렬된 듯 한데 제일 처음 아는 차가 보였다. 본넷트를 연 체 퀘퀘한 냄새를 내뿜는 그 차는 온통 검은색에 촌스러웠던 테일러라는 선배의 차였다. 전엔 보이지 않았던 라이트가 오늘은 불쑥 튀어나와 있었다. 삼각형 형태로 튀어나온 라이트에선 밝은 하얀빛이 강하게 비추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페라리에도 요런 차가 몇 대 있었었지... 이름은 예쁜데 생긴 건 조금 이상하다 싶었던 테스타로사였나? 그거랑 좀 옛날차들이 꼭 저런 라이트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대체 왜 저렇게 튀어나오는 걸까? 다른 차들은 그냥 붙어있는데 말야. 나는 세린언니한테 물어보았다.
“아- 요 팝업 라이트는 공기저항 줄일라고 옛날에 한창 유행했었어. 우리나라에도 있었지?”
“엘란이 이랬지- 우리나라엔 엘란밖에 없을 거야.”
어디서 들어본 이름이긴 한데.
“근데 공기저항을 줄여야 좋은 건 알겠는데, 라이트를 켜고 있으면 완전 쓸모 없는 거 아냐?”
세린언니와 세희언니가 뜨끔하며 몸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렇긴 한데........” 세린언니가 세희언니를 콕콕 찔렀다. 어떻게든 해보란 듯이. 말은 없지만 둘이 옥신각신 싸우고 있었다. 결국 먼저 입을 열게 된 건 세희언니였다.
“그래서 어떤 차들은 안개등 위치에 보조 라이트를 달아서 요 팝업 라이트를 안 열어도 되게끔 만들기도 했었어- 요런 것도 유행 타거든!”
“아- 그러니까 옛날엔 이게 인기가 많아서...”
“그래. 그렇게 이해해줘.”
뭐지. 잘 얼버무렸다는 듯한 저 눈빛교환이 영 미심쩍어. 어쨌던 두 언니는 무식하게 큰 차의 엔진을 보며 서로 별 이야기를 다 나누었다. 세상에, 여자들이 자동차 이야기를 수다 떨 듯이 하는 건 처음 봐.
“다른 엔진이랑 다르게 위 쪽에 흡입구가 있고 서지탱크가 제일 위에 있잖아. 이 엔진 볼 때마다 이게 제일 신기하다니까.”
“OHC 엔진으로 바뀌면서 서지탱크가 안 쪽으로 들어가고 헤드에는 캠이 붙어있잖아.”
“맞아맞아! 그래서 원래 엔진 헤드 모양 생긴게 말야- 보통은 그냥 평면에 붙어있는 모양인데.”
“OHV 엔진은 묘하게 불쑥 튀어나온 V형이지-”
“배기음 존나 좋아!”
배기음? 구텅구텅, 뭔가 부자연스럽다 싶은 엔진소리가 계속 나는 중에 테일러 선배가 나타났다. 이래저래 또 이야기를 나누다가 테일러 선배가 차에 앉아서 악셀을 밟았다. (구롸앙!! 구뢍!) 천지가 진동할 듯한 엄청난 소리는 테러라도 당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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