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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공공 문고전

추리무협(追利無俠)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토공공
작품등록일 :
2022.05.11 11:06
최근연재일 :
2022.06.29 00:10
연재수 :
7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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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47
추천수 :
803
글자수 :
388,926

작성
22.05.1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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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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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글자
14쪽

대탈주(大脫走)-3

DUMMY

추격자들이 당도했다는 말에 겁이 난 벽운소는 와락 권안생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모진 고초를 겪음에도 여태 의연한 모습을 보여온 그녀였으나 권안생은 그녀의 손 끝에서 가느다란 떨림이 전해지는 것을 느꼈다.


권안생은 겁에 질린 얼굴의 벽운소의 어깨에 가볍게 손을 올려 그녀를 안심시키려 들었다. 어깨에 닿은 그의 손에서 흘러나온 후끈한 경력이 그녀의 몸을 일시적으로 데워주었고 이내 그녀는 마음의 평정심을 되찾을 수 있었다.


"너무 심려치 마십시오. 소저는 공자를 데리고 저들이 돌아갈 때까지 잠시 천봉대협의 묘가 안치된 석굴 안으로 들어가 몸을 피하고 계십시오."


"대인께서는 어쩌시려고요?"


"저들은 아직 저의 얼굴을 모릅니다. 길을 잃은 참배객이라 둘러대면 앞길이 바쁜 저들은 곧 돌아갈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무가의 여인으로 자란 그녀에게 은인을 위험한 처지에 놓아두고 일신의 안위를 택하기란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흔들리는 벽운소의 마음을 다 잡게 한 건 어느새 잠에서 깨어 자신과 권안생을 대화를 지켜보는 벽운경이었다.


자신의 목숨이야 초개처럼 버려도 아깝지 않건만 이제 막 열 살 남짓한 어린 아이에게 죽음을 강요하기란 너무나 마음 아픈 일이었다. 결국 그녀는 차오르는 배덕감을 마음 한 켠에 몰아두고는 벽운경과 함께 석굴 안으로 몸을 피했다.


한편 벽씨 남매를 피신시킨 권안생은 차가운 사당의 바닥에 앉아 가부좌를 틀었다. 벽운소에겐 별 일이 없을거라 장담했지만 어떻게든 벽씨 남매를 찾아내야하는 이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기에 곱게 넘어가긴 어려울 것이었다.


권안생은 주어진 얼마 안되는 시간 동안 운기행공을 통해 그간 쌓인 피로와 탁기를 최대한 몰아내는 데 주력했다. 일찌기 소리가 들려온 방향의 거리로 보아 적들이 도착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었다.


불안 속에서 권안생은 이곳에 도착하는 일행 가운데 자신이 감당하기 힘든 고수가 없기를 기도하며 일주천을 시작했다.





그로부터 일 각이 조금 지나 도씨 부자를 위시한 무림맹의 추격조는 벽자엽의 무덤에 당도했다. 분명 남매가 있을 것이라 확신한 그들이었으나 이게 웬걸 그곳에 있는 이는 허름한 행색의 잠이 든 성인 남자였다. 싸늘한 가을 밤의 산 공기에 잠결에도 느껴졌는지 그는 몸을 단단히 웅크려 체온을 보호하려 애쓰는 모양이었다.


공단이 사당의 안에서 자고 있는 사내를 턱 끝으로 가리키자 그의 뒤에 선 감찰단 무사는 자신 휘하의 하급 무사에게 그의 정체를 밝힐 것을 지시했다. 상관의 지시를 받은 무사는 사당에 누워있는 남자를 걷어차며 일어날 것을 요구했다.


퍽-


"에구구! 뉘...뉘시오?"


"대체 뭐하는 자이길래 이 밤중에 이 곳에 있느냐?"


"누구인지는 내가 먼저 묻지 않았소? 왜 질문을 했는데 돌아오는 게 답이 아니라 질문이오?"


"아니, 이 놈이!"


촌부로 보이는 남자에게 농락당한 하급 무사는 허릿춤의 검을 꺼내어 대뜸 겨누었다. 달빛에 비친 그의 검은 제 주인의 성정을 대변하듯 차갑고 날카롭기 그지 없었다. 그러자 권안생은 마치 무공을 전혀 모르는 사람인 척 능청맞게 고개를 돌려 낮게 몸을 움츠렸다.


"아이쿠야. 농 한마디에 대뜸 칼을 들이미는 것을 보니 산도적놈이 분명하구나! 살려주시오. 난 가진 것 하나 없는 거렁뱅이란 말이오!"


칼날앞에 겁을 먹고 바르르 떨고있는 권안생의 모습은 무림과는 전혀 연관이 없는 평범한 일반인처럼 보였다. 도진기는 이런 부류의 사람들을 윽박지르는 것은 원하는 정보를 얻어내는 데 오히려 역효과라고 생각되었다. 하여 그는 권안생을 핍박하는 감찰단 소속의 무사에게 일갈하여 꾸짖었다.


"네 이놈! 어찌 감히 무림맹의 이름을 달고서 강호외인에게 이토록 방자할 수 있단 말이냐!"


"그것이...죄송합니다."


무사는 서둘러 도진기에게 고개를 숙여 사죄를 표했다. 그 모습을 본 권안생은 속으로 고소를 터트렸다.


'결례를 범한 대상은 나일텐데 사과는 내가 아닌 제 상관에게만 하는군. 무림인이란 참으로 역겨운 족속들이로다.'


아니나 다를까 실수를 지적당한 무사는 권안생에겐 일체의 한마디도 없이 공단의 뒤로 다시 돌아갔다. 공단은 돌아온 무사에게 차가운 안광을 보내어 매섭게 쏘아보았고 그는 고개를 숙여 자신의 잘못을 깊숙이 뉘우치는 모습이었다.


감찰단원인 무사가 타 소속인 도진기에게 직접적으로 결함을 지적받은 것. 찰나에 일어난 일이었지만 이것은 은연중에 도진기가 보낸 감찰단에 대한 견제였다. 부하의 실수로 인해 도진기에게 모욕을 당한 공단은 그저 울분을 삭힐 수 밖에 없었다.


"실례가 많았소. 부디 용서해주시오."


아랫 사람의 결례를 대신해 고개를 숙인 도진기의 모습은 헌앙한 그의 외모와 맞물려 도도한 품격이 느껴졌다. 그러나 오전에 백화장에서 저지른 그의 악행과 그 내막을 알아낸 권안생에겐 그것은 역한 위선으로밖에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맡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 마주 허리를 굽혀 사과를 받았다.


"별일 아닙니다요. 헤헤헤."


"그나저나 선생께서는 늦은 밤, 이 산 중에 무슨 일로 여기에 계신겁니까?"


"내일 아침에 저 아래 매봉현으로 넘어가면 백화장에서 큰 잔치가 있어 귀한 음식들을 대접받을 수 있다는 말을 전해 들었습니다. 좋은 음식일수록 일찍 동날게 분명하니 일찍 도착하기 위해 전 날부터 길을 서두르다 그만 밤이 너무 추운 나머지 바람을 피해 이 곳에 왔습니다."


천봉절에 참여하기 위해 길을 나선 여행객으로 위장한 권안생의 연기에 깜빡 넘아간 도진기는 짐짓 크게 안타까운 표정을 드러내어 말했다.


"저런, 천봉절은 이미 지났습니다. 그리고 잔치 또한 당일에 생긴 모종의 사정으로 인해서 일찌감치 파하게 됐소."


"뭐라구요? 젠장. 헛걸음을 했구만. 날이 밝으면 곧장 돌아가야겠구먼."


"혹시, 선생께서는 여기에 있으면서 근방에 지나가는 남녀를 보신 적이 없으십니까? 여인은 이십대의 묘령이고 소년은 이제 갓 열살이 됨직할 나이입니다."


본격적으로 남매의 행방을 묻는 도진기의 질문에 권안생은 시치미를 뚝 뗀고는 고개를 크게 가로저었다.


"아니오. 그런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어쩌면 내 곤히 잠드는 바람에 지나가는 데도 알지 못했을 수도 있지요."


"그럴리가..."


사내의 말에 도승문이 발끈하였다. 누구라도 금악산을 넘어 팽구현에 가기 위해선 분명 이곳을 지나쳐야만 했다. 혹시 사내가 거짓을 말하는가 싶어 다시금 눈여겨 관찰해보았으나 더벅머리에 꾀죄죄한 몰골의 사내에게선 별다른 비밀이 숨겨져 있다고는 전혀 생각들지 않았다.


도씨 부자가 자신만만하게 말한 것과 달리 남매의 추적이 묘연해지자 공단은 재차 도진기를 추궁했다.


"그들이 여기에 있을것이라 호언장담하지 않았소? 비연단주만 믿고 마음을 놓았다가 이게 무슨 낭패요?"


"분명 가까운 곳에 있을 겁니다. 사람을 나누어 찾다보면..."


도진기는 다소 흥분한 상태의 공단을 애써 진정시키려 했으나 그의 분노는 전혀 가라앉을 생각이 없어보였다.


"나와 감찰단은 지금이라도 산을 내려가 팽구현으로 가있겠소. 이 산을 뒤지든 말든 이제부턴 비연단과 신응문주의 관할이오."


"그런..."


날이 밝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건만 그간의 추적이 모두 허사가 되었다는 사실에 공단은 몹시 화가 난 모양이었다. 그는 함께 따라온 감찰단을 추스려 산을 내려갈 채비를 했다.


생각지도 못한 일행의 분열에 권안생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여기서 신응문의 도씨 부자도 공단을 따라 같이 내려가준다면 그것이야말로 자신이 생각했던 최선의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가 미처 몰랐던 것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이들이 남매를 쫓는 이유가 남매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닌 백화장이 숨긴 '물건' 의 행방을 알아내기 위함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물건' 을 찾기 위해 도진기는 공단을 따라 산을 내려가는 것이 아닌 다른 행동을 취하게 되었다.


"비연단은 인원을 절반으로 나누어라. 반은 나를 따라 산을 계속하여 넘을 것이고 나머지 반은 이 근방을 샅샅히 뒤져라. 특히 벽자엽이 묻힌 석굴을 수색해 수상한 물건이 발견될 시 즉시 보고하도록."


'이런 빌어먹을...'


일사천리로 풀리고 있던 권안생의 계획이 마지막에 틀어져버렸다. 석굴 안에 들어가게 된다면 남매가 발각되는 건 순식간일 것이다. 권안생은 잠시 눈을 감고 남매를 돕는일을 계속해야하는 지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먼저 내려간 공단과 감찰단의 무사들을 제외하고도 이 곳에는 아직 십 여명의 비연단의 무사들과 도진기, 그리고 무엇보다 도승문이 이 자리에 있었다.


그는 아내를 잃고 분노해 전력을 다하는 벽문천의 검을 수 차례나 막아낸 강자였다. 그런 상대에게서 일 대 일도 아닌 다수의 협공을 받아내며 남매를 보호할 수 있다는 것은 불가능할 터였다.


결국 권안생은 남매를 포기하는 것으로 마음을 먹었다. 이만하면 자신은 할만큼 했으니 남매들이 저승에 가더라도 자신을 원망하지 않을 것이라며 애써 자신의 결정을 두둔했다. 그렇게 마른 침을 삼키던 그는 어딘가에서 개운치 않은 텁텁함이 느껴졌다. 바로 입 안에 남아있는 곡식가루의 찌꺼기였다.


'맛이 참으로 고소했었지...'


그리고 권안생은 문득 자신에게 그 것을 대접하던 벽운소의 수줍은 미소를 떠올렸다. 보잘것없는 음식이었지만 상황에 맞춰 최선을 다해 내놓은 식사였다. 그리고 권안생은 그들을 구하려했던 이유에 대해서 다시금 떠올렸다. 힘 있는 자들의 거대한 악의에 의해 고통받는 이들을 구하는 것. 그것이야 말로 자신이 일찍이 알던 협(俠)이 었거늘.


곧 권안생은 자신이 느낀 껄끄러움은 입 안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단 것을 깨달았고 마음을 바꾸었다. 비록 그 선택의 결과가 어떻게 되더라도 그는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생겼다.


'곡식가루와 물 한 바가지에 목숨 하나라... 이제보니 그것은 꽤나 호사로운 식사였군.'


그렇게 권안생이 마음의 결정을 내리는 동안 무사 하나가 석굴 앞을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발을 딛어 석굴 안으로 들어가려는 무사에게 권안생은 지체없이 사당의 비치된 위패를 손에 집어 내력을 실어 날려보냈다.


쉬이익-


"윽!"


별안간 뒤통수에 강렬한 타격을 받은 무사는 그대로 픽 쓰러지고 말았다. 의심의 여지가 없는 즉사였다.


예상치 못한 촌부의 돌발행동에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의 발이 굳은 것을 틈타 권안생은 석굴 앞으로 재빨리 몸을 날렸다. 그리고는 방금 자신의 손에 죽은 무사의 검을 집어든 뒤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석굴 안으로 볼일이 있는 사람은 내 재주껏 막아볼 터이니 이 자와 내 시체를 넘은 뒤에야 지나가시구려."


장내의 모든 시선과 검 끝이 권안생을 향했고 그렇게 그의 긴 하루의 끝이 찾아오게 되었다.




한편 석굴 안으로 들어간 남매는 뉘에게 들킬세라 몸을 잔뜩 웅크려 숨어 있었다. 사방이 막힌 석굴 안은 차가운 밤 공기를 막아 주었지만 대신에 그에 못지 않게 차게 식은 돌 바닥에서 기분 나쁜 한기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쿵-쿵-쿵-쿵-


달빛조차 들어오지 않는 캄캄한 석굴 속에서 두 남매가 느낄 수 있는 것은 서로의 온기와 극도의 긴장으로 인해 터질 것 같은 심장 소리였다. 벽운소는 자신의 품에 안겨 오들오들 떨고 있는 어린 동생의 모습에서 안타까움을 느꼈다.


"경아야, 많이 두렵지? 조금만 참으렴. 전부 다 곧 지나갈 일이야."


"네. 누님..."


"어린 네가 고생이 많구나. 참으로 미안하다."


자신보다는 누님이 더 힘드셨을거란 말이 입 밖으로 나오기 전 벽운경은 가까스로 그것을 자신의 안으로 꾸욱 밀어넣었다. 혹여나 이로 인해 그녀가 오늘 겪은 지옥같은 그 순간을 다시 떠올릴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남매는 곧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의 발소리와 재잘거리는 목소리에 그들은 무림맹의 무사들이 도착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턱 끝까지 쫓아온 추격에 남매는 극한의 공포를 느끼게 되었다. 두근대던 심장은 이제는 터질듯이 혈액을 뿜어대기 시작했고 급기야 남매는 뱉어낸 날숨과 함께 심장이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올세라 입을 굳게 다물어 숨을 지켜야만 했다.


'어머니, 아버지. 제발 저희를 지켜주세요...'


감출 수 없는 두려움에 벽운소가 할 수 있는 것은 간절한 기도 뿐이었다. 그녀의 눈에선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나왔고 이내 그녀는 그것이 제 동생에게 닿아 공포를 전염시킬까 두려워 고개를 돌렸다.


공교롭게 벽운소가 고개를 돌린 방향에는 희미한 빛줄기 눈에 띄었다. 순간 그녀는 그것을 향해 홀린 듯이 일어나 다가갔고 그 빛은 석굴의 벽면의 틈 사이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안력을 돋구어 그것을 자세히 바라본 벽운소는 빛이 나오는 방향의 석굴의 벽면은 돌과 벽돌로 쌓아 만든 다른 벽면과 달리 얇게 굳힌 진흙으로 발라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에 벽운소가 내력을 불어넣은 손으로 그곳을 밀자 진흙 벽면은 사정없이 무너져내리기 시작했고 그 사이로 그녀는 야명주가 밝게 비추는 숨겨진 장소를 발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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