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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논의역설 님의 서재입니다.

링 월드 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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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논의역설
작품등록일 :
2023.05.10 23:16
최근연재일 :
2024.06.25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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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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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글자수 :
645,129

작성
23.06.06 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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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1-11

DUMMY

라미와의 제국어 특강이 진행된 지도 벌써 4개월, 이 감옥에 갇히게 된 지는 5개월이나 지났다. 이제 발음은 좀 어눌해도, 일상적인 회화 정도는 무리 없이 할 수 있는 실력을 갖췄다.

 

“미안해요! 급한 사정이 생겨서 오늘은 못 하겠어요! 바쁜 일이 있어서! 다음에 두 배로 할게요!”

 

“뭘 사과는··· 라미, 일 잘 해결하고 내일 보자!”

 

“···고마워요! 내일 봐요, 플라누스 씨!”

 

“그러니까 감사는··· 아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그를 가르쳐오던 라미가 웬일인지, 그날은 특강을 쉰다고 그에 사과했다. 많이 아쉬웠지만, 오랜만에 가지게 된 시간을 그는 즐겼다.


“그래, 너무 공부만 하다 보면 머리에 쥐 나지. 가끔은 멍도 때려줘야 잘 굴러가는 거 아니겠어.”


산들산들 불어오는 저녁 바람이 그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슬슬 하늘이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다. 

 

“설마 곧 겨울인가?”

 

점점 해가 지는 시간이 빨라지는 게, 아무래도 계절이 바뀌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링 월드에서 그걸 겨울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모르지. 추운 날에 공사판에 나가야 한다니, 지옥이 따로 없겠네. 벌써 좆같다···.”

 

지금 불어오는 바람은 어디서 왔을까 그는 제멋대로 상상하기 시작했다. 마음속으로 바다의 모습을 상상하니, 마치 바다의 생생한 내음이 나는 듯 했다.


“와하하하하하!!!”


“니지타! 거기서어! 내 음료수 훔쳐먹었지!!”


아이들의 꺄르르 거리는 소리가 들려서 그는 고개를 돌렸다. 저기 담장 너머, 어린 아이들이 뛰어놀았다. 바깥에서 죄를 지은 범죄자들을 데려와 가둔 감옥이라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광경이다.


처음 이곳에서 어린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을 목격했을 때, 플라누스는 그의 눈을 의심했다. 이 세상에 소년법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린아이의 수감도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저 아이들은 그런 유형의 아이들이 아니었다. 뛰어노는 모습은 천진난만함 그 자체였다. 악의 없는 소시오패스 적인 행동을 하는 순수악적 행태조차도 찾아볼 수 없는, 그냥 아이일 뿐이었다.


“얼레리꼴레리! 니지타는 거북이래요!”


“너어! 엄마한테 이를 거야! 으아앙!!!”


“푸하핫! 일러봐라!”


그냥··· 어린애 그 자체였다. 여기에 잡혀 들어올 만한 얘들이 절대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 아이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솟아난 것일까?


“죄를 지어서 왔을 리는 없지. 전부 수감자들의 옥중결혼에서 태어난 아이들.”


이 감옥에는 대표적으로 5가지의 구역이 있었다.


제 5 남자 구역. 케이, 오토멜, 플라누스가 지내고 있는 48번 수감실이 5구역에 있었다. 당연히 여자 수감자는 못 들어오는 금녀구역이다.


제 4 여자 구역. 제냐나 라미같은 여자 수감자들이 생활하는 구역이다. 역시 남자 수감자들은 들어갈 수 없는 금남 구역이다.


제 3 가족 구역. 방금 아이들이 뛰어놀던 담장 너머의 구역이다. 감옥에서 눈에 맞아 결혼한 수감자 부부가 아이와 함께 사는 곳이다. 건물도 비교적 깔끔하고 좋은 편이다.


제 4 간수 구역. 간수들의 생활동과 행정동이 있으며, 감옥의 유일한 출입구가 있는 곳이다. 출입구로 향하는 길은 오르막길이며, 이를 철통같이 지키기 위해서 마치 중세 성과 같은 해자, 드높은 2중 성벽 구조를 채택하고 있다.


제 5 공장 구역. 모든 수감자가 모여서 각자 맡은 일과를 하는 곳이다. 감옥 수공업으로 생산한 물품을 사고 파는 시장이 열리는 곳이며, 큰 공터에서는 죄수들 간의 분쟁을 해결하거나 유희를 즐기는 투기장도 열린다.


“내가 파는 벽은··· 저 아이들을 가두기 위한 우리였어. 저 아이들을 가축처럼 기르기 위해서···.”


그는 매일 자신이 파던 벽 수감실에는 밖에서 온 새로운 범죄자들이 투옥될 공간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밖에서 범죄자들이 투옥되는 일은 그리 자주 일어나는 일도 아니었고, 그 숫자도 턱없이 부족했다.


“얼마나 오래 운영된 거야, 여기는···.”


도대체 이곳 사람들은 몇 대째 이어서 여기에 갇혀있었던 것일까?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곳에서 태어나서 이곳에서 죽어갔지? 최소한, 저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여기서 살아왔다는 것이다.

 

그걸 깨달은 그의 등골에 소름이 돋고 분노가 치밀었다. 이곳은 정상적인 감옥이 아니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럴 수는 없었다. 아무리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자식에게까지 그 죄를 뒤집어씌우다니!


“가축이다. 여기 사람들은 가축이야.”


간수들이 남녀 교도소를 분리하거나 만들지 않는 이유가 있었다. 수감자들은 벌레 취급을 받는 게 아니라, 그보다 더한 가축 취급을 받는 것이다. 가축이 자식을 낳으면 가축이 늘어나는 것이다. 그들에게 수감자들이란 재산이다.


그렇기 때문에 얼굴 한번 구경해보지 못한 교도소장은 평소에는 옥중결혼에 이익을 제공하는 것이다. 추가 수당이라든가, 선물이라든가, 화려한 결혼식이라던가··· 가축의 번식을 위한 미끼에 불과하다.


“저 아이들이 바깥세상의 존재는 알고 있을까?”


저 아이들에게는 이 감옥이 세상 자체. 여기가 그 아이들의 유일한 세계이자 낙원.

 

“자유에 대한 개념조차 거세 당한, 가축, 애완동물.”

 

동물원 새로 들어온 야생 동물들은, 사육사들이 시간만 되면 먹이를 가져다주는데 채집과 사냥의 필요성을 느낄 이유가 없다. 위협도 없으니 야생의 포식자들로부터 도주하거나 대응할 능력도 점점 잃어간다. 


야생에서 살다가 들여온 녀석들도 그렇게 되는데, 처음부터 동물원에서 태어난 놈들은 어떻겠는가? 따라서 동물원에서 태어난 동물을 야생에 방생하려면, 사육사들의 정성 어린 훈련과 교육이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교도소장이 그런 일을 과연 누구 좋으라고 해줄까? 교도소장이나 간수들은, 수감자들을 영원한 자신의 노예로 삼아, 자기 자식에게 이 지위를 대대손손 물려줄 방법만 고심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교도소에서 아이들에게 모질게 대한 들, 이곳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얼마나 현재의 체제에 대해서 비판적인 생각을 가지고 저항할 수 있을까? 아무리 싫어도 아이들에게는 이곳이 그들의 집이었다.

 

누가 집을 버리고 나가려 할까? 오히려 억지로 내보내려고 하면 되레 저항할지도 몰랐다. 결국 아이들은 그들의 집을, 이 감옥을 떠나겠다는 발상조차 떠올리지 못할 것이다···.

 

“결국 쓸데없는 오지랖일 뿐···”

 

이런 지독한 고뇌조차도, 밖에서 들어온 그와 같은 인간들만 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라미나 제냐, 오토멜과 케이 같은 애들은 이곳에서 태어난 아이겠지···.”


그들 생각을 하니까, 가슴이 옥죄어왔다. 자유를 거세당하는 고통조차 느끼지 못할 동료들이 너무나도 가엾게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터벅터벅, 누군가가 풀밭에 누운 플라누스의 머리 위쪽에서 다가왔다. 그는 시선만을 돌려서 그쪽을 올려다봤다.


“웃차!”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케이였다.


“하아암, 오늘따라 날씨가 참 좋네!”


케이가 플라누스의 옆에 걸터 앉아서 간식을 씹어 먹었다. 그는 간식을 씹어먹는 케이에게 한창 하는 장사는 어떻게 되었냐고 물었다.


“아, 그 장사? 적자가 날 기미가 보여서, 슬슬 접으려고 생각 중이야. 돈은 많이 벌었거든.”


그는 케이가 감옥 생활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졌다. 조심스럽게 묻자 케이는 활짝 웃으면서 담담하게 대답했다.


“이곳에 갇힌 지도, 너무 오래돼서 이제 정말 할게 없어! 정말 따분하다니까··· 그나마 최근 반년 정도는 너 덕분에 즐거웠었는데, 라미가 너를 뺏어 가버려서··· 다시 따분해졌어.”


확실히 따분해질 만 하다. 이 높은 원형의 벽 안에서 오락이라고는 간식, 투기장, 도박 정도밖에 없다. 여기에 들어온 지 반년도 되지도 않은 그도 극도로 따분해질 지경이니 말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잠깐만. 케이!? 그게 무슨 소리?”


“음? 뭐가!? 내가 뭐 잘못했어?”


“아니, 이곳에 갇힌 지도 어쩌고.”


“나는 사실대로 말한 건데, 그게 왜?”


아무래도 그는 케이에 대해서 큰 착각을 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너도 밖에서 온 사람이었어?!”


“물론이지. 그러면 설마 여기서 태어났을까 봐? 아무리 그래도, 자유가 왜 소중한지 하나도 모르는 사람들 곁에서 살고 있으면 나도 미칠 것 같다고.”


플라누스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을 느꼈다. 진짜 동료가 눈앞에 있었다. 그를 이제야 알아보다니.


“아니, 시발! 그걸··· 그걸 왜 이제 말해주는 거야!? 알았으면 진작에 내가!!!”


“넌 말해줘도 못 알아들었을 거잖아···.”


“아.”


케이의 지적에 플라누스는 입을 잠시 닫았다. 하지만 그에게 너무나도 묻고 싶은 것이 많았다. 여러 가지 질문이 머릿속에 가득 차서 그는 입을 뻐끔뻐금거렸다.

 

“그, 그···.”

 

“천천히 말해, 플라누스! 그렇게 급하게 안 해도, 다 대답해줄 테니까!”


‘케이는 여기서 얼마나 지냈던 거지? 그리고 왜 여기에 들어오게 된 거지? 어떤 죄를 지었길래 여기에 갇히게 된 거야? 바깥세상은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지? 어떻게 이딴 감옥이 존재할 수 있는 거야?’


플라누스는 자신이 하고 싶은 질문의 위험성을 문득 깨닫고 중얼거렸다.


“위험한데.”


플라누스는 혼자서 심각해져서 몸을 떨었고 옆에서 그의 이상행동을 지켜보던 케이가 물음표를 띄었다.


‘질문들이 하나같이 매우 위험한데.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도 있잖아.’


만약 케이의 죄목을 물어봤는데 끔찍한 대답이 나오면 그는 어쩔 것인가?


존속 살인, 누구보다 소중히 여겨야 하는 직계존속을 살해하다.

영아 살해, 어린아이를 이유를 불문하고 그 생명을 끊어버리다.

청부 살인, 아무런 원한도 없는 상대를 금전적인 이유로 살인하다.

방화, 시설물 등에 무차별 방화를 해 심각한 재산 및 인명 피해를 내다.

인취 행위, 다른 자의 자유를 빼앗아 자신의 지배하에 두고 착취, 희롱하다.

강도 행위, 금품을 노리고 상대의 목숨을 위협하여 재산을 갈취하다.

반역 행위, 국가의 존립과 질서를 해치는 계획을 모의하고 실행하다.


‘만약 케이가 그런 놈이라면? 나는 어떻게 해야만···.’


적어도 케이도 멀쩡한 인간은 아닐 것이다. 플라누스 그가 특이한 케이스지, 멀쩡한 인간이라면 이런 교도소에 끌려올 리가 없었다.

 

물론 인상만으로는 케이가 그런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보이진 않지만, 피해자들도 그렇게 생각하다가 당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런 민감한 질문을, 케이의 죄목을 물어보는 것이 정말 맞는 선택일까? 케이는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오토멜이나 제냐, 라미에게도 끔찍한 죄목이 붙어있다는 것을 그걸 알게 된다면?


그러고도 그는 그들과 친하게 지낼 수 있을까?


“설마···.”


혹시 몰랐다. 간수들이 험하게 대하는 게 그런 이유일지도. 지금까지 간수들이 흉악범들을 엄하게 대하고 있었는데 플라누스만 몰랐던 것일지도. 흉악범에게 인도적인 대우는 누구한테나 역겨울 것이다.


“설마, 설마.”


플라누스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싸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그가 그렇게 생각할수록 그의 가설은 더더욱 왠지 그럴싸하게 느껴졌다. 애초에 그는 스스로 왜 감옥에 끌려왔을까 떠올려봤다.


‘포복으로 염탐하다가, 아마도 공권력인 유스티아에게 발각, 반격. 지구에서라면 영락없는 중범죄다···.’


공무원에 대한 특수 살인 미수. 흉악범들과 같이 수용하는 것도 이상한 것은 아니다.


“플라누스, 왜 그래? 안색이 별로 안 좋은데?”


케이가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 플라누스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그를 케이를 마주 보고 고개를 연달아 끄덕이면서 스스로 되뇌었다.


“나는··· 진실로부터 도망가지 않아. 듣고 싶지 않던 진실이더라도 피하면 안 돼···.”


굳은 결심한 그는 케이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야, 너는 왜 여기에 들어오게 된 거냐? 무슨 죄를 지었길래 여기 잡혀 온 거야?”


“어? 뭐? 죄를 져?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러니까··· 너도 죄를 지었으니까··· 이런 곳에 갇혀서 그 죗값을 치르고 있는 거 아냐···.”


케이는 한순간 이해하지 못했다는 듯이 고개를 돌렸다. 여러 번 되물은 케이는 그가 한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자마자 헛웃음을 터뜨렸다.


“아하핫! 죗값이라! 아하하하! 그거 정말 걸작이네!”


케이의 호쾌한 웃음에도 그는 긴장감을 풀지 않았다. 저렇게 웃다가도 갑자기 일가족을 몰살해서 감방에 들어왔다고 담담하게 고백할지도 몰랐다.


“아니 어떻게··· 아! 아아! 아직 너, 제국 문자도 못 읽지? 그러면 그럴 수도 있지!? 어?!”


“제국 문자? 그야 아직 못 읽지··· 근데 그게 왜?”


케이는 저 멀리, 강력한 간수 수십 명이 지키고 있는 감옥 출입구의 커다란 현판을 가리키면서, 그한테 한번 읽어보라고 시켰다.


“저거 봐. 뭐라 쓰여있는지 알겠냐?”


플라누스는 읽지 못했다. 그의 눈이 저것도 못 볼 정도로 나쁘거나 침침한 게 아니다. 그의 두 눈은 글자 모양은 확실하게 봤다. 하지만 제국 문자를 배운 적도 없는데 어떻게 읽겠는가.


“제 13 부랑민 수용소라고 적혀 있다, 인마.”


“제 13 부··· 뭐요? 부가 뭐 어쩌고 저째?”


“부랑민, 수용소. 부. 랑. 민. 수. 용. 소.”


“부랑민 수용소? 처음 듣는 단어인데? ‘부랑민’은 뭐고 ‘수용소’는 뭔데? 그게 무슨 뜻이야?”


케이는 무릎을 '탁' 치고 친절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어휴, 이 멍청한 자식. 잘 들어. 나는 너 선생님도 아니니까, 한 번만 설명해줄 거야.”


“천천히 말해봐.”


“먼저 ‘부랑민’은 집과 직업 없이 떠도는 사람을 말하는 단어. ‘수용소’는 부랑민이거나, 범죄자거나 해서 그런 사람들을 어떤 이유로든 강제로 억류하는 장소를 지칭할 때 쓰는 단어.”


플라누스는 한참을 고민하고 나서야 정답에 근접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여기 사람들이 잡혀 온 이유가 범죄자가 아니라··· 거지여서 그렇다고?”


“그래. 그러니까 공부나 좀 열심히 하지 그랬어. 어떻게 이걸 입소 반년 다 돼가는 시점에 알아차리냐?”


플라누스는 지금까지 듣고 이해한 내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야, 잠깐만. 그러니까 이곳 사람들은 죄를 지어서 온 게 아니야?”


“그러면 야! 내가 누구 죽이고 끌려왔겠냐!? 범죄자들이 들어가는 감옥은 따로 있어. 놀라운 점은, 사실 거기가 여기보다는 낫다는 점이겠지만···.”


케이가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케이는 실망했다는 눈치로 그를 나무랐다.


“근데 플라누스, 너는 내가 그런 짓을 저지를 놈으로 보고 있었던 거야? 하아, 진짜 실망이다!”


그는 급하게 해명했다.


“그, 그렇지만··· 겨우 집 없이 떠돈다는 이유로 죄 없는 시민을 감옥에 처박고, 인권을 박탈하고, 핍박하고 착취하고 희롱하고 있었다고?”


케이는 착잡한 얼굴로 그의 의심에 답했다.


“···죄와 벌은 신 같은 존재가 내리는 게 아니라, 인간이 같은 인간에게 가하는 거야. 힘 있는 자들이 가난과 방랑이 죄라 결정하면, 죄가 되는 거지.”


“뭔 개씨··· 말도 안 되는···.”


케이의 표정에는 사회 전반에 대한 전체적인 혐오감이 드러나 있었다.


“화나지? 하지만 너처럼 세상의 부조리에 화를 낼 수 있는 것도··· 그저 한순간일 뿐이야. 플라누스···.”

 

케이의 안에서 인간의 선을 믿는 마음은 부서지고 깨지고 마모되어서 가루 밖에 남지 않았다. 어떤 일을 겪었길래 지금 여기에 있고, 분노조차 내지 못하게 되어버린 것일까.


플라누스는 듣고 싶었다.


“케이, 어떤 일이 있었어? 너도 가난하다는 이유로 잡혀 온 거야?”


“아··· 나는, 거의 맞는 말이긴 하지만, 굳이 따지자면 좀 특수한 경우인데···.”


“특수한 경우?”


케이는 머리를 긁적이다가, 떨어진 물방울에 고개를 들었다. 맑은 하늘의 한편, 어느샌가 몰려온 먹구름이 강렬한 태양을 가려 나가고 있었다.

 

곧 있으면 소나기가 이곳을 퍼부을 것이다. 케이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면서 그에게 제안했다.


“일단··· 비를 피하자! 남은 시간 동안 내 얘기를 들려줄게! 내가 왜 여기 오게 되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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