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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lan 님의 서재입니다.

천재 감독은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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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치핀
작품등록일 :
2022.11.22 22:02
최근연재일 :
2023.01.06 08:05
연재수 :
3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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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366
추천수 :
952
글자수 :
220,486

작성
23.01.02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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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한 밤의 소동

DUMMY

“그나저나 여긴 무슨 일로······?”


미켈 아르테테와 사비 알론소.

어색하게 두 사람을 거실 쇼파에 앉힌 나는 정말 궁금하다는듯 물었다.

아르테타야 내 선수 시절 막바지즈음 아스날의 감독이었으니 몇 번 인사를 나눈 적이라도 있지만, 사비 알론소의 경우 나는 TV로 그의 플레이를 본 게 전부였다.


“아시다시피 저희 둘은 같은 스페인에서 나고 자란 오랜 친구입니다. 사비는 종종 영국에 있는 가족이나 지인을 만나러 오곤 하는데, 지난번에는 선덜랜드와 아스날의 FA컵 경기를 저희가 함께 직관했어요.”


아르테타가 먼저 운을 뗐고 사비 알론소가 덧붙였다.


“아주 재밌게 봤죠. 멋진 경기였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경기때문에 저와 미켈이 여기까지 찾아온 거구요.”


그 뒤로 두 사람은 모두 내게 제안할 이야기가 있어서 온 것이지만, 전혀 부담가지지 않아도 된다고 몇 번이나 강조했다.

참 나.

평소에 친분도 없는 남정네 셋이 오밤중에 약속도 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어떻게 부담을 가지지 말란 말인지.


“저야 현재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에 감독을 맡고 있으니 라이언에게 드릴 말씀은 하나죠. 케빈 존슨과 아론 맥스, 두 사람을 대표팀에 차출하고 싶습니다. 뭐, 사실 이정도 얘기를 제가 직접 와서 말씀드릴 필요는 없지만···.”


미켈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끝을 흐렸다.

그러면서 친구인 사비를 흘끔 바라본다. 아무래도 본론은 사비 알론소에게 들어야하나보다.

그나마 미켈과 나는 안면이 있어서였을까.

곤란할 때 인맥 내세우는 건 한국이나 외국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상황이 좀 우습다고 생각하던 차, 사비가 명함을 하나 내밀었다.


“아실 지 모르겠지만, 저는 현재 레알 마드리드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받아든 명함에는 기술고문이란 직함아래 사비 알론소의 이름이 박혀있다.

꿈의 구단, 레알 마드리드의 엠블럼과 함께.

그러고보니 사비 알론소는 레알 마드리드 출신 선수 아니던가.

하도 영국에 오래있다보니, 나도 모르게 그를 리버풀맨으로만 기억하고 있었나보다.


“지난 몇 달 간 저희는 새로운 레알의 사령탑을 물색하고 있었습니다.”

“아아. 설마······.”


나는 그제야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애초에 타겟이었던 감독들은 마드리드의 감독직을 고사하고 있어요. 라이언도 아시다시피 저희팀은 갈락티코 시절이나, 챔스 3연패 시절만큼의 퍼포먼스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감독이 짊어져야할 왕관의 무게는 그대로죠.”

“잠시만요. 정말 저에게 감독직을 제안하려는 건가요?”


그러자 미켈과 사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단순히 믿기지 않아서 그런건데···.


“물론이죠!”

“설마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죠?”


내 반문이 그렇게나 어이없었는지 미켈과 사비의 얼굴에서 웃음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허어.”


하지만 정말 누가 믿겠나.

회귀 전까지만해도 선덜랜드에서 사임하고, 이탈리아 2부에서 짤리고, K리그에서도 죽을 쓰던 감독이 단 반 년만에 레알 마드리드의 감독직을 제안받다니······.

그래.

까놓고 내 앞에 있는 두 스페인 레전드보다 내가 선수로서 모자란 건 없었다.

하지만 오히려 은퇴 후 감독이 되고나서, 나는 항상 동양인이라는 한계를 느껴야만했다.


스페인 출신의 미켈 아르테타는 자신의 친정팀인 아스날을 이끌고 승승장구했고, 프랑스인인 지네딘 지단은 레알 마드리드를 이끌고 챔피언스리그 3연승이라는 대업적을 이뤄냈다.

나는 솔직히 그들처럼 되고 싶었다.

내가 뛰던 클럽에서, 똑같은 팬들에게 다시 한 번 감동을 주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일은 맘처럼 풀리지 않았다.

은퇴 후 나는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영국까지 지도자 라이센스 교육이 뛰어난 유럽 국가에서 감독 커리어를 시작하기 위해 노력했다.

라이센스를 취득하고 나서는 친정팀을 찾아갔다.

코치부터 시작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일찍 은퇴했고 시간이야 얼마든지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이탈리아에서, 나는 구단의 무시를 받고 있다는 걸 나중에야 깨달았다.


‘라이언은 뛰어난 선수였지.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없어. 하지만 동양인이 전술을 이해해? 우리 이탈리아가 수십년 동안 쌓아논 걸? 풋. 지나가던 개가 말을 한다고 하는 게 더 믿을만 하겠어.’


스꾸올라 알레나또리(Scuola Allenatori).

안첼로티, 콘테, 라니에리, 알레그리 등 이탈리아의 명장들이 거쳐간 교육기관이자 훈련장인 그곳에서 나는 그들의 축구를 이해하지 못한 미개한 인종이었을 뿐인 거다.


그래서 결국, 나는 첫 감독 데뷔를 위해 영국으로 돌아온 거다.

가장 오래 뛰었고, 내 가장 찬란한 순간을 기억하는 이들이 있는 곳으로.

물론 선덜랜드에서 내 능력 부족으로 실패하긴 했지만, 그나마 영국에서는 끝까지 내 명예를 실추시키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회귀 후 다시 선덜랜드를 맡게 되었을 때.

약간의 사명감같은 것도 들었다.

어찌되었든 잉글랜드 클럽인데다, 내가 한 번 실패한 팀이었으니까.


“저기, 라이언···?”


한참 생각에 잠겨있던 나를 향해 사비가 눈치를 살폈다.아르테타도 멍한 내 표정을 바라보곤 고개를 끄덕인다.


“지금 당장 대답하지 않아도 되니 너무 부담은···.”

“잠시만요! 움직이지 마세요!”

“예?”


하지만 나는 그때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저거··· 저거, 사람 아니에요?”


손가락으로 창 밖을 가리키며 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사비와 미켈도 모두 고개를 돌린 순간,


찰칵-!


마당의 수풀 사이로 우리를 향해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쏜살같이 달아나는 그림자 하나가 보이기도 했다.


“후우.”

“이런 미친.”


미켈과 사비가 동시에 머리를 쥐어쌌고, 나는 앞으로 남은 리그 경기에 대해 골똘히 생각했다.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 지는 뻔했다.


*


‘잉글랜드 국가대표팀 감독 미켈 아르테타와 현 레알 마드리드 기술 고문 사비 알론소가 라이언 캉의 집을 방문하다.’


‘파파라치가 찍은 세 사람. 어떤 기밀이 오고 갔을까? 스페인 언론, 수면 위로 올라온 레알 마드리드의 새 감독직 후보 중 라이언 캉을 가장 유력한 후보로 뽑아.’


‘선덜랜드 팬들, SNS에 사실 확인 요구 급증!’


‘미켈 아르테타, 라이언 캉의 레알 감독직은 사실 무근이며 친구인 사비와 함께 라이언과 친목을 도모한 것 뿐.’


‘레알 측에서 감독직 후보 중 하나로 라이언을 뽑았다는 것은 사실로 밝혀져.’


아니나 다를까.

점심쯤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현재 선수들은 훈련 중이라 아직 이 사실을 모르고 있지만, 선덜랜드에 있는 누구나 오늘이 가기 전에 기사를 접하게 되겠지.

나는 구단주 로이와 스티브에게만 어제 그들과 나눈 정확한 이야기를 알렸고, 홍보팀에서는 일단 추측성 기사라도 막자며 일단락지었다.


다행인 점은 그 누구도 아직 내 의사같은 걸 묻지 않았다는 점이다.

내가 레알에 갈 거냐, 말 거냐 하는 문제는 팬들에게는 무척이나 중요하겠지만 구단의 입장은 조금 다르다.

나와의 계약 기간은 어차피 정해져있고,

리그 우승을 앞두고 있는 현 시점에서는 구단의 이미지와 선수들에게 갈 타격을 최소화하는 게 먼저다.

하지만 로이와 스티브가 나를 믿어주고 있다는 건 여실히 느껴졌다.


“걱정하지 말게. 자네가 잘못한 일은 없어.”


구단주 로이는 나를 안심시켰고,


“빌어먹을 파파라치. 하여간 그 놈들이 문제야.”


단장 스티브는 욕을 해대며 내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어쨌거나 두 사람 모두 내가 떠날 거라고는 생각치 않는 게 확실했다.


[새로운 계약으로 소속팀이 변경될 시, 제한 시간이 리셋됩니다. 과업의 내용과 수준은 그대로 유지됩니다.]


언젠가 팀을 옮길 일이 있을 때를 대비해 아카샤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제한 시간 리셋.

그건 어찌보면 내가 생명을 유지할 유일한 꼼수이기도 했다.

시즌 중반에 과업을 달성하지 못할 것 같으면, 다른 팀과 계약해 과업을 미룰 수 있으니까.

실제로 진지하게 생각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샌가부터 그런 생각은 하지 않게 되었다.

일단 우리 팀이 너무 잘하기도 하고,

그렇게 도망치듯 팀을 옮겨다니는 일은 더이상 하고 싶지 않았다.

회귀 전처럼, 내 부족한 능력을 인정하는 꼴이 될 테니까.


“감독님. 선수들 훈련 마쳤습니다.”


그때 박 코치가 훈련이 끝난 선수들을 라커룸에 대기 시켰다고 알려왔다.

그래.

일단 기사는 났고, 선수들이 기사를 보고 생각에 잠기기 전에 내가 먼저 선수를 쳐야겠다.

나는 할 말을 대충 정리한 뒤 라커룸의 문을 열었다.

헌데,


“안녕하세요. 이번 선덜랜드 다큐멘터리 촬영을 맡게된 PD, 덱스터라고 합니다.”


생전 처음 보는 커다란 카메라가 세 대나 배치되어 있었고, 수염이 덥수룩한 남자가 다가오더니 내 속도 모른채 환하게 웃으며 악수를 청했다.


“아아···. 벌써부터 촬영 시작한 건가요?”

“예. 일단 라커룸 씬 찍고나서 선수들과 감독님 개별 인터뷰를 진행하겠습니다.”


완전히 잊고 있었다.

거대 방송사에서 제안이 들어와 구단이 수락한 다큐멘터리 촬영.

그게 오늘부터였다니.


“자, 모두들 자연스럽게 행동해주세요. 이제 카메라 돌아가겠습니다. 스탠바이, 큐!”


카메라 감독 둘과 PD 한 명이 들어왔을 뿐이지만, 라커룸 분위기는 평소와 많이 달랐다.

아무래도 입이 늘어나다보니 선수들도 벌써 기사에 대해 들은 모양이었다.

뭐, 기왕 이렇게 된 거 어쩔 수 없지.

카메라 앞에서 나는 선수들을 향해 말했다.


“다들 기사봤지?”

“예.”

“그 기사는···.”


그렇게 입을 떼자 선수들이 일순간 모두 나를 뚫어져라 바라본다.

침을 꿀꺽 삼키는 선수도 있고, 고개를 떨구고 기도하듯 두 손을 모은 선수도 있다.

나는 팔짱을 낀 채 덤덤하게 말했다.


“우리가 지금까지 함께해 온 여정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을 거다.”

“저, 정말요, 감독님?”

“물론이지. 앞으로 더이상 그 기사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거다. 우리에겐 리그 10경기가 남아있어. 그리고 그 중 다섯 경기를 이기면 자력으로 우승하게 된다. 나는 플레이오프 따위 생각하고 있지 않아. FA컵도 마찬가지다. 자네들이 열심히 뛰어주었지만 앞으로 컵 대회는 풀 로테이션으로 치를 생각이다. 그만큼 우리에겐 승격이 중요해. 모두들 동의하나?”

“예!!!”


아까완 달리 우렁찬 대답.

그래. 내가 원한 게 이거다.


“우리는 노리치를 따돌리고 리그 1위 자리를 지킬 거야. 남은 10경기 중에 지는 경기도 있을 거고, 이기는 경기도 있을 거다. 하지만 난 자네들을 탓하지 않을 거야. 왜냐하면 우리에게 중요한 건 승격이고, 다섯 경기를 이기고 나면 우리는 저 카메라 앞에서 당당하게 말할 수 있으니까.”


스윽.

내 말에 카메라가 방향을 바꾼다.


“선덜랜드는 존나게 강하고, 너희들은 모든 영국 사람들이 우러러 보는 프리미어리그에서 뛰게 될 거라고.”

“감독님은요!?”


카메라가 맥스를 향해 가까이 다가간다.

저 순수한 표정을 담으려면 클로즈업은 필수겠지.


“당연히 내년까지 함께한다.”


이내 맥스의 표정이 환하게 변했고, 그 모습을 찍는 카메라 감독도 싱긋 입꼬리를 올렸다.

모르긴 몰라도 방송쟁이들 입장에서 이정도면 대충 괜찮은 씬이 된 셈인가 보다.

나는 부디, 선덜랜드의 리그 우승을 자축하는 다큐멘터리의 첫 씬이 되기를 바랄 뿐이고.


“컷!”


PD의 우렁찬 컷 싸인과 동시에 선수들이 우르르 내 쪽으로 달려온다.


덜컹!


“감독님! 진짜··· 진짜 가는 줄 알았잖아요!!”


그런데 그때.

라커룸의 문을 열고 들어온 올리비아와 구단 직원들. 그리고 곧이어 코치진, 재닌을 포함한 의료진들까지 방문한 게 아닌가.

으음.

이건 좀 감동이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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