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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lan 님의 서재입니다.

천재 감독은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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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치핀
작품등록일 :
2022.11.22 22:02
최근연재일 :
2023.01.06 08:05
연재수 :
3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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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368
추천수 :
952
글자수 :
220,486

작성
22.12.26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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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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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글자
12쪽

끝과 시작

DUMMY

“감독님! 이겼어요! 16강이에요!”

“진짜······ 16강에 올라가 버렸군.”


FA컵 32강전에서 선덜랜드는 내셔널리그의 올덤 애슬레틱이라는 무명 팀을 만났다.

지는 게 이상한 경기였음에도, 박 코치는 심판의 휘슬이 울리자 아이처럼 방방 뛰며 내 옷자락을 붙잡는다.

반대로 나는 죽상이고.


“올라올 상대는 아스날일까요? 첼시일까요?”


아무래도 16강에서 빅 클럽과 만나게 될 날이 기대되는 모양이다. 오늘은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한 대부분의 주전 선수들도 비슷한 얼굴들이다.


“아스날? 첼시? 둘 다, 뭐. 거기서 거긴데···.”

“오오. 저번엔 컵 대회에 크게 신경 안쓰신다더니, 감독님은 역시 자신감이 있으셨던 거군요!”


멋대로 내 말을 오해하기까지.

뭐, 어쨌든 나도 남은 컵 대회가 FA컵 뿐이기에 16강 상대가 누가 되든 사력을 다 해야만 한다.

아스날과 첼시.

두 팀 모두 현재 객관적 전력으로 봤을 땐 확실히 우리보다 강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케인과 쿠쿠, 맥스와 시몽, 그리고 수비진까지 모두 풀 컨디션이라고 가정 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생각보다 2부리그와 1부리그의 차이는 크니까.


으음.

이렇게 될 거였으면 차라리 애초에 리그 일정 중에 만났으면 어땠을까 싶은 맘도 있다.

빅 팀들은 국가대표 차출이나, 전술적 로테이션으로 가끔 컵 대회에서 힘을 빼기도 하니까.

하지만 이번 FA컵 16강전은 2주 뒤, 그러니까 프리미어리그와 챔피언쉽리그 모두 휴식기를 거친 직후에 펼쳐진다.

게다가 아스날과 첼시 모두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를 손쉽게 통과해 2월에 예정된 16강에 안착한 상황이라, 더더욱 이번 FA컵에 힘을 뺄 이유가 전혀 없다.

즉, 우리는 프리미어리그 최상위권 팀과 전면으로 부딪혀야할 운명에 처했다.

그래도 개중에 조금이나마 더 쉬운 상대를 뽑자면······.


“감독님. 다음 라운드는 휴식기가 끝난 이후에 하시죠. 다들 기다리고 있으니.”


그때 박 코치가 턱을 괸 채 생각에 잠긴 나를 향해 말했다.


“기다리고 있다고요?”


그 말대로였다.

클럽 하우스 4층 회의실 앞 라운지 공간에 구단주 로이를 필두로 모든 구단의 직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수고했어요. 라이언.”


오늘 경기로 전반기가 끝났다.

로이는 지금까지의 선덜랜드의 성과를 축하하는 의미로 작은 파티를 열었다고 했다.


“이거, 지방이 함유된 겁니까? 그렇담 먹지 않겠습니다.”


이내 주장 데니스 퀸도,


“와인은 없으려나. 쩝.”


시몽도,


“이 맛은······ 게토레이 신상!”


맥스도 등장해 어느덧 모든 선수들이 사복으로 갈아입은채 여유로운 모습으로 다과를 집어 먹거나, 농담들을 나누고 있다.

한 켠에서는, 경영진들이 상패같은 걸 준비했는지 죄다 양복을 차려 입고서 대기중이다.

오늘 졌다면 조금은 어색해질 뻔했네.


“우리 선덜랜드는 챔피언쉽 역사상 가장 높은 승점으로 전반기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3년만에 FA컵 16강에 오르기도 했구요. 열심히 해준 구단의 직원 여러분들과 최선을 다해 뛰어준 선수들, 그리고 라이언 캉 감독님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로이의 짧은 스피치가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 선수들이 내 쪽으로 달려온다.

어어, 뭐야.


“만세!”

“감독님! 지금까지 말은 못했지만··· 굉장히 사, 사!”

“라이언 캉 만세!”


이 자식들 무슨.

벌써 우승이라도 했냐? 아주 헹가래라도 할 기세네.


“쩝, 다들 고맙습니다.”


어느새 온 몸이 샴페인 범벅이 된 내가 직원들 가운데 서게 됐다.

알싸한 과일향과 알콜 냄새가 코를 찌르고 있지만, 뭐라도 말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다.


“어어. 우선 전반기를 잘 마무리해준 오늘 21세이하 선수들에게 고맙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항상 뒤에서 묵묵히 일하고 계신 잔디 담당 피터, 장비관리사 아담도 오늘 같은 홈 경기에서는 매우 중요하죠. 그밖에도 1군 선수들, 의료진들, 이적을 위해 힘써준 로이를 비롯한 경영진분들, 스카우터 머피, 한국에서 와준 박 코치까지. 모두 고맙습니다.”


간단하게 말하려 했는데. 하다보니 시상식처럼 되어버렸다.

나는 괜히 어색해져 급히 덧붙였다.


“아, 물론 아직 후반기까지 잘 마무리해야···.”

“와아아!! 감독님 멋있다!”

“승격 가즈아!!!”

“고생하셨어요!!”


또 한 번의 샴페인 세례. 이번엔 구단의 사무직원들을 포함해 올리비아와 재닌까지 가세했다.

이 사람들 혹시 나한테 쌓인 게 많았던가···?


*


삑-


“좋아! 나이스 세이브!”


삑-


“거기선 더 라인을 내리라고 지시해야지! 확실하게 네 선택을 믿어!”


삑-


“굿! 방금처럼 확실히 콜을 해주면 돼!”


팀은 휴식기에 접어들었지만 쉬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바로 나.

해리 케인과 쿠쿠, 맥스와 시몽같은 1군 선수들은 잠깐이나마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거나 막간을 이용해 여행을 다녀온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하지만 나는 딱히 할 것도 없거니와, 처한 상황상 쉬는 것보다는 운동장에 나와 있는 게 맘이 더 편하다.


“헉, 헉. 휴가중인데··· 이렇게까지 해야합니까.”


이적생 잔루이지 돈나룸마가 원망스런 눈빛으로 무릎을 짚은채 나를 바라본다.

워낙 거구라 몸을 반쯤 접고 있는데도 눈높이가 비슷하다.


“당연하지. 자네는 데뷔전에서 프리미어리그에서 가장 공격력이 강한 팀을 상대해야 하니까.”

“쳇. 누가 됐든 상관없어요. 어떤 공이든 내 앞에선 멈출 겁니다.”


이탈리아 출신의 돈나룸마.

이 선수와는 딱히 회귀 전에 인연이 있다거나 하진 않았다.

하지만 유로 2020에서 이탈리아 대표팀의 수문장으로서 보여준 엄청난 퍼포먼스가 내 뇌리에 각인되어 있었다.

당시 이탈리안 동료에게 저 선수가 누구냐고 물어본 기억도 있고, 나이를 듣고 깜짝 놀라기도 했다. 고작 21세의 나이로 골키퍼가 메이저 국제대회에서 활약을 보인다는 건, 쉽게 말해 될성 부른 떡잎이라는 거다.

뭐, 내가 모르던 9년동안 대체 어떤 일이 있었기에 PSG의 주전에서 밀려난 건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애송이들! 그걸 슈팅이라고 날리는 거야? 좀 더 해보라구.”

“음바페는 구석으로만 차던데, 너희들은 왜 그 모양이지?”


1군이 휴가를 떠난 바람에, 돈나룸마의 적응은 21세 이하 팀에서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헌데 이 놈이 꼬맹이들을 상대로 트래쉬토킹을 하는 게 아닌가.

세계적인 골키퍼라면 저런 똘기도 있어야 하는 법이라고 듣긴 했는데···.

슈팅을 막고 춤을 추지 않나.

연습인데도 불구하고 실수한 수비수의 뒷목을 잡아 올리고 욕을 퍼붓질 않나. 참.

분명 양복 입고 계약서에 싸인할 때까지만 해도 이탈리아의 신사였는데···.

장갑만 착용하면 똘키퍼 되는 건가?


“그, 그렇게 나가 있음 어떡해!”

“얀마! 그건 니가 컷트해야지!”


게다가 무지막지한 세이브 능력에 비해, 수비라인 컨트롤은 또 애매하다.

PSG에서의 실패가 트라우마가 된 모양이다.

알 만도 하다.

자신의 탁월한 세이브 능력에도 불구하고, PSG처럼 공격적인 팀은 안일한 수비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PSG는 물론 공격진만큼 화려한 수비진을 지니고 있지만 그들이 프랑스 리그앙에서 할 일은 그닥 많지 않을 거다. 리그의 다른 팀들과 수준 차가 너무 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피를 본 게 돈나룸마였을 거고.

뭐, 성격을 보니 마찰이 생겨도 제대로 생겼겠네.


“슈우- 탕!”


그래도 저 세이브 능력 하나는 기가 막히다.

입과 몸, 특히 사타구니 쪽을 가만히 둘 줄 모르고 연신 흔들어 대며 자기 능력을 과시하긴 해도 저 신들린 거미손만큼은 칭찬해줄 수밖에 없다.

그리고 바로 저 손이, 선덜랜드의 후반기 흐름을 좌지우지할 것이다.


“저··· 감독님. 왜 저까지 출근을···.”


그때 박 코치가 주섬주섬 태블릿을 챙기고 벤치로 왔다.


“어어, 박 코치 왔구만.”


지난 파티로 박 코치에겐 편하게 말을 놓기로 했다. 아무래도 한국 말이 더 편한 사이기도 하고, 나보다 거의 열 살 정도 어리기도 하니까.

본인도 TBP의 대표보단 이 쪽 일이 적성에 맞아 나와 함께 쭉 일하며 코치 코스를 밟고 싶다고도 했다.

그렇기에,


“왜긴. FA컵에 그렇게 진심인 박 코치인데 같이 준비해야지.”


나는 박 코치의 축 처진 다크써클을 애써 무시하고 말했다.


“벌써 FA컵을요?”

“상대 정해졌잖아. 아스날로.”

“그건 그렇지만···.”

“자. 이거 먹고 힘내자고.”


나는 주머니에서 비타민 두 알을 꺼냈다.


“음료에 녹여먹는 거라 편하더라고.”

“이건 또 어디서 나신 거에요?”


평소 내가 카페인 중독인 걸 알고 있는 박 코치가 혀를 차며 말했다.

이젠 이런 것까지 먹냐는 표정이다.


“지난 파티 때 재닌에게 받았지.”

“어? 재닌이요? 저랑 다른 코치들한테는 수제 초콜릿을 주던데. 크리스마스라고······.”


왜일까.

나도 초콜릿 좋아하는데. 거기다 수제라니···.


“크흠. 어쨌든 일이나 하자고.”


그렇게 말한 뒤 나는 박 코치에게 종이 하나를 건넸다.

거기엔 지금 돈나룸마와 훈련중인 21세 이하 선수들 중 몇몇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이건··· 저 선수들을 FA컵 16강에 내보내시겠다고요?”

“내보내겠다는 게 아냐. 명단에 넣을 검토 중이지.”


아스날과의 FA컵 16강전에는 당연히 1군의 베스트 일레븐을 가동할 생각이다.

그래야 승산이 있으니까.

하지만 지금까지 컵 대회-내가 버리려했던-에서 고생해준 21세 이하 선수들을 나몰라라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감독님, 그래도 토너먼트 잖아요. 단판이고요.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데 이번에는 벤치까지 완벽히 1군 멤버로 채우는 게 낫지 않을까요?”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라···. 바로 그 이유 때문이지.”

“예?”

“승부차기 말이야.”


그러자 박 코치가 아, 하고 동그란 눈이 되더니 다시 사색에 잠겼다.


“그래도 주전 선수들이 더 잘 차지 않을까요?”


나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아스날과의 16강. 그리고 아스날을 뛰어넘는 다면 토너먼트에서는 언제든 연장전, 승부차기까지 가는 경기가 나올 수 있다.

그리고 해리 케인을 포함한 주전 선수들의 훌륭한 경험은, 승부차기에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내게는 객관적인 데이터가 있다.

21세 이하 선수들로 컵 대회를 치르며 얻어낸 귀중한 데이터들이.


[FA컵 32강전(vs올덤 애슬레틱) 경기 후 데이터]

[마크 홈즈]

[···노마크시 박스 안 슈팅 성공률 : 91%]

[대담성 수치 팀 내 1위]

[주드 루이스]

[인사이드 킥 정확도 팀 내 4위]

······


당연히 1군 주전 선수들에 비해 전체적인 능력이 떨어지는 21세 이하 선수들이다.

하지만 모든 선수들에겐 장단점이 있는 법이고, 몇 가지 부분에서는 21세 이하 선수들의 능력이 1군 주전을 뛰어 넘는 것도 자연스런 일이다.

예를 들면, 해리 케인은 승부차기 성공률이 매우 높은 선수지만 월드컵에서 PK를 놓친 경험이 있기에 5번 키커로 사용하기는 힘들다.

트라우마가 올라올 수 있으니까.

반면, 큰 경기 경험이 일체 없지만 타고나기를 대담하게 태어난 마크 홈즈같은 리저브 선수는 충분히 5번 키커로 내세울만 한 것이다.


“···뭐. 저런 걸 눈 앞에서 보고 있으려니까, 사실 누가 차든 정말 승부차기까지 갔으면 좋겠네요.”


이내 박 코치가 훈련장 골대 쪽을 바라보며 납득한듯 말했다.


“동감이야.”


우리 팀에는 든든한 키퍼가 생겼으니까.

승부차기에서 지면 억울할 정도로 잘 막는 키퍼가 있는데, 키커 순번 정도야 당연히 준비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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