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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와별 님의 서재입니다.

딸 대신 용사가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재와별
작품등록일 :
2021.04.06 18:39
최근연재일 :
2021.04.21 19:45
연재수 :
1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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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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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글자수 :
100,896

작성
21.04.07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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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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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출발

DUMMY

"예?"


로먼이 화들짝 놀라 답했다.

갑자기 부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정말 대단해요! 로먼 씨는 영웅이에요!"


동그란 눈이 별처럼 반짝인다.

전생의 딸이 용사의 길을 걷게 된 뒤로는 볼 수 없었던 해맑은 얼굴이다.


겨우 고개를 들었던 로먼은 다시 시선을 떨어뜨렸다.

눈부신 저 미소를 계속 봤다간 눈이 시려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사실은 저도 로먼 씨 같은 사람이 되는 게 꿈이에요.

선량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마족과 싸우는 거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애써 떨림을 참는 목소리.

반면 엘레나의 목소리에선 활기가 넘쳤다.


"네, 알고 있어요! 그래서 저도 나름대로 수련을 해왔어요. 아빠가 살아계셨을 때, 검술을 가르쳐주셨었거든요. 이제는 쓸모없어졌지만...."


전생에 딸에게 검술과 호신술을 가르친 것은 그가 뼈저리게 후회하는 일 중 하나였다.


만약 아버지가 잘못됐을 때를 대비해, 딸이 스스로를 지킬 힘을 갖추길 바라서였다.

스스로를 넘어 인류까지 지키라고 가르친 것이 아니었다.


엘레나에게 검술을 가르쳐주지 않았다면, 용사가 되지 않았을 텐데.

그 말을 전생의 로먼은 수백 번 되뇌었다.


"아, 죄송해요. 제가 너무 말이 많았죠? 두 분 식사 맛있게 하세요."


딸이 말을 걸어올 때는 곤란해하던 로먼이었지만, 정작 그녀가 자리를 떠나니 아쉬운 얼굴이 되었다.


전생의 엘레나는 1년에 한 번 집에 들를까 말까 할 정도로 바빴기에, 아버지임에도 얼굴을 볼 기회가 많지 않았다.

이렇게 대화를 길게 한 것이 그의 입장에선 몇 년 만의 일이었다.


"자네."


매섭게 노려보는 드완의 눈. 괜히 찔린 로먼은 눈길을 피했다.


"저 처자에게 홀딱 빠졌군!"

"...뭐요?"


이게 무슨 미친 소리인가. 부정할 틈도 안 주고 드완이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사랑! 좋은 울림이야! 우리 기사들의 인생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이지! 알고 있나? 내 몸의 절반은 용맹함으로, 나머지 절반은 주군에 대한 충심으로 이루어져 있네."

"...."

"자네 지금 '그렇다면 사랑은 어디에 있습니까?'라고 생각했지?"


독심술이라도 부렸다는 듯, 의기양양한 표정.


"내 안에는 없네! 차마 내 몸에 담아낼 수 없을 만큼 사랑은 숭고한 것이니까!"


드완의 반짝이는 눈엔, 로먼의 굳은 얼굴이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하지만 가질 수 없는 것일수록 아름다워 보이는 법이라 했던가! 나 역시 사랑을 찾아 일생을 돌아다니는 순정파 나그네라네!"

"...."


로먼은 고민했다.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고심하며 억지로 질문을 쥐어 짜냈다.


"...드완 경은 지금 독신이십니까?"

"응? 무슨 말인가? 나한텐 천사 같은 아내와 토끼 같은 아들이 있네."


'사랑을 찾아 돌아다닌단 건 그럼 뭔 소리냐?'


들어준 시간이 허무하다. 로먼은 박수를 치는 대신 드완의 뺨을 치고 싶은 기분을 억눌렀다.


"아! 내가 자네한테 하고 싶은 얘긴 이게 아닌데. 일단 식사부터 들게. 천천히 얘기하지."


잠시간의 조용한 시간이 지나고, 어느 정도 배를 채운 기사가 말했다.


"미안하지만 자네에 대해 조사를 좀 했네. 워낙 예사롭지 않은 인물이라 말일세."


로먼은 에드번을 떠올렸다.

그는 남 얘기 늘어놓기를 술 마시기만큼 좋아했다.


하지만 로먼 역시 이 몸의 원래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기에 불쾌하지는 않았다.


전생에 이 마을에 꽤나 오래 살았건만, 신기하게도 로먼이란 이름을 전혀 못 들어본 것이다.


"나이는 스물셋에 혈육은 없고, 한 달 전쯤 이 마을에 홀로 정착. 마을 사람들에게 힘쓰는 일을 돕고, 보수를 받으며 생활했다던데 맞나?"

"맞습니다."


처음 듣는 얘기였지만 로먼은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혈육이 없다는 말은 혼자서 행동하기 편하단 뜻이기에 반가운 소리였다.


"이곳에 오기 전엔 무슨 일을 했었나? 듣기로는 과거 얘기를 그다지 안 하는 편이라던데."


로먼이 대답을 고민하느라 조용해졌다.


"음. 내키지 않는다면 말하지 않아도 좋네. 누구에게나 숨기고픈 사연 하나쯤은 있는 법이지. 나도 젊었을 때, 마음을 담은 편지를 잘못 보내서 지금의 아내가 받았다는 사실을 아내에게 숨기고 있네."

"...."


상대가 별 반응이 없자, 기사의 관심이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


"그나저나 그 검은 정체가 뭔가? 아주 대단한 마법이 걸려있는 것처럼 보였네만."

"어릴 적 아버지께서 물려주신 검인데, 자세한 것은 저도 모릅니다"


앞으로도 자주 들을 질문이라 생각해, 로먼이 미리 준비해둔 대답이었다.


사실 로먼뿐 아니라 전생의 엘레나조차도 성검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그만큼 성검은 수수께끼인 물건이었다.


"흠. 자네의 가문에 전해지는 보물인가 보군. 그럼, 이제... 내 소개는 오는 길에 했으니 필요 없겠고."


로먼은 여관으로 오는 길에 드완과의 대화를 통해, 그가 율네스 백작의 직속 기사이며 백작의 명을 위해 마을에 왔단 사실을 알고 있었다.


"본론을 얘기해야겠군. 자네, 기사가 될 생각은 없나?"


기사란 정식 기사 서임을 받은 무장한 전사를 의미한다.

용병과 달리 그 정통성과 명예를 인정받고 있기에, 고용하려면 용병보다 많은 보수를 지급해야 한다.


로먼은 구미가 당기지 않는 듯, 시큰둥하게 되물었다.


"기사 말입니까?"

"그렇네. 자네가 어디 출신인진 모르겠지만, 자네라면 배경이 없더라도 서임을 받을 수 있을 것이네."


기사는 귀족이나 기사 가문의 자제가 전문적인 훈련을 거치고, 정식 서임을 받아 탄생한다.

하지만 귀족 혹은 기사 가문 출신이 아니더라도 서임을 받는 방법은 있다.


백작 이상의 귀족의 눈에 들어 특별 서임을 받는 것이다.


"내 추천이라면 주군도 흔쾌히 기회를 주실 거야. 주군의 직속 기사가 되면 몇 년간은, 아니 어쩌면 평생 먹고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걸세."


부유한 귀족 중엔 기사를 고용해, 사병으로 두는 자들이 많았다.

기사는 용병과 달리 전문적인 훈련을 거쳤고, 용병보다 상대적으로 의리가 있었다.


사병의 힘이 곧 권력이니, 돈이 많은 귀족들은 정계나 재계에서의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뛰어난 기사들을 찾아다니곤 했다.


"어떤가?"


로먼은 기사가 되는 것에 흥미가 없었다.

용병이었던 그에겐 기사의 전통과 격식이 답답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게다가 그의 목적은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마족을 토벌하고, 마왕을 찾아 없애는 것.

백작가에 소속되면 여정에 방해가 된다.


"저는 기사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아쉽군. 자네 정도의 재목이면 분명 전장에서 이름을 날릴 수 있을 텐데."

"죄송합니다."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없겠나? 자네의 실력은 이런 작은 마을에서 썩히기엔 너무 아까워."


어지간히도 아쉬운지, 드완의 권유는 계속됐다.

이제는 딱 잘라 거절하고 일어나야겠다고 로먼이 생각했던 때였다.


"알겠네. 뜻이 그렇다면 할 수 없지. 그럼 주군을 만나 뵙기만 하는 것은 어떤가? 자네의 공을 아시면 분명 사례를 하실 걸세. 난 자네가 합당한 보상을 받았으면 한다네."


생각에 빠진 로먼이 입술을 삐죽거렸다.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마왕을 찾아 여행하려면 돈이 필요하고, 당연히 액수는 많을수록 좋다.


일단 백작에게 데려간 뒤에 기사가 되도록 설득할 생각일 수도 있지만, 로먼은 흔들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로먼은 어차피 벨타스를 지나가야 했다.

벨타스 너머에 사는 한 점술가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전생에 직접 만나본 적은 없지만, 그는 어떤 질문이든 도움이 되는 대답을 해준다고 한다.


로먼은 그 점술가에게 마족들이 갑자기 마을을 덮친 이유와, 마왕을 찾기 위한 단서를 물을 생각이었다.


"그 정도라면 가능할 수도 있겠군요."


드완의 얼굴이 환해졌다.



#



다음날 오후. 로먼은 기사들과 함께 마을 입구에 서 있었다.


"떠날 준비는 됐나?"

"네."

"마을 사람들과 인사라도 나누게나. 곧 출발할 테니."


로먼을 배웅하기 위해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로먼이 기사가 되기 위해 드완을 따라가는 줄 알고 있었다.


응원과 축하를 건네는 사람들과 한두 마디씩 인사를 주고받은 로먼이 마지막으로 엘레나의 앞에 섰다.


"로먼 씨."


딸의 얼굴엔 서운함이나 아쉬움은 없었다.

그저 떠나는 이의 길을 축복하는 환한 미소뿐이었다.


엘레나가 입을 열려던 때, 로먼이 먼저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노란색 꽃 한 송이였다.


성검을 찾은 동굴의 입구에 피어있었는데, 로먼이 오늘 아침 떠날 채비를 하던 중 생각이 나 따온 것이었다.


전생의 엘레나는 이 꽃의 화사함에 이끌려 동굴 근처에 갔던 것일지도 모른다.


"와아, 정말 예뻐요!"


꽃을 받아든 엘레나의 얼굴이 환하게 피었다.

아버지의 눈엔 노란 꽃보다 딸의 얼굴에 핀 웃음꽃이 더 예뻤다.


엘레나는 감사하다는 말에 이어, 원래 하고 싶었던 말을 꺼냈다.


"로먼 씨도 무언가 지키고 싶은 게 있는 거죠?"

"...."

"돌아가신 아빠가 그랬어요. 사람은 무언가를 지키려 할 때 강해진다고. 로먼 씨도 그래서 강한 거죠?"


무슨 뜻인지 되묻지 않았다.

그럴 필요도 없이, 로먼은 엘레나가 한 말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전생의 그가 어린 딸에게 했던 말이니까.


그 뒤의 기억도 생생하다.

당시의 로먼은 쑥스러운 나머지, 정말로 전하고 싶었던 말을 입 밖에 내지 못했다.


'내가 지키고 싶은 건 바로 너다.'


물론 지금도 말할 수 없다.

아버지는 옛날처럼 하고픈 말을 삼키며 짧게 답했다.


"네."

"역시! 우리 아빠가 했던 말 중엔 틀린 게 하나도 없거든요."


딸의 해맑은 표정을 보니,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는다.

마을을 떠나고 싶지 않다.

그냥 일상 속에서, 멀리서라도 딸의 성장을 지켜보고만 싶다.


하지만 아버지는 마음을 다잡았다.

눈앞의 모든 것은 그가 지키지 않으면 전부 부서질 것들이다.


"가보겠습니다."

"네, 몸조심하세요!"


그렇게 로먼은 마을을 떠났다.



#



기사들은 말을 타고 길을 내달렸다.


로먼도 마찬가지였다.

마을 사람들이 선물해준 말을 타고, 베테랑 기사와 속도를 맞춰 최선두에서 달리고 있었다.


로먼 일행은 숲으로 들어갔다.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 숲을 가로질러 갈 생각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뜀박질하던 말들의 발걸음이 느려졌다.

말들의 체력 보존을 위해 속도를 늦춘 것이다.


"자네는 말 타는 솜씨도 수준급이군."


드완이 감탄했지만, 전생에 뛰어난 용병이었던 로먼에게 이 정도는 보통이었다.


"보면 볼수록 탐나는 인재야. 평소에 무슨 훈련을 하길래 그리 몸이 다부진가?"

"집안 내력인 것 같습니다."

"그럼 그 힘도 타고 난 건가? 자네 키보다 큰 검을 가볍게 휘두르지 않았나."

"아버지를 닮은 모양입니다."

"겸손하기까지! 자네 아버지를 뵙고 싶어지는군! 자녀 교육에 대한 조언을 구하고 싶어져!"


궁금한 게 그리도 많은지 드완이 질문을 쏟아냈고, 로먼은 적당히 둘러댔다.


사실 로먼 스스로도 자신의 힘에 놀라고 있었다.


성검의 힘 덕도 있겠지만, 애초에 이 몸이 가진 근력이나 반응 속도가 전생의 자신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좋았다.


로먼이 전생의 경험을 살려 판단을 하면, 그의 몸이 온전히 실행에 옮겨 최고의 결과를 만들어냈다.

거대 오우거를 격퇴했을 때처럼 말이다.


몸의 원래 주인이 어떤 사정을 갖고 있는진 알 수 없지만, 이런 신체로 환생한 것이 로먼에게는 행운이었다.


대화를 나누며 걷는 두 사람의 뒤로, 드완의 부하 기사들이 따라오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이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로먼의 뒤통수를 노려보고 있었는데, 드완 다음으로 기사 경력이 긴 자르고였다.


'건방진 녀석....'


그도 나름 십오 년 차. 경험치가 쌓인 노련한 기사였다.

흠이 있다면, 드완과 달리 몇 년째 상급 기사 시험에서 떨어졌다는 것.


영지를 소유하고 부하 기사를 둘 수 있는 상급 기사는 많은 부와 명예가 따라오기에, 여러 기사들이 목표로 하는 자리였다.


"어린놈이 겉멋만 잔뜩 들었어."


들리지 않도록 작게 중얼댄다는 것이, 옆의 신참 기사의 귀에 들어갔다.


"하지만 저자의 솜씨는 분명 대단했습니다."

"하! 웃기지 마라. 인간 한 명이 오우거랑, 그것도 두 배 크기의 오우거랑 싸워 이겼다는 게 말이나 되나? 분명 요행이 있었을 거야."

"그럴 리가요. 제가 직접 봤습니다. 자르고 경은 그때 지쳐서 기절해계시지 않으셨습니까."

"뭐, 뭐래는거냐! 기절한 게 아니라 체력을 회복하느라 눈을 감고 있던 거라고 말했건만!"


신참 기사가 자르고 몰래 한숨을 쉬었고, 자르고의 뾰족한 시선은 다시 로먼의 뒤통수에 꽂혔다.


이를 모르는지, 알면서도 신경을 안 쓰는지 덤덤히 걷던 로먼이 말을 멈추었다.


"무슨 일인가?"


드완의 물음에도 말없이 눈동자를 굴리던 로먼이 입을 열었다.


"마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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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아탐브, 여관, 민머리 +1 21.04.18 27 1 13쪽
14 멜렌디츠의 점술가 (2) +1 21.04.17 27 1 13쪽
13 멜렌디츠의 점술가 (1) +1 21.04.16 61 1 14쪽
12 율네스 백작과 기사들 (7) +1 21.04.15 66 1 13쪽
11 율네스 백작과 기사들 (6) +1 21.04.14 46 1 15쪽
10 율네스 백작과 기사들 (5) +1 21.04.13 50 1 14쪽
9 율네스 백작과 기사들 (4) +2 21.04.12 57 2 13쪽
8 율네스 백작과 기사들 (3) +1 21.04.11 63 2 14쪽
7 율네스 백작과 기사들 (2) +1 21.04.10 47 1 13쪽
6 율네스 백작과 기사들 (1) +1 21.04.09 74 1 12쪽
5 진동 +1 21.04.08 81 2 14쪽
» 출발 +1 21.04.07 100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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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롤로그 +2 21.04.06 187 2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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