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딸이 죽었다. 스무 살이란 젊은 나이에.
헛된 죽음은 아니었다. 마왕을 쓰러뜨렸으니까.
인류를 구한 용사 엘레나.
목숨 바쳐 평화를 지킨 순교자.
하늘이 내린 정의의 사자.
그녀의 희생은 나약한 인간의 과거를 청산하는 범인류적 자비이며, 그녀의 강철 같은 의지와 용맹함은 모두가 본받아야 할 덕목이라고 사람들은 예찬하곤 한다.
하지만....
나한테는 그저 딸이다.
하나밖에 없는 딸이다.
남 돕기를 좋아하고, 수다 떨기를 즐기는 아이다.
유치한 장난에도 쉽게 속는 순진한 아이다.
그래서 토라지면 얼굴에 드러나는 솔직한 아이다.
미안하다며 꽃 한 송이를 건네면 금세 기분이 풀려 안겨드는 아이다.
제 엄마를 똑 닮아 웃는 얼굴은 천사 같고,
아비를 부르는 목소리는 아침 이슬 떨어지듯 맑고,
어루만지는 손길은 노을처럼 따스한 소중한 딸이다.
세상에서 유일한 내 자식이란 말이다!
딸을 잃은 지 반년.
처음에는 이 슬픔을 어떻게든 극복해보려 했다.
그녀가 살린 이들을 보며, 딸아이의 죽음이 가치 있었다고 스스로 되뇐 것만도 수백 번이다.
하지만 안됐다.
타인에게 딸의 죽음은 가족의 비극이 아닌 역사적 사건일 뿐.
저들이 아무리 용사의 업적을 찬양해도, 딸을 잃은 아픔은 달래지지 않는다.
이젠 이 공허함에서 벗어나고 싶다.
눈앞의 밧줄에 나를 매달고, 그렇게 고통스럽게라도 끝내고 싶다.
숨이 막힌다.
두꺼운 밧줄이 내 목을 옥죄고 점점 의식이 흐려진다.
혹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용사가 되기 전 딸아이를 한 번이라도 만날 수 있다면.
그렇다면 딸아이를 말리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때 나는 숨이 끊어졌고,
4년 전 다른 사람의 몸으로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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