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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와별 님의 서재입니다.

딸 대신 용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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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와별
작품등록일 :
2021.04.06 18:39
최근연재일 :
2021.04.21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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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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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8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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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4.06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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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구체화

DUMMY

"흐읍!"


로먼이 검을 횡으로 넓게 휘두르자 고블린 세 마리의 몸이 잘려나갔다.


날아드는 방망이를 검으로 쳐내고 다시 전방을 가르니, 또 다른 놈들의 상체가 바닥에 떨어졌다.


성검을 손에 넣은 뒤로 힘이 넘쳐흘러, 그는 손쉽게 주변에 시체의 산을 쌓아갔다.


허나 성검 때문만은 아니었다. 애초에 그가 가진 몸의 힘이 워낙 강했다.

용병 시절의 기술을 떠올릴 필요도 없을 정도로, 로먼의 공격은 재빠르면서도 묵직했다.


환생하기 전의 로먼이 무슨 일을 하던 사람이었는지 궁금할 만도 했지만, 그의 머릿속은 다른 이유로 복잡했다.


'내 기억과 다르다.'


엘레나가 용사의 뜻을 품게 된 계기는 그녀의 열여섯 번째 생일에 발생한 마족의 습격이었다.

로먼의 기억대로라면, 이 사건은 내일 벌어져야 했다.


게다가 마을을 공격한 마족은 고블린 무리가 아닌 거대한 오우거 한 마리였다.


'전생과 차이가 있는 건가? 내가 성검을 하루 일찍 뽑아서?'


그런 고민을 하며 앞으로 나아가니, 어느새 고블린 떼는 시쳇더미로 변해있었다.


마을을 지키던 기사들과 자경단은 말을 잇지 못했다.


놀란 것은 드완도 마찬가지였다.

상황 파악을 위해 이리저리 굴러가던 그의 눈이 시체 더미 가운데 서 있는 젊은이에게 향했다.


'이 많은 고블린을 혼자서 처리하다니!'


그뿐만이 아니다.


평범한 옷차림을 보니 고위급 마법사나 신성교단의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갑옷도 걸치지 않았으니 기사도 아니다.


검 하나로 백 마리가 넘는 고블린을 죽인 일반인은 드완의 이십 년 기사 생활뿐 아니라 역사 속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정말 대단해! 어디서 그런 검술을... 자네는?"


로먼에게 다가간 드완은 그제야 상대가 여관에서 봤던 청년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풍채가 건장하니 기사가 제격이라 생각했건만 그 정도가 아니었군."

"오우거는 없었습니까?"

"뭐라?"


그때, '끼익'하는 울음소리가 들렸다.

로먼과 드완이 고개를 돌린 곳에 고블린이 서 있었다.


놈은 동료를 잃은 것이 분한지 손을 떨며, 손가락의 반지를 만지작거렸다.

놈들이 보물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고블린이 끼기엔 꽤나 고급스러운 반지였다.


"아직 한 마리가 남아있었나. 나에게 맡기게."


드완이 앞으로 나서자 고블린의 반응이 더 격렬해졌다.


끼에엑! 케엑!


전진하던 드완의 발걸음이 멈췄다. 갑자기 고블린의 반지에서 빛이 뿜어져 나온 것이다.

이어서 놈의 몸까지 빛이 나더니 점점 거대해지기 시작했다.


"뭐, 뭐냐!"


커지는 덩치를 따라 드완의 고개가 가파르게 올라갔다.

턱이 한계까지 올라갔을 때, 그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빛이 걷히고 드러난 것은 고블린이 아닌 오우거였다.


백작이 토벌을 명령한 오우거가 틀림없었다. 하지만 드완은 목표를 찾았다며 기뻐할 수 없었다.


'정말 이것이 오우거가 맞나?'


오우거는 원래 덩치가 큰 편이다. 키만 해도 인간의 세 배정도.

하지만 고블린과 지능이 별 차이 없어, 기사 두 세 명이 전술적으로 대응하면 비교적 쉽게 처치할 수 있는 마족이다.


그러나 지금 눈앞의 오우거는 드완이 알던 것과는 달랐다.


평범한 개체의 두 배는 되는 크기에, 전신의 근육도 훨씬 다부졌다.

기사들과 자경단에게 공포를 심어주기에 충분한 모습이었다.


경험 많은 기사는 상황을 판단하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 녀석은 이길 수 없다.


마을을 지키던 이들은 좀전의 전투로 체력이 바닥 난 상태.

설령 체력이 온전하더라도 저런 거체를 제압하진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베테랑 기사는 검을 들고 자세를 갖추었다.

달아나는 것은 그의 기사도가 용납하지 않았다.


"백작의 총애를 받아, 섬기기로 맹세한 자. 주군의 명을 두고 물러날쏘냐! 기사로 태어난 자. 영지민을 위협하는 마족을 보고도 못 본 체 할쏘냐!"


드완이 적에게 돌격하기 직전, 목구멍까지 올라왔던 기합이 다시 삼켜졌다.

앞을 가로막은 로먼 때문이었다.


"물러나세요."

"뭣... 막지 말게! 난 기사로서의 본분을 다해야 하네!"


대답 없이 오우거를 올려다보는 로먼의 눈엔 분노가 서려 있었다.


'...이놈이다.'


딸의 생일날 갑자기 마을을 덮쳐온 놈.

딸이 기사들과 힘을 합쳐 가까스로 물리쳤지만, 수많은 사상자를 낸 놈.

죽은 마을 사람들을 본 딸이 마족과 싸워나가기로 결심하게 만든 놈.


"반드시 죽인다."


엘레나에게 털끝도 닿지 못하게 할 테다.

엘레나의 인생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하게 만들 테다.


북받치는 감정에 손이 떨려온다.

성검이 힘을 발휘할 때였다.


사실 성검은 이 검에 딱 맞아떨어지는 이름이 아니다.

엘레나가 마족들을 베는 모습을 보며 주위에서 붙인 이름일 뿐, 무기 자체에 마족을 처단하는 성스러운 힘이 담겨있지는 않았다.


이 검의 특성을 잘 나타낸 이름은 따로 있었다.


내면의 의지를 세상에 비추는 검.


"...."


단지 거칠게 들끓기만 하던 분노라는 감정이 방향성을 띄고 구체화되기 시작한다.


놈을 죽이고 싶다.

거대한 몸뚱이를 난도질하고 싶다.

두꺼운 목을 잘라 숨통을 끊고 싶다.


이를 이해한 성검은 주인의 의지에 답하기 위해, 자신의 모습을 바꾸어 세상에 비춘다.


쏴아아!


성검이 새하얀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잠시 후 빛이 걷혔을 때, 드완의 입이 쩍 벌어졌다.


"이, 이건 대체!"


흔한 롱소드(양손검)였던 로먼의 검이 그레이트소드(대형검)로 바뀌어있었다.


하지만 평범한 그레이트소드가 아니었다. 외날인 검신의 길이가 무려 2m에 달하고, 폭은 크로스가드와 비슷할 정도로 두꺼웠다.


공격은커녕 들어 올리기도 불가능해 보이는 크기였지만, 로먼의 두꺼운 팔뚝은 이를 무리 없이 들고 있었다.


"후우...."


호흡을 가다듬은 로먼은 지체 않고 상대를 향해 뛰었다.

2m나 되는 거대한 성검을 양손으로 든 상태라 할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였다.


우어어어어어!


오우거가 포효와 함께 주먹을 내질렀다.

바위만 한 주먹이 가파르게 떨어짐에도 로먼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속도를 높임과 동시에 상체를 숙여 아슬아슬하게 주먹을 뒤로 흘려냈다.


오우거의 주먹이 바닥을 때린 순간, 그대로 성검을 쳐올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반달모양을 그렸다.


머리 위 오우거의 손목을 잘라내기 위한 공격.


하지만, 검날이 닿기 전에 오우거가 주먹을 거둬 공격은 무위로 돌아갔다.


로먼이 다시 움직였고, 그가 있던 자리에 주먹이 꽂혔다.

한 번 더 손목을 노려봤지만 이번에도 빗나갔다.


로먼의 움직임은 들고 있는 검에 비해 가벼웠지만, 오우거 역시 예삿놈이 아니어서 덩치와 달리 민첩했다.


다리 쪽으로 가까이 접근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당연하게도 놈에게 가까워질수록, 주먹이나 발이 날아오는 시간이 짧아졌다.


이 광경을 지켜보는 드완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의 눈엔 로먼이 위험한 줄타기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베테랑 기사가 끼어들 엄두도 못 낼 정도로 오우거와 청년의 싸움은 빈틈이 없었다.


'인간의 몸으로, 심지어 혼자서 이렇게까지 버티다니 믿을 수가 없군. 허나....'


기사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저 두꺼운 가죽과 단단한 근육을 뚫기는 평범한 검으로는 힘들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로먼의 대검은 파괴력이 충분해 보였다.


문제는 크기가 큰 만큼, 평범한 검보다 조금이라도 느릴 수밖에 없다는 것.

대검을 자유롭게 운용하는 로먼의 괴력이 놀랍긴 했지만, 그 미세한 속도 차이 때문에 오우거에게 유효타를 먹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또다시 오우거의 주먹이 로먼을 뭉개기 위해 날아왔다.


그런데 로먼은 전과 달리 속도를 높이지도, 상체를 숙이지도 않았다.

오히려 성검을 들어 올리더니, 제자리에서 뛰어오르며 바닥을 내려쳤다.


그 힘이 얼마나 강한지, 오우거의 주먹에도 멀쩡하던 지면에 금이 갈 정도였다.


성검으로 바닥을 때리는 힘과 각력이 더해져 로먼이 높이 떠올랐고, 그 아래를 오우거의 주먹이 한 끗 차이로 스치며 바닥에 꽂혔다.


전과 다른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오우거의 공격들과 로먼의 검이 준 충격 때문인지, 바닥이 부서지며 오우거의 주먹이 파묻혔다.


로먼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

공중에서 자세를 잡은 뒤 검날을 등 뒤로 끝까지 당기자, 팔뚝의 핏줄이 꿈틀거리고 허리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이어서 공중에서 떨어지며 전력으로 검을 내려찍었고, 오우거의 거대한 손목이 토막 난 생선처럼 단번에 잘려나갔다.


우어어어어어!


괴로움 섞인 포효 소리.


바닥에 박힌 검을 뽑아낸 순간, 반대쪽 주먹이 쇄도해왔다. 오우거다운 감정적인 공격이었다.


허나, 고통 때문인지 좀 전보다 주먹의 속도가 느리다.


가볍게 피한 뒤 검으로 내리쳤고, 오우거의 남은 손목도 동강이 나버렸다.


끄어어어어!


오우거가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 쳤다.

로먼의 옆엔 그의 키만 한 주먹 두 개가 나란히 바닥에 꽂혀있었다.


로먼은 마족에게 쉴 틈을 줄 생각이 없었다.

도끼로 나무를 치듯, 놈의 다리에 검을 박아넣었다.


그런데 다리의 근육이 너무 두꺼운 탓에, 날이 박혀서 빠지질 않았다.


검을 원래 크기로 돌려보려 했지만, 성검의 힘이 익숙하지 않기 때문인지 변화가 없었다.


그때 롱소드 하나가 날아왔다.

드완이 던진 것이었다.


"그거라도 사용하게!"


로먼은 망설이지 않았다.

롱소드를 바로 잡고, 오우거의 다리에 꽂힌 성검에 올라탔다.

최대한 무릎을 굽혔다가 점프하니, 그 높이가 무려 오우거의 어깨까지 다다랐다.


로먼이 오우거의 어깨를 타고 달렸다. 목표는 놈의 머리였다.

오우거의 코앞까지 접근한 그는 한쪽 눈에 롱소드를 쑤셔 박아버렸다.


으어어어어!!


오우거가 피가 철철 흐르는 두 팔목으로 저항했지만, 로먼은 요리조리 피하며 롱소드를 더 깊숙이 밀어 넣었다.


결국 눈과 뇌를 뚫린 마족의 거체가 집이 무너지듯 뒤로 넘어갔다.


인간의 승리였다.



#



같은 날 해가 막 저문 시간.


로먼은 여관 식탁에서 드완과 마주 앉아있었다.

드완이 저녁 식사를 제안한 것이다.


"드디어 자네와 느긋하게 얘기를 나눌 수 있겠어."


로먼이 오우거를 물리치고 마을로 돌아갔을 때, 사람들이 몰려들어 난리가 났었다.

쏟아지는 감사 인사와 선물을 전부 받고 나니, 해가 지려 하고 있었다.


"...이건 정말 제가 가져도 되는 겁니까?"


로먼이 오우거의 반지를 꺼내 보였다.

오우거가 끼고 있을 때는 엄청 크더니, 빼내자마자 평범한 크기로 돌아왔다.

소유자에게 맞게 크기가 변하는 모양이었다.


"물론이네! 자네 덕분에 마을을 지킨 것이나 다름없지 않나. 전리품은 당연히 자네의 것이지."


로먼은 반지를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그는 전생의 용병 생활 덕분에 마법 장비에 대한 지식을 어느 정도 갖고 있었다.


사용자의 모습을 바꾸는 마법이 인챈트된 장비는 매우 보기 드문 것이었다.

장식된 보석이 검은빛인 것은, 저장된 마나가 다 떨어졌음을 의미했다.


마나를 채우려면 마법사의 도움을 받거나 마나 스톤을 사용해야 한다.

인챈트한 마법사가 고위급일 경우, 마나 리젠 마법도 같이 걸어두는 경우가 있지만 흔치 않았다.


"그리고 나는 이미 목적을 이루었네."


드완이 한쪽에 쌓여있는 병들을 가리켰다.

거대 오우거의 피가 담긴 것들이었다.

놈의 피를 가져오라는 것 역시 율네스 백작의 명이었다.


드완은 로먼이 기존에 갖고 있던 기사들의 건방진 이미지와는 전혀 달랐다.


마을 사람들이 감사인사를 할 때 드완이 나서서 가장 큰 공을 세운 것은 로먼이라 알리기도 했고,

자신과 기사들에게 건네는 마을 사람들의 선물도 한사코 거절했다.


'전생에 만난 기사들이 이 자의 반만 따라갔어도 용병 생활이 더 편했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때.


"식사 나왔습니다!"

"...!"


너무나도 익숙한 목소리.

당황한 로먼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떨궜다.


아버지는 아직 마음의 정리를 못 한 상태였다.

자신을 못 알아보는 딸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조금 더 고민이 필요했다.


그 심정을 알 리 없는 딸은 무슨 이유인지 자리를 떠나지 않고 로먼을 바라보고 있었다.


드완 역시 요상한 공기에 눈썹을 꿈틀거렸다.


"로먼 씨!"


먼저 침묵을 깬 사람은 엘레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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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영주, 도적단, 민머리 +1 21.04.19 21 2 11쪽
15 아탐브, 여관, 민머리 +1 21.04.18 27 1 13쪽
14 멜렌디츠의 점술가 (2) +1 21.04.17 27 1 13쪽
13 멜렌디츠의 점술가 (1) +1 21.04.16 61 1 14쪽
12 율네스 백작과 기사들 (7) +1 21.04.15 66 1 13쪽
11 율네스 백작과 기사들 (6) +1 21.04.14 46 1 15쪽
10 율네스 백작과 기사들 (5) +1 21.04.13 50 1 14쪽
9 율네스 백작과 기사들 (4) +2 21.04.12 57 2 13쪽
8 율네스 백작과 기사들 (3) +1 21.04.11 63 2 14쪽
7 율네스 백작과 기사들 (2) +1 21.04.10 47 1 13쪽
6 율네스 백작과 기사들 (1) +1 21.04.09 74 1 12쪽
5 진동 +1 21.04.08 81 2 14쪽
4 출발 +1 21.04.07 100 2 13쪽
» 구체화 +1 21.04.06 117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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