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역전승 님의 서재입니다.

만수의 재혼

웹소설 > 작가연재 > 중·단편, 로맨스

역전승
작품등록일 :
2019.11.14 17:46
최근연재일 :
2019.11.26 19:42
연재수 :
5 회
조회수 :
1,088
추천수 :
5
글자수 :
24,719

작성
19.11.25 06:21
조회
174
추천
0
글자
20쪽

치매환자의 갈등 1

아침이 행복하면 하루가 즐겁습니다.




DUMMY

치매환자의 갈등



목차


1, 치매가 뭐니?

2, 엄마, 막내아들 왔어요.

3, 그때는 딸이다.

4, 둘째아들이 기겁했다.

5, 아범아, 고맙다.

6, 그런 것도 모르면 죽어야지

7, 걸신(乞神)

8, 말하지 못하는 고통과 갈등








1, 치매가 뭐니?



나는 기억이 없다.

기억이 없으니 당연히 아는 것이 없다.

오로지 눈에 보이는 현실만 있을 뿐이다.

그것도 돌아서면 잃어버릴 현실이지만---


어느 날이었다.

큰딸이라는 여편네가 자신의 이름이 뭔지 물었다.

나는 대답을 못 했다.


“엄마, 내 나이가 몇 살인이야?”

여편네가 자신의 나이를 물었다.

나는 그냥 도리도리 고개만 흔들었다.


“에구 우리 엄마 어쩌나, 엄마, 엄마는 86세고 나는 64세야, 그리고 엄마는 자식을 칠 남매나 낳았어요. 아들이 넷, 딸이 셋, 내가 큰딸 영숙이고 큰아들은 영석, 둘째 아들 재석, 셋째아들 민석, 막내아들이 종석이야, 그리고 둘째 딸은 창숙, 막내딸은 미숙이잖아요. 잘 생각해 보세요.”


여편네가 목이 메인 목소리로 차근차근 말했다. 하지만 이상하게 기억이 나질 않는다. 기억이 없으니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가슴만 먹먹하다. 내가 정말 자식을 칠 남매나 낳았을까, 그것도 의문이었다. 아니 의문을 가질 생각도 들지 않았다.


자꾸 자신이 큰딸이라는 여편네를 보면 나보다 더 늙은 것 같았다. 거울을 보지 않았다면 내가 늙었는지 거울 속의 노파가 정말 나인지 그것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나였다.

나는 딸이라는 여편네의 재촉에 끝내는 ‘몰라!’라고 대답했다. 정말 모르니까 모른다고 대답했을 뿐이다. 그런데 여편네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다.


사실은 여편네의 찡그린 얼굴이 정말로 수심에 찬 얼굴인지, 아니 ‘찡그린, 수심’이란 말 자체를 모르겠다.

단지 느낌일 뿐이다.


내가 누구지?

속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누군지 정말로 알 수가 없다.


“엄마! 엄마 이름은 뭐예요?”

“이 영선”


별안간 여편네가 이름을 물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내 입에서 ‘이 영선’이란 대답이 불쑥 튀어 나왔다. 이 영선은 분명 내 이름이다.


“그것 보세요. 엄마 이름은 이영선이예요. 그럼 아버지 성함은 어떻게 되는데요?”


신통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여편네가 정말 내 딸인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결혼이란 걸 했던 것 같기도 하고 자식들을 낳은 것 같기도 한데, 에이~ 그런 것들이 지금 무슨 상관이 있는지 그냥 말하기조차 귀찮았다.


“내가 늙었나, 아버지가 누구야?”

내 입에서 엉뚱한 말이 툭 튀어나왔다.


순간 늙었다는 것을 인지했던 것 같은데, 나는 아이처럼 입을 삐죽였다. 여편네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쳐다봤다. 그리곤 아버지 이름이 어떻게 되느냐고 다시 물었다.


“아버지 성함, 이름 말이야, 정말 몰라.”

“몰라, 그게 누구야?”

“기억력도 좋고 말씀도 잘했었는데 치매라니?”

여편네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치매, 치매가 뭔지 나는 모른다.

딸이라는 여편네의 말로는 인지능력이 떨어지고 기억을 잃어버리는 병이 치매란다. 인지능력이 뭔지 기억이 뭔지 그것조차 모르는 나에게 치매라니---


치매가 뭐니?

멍하니 창문만 바라봤다.




2, 엄마! 막내아들 왔어요.



“엄마! 막내아들 왔어요.”

“막내 왔구나.”


처음 보는 청년이 방으로 들어왔다.

나는 자신도 모르게 ‘막내 왔구나,’ 웃어 보였다.

아마도 내 웃는 모습이 청년이 보기엔 가관이었을 것이다. 앞니가 하나도 없으니 바보 같고 어린애 같았을 것이다.

청년이 씩 웃었다.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몸은 어떠세요?

“난 잘 지냈지, 그래 밥은 먹었냐? 밥 차릴까?”

“밥 먹었어요. 엄마는 요?”

“줘야 먹지!”


청년은 내가 자신을 알아본 줄 아는지 손을 잡으며 살갑게 굴었다. 나도 잘생긴 청년의 얼굴을 쳐다보며 술술 대답했다. 순간 청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가 펴졌다.


“형! 엄마가 저녁 안 드셨다는데,”

“저녁 드신지 20분도 안 됐다.”


분명 나는 밥을 먹지 않았다. 배가 고픈 것을 보면 밥을 먹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밥을 먹었다니, 저 사람들이 날 굶기려고 작정을 했나, 내가 뭘 잘못했나,

그것도 아니다.

나는 내가 잘못한 것이 있는지조차 인지하지 못한다. 그러니 무조건 배가 고프게 느껴지면 밥을 안 먹은 것이다. 그렇다 보니 나는 배가 고프면 ‘밥 차릴까?’라고 말한다. 왜 그런 말을 하게 되었는지 ‘나도 몰라’이다.

어쩌면 그동안 몸에 밴 습관일지도---


“엄마! 저녁 드신지 20분도 안 되었다는데요.”

“밥 안 먹었는데---”

“근데 어디 가세요?”

“화장실,”

신통방통하게 화장실이라는 말은 쉽게 나왔다.


나는 소파에서 힘들게 일어나 화장실로 갔다. 어떻게 된 일인지 다리에 힘이 없었다. 신경질이 날 정도로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아니 신경질이 뭔지도 모르면서---

암튼 마음이 젊은 탓일까, 늙었다는 인지를 못 하니 마음은 항상 젊다. 그것이 생각조차 인지를 못 하는 내가 할 말은 아닌데 아무튼 마음은 편하다.


“엄마! 조심, 조심, 다녀오세요.”


내가 어린앤가, 자식들이라는 사람들은 모든 일에 조심하라고 말한다. 간섭은 질색인데 말이다. 사실은 간섭을 받았다는 생각조차도 기억을 못 한다. 어떨 때는 화를 내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것은 일시적이다. 어찌 보면 세상에서 제일 편하고 행복한 사람이 바로 나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암흑의 시간이---


“엄마! 또 올게요.”

“조심해서 가라! 차 조심하고---”


잘생긴 청년이 돌아갔다.

나는 문 앞까지 배웅했다.

그때만큼은 청년을 막내아들로 인지를 한 모양이었다.

그래 이런 것이 바로 습관적인 행동일 것이야,


정말이지 말짱한 사람처럼 대답했었다.

나로선 참으로 대단한 순간이었다.




3, 그래 딸이다.



또 암흑의 시간이 흘러갔다.

시간개념도 모르는 내 시간이---


자식들이 숫자를 백까지 세면 기억이 돌아온다고 자꾸만 시킨다. 자식들이라고 말하니까 하기 싫어도 숫자를 세어 본다. 일에서 열까지는 쉽게 세겠는데 그다음부터는 어떤 숫자를 세어야 하는지, 멀뚱히 자식들만 쳐다봤다.


책을 보라며 동화책도 사다가 줬지만, 글자도 알아보지 못했다. 말로는 책도 술술 잘 읽고 숫자도 잘 외웠단다. 직장생활도 했었다니, 똑똑했었던 것은 사실인 모양이었다.

꼭 남 얘기를 듣는 것 같다.


아무렴 칠 남매를 두었다는데 자식들 나이 먹어가는 것만 계산해도 보통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열까지 밖에 세지 못하는 것을 보면 직장생활을 했다는 말도 믿어 지지가 않는다. 게다가 고모인가 누군가를 그것도 내가 문맹 퇴친지 뭔지 글자를 가르쳤단다. 나에겐 올케가 된다고 알려줬다.


어쨌거나,

둘째 딸이 고모 전화라며 바꿔준 적이 있었다.

내겐 올케라는 여인이었다.


‘여보세요?’

“누---?”

누구냐고 물어보기도 전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긴, 그래 몸이 많이 안 좋다면서요? 늙으니 기력이 떨어져서 나도 막내딸 신세를 진다우, 그냥 목소리나 들으려고 전화했는데, 치매가 걸렸다면서요. 식사는 잘하지요. 밥만 잘 먹어도 그게 어디우, 난 통 입맛도 없고, 틀니가 귀찮아서 죽만 조금씩 먹어요. 씨부렁씨부렁, 또 전화하리다.’


하여튼 ‘누구’라는 말도 없이 전화가 끊길 때까지 씨부렁거리는 말만 들었다. 사실은 무슨 얘길 들었는지 기억도 없다. 그냥 어느 여편네 목소리에 고개만 끄덕였을 뿐이었다.


“엄마! 고모가 뭐래?”

“뭐래긴, 치매가 걸렸는지, 그런데 치매가 뭐냐?”

“엄마! 정말 속상하게 왜 이래, 나 둘째 딸, 에구 나도 모르겠다. 암튼 엄마는 책도 보고 공부도 좀 해야겠다.”


둘째 딸은 한바탕 잔소리를 해대곤 숫자놀이를 하자며 양손을 펴더니 따라 하란다. 나는 딸이 시키는 대로 양손을 폈다. 그리곤 딸이 하나 하면 손가락을 구부리며 하나 하고 따라 했다. 둘, 셋, 넷, 다섯, 열, 그리고 열하나, 열둘, 그렇게 100까지 세었다.

둘째 딸은 이게 숫자놀이라며 이번엔 나부터 하란다. 나는 열, 열하나, 열둘, 열아홉까지 세곤 멈췄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다음 숫자가 생각나지 않는다.


“스물”

둘째 딸이 스물이라고 가르쳐 줬지만 하기가 싫어졌다.

귀찮아진 것이다.

아니 귀찮다는 생각도 없이 그냥 배가 고팠다.


“애들은 밥 먹었나, 밥 차릴까?”

“엄마! 점심 먹은 지 한 시간,”


나는 대답도 듣지 않고 주방으로 향했다.

사실 주방에 가봐야 밥을 차려 먹을 줄도 모른다.

그냥 냉장고나 열어서 먹을 게 있으면 아무거나 마구 꺼내 먹는다. 한 번은 한 달 동안 먹을 흑마늘을 한꺼번에 먹어 치운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때는 큰아들이 있었다는데 너무 놀라서 간인가 콩팥인가가 콩알만 했었다고 말했다. 어쨌든 문제가 생기는 그런 일이 벌어지면 둘째 딸은 나보고 사고를 쳤다고 말했다.


“엄마! 가만 계세요. 우리 간식 먹고 숫자놀이 또 해요.”


나는 둘째 딸의 말에 언제 밥을 먹으려고 했었는지 까맣게 잊어버렸다. 숫자놀이를 하든 뭘 하든 우선 맛난 것을 먹으면 그것으로 기분이 좋았다.


딸이 아니어도 먹을 것만 주면, 그래 딸이다.




4, 둘째 아들이 기겁했다.



“언제 긴 옷을 입었지?”

큰아들은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의문 자체가 좋은 일이라며 춤을 덩실덩실 추었다.

누군가가 저 아들이 큰아들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몰라’이다.

그렇더라도 내 얘기에 춤을 추며 좋아하는 것을 보면, 아들이 맞긴 맞는가 보다. 암튼 큰 딸 말대로 내가 끔찍이 여겼다던 큰아들이니까, 아범이니까, 효자란 생각은 들었다.

그것도 아주 잠깐이지만,


이젠 생각하는 것도 귀찮다.

귀찮은 것이 뭔지도 모르면서 하는 얘기다.

그래도 이렇게 씨부렁거리는 것은 나를 부모라고 찾아와 수발을 드는 큰아들인 아범이 고마워서이다. 그런데 듣기로는 ‘아범아!’라고 큰아들을 불러본 적이 없단다. 왜 아범아 라고 부르지 않았는지, 아니 부른 것 같다. 그런데 ‘큰애야’라고만 불렀다는 것이다. 아범아 라고 부르지 않았다는 것이 정말이지 믿어 지지가 않았다.


어쨌거나 나에겐 당장 눈에 보이는 현실이 진실인 것이다. 특히 누가 뭐라고 말하면 눈치 백 단쯤 되는지 묻는 말을 잘도 받아넘긴다. 정말로 똑똑하고 눈치가 빨랐는지 그것은 잘 모르겠다. 자식이라는 사람들이 그렇다고 말하니까 그런가 보다 하는 것이다.


누구든 나에게 말을 걸면

‘그래요. 알지, 그럼요, 늙으니까 자꾸 깜박깜박해, 무슨 일인지 설명해줘야 알지, 그럼, 애들은 잘 크지,’

이렇듯 말을 잘 받아넘겼었다.

내가 치매 환자인지 몰랐던 사람은 자신을 알고 있다고 착각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자식들은 내 기분을 생각해 ‘그래요. 맞아요.’ 받아 주는 것일 테지만 나는 내가 말한 것들이 진실인 것이다. 정작 자신이 뭔 말을 실수했는지 그런 것은 중요치가 않다. 그냥 얘기한 것을 진실로 믿으니까,


사실이지 나는 증손자까지 봤다. 그런데 애들은 잘 크느냐고 물었다는 것은 딸이든 아들이든 손자들이 어리다고 생각한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까 한 30년 전의 내 이야기일 것이다.

그러니 이야기를 하다가도 자식들은 손자들이 커서 결혼도 했고 증손자도 낳았다고 설명을 한다. 그렇다고 그 얘기를 귀담아듣는 것이 아니다. 건성으로 그렇구나,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뭣하면 오히려 추궁하듯 짜증스럽게 말하기도 했다. 그것이 짜증을 부린 것인지도 모르면서---


‘진즉에 알려줬어야지 알지,’

‘그려, 알지, 알고말고,’

상대의 질문에 대한 내 주된 대답이다.

아마도 상대는 내 대답에 어처구니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아주 편한 얼굴로 웃는다.

게다가 이빨이 없으니 정말로 바보 같을 것이다.

하지만 아들딸들은 웃는 모습이 귀엽단다.

그 말을 들으면 은근히 기분도 좋다.


우리 집엔 실내화장실과 실외화장실이 있다.

나는 화장실이 둘인지도 알지 못했다.

그냥 그때그때 가는 곳이 화장실이구나 하는 것뿐이다.


“엄마! 어디 가세요?”

“......”

“바람만 쐬고 빨리 들어오세요.”

“알았다.”


현관을 나서는 나에게 옆방에 사는 젊은이가 말했다. 나이가 50이 넘은 둘째 아들이지만 내 눈엔 그냥 옆방에 사는 젊은이다. 그런데 오늘은 둘째 아들만 집에 있는지, 다른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나는 밖으로 나왔다.

둘째 아들은 나와 보지도 않고 빨리 들어오라고만 말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벌어지는 일이라 둘째 아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실외화장실은 재래식이다.

화장실 문턱이 높아 들어갈 때와 나올 때 애를 먹는다.

나는 애를 먹었던 기억은 잊고 실외화장실을 자주 사용한다. 오늘도 나는 실외화장실을 사용했다. 늙어서 그렇겠지만 변을 보는 것도 힘들다. 변비에 걸렸다가 툭하면 설사도 하고 종잡을 수 없는 내 신체 조화다. 그러니 변비가 있는 날은 화장실에 앉아서 보통 10분 20분, 그 이상 끙끙거린다. 아랫배에 힘을 준다고 주지만 정작은 힘도 들어가지 않는다.


아마도 한 20분은 앉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변은 보지 못했다.

느낌이 변을 본 것 같으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지만 무릎이 아프고 다리가 저려서 한참을 끙끙거린 후에야 일어설 수가 있었다.

그조차도 인지하지 못했지만,


‘아이고 힘들어, 이렇게 살아서 뭐해,’

제정신이 든 것처럼 씨부렁거렸지만 일어선 후엔 뭔 말을 했는지 잊어버렸다. 나는 언제 힘들었냐는 듯 화장실을 나섰다.


‘에구~ 어 엄니!’

나는 화장실 문턱을 넘다가 결국은 넘어지고 말았다. 그래도 창피한 것은 아는지, 큰소리도 못 쳤다. 그래도 간신히 일어나 앉아선 하늘만 멍하니 바라보았다.


제법 시간이 흘렀을 것이다.

둘째는 내가 들어오지 않자 찾으러 나왔다.

그때 나를 보고 기겁을 했다고 한다.

둘째 말로는 1시간쯤 사색이 되어 앉아 있었단다.

사실 소리를 쳤다면 누구든 와서 도와줬을 텐데 그 생각조차도 못한 것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둘째가 나와 봤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마도 겨울철이었다면 얼어 죽었을 것이다.

암튼 둘째가 얼마나 놀랐던지 119를 부르고 가족들에게 전화를 하는 등 난리를 쳤단다.


그때부터 자식들은 밖에 화장실은 절대로 사용을 못하게 했다. 그렇지만 나는 누구에게 말하고 행동하지 않는다. 그냥 그때그때 생각대로 느낌대로 행동했다. 그 때문에 자식들이 있어도 내가 밖에 나갔는지 모를 때가 있다.

슬그머니 나갔으니까,

다행이라면 내가 멀리 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의 이런저런 행동들이 문제를 일으켰고 자식들 눈에는 내가 사고를 친 것이 되었다.




5, 아범아! 고맙다.



오늘따라 집안이 북적거렸다.

가족들 모임이 있는 모양이었다.

암튼 자식들이 일일이 나는 누구라며 인사를 했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누가 누군지 하나도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정말이지 애길 들었어도 나는 누가 누군지 알지를 못했다. 그냥 그 양반들이 말할 때 고개를 끄덕이며 큰애, 둘째, 큰딸, 막내딸 등으로 건성건성 대답했을 뿐이었다.

그냥 눈치로---


그리고 또 손자들이라고 인사를 하는데 손자들이 언제 이렇게 컸는지 도통 이해를 못 했다. 어릴 때의 손자들 기억이 나는 듯, 어렴풋이 시끄럽게 떠드는 애들이 생각나 씩 웃었다.

손자들이라는 애들도 좋아들 했다.


어쨌거나 눈에 보이는 현실이 아닌 기억은 아무런 도움도 되질 않는다. 오히려 기억의 찌꺼기들이, 아니 그것이 나에겐 진실이지만, 아무튼 내 생각대로 말했다가 이해도 못 할 진실에 대해 한참 동안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암튼 자식들이 이것저것 많은 선물과 먹을거리를 사 왔다. 누가 무엇을 사 왔는지 기억도 못 하지만 먹을 거라면 신났던 나는 과일에 빵에 떡에 과자까지 배부르게 먹었다.


“너무 많이 드리면 안 좋다. 적당히 드려,”

“엄마가 드시면 얼마나 드시겠어요. 먹고 싶은 거 못 먹으면 오히려 병나요.”

“오늘만 실컷 드시게 하시지요.”


큰아들의 말에 막내딸과 셋째아들이 나섰다.

딴에는 엄마를 생각해서 나섰을 것이다.

큰아들이 눈살만 찌푸리곤 모른 척했다.

그 바람에 나는 양껏 먹을 수가 있었다.

그런데 어쩌나,

그렇게 먹은 것이 탈이 날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저녁을 먹고 늦은 밤이 되자 자식들이 다 돌아가고 시끄럽던 집안은 적막과 썰렁함으로 채워졌다.


원래 다리와 무릎이 아팠으니 잠자리에서 끙끙거리는 것은 예사였다. 그렇다고 신음 소릴 크게 내지는 않는다. 신음이 컸다면 자식들이 아픈 줄 알고 난리를 쳤을 것이다.

나는 배가 쓰린 것인지 아픈 것인지 싸한 고통을 느꼈다. 신음이 절로 나올 정도로 배가 아팠다. 하지만 아픈 것에 이골이 났는지 그냥 참을 만했다. 아니 아프다는 인지능력이 떨어진 결과였다.

그런 연유로 아픔까지도 고통스럽게 느끼지를 못했다.

암튼 소 대변을 가릴 능력까지도 감퇴가 되었음이었다.

사실은 큰 실수를 했더라도 부끄럽다는 인식을 못 한다는 것이 참으로 문제긴 문제였다.


아마도 새벽 2시쯤 되었을 것이다.

2시쯤이라고 말한 것은 옆에서 잔 큰아들인 큰애의 말이었다. 어쨌든 나는 시원하게 볼일을 봤다. 화장실에 가야겠다고 생각은 했었지만, 그때는 이미 볼일을 본 후였다.


“아휴, 냄새야! 엄마, 방구 꿨어요. 이거 너무 독한데, 어디 좀 봅시다. 혹시 많이 드셔서 실수를--- 거 보세요. 음식에 욕심을 부리지 말라고 말했잖아요. 일단 가만 계세요. 씻고 옷부터 갈아입읍시다. 목욕은 날이 밝으면 하시고요.”


큰애는 먼저 물을 떠다가 씻기곤 옷을 갈아입힌 다음 따뜻한 매실차를 마시게 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나는 편하게 잠을 잤다. 그동안 큰애는 실수로 더럽힌 속옷을 빨았을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니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잘 잤냐고 묻는다. 실은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는 기억도 없다.


“어머니, 어제 음식을 너무 많이 드셔서 실수하셨습니다. 냄새가 독해서 아들 머리 다 빠지는 줄 알았다니까요. 그러니 어머니 음식에 욕심을 내면 밤에처럼 실수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앞으론 먹는 음식에 욕심부리지 마세요. 자~ 이젠 목욕합시다. 왜요? 부끄러워요. 암튼 어머니, 나 큰아들이잖아, 그러니 부끄러울 게 없어요. 내가 어렸을 땐 어머니가 날마다 목욕시켜줬잖아, 그런데 뭐가 부끄러워요. 안 그래요. 이젠 큰아들인 내가 어머니 목욕시켜드릴게, 문도 꼬옥 잠갔거든요.”


아침을 먹을 때도 말이 없던 큰애가 아침나절쯤 목욕을 시키겠다고 한다. 나는 목욕을 못 하겠다고 했지만, 큰애의 설득에 마지못해하듯이 목욕을 하기로 했다.

그때는 부끄러움을 느낀 것 같기도 하고,


“어머니, 그런데 너무 말랐다. 우리 어머니, 이것 보세요. 때가 국수야 국수, 흐흐 그래도 좋지요. 이렇게 아들이 목욕시켜드리니까, 우리 어머닌 호강하시는 거야, 세상에 나 같은 아들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하지만 어머니, 앞으론 음식 욕심내지 마세요. 자, 시원하지요. 와, 새색시가 따로 없네,”


큰애는 중얼중얼 말도 시키며 시원하게 목욕을 시켜줬다.

마치 풀밭에 앉아 봄볕을 쬐듯 행복했다.

그 행복도 곧 잊겠지만, 평생 잊지 못할 순간이었다.


어쨌거나 나는 허리가 낫처럼 굽은 노파에 앙상하게 말랐다. 그런 몸이라 보기엔 시체만도 못할 것이다. 이런 내 몸을 보고 큰애는 얼마나 놀랐을까, 많이 놀랐을 것이다. 정말이지 큰애 속이 말이 아니었을 것이다. 겉으론 웃고 있었겠지만, 정말이지 가슴으론 뜨거운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그냥 내 생각도 아닌 늙은이 생각이다.


어렴풋이 요양원에 들어간 친구 생각이 났다.

친구도 알아보지 못하는 환자였지만,


‘큰애야! 아니 아범아, 고맙다.’

나는 그냥 아범이라는 중늙은이가 고마웠다.


---계속

562[2][1].jpg

세상살이1057[1].jpg




건강은 큰 자산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 글 설정에 의해 댓글을 쓸 수 없습니다.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만수의 재혼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단편과 짧은 글을 올리겠습니다. 19.11.15 91 0 -
5 치매환자의 갈등 2 19.11.26 148 0 14쪽
» 치매환자의 갈등 1 19.11.25 175 0 20쪽
3 총각 장가 보내기 19.11.16 199 0 3쪽
2 평범한 일상 19.11.15 203 2 3쪽
1 만수의 재혼 19.11.14 363 3 15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