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pi**** 님의 서재입니다.

관형찰색 觀形察色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pioren
작품등록일 :
2015.07.27 15:39
최근연재일 :
2016.02.15 16:17
연재수 :
60 회
조회수 :
152,187
추천수 :
5,608
글자수 :
188,643

작성
15.11.20 10:13
조회
2,343
추천
87
글자
7쪽

추궁

DUMMY

“화가 머리끝까지 난 상태지만, 사실 좀 감탄스럽기도 해. 이렇게 상처를 입은 건 정말 오랜만이거든. 군에 있을 때도, 비밀 임무를 수행할 때도 이런 일이 없었어. 그런데 이런 곳에서 이런 식으로 내가 한 방을 먹을 거라고는 꿈에서라도 상상하지 못했거든. 덕분에 짜릿했고, 재밌기도 해. 의욕도 생기고.”


원호는 어떻게든 자세를 잡아보려 했다. 하지만 아직도 다리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이후가 빙글거리며 검을 고쳐 잡았다.


“미안하지만 나도 독을 조금 발라 놔서. 센 건 아니지만 아마 균형을 잡거나 공력을 모으기가 쉽진 않을 거야. 하긴 공력이라고 해봤자 고양이 눈물만큼이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의 말대로 몸의 균형을 잡기도 쉽지 않았고, 힘이 풀린 손발도 원호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검이 원호의 목에 겨눠졌다.


“자, 그럼 기다리고 기다리던 대화를 시작해 보자고. 첫 번째 질문, 정씨 부부는 왜 죽인 거지?”

“...”

“이런. 설명을 빼먹었군.”


검 끝이 원호의 왼쪽 어깨를 슥 긋고 지나갔다. 원호가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크아악!”

“기왕 하는 거 좋게 가자고. 어차피 죽을 거, 조금이라도 멀쩡한 모습으로 덜 아프게 가는 게 낫지 않겠어?”


이후가 다시 검을 목에 겨눴다.


“정씨 부부는 왜 죽인 거지? 의뢰는 누가 한 거야?”

“흑호파...에서 받은 의뢰다.”


망설이던 것도 잠시, 원호는 순순히 입을 열었다. 어차피 지금 와서 흑호파에 지킬 의리 같은 건 없었다.

이후의 눈이 커졌다.


“흑호파? 그들이 의뢰를 했다고? 네가 따로 받거나, 어디서 중개 받은 게 아니라?”

“...낙양에 그들이 온 이후로는 흑호파를 통해서만 의뢰를 받았다. 의뢰인을 직접 만나 본 적은 최근에는 거의 없어.”

“빌어먹을.”


이후가 혀를 찼다. 흑호파에 들른 것은 단순히 원호의 행방을 찾기 위함이었는데, 그 곳에서 직접 의뢰까지 했을 거라고는 그로서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걸 알았다면 미리 그곳에서 물어보고 오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아니, 아예 그 곳에서 이것까지 확인하고 왔어야 했어. 나도 진짜...’


너무 살육에 신을 내다가, 정작 해야 할 중요한 일은 하지 않고 와버린 셈이었다. 이렇게 되면 다시 낙양으로 돌아가 정씨 부부의 의뢰에 대해 추궁해야 했다. 982호까지 잡아 바로 돌아갈 생각이었던 이후로서는 골치가 아픈 일이었다.

속으로 한숨을 쉬며 이후가 두 번째 질문을 던졌다.


“두 번째. 정씨 부부의 집에 아이가 하나 있었을 게다. 지금은 어디에 있지?”

“...”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군.”


검이 이번에는 오른쪽 허벅지를 베고 지나갔다. 고통에 몸을 꿈틀거리는 원호을 보며 이후가 말을 이어갔다.


“시치미 떼지 말라니까. 아까 네놈이 집에 왔을 때도 부르지 않았나. ‘류’라고. 말해라, 982호는 어디에 있지?”

“982호? 왜 사람에게 그 따위 이름을...큭”


오른쪽 팔목에서 피가 솟구쳤다. 이후가 어깨를 으쓱였다.


“질문은 내가. 넌 답만 하면 된다. 982호는?”

“모른다.”

“...끈질기군.”

“네 녀석 입으로 말했을 텐데. 내가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고. 그리고 그렇게 말하는 걸 보면 류는 그때 집에 없었을 테고. 그런데 내가 지금 어디 있는지 어떻게 아나. 어디든 나갔거나, 아니면 네가 오는 걸 보고 피했겠...크윽.”


원호의 입에서 신음이 새어 나왔다. 검끝이 그의 가슴팍을 긁고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맞는 말이군. 기분은 나쁘지만.”

“...”

“그럼 질문을 바꾸지. 녀석이 갈 만한 곳은? 아니면, 녀석이 몸을 숨길만한 곳은?”


이후의 질문에 원호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사실 류가 특별히 갈만한 곳은 없었다. 류가 산에 들어 온 이후 활발히 돌아다니긴 했지만, 은신처 밖으로 나올 때는 대부분 원호와 함께였다.

유일하게 떨어져 있는 시간은 오후에 그가 개인 수련을 할 때였는데, 돌아오면 항상 은신처에 있는 걸로 봐서는 그때 따로 외출하거나 하는 일도 없는 듯했다. 낙양 시내나 부근에 따로 연고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후의 태도로 봐서는 은신처에 도착해 그를 기다리며 매복하고 있는 동안 류를 한 번도 보지 못한 듯했다.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이후의 위협을 어떤 식으로든 눈치 채고 무사히 몸을 피한 듯했다.


‘그렇다면...’

“대답해라. 982호는 어디 있지? 갈 만한 곳은?”


이후가 대답을 재촉했다. 원호가 고개를 끄덕인 후,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후가 그를 향해 귀를 기울였다.


“...죽여라.”

“정신 차리라니깐. 몇 번을 말하나.”


이후의 검이 원호의 몸을 다시 베고 지나갔다. 하지만 원호는 입을 꼭 다물었다. 완강한 그의 모습에 이후가 싸늘하게 웃었다.

“그래. 누가 이기나 해 보지.”


그와 함께 이후가 원호의 몸을 난자하기 시작했다. 치명적인 급소는 비켜 갔지만, 한땀 한땀의 칼질은 아주 정교하면서도 잔인했다. 거의 살을 저며 회를 뜨는 듯한 정성스러운 손놀림이었다.

원호의 온몸이 피투성이로 변했다. 비명조차 나오지 않는 고통 속에서도 원호는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걸로 됐다.’


은신처에서 무사히 몸을 빼 산을 내려갔다면 지금쯤 류는 산을 벗어났을 공산이 컸다. 이후의 추종술이 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대상이 멀리 도망쳐 버린다면 그를 뒤쫓기는 쉽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고 거리가 벌어질수록 상황에 변수가 늘어나고 흔적도 점점 지워지기 때문이었다.

원호 자신은 이미 잡힌 몸이었다. 이후의 말하는 태도나 잔인한 손놀림으로 볼 때, 설령 원호가 류의 행방을 알고 있으며 자백한다 한들 살아남을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차라리 뭔가를 알고 있는 척 시간을 끌어 보자는 것이 원호의 생각이었다. 어차피 죽을 목숨 아닌가. 이런 잔인한 자에게 류가 끌려가게 놔둘 수는 없었다.


‘좀 아프긴...하지만.’


자신이 엉망진창으로 다져 놓은 정씨 부부의 시체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가 죽인 수많은 사람들. 지은 죄의 대가를 조금 일찍 치른다고 생각하며 원호는 눈을 감았다. 몸에 상처가 늘어나고 피가 솟구칠 때마다 고통스러웠지만, 동시에 마음속의 짐과 죄책감이 조금씩 덜어지는 느낌도 들었다. 그의 입가에 희미하게나마 미소가 맺혔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3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관형찰색 觀形察色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관형찰색 계약 관련 공지 +3 16.02.19 1,027 0 -
60 연통 +4 16.02.15 1,347 45 7쪽
59 사마련 낙양지부 +6 16.02.12 1,349 47 7쪽
58 비웃음 +4 16.02.08 1,560 58 7쪽
57 부단장(2) +6 16.02.05 1,287 50 7쪽
56 부단주 +4 16.02.01 1,558 59 7쪽
55 시장 +5 16.01.29 1,443 57 7쪽
54 이야기(2) +4 16.01.25 1,386 72 7쪽
53 이야기 +3 16.01.22 1,640 63 7쪽
52 향개 +5 16.01.18 2,401 66 7쪽
51 향개, 적염창귀 +4 16.01.15 1,897 63 7쪽
50 적염창귀 +3 16.01.11 1,749 65 7쪽
49 향개 +1 16.01.08 1,897 68 7쪽
48 적염창귀 +1 16.01.04 1,983 73 7쪽
47 낙양의 전황 +3 16.01.01 2,210 76 7쪽
46 류(2) +2 15.12.28 2,071 128 7쪽
45 +1 15.12.25 2,202 134 7쪽
44 이름난 무인 +2 15.12.21 2,369 82 7쪽
43 경화공주 +4 15.12.18 2,163 84 7쪽
42 검은 머리 +4 15.12.14 2,132 95 7쪽
41 의식 회복 +1 15.12.11 2,544 85 8쪽
40 의문의 혈겁 +2 15.12.07 2,233 85 7쪽
39 흑호와 이후(2) +2 15.12.04 2,083 84 7쪽
38 흑호와 이후 +5 15.11.30 2,090 86 7쪽
37 흑호 도착 +4 15.11.27 2,111 87 7쪽
36 류와 원호 +4 15.11.23 2,294 89 7쪽
» 추궁 +3 15.11.20 2,344 87 7쪽
34 추격(2) +3 15.11.16 2,232 83 7쪽
33 추격 +2 15.11.13 2,285 89 7쪽
32 회심의 일격 +2 15.11.09 2,349 99 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