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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극 님의 서재입니다.

정령의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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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극
작품등록일 :
2018.04.19 18:40
최근연재일 :
2019.09.30 23:58
연재수 :
2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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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428
추천수 :
269
글자수 :
1,220,287

작성
19.01.28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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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0쪽

행방불명 (5)

DUMMY

‘뭐야? 약한 얘들이잖아?’


하스트는 눈 앞의 토인족 두 명이 그리 강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나이는 10대 후반 정도인가? 음··· 정말 얘네들이 영물과 마을 사람들의 사고와 관련이 있는 건가?’


벌벌 떠는 모습이, 적어도 이들이 죽인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안심할 수는 없다. 애초에 영물의 죽음이라는 사태 자체가 굉장히 이질적인 사태니까. 우선은 지켜본다.


“오, 오빠···”


겁에 질린 라피의 목소리가 떨린다.


“거, 걱정 마! 내가 지, 지켜줄게!”


늠름하게 말하고 싶었던 것 같지만, 라슈의 목소리도 떨리고 있다.


어쩔 수 없다. 라슈의 눈에 포착된 주변의 환경은 그들을 겁에 질리게 하기에 더할 나위가 없다.


라슈와 라피가 있는 곳을 기점으로, 직경 5미터의 구덩이가 생겼다. 이것만이면 이 고원에서 땅의 술법을 사용하는 자들도 충분히 사용할 수 있는 수준이다. 하지만 이곳은 평지가 아니라 언덕이다. 낮은 언덕이고, 중앙도 아니라 높이가 엄청 높지는 않았지만, 굴은 지상까지 적어도 5미터는 떨어져 있었다.


그것을 눈 앞에 있는 놈들은 마치 병뚜껑을 열듯 너무나 손쉽게 치워버렸다. 이들이 미리 와서 준비하던 것도 아니다. 그 말은 엄청나게 빠르게 술법을 완성했던지, 아니면 이동하면서 술법을 완성할 수 있던지 둘 중 하나다. 어느 쪽이든 쉬운 상대가 아닌 것은 확실하다.


무엇보다 덩치 두 명이 너무나 위협적이다. 지금도 들어 올린 흙을 둘이서 뒤에다 버리는 모습이 보인다.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 5미터는 되는 흙이라면 9톤 가까이 나갈 터인데, 그것을 둘이서 들어 올렸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기지가 않는다.


‘저, 저것이 도깨비!? 정말 무섭다!’


곰과 오거를 상대로도 힘싸움을 할 수 있다는 말이 거짓이 아님을 지금 눈 앞에서 확인했다. 그리고 확신했다. 눈 앞의 일행이 악당이라는 것을 말이다.


“도, 도깨비가 둘이라고 해도 난 물러나지 않아!”


‘내, 내가 시간을 벌어서 라피가 도망갈 수 있게 해야 해!’


“둘?”


라슈의 말에 일행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여기에 도깨비는 퇴기 한 명이다. 그에 상황을 눈치챈 하스트가 웃음을 짓는다. 라슈는 카를도 도깨비라 착각한 것이다.


그런데 하스트의 웃음이 겁에 질린 두 토인을 더 긴장하게 만들었다. 마치 하스트가 자신들을 어떻게 처리할지 결정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오, 오빠.”


“라피, 내가 최대한 시간을 끌어볼 테니, 넌 도망가.”


“내가 어떻게 오빠를 버리고···”


“가야 해. 안 그러면 우리 둘 다 죽어!”


“싫어! 만약 죽는다면 같이 죽을 거야!”


“라피··· 마음은 고맙지만, 그럴 순 없어! 넌 도망가야 해! 덤벼라! 감히 그분을 죽인 대가를 치르게 해 주마!”


“그분?”


엘르가 라슈의 말을 못 알아듣고 반문하자, 라슈가 울분을 담아 더 크게 소리친다.


“어디서 모른 척을! 너희들이 죽인 사슴 영물께서는 이 고원의 평화를 지키신 분! 그분 덕분에 고원의 많은 마을들이 서로 싸우지 않고 지낼 수 있었는데! 그분만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도 모두 죽이다니! 너희들을 용서하지 않을 테다!”


라슈의 이야기를 듣고, 일행은 상황을 파악했다.


영물을 죽인 가해자라는 당초 예상과 다르게, 눈물까지 그렁거리며 말하는 것이 아무래도 피해자인 모양이다. 격정적이고 용감한 말과는 다르게, 손뿐만 아니라 몸 전체가 부들부들 떨리는 것이 더 믿음이 간다. 단순히 겁에 질린 걸 수도 있지만, 그런 가정은 잠시 치워둔다.


“저기, 얘. 그건 우리가 그런 게-”


엘르가 오해를 풀려고 말을 걸었지만, 라슈는 듣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은 라피를 대피시켜야 한다는 생각만이 가득 차있다.


“어디서 거짓부렁을! 이 오거처럼 생긴 여자가!”


“뭐, 뭐, 오거!?”


라슈 입장에서는 라피에게서 일행의 관심을 떨어뜨리기 위한 도발이었다. 효과는 굉장했다. 너무 심하게 굉장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하필이면 오거와 철천지원수인 엘프 마을의 엘르에게 했다는 것이 문제였다. 저것은 다른 사람에게 ‘혹시 부모님이 개십니까?’ 라는 것보다 심한 욕설이다.


“어이쿠.”


카를은 조심스레 엘르의 분위기를 살폈다. 안 그래도 다루는 속성과 안 어울리게, 화염보다 불 같은 성격을 가진 사람이 엘르이건만, 저런 소리까지 들었다면, 열 받아서 밑의 토인들에게 화살을 쏴버릴 수도 있다.


“히- 후! 히- 후!”


‘엘르, 무서워!’


화는 나지만, 뭘 잘 모르는 애들의 치기 어린 말이라 생각하고, 필사적으로 호흡을 정돈하며, 엘르는 화를 참았다. 그런데 호흡 소리가 영 좋지 않다. 게다가 노려보면서 저러니, 마치 먹이를 잡아먹기 직전의 뱀 같았다.


“푸하하하! 너보고 오거래!”


지금 웃으며 엘르를 놀리고 있는 하스트를 보며, 카를은 확신했다. 저놈은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하는 놈이 아니다. 그렇다면 분위기를 파악했으면서도 남을 놀리는 놈이다. 역시 성격이 마냥 좋은 놈이 아니었다.


당연히 엘르의 분노는 하스트에게로 향했다. 훌륭한 도발 전이였다.


하스트는 웃으며 미리 준비하고 있던 바람의 장막으로 엘르의 주먹을 막으려 했지만, 엘르의 손을 둘러싼 바람이 터지며 장막을 분해시킨다. 결국 무방비에 놓여진 하스트는 엘르의 주먹을 고스란히 맛봐야 했다.


“억! 억! 엘르, 너 언제 이런 기술을! 컥!”


“닥쳐! 이 구타유발자 자식아!”


웃음의 대가는 참혹했다. 엘르가 하스트를 패기 시작했다. 귀기가 어린 엘르의 폭력사태에 토인들의 얼굴이 핼쑥해진다.


“크하하하! 처음 보는 꼬마들에게 실례의 모습을 보이고 있군! 거기 토끼 도령! 실례가 안된다면 귀하의 이름을 듣고 싶다!”


“나, 나는 라슈다!”


“크하하하! 그래! 라슈! 좋은 이름이다! 아무래도 너는 그 낭자를 도망치게 만드려고 도발하는 것 같군!”


너무나도 정확한 지적에 라슈가 움찔한다.


‘큰일이야! 제일 위험해 보이는 도깨비 놈한테 들켰어!’


“크하하하! 그리 긴장할 것 없다!”


“네?”


라슈는 자기도 모르게 나온 존댓말에 다시 움찔한다.


“오빠. 저 도깨비는 나쁜 사람이 아닌가 봐.”


“그, 런가?”


긴가민가하지만 약간 희망이 보인다. 라피의 말처럼 왠지 눈 앞의 도깨비는 나쁜 도깨비가 아닌 것 같단 생각이 들고 있다.


“악! 악! 언제까지 때리는 거야!?”


“네 입이 다물어질 때까지!”


퇴기의 순수하고 호탕한 웃음이, 뒤에서 아직도 벌어지고 있는 잔혹한 구타와 대비되어 더욱 선해 보이는 효과를 보이고 있다.


“그 사슴 영물을 죽인 것은 우리가 맞다!”


“에?”


퇴기의 폭탄선언에, 두들겨 패고 있던 엘르와 열심히 주먹을 막고 있던 하스트는 물론, 절대 말릴 생각 없이 그들을 지켜보고 있던 카를마저 의문의 소리를 내었다.


“야, 퇴기. 너 갑자기 무슨-”


카를은 퇴기에게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느냐고 말리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여, 역시! 역시 나쁜 사람들이었어!”


이렇게 되면 이제 오해가 아니다. 졸지에 진짜가 되어버렸다.


“이 더러운 놈들! 나쁜 놈들! 여우만도 못한 놈들!”


“크하하하! 마음껏 욕해라! 모두 사실이니까!”


라슈의 비난에 카를은 퇴기에게 한발 떨어졌다. 저 발언은 자신과 아무 상관이 없다고 선을 긋는 듯이 말이다.


그런데 라슈의 시선이 퇴기를 놔두고 갑자기 카를에게 향했다.


“너희들은 악당이야!”


라슈의 발언에 카를은 충격받았다.


“아, 악당? 이 내가 악당이라고?”


카를은 남에게 악당 소리를 들을 행동을 평생 한 적이 없다고 굳게 믿었다.


아니, 애초에 요즘 세상에 악당이 웬 말인가? 옛날이야기에서나 나오는 정말 나쁜 사람들에게 하는 표현이 아니던가? 그런 말이 자신에게로 향했다는 것을 카를은 믿을 수 없었다.


“잠, 잠깐, 기다려 봐! 이놈들은 몰라도 나, 나는-”


“크하하하! 그래, 우린 악당이다!”


카를이 필사적으로 자신은 악당이 아니라고 외치기 전에, 퇴기가 그것을 막는다.


“하지만 우린 정정당당한 악당이니, 기회를 주마!”


“정정당당한 악당? 기회?”


“잠깐, 난 악당이-”


충격을 받은 카를을 억지로 뒤로 보내고, 퇴기가 라슈와 대화한다. 이 해괴한 상황에 엘르와 하스트도 폭력을 멈추고 조용히 퇴기를 응시했다.


“올라와서 나와 대결해라! 나를 이긴다면 너와 낭자를 내가 책임지고 놓아주지!”


“지, 진짜? 헉! 설마 그렇게 말하고 방심하는 틈을 타서!?”


“크하하하! 의심 많은 도령이군! 내 진의를 왜곡하지 말거라! 우리 넷을 한꺼번에 상대하고 싶다면 그에 응하겠지만 말이다!”


“큭!”


“오, 오빠.”


“걱정 마, 라피. 내가 지켜줄게!”


‘어차피 선택의 여지가 없어. 아니, 오히려 둘 다 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야!’


“크하하하! 결정했나 보군! 그럼 올라와라!”


라슈와 라피가 일행이 있는 곳으로 올라온다. 역시 토끼라 그런지, 도약력이 보통이 아니다.


라피를 뒤에 두고 라슈가 퇴기를 향해 결사적인 분위기로 앞으로 향한다.


일행은 왜 퇴기가 이런 행동을 하는지 눈치챘다.


‘저놈, 또 대결병 도졌네.’


하스트의 생각처럼, 퇴기는 처음 보는 토인족이 얼마나 강한지 궁금했던 것이다. 그리고 판은 이미 깔려 있었다. 그것도 라슈가 무조건 최선을 다할 수 있게 만들 수 있는 판이 말이다. 퇴기는 그것을 최대한 이용했다.


언덕 위의 도깨비, 그리고 도깨비와 단독으로 싸우려는 상대. 엘르는 눈 앞의 광경에서 기시감을 느꼈다. 얼마 전에 있던 퇴기와 카를의 일이 생각났다.


카를은 퇴기를 한번 보고.


‘역시-’


주변의 일행을 한번 보며 생각했다.


‘여기서 나만 정상이야.’


확신에 찬 카를에게는 아쉽게도, 이 생각은 하스트와 엘르도 똑같이 하고 있었다.


작가의말

Are you parents d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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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 예정된 죽음 (3) 19.01.15 157 1 12쪽
106 예정된 죽음 (2) 19.01.14 181 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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