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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극 님의 서재입니다.

정령의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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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극
작품등록일 :
2018.04.19 18:40
최근연재일 :
2019.09.30 23:58
연재수 :
2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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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427
추천수 :
269
글자수 :
1,220,287

작성
19.01.19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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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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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3쪽

예정된 죽음 (7)

DUMMY

“난 내 힘이 두려웠던 거야. 나로 인해 누군가 다치게 되는 게 싫었던 거지. 그리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야. 아까 다시 그 광경이 보였을 때, 다시 그 시절이 생각나서 미치는 줄 알았거든.”


“그 광경?”


“그래. 평소와는 다른 모습이 보였어. 아마 자연력이겠지. 세계의 자연력이 눈으로 보였어. 그리고 그 힘이 다시 나를 감싸서 다른 사람들을 다치게 할 것 같았지. 몸이 터지려고 한 것도 있었고.”


‘그래서 그렇게 죽어라 도망갔던 거군.’


“그 후에는 그냥 마을 밖의 동물들이나 사냥하면서 살았지. 부모님에게 걱정을 끼쳐드릴 수는 없으니, 주기적으로 다시 마을로 돌아가긴 했지만. 그래도 덕분에 힘 조절도 능숙하게 되었지. 그다음부터는 내가 동물들을 사냥하고 돌아다니는 게 오히려 마을에 더 도움이 되는 것 같아서 그걸 핑계로 삼기도 좋았어. 마을에서도 생각지 못한 신망을 얻게 되었고.”


“그럼 그놈은?”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엘르가 갑작스럽게 끼어든다.


“응? 누구?”


“널 괴롭혔던 그놈 말이야! 그걸 그냥 내버려두었어? 확! 나라면 확! 화살로 귓불을 확! 날려버렸을 거야!”


엘르는 이야기에 흥분했는지, 화가 치솟아 버렸다.


“기껏 지켜줬더니, 사람을 괴물 취급이나 해대다니! 괘씸한 자식!”


“뭐, 어렸으니까.”


“어렸다고 그런 말을 해도 되는 건 아니야! 우씨!”


“게다가 불평하고 싶어도 어쩔 수 없지.”


“왜?!”


“걘 일찍 죽었거든.”


“뭐?”


“걔뿐만 아니라 내 나이까지 산 아이들이 얼마 없어. 이건 우리 때만의 일이 아니지. 10명이 태어나면 5명은 10살이 되기도 전에 죽는다고 들었어. 그리고 지금 와서는 걔 얼굴도 잘 기억 안 나.”


담담한 카를의 말이 오히려 더 절절하게 다가온다. 엘르는 남부에 대한 인식을 바꿨다.


‘남부도 생각보다 훨씬 힘들구나. 우리보다 약한 동물들이 있다고 들어서 편할 줄 알았는데.’


“이제는 어릴 때의 일이니까. 그렇게 나도 잊은 줄 알았는데. 막상 그게 또 생각보다 잘 안되네. 아까 파괴자가 괴물이라고 부를 때도 울컥했고.”


일행은 도깨비 마을에서 카를이 무너지는 집을 볼 때의 반응을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무너지는 집, 그것도 사람에 의해서 무너지는 집. 그것이 그의 상처를 건드렸다.


“그럼 손가락 꼼지락 거리는 거랑 우리랑 떨어져서 잠잤던 것도?”


“눈치챘었구나.”


“눈깔이 멀지 않았으면 당연히 눈치 채지. 만난 지 얼마 안 된 것도 있고, 네가 불편한 게 있나 해서 일부러 안 물어본 거지.”


“크하하하! 난 그게 습관인 줄 알았다!”


‘난 잘 몰랐는데···’


하스트도 보긴 했지만,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었다. 그저 원래도 그랬나? 하고 넘어갔다. 하지만 말하지 않는다. 눈깔이 멀었다는 말을 직접적으로 듣기는 싫었으니까.


“네 말이 맞아. 사실 얼마 전부터 힘 조절이 미세하게 안 돼서 말이야. 그것 때문에 불안했어. 평소에는 보통 혼자 있는 경우가 많아서 잠시 잊고 있었는데, 잠결에는 옆에 있던 사람이 봉변을 당할 수도 있으니까.”


‘뭐야? 난 그럼 지금까지 잠꼬대에 맞아 죽을 뻔했을 수도 있다는 말?’


하스트는 자신도 모르게 죽음의 강을 건널 뻔했다는 사실에 움찔했다.


“힘을 얼마나 잃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겠지. 앞으로도 그럴 거니까, 양해 좀 해줘.”


이에 하스트와 엘르는 고개를 끄덕인다. 자기 편하자고 하는 것도 아니고, 남을 위해서 하는 행동에 카를의 상처를 생각하지 않고 억지를 부리는 것도 웃기는 일이니까.


단, 퇴기는 약간 다르게 생각한 것인지,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크하하하! 하지만 카를! 너의 걱정은 약간 과한 것이 있군! 결국 너는 그 후로 사고 없이 자라지 않았나?”


“그랬지.”


“그렇다면 지금부터도 별 무리 없을 터!”


“나도 그렇게 여기고 싶지만-”


“무엇보다 겨우 잠꼬대에 당할 정도로 우린 약하지 않다!”


“뭐?”


“지금까지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네 눈 앞에 있는 우리들도 나름 실력에 자신이 있는 자들이다! 너의 걱정이 오히려 우리에게 모욕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안 해봤나!”


“그런 생각까지는···”


생각해보니 그렇게도 들릴 수 있다. 잠꼬대로도 충분히 너희들을 죽일 수 있다고. 대비를 위한 말이었지만, 거만하게 들리기도 한다.


“이 여자 같은 약골은 몰라도-”


“누가 약골이야!”


퇴기는 엘르의 반발을 우직하게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난 절대 그렇게 헛한 수련을 하지 않았다! 만약 강자에게 죽임을 당한다면 그거야말로 바라던 바! 혹시나 내가 너에게 잘못되더라도 걱정 마라! 너의 부주의가 아닌 내가 약한 탓이니까! 그렇지 않나, 하스트!?”


‘난 자다가 맞아 죽기 싫은뎁쇼.’


“크하하하! 역시 하스트! 네 눈에서 강력한 의지가 느껴진다! 역시 너도 나랑 같은 생각이겠지!”


그 의지는 아쉽게도 부정의 의미였지만, 퇴기는 알아채지 못했다.


“우린 일부러 널 피하지 않는다! 너도 우리를 일부러 피하지 말아라! 이제 우리는 동료가 아니겠는가! 우리도 너에게 당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 너도 노력해라!”


‘무슨 노력? 잠자다 날아오는 주먹에 버티는 노력?’


“그래! 나도 자신 있어! 저런 덩치한테 무시당할 수는 없지! 좋아, 카를! 덤벼! 다 피해 줄 테니! 언제라도, 어느 방향에서라도 덤벼!”


엘르가 갑자기 일어서서 피하는 동작들을 선보였다. 그런데 쓸데없이 화려하다.


“후후후.”


퇴기의 말은 우격다짐이었지만, 그래도 그 말에 카를은 웃었다.


“특이한 위로네. 너 생각보다 상냥하구나.”


카를은 퇴기가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하는 말이라 생각했다. 단순하고 우악스럽다고 생각한 퇴기의 인상을 고친다. 퇴기의 말에서 진심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크하하하! 위로가 무엇이냐?! 난 진심이다! 자고로 남자의 상냥함이란, 재미없는 농담을 하는 놈의 뒤통수를 냅다 후려갈기는 것! 그것 말고는 필요 없다!”


“... 무섭네.”


아까보다 더 한 진심이 느껴지는 퇴기를 보고, 카를은 말을 돌렸다. 카를의 안에서 퇴기의 인상이 원래대로 돌아갔다.


“그래서, 하스트. 별 거 아닌 이야기지만, 내 이야기를 들으니 어떠냐? 도움이 되었어?”


“네 말이 모두 진실이라면, 어느 정도는 파악이 된다. 네가 어떻게 그 힘을 가지게 되었는지.”


“그래?”


“그래.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넌 너무 재능이 넘쳤던 거야. 그것도 남들과 비교를 하는 것조차 실례일 정도로. 어렸을 때의 재능만으로는, 나 이상이야. 아니, 아마 너보다 뛰어난 사람은 역사 속에서도 손에 꼽겠지.”


카를의 재능은 압도적이라는 말로도 모자랄 정도였다. 이 곳에 있는 예언의 아이들을 포함해, 그 어떤 누구도 그 나이에 그런 수준으로 자연력을 다루지 못했다.


나이를 제외하고서도 그 수준까지 자연력을 자유롭게 다루는 사람은 세계에서도 많지 않다. 애초에 자연력을 평상시에도 자연스레 볼 정도면 이미 초고위 술사다. 게다가 카를은 속성을 언급하지 않았다. 각기 다르게 보이는 것들을 모두 다뤘다고 했다. 그렇다면 예측이지만, 그는 모든 속성을 다루었다는 말이 된다.


느끼는 것뿐만 아니라 직접 보고, 자유롭게 움직이고, 그에 어떠한 반동도 받지 않았다. 술법도 필요 없이 오직 의지로만 해냈다. 그것도 공격성을 띌 정도의 힘을.


그렇다면 자연력을 모르는 곳에서 태어난 어린아이는, 어떤 교육도 받지 않고, 북부의 내로라하는 술사들보다도 자연력을 훨씬 자유자재로 다뤄왔다는 말이 된다.


그것을 넘어 그는 자신의 안에 있는 것만이 아니라 외부의 힘을 변환과 적응 과정을 거치지 않고 그대로 사용했다고도 했다. 이 정도면 영물, 정령급의 친화도다.


지금까지 그를 보아오지 않았다면, 절대 믿을 수 없는 이야기다.


“하지만 지금은 자연력이 보이지도 않고, 움직일 수도 없지?”


“그렇지. 보는 거야 아까 잠시 되었지만, 움직이는 건 그때도 안 됐어. 혹시 몰라서 여기로 오면서 조금씩 시험해봤는데, 안 되더라. 옛날에도 무슨 특별한 방법으로 한 것도 아니었으니, 어떻게 했는지도 모르겠고.”


“그렇군.”


그는 재능을 키우지 않았다. 오히려 숨기고 숨겼다. 자신의 압도적인 재능으로 재능을 숨겼다.


하지만 자연력에 대한 교육이나, 관리법 등을 배우지 않은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그는 언제라도 다시 사용할 수 있게 체계적으로 재능을 숨기지 못했다.


‘이야기대로라면 애초에 의식적으로 한 행동도 아니야.’


그 누구와도 비교가 되지 않는 압축력, 모든 속성을 아우르는 지배력, 그 모두를 다른 속성으로 바꾸는 변환력, 어떠한 반발도 느끼지 못하는 친화력까지. 무엇 하나 특출 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리고 이 모든 능력을 사용한 결과가 현재의 카를이다. 그는 자신의 재능을 이용해 그 자신조차도 움직일 수 없는 높은 순도와 압축력의 자연력을 몸과 하나가 되게 만들었다. 그의 친화력과 변환력이 굉장했기에 이런 것이 가능했을 거다.


하지만 육체에 무리가 덜 가는 그의 자연력이라도 그 양이 너무 많았다. 육체는 위험을 느꼈다. 몸에 가둘 수 있는 자연력은 한계가 있으니, 육체는 살기 위해서 몸을 키운 것이다.


‘아까 보니까 안쪽도 장난이 아닌 것 같던데.’


덕분에 카를의 육체마저 평범한 인간과 달라졌다. 그의 자연력뿐만 아니라 근육도 이상하게 밀도가 높다. 그는 같은 크기의 남들보다 무거웠다. 그리고 그에 비례해, 자연력의 도움이 없더라도 남보다 월등한 신체능력이 있을 터.


‘이 정도면 육체 자체가 역사에 남을 수 있을 정도야.’


그리고 어린 꼬마는 그저 힘에서 도망가기 위한 강렬한 의지만으로 이 과업을 해냈다.


“자연력을 거의 다룰 수 없게 된 것은 아쉽지만, 어떻게 보면 운이 좋았네.”


“왜?”


“만약 그렇게 자연스레 사용하다가 그냥 몸에 쌓이는 것을 놔두었으면, 아마 넌 높은 확률로 자연화 했을 거야.”


그것도 마을을 멸망시키면서. 지금까지 살지도 못했을 거다.


친화력이 낮은 자들은 몸에 자연력을 쌓기도 힘들다. 하지만 그의 친화력이라면 다르다. 자연력들은 카를의 몸을 제집인양 들어와서 자리를 잡았을 것이다. 지금도 그러고 있으니까. 예전과 다른 점이라면, 이미 그의 몸이 하나의 속성에 고정되어있다는 거다.


“너에 대해 더 알게 된 유익한 시간이었지만, 아쉽게도 다른 해결책은 없어. 아까 말한 대로 넌 계속 다른 자연력에 공격당할 거야. 넌 그것을 다스려 자신의 것으로 삼던지, 아니면 그것을 밖으로 내보내야 해. 그리고 둘 중에서 내보내는 것이 더 중요해. 넌 계속 자연력을 흡수하고 있으니까. 그것만 되면 방법이 생겨. 내가 파괴자에게 사용한 술법. 하나의 틈만 있다면, 그 술법으로 네 안의 자연력을 어느 정도 빼줄 수 있을 거야. 우선은 이 방침으로 가자.”


강제로 끄집어낼 수는 없다. 가능할 지도 의문이고, 가능하다해도 그런 짓을 했다가는 그의 정수는 다시 크나큰 타격을 입는다. 그때는 정말 끝이다. 지금도 불안정한 정수가 한번 더 깨진다면, 그때는 예언의 아이들 전부가 모여도 복구할 수 없다.


노력 여하에 따라 시간은 달라지겠지만, 카를의 예정된 죽음은 아직 그대로다.


“분명 이쪽에서 퇴기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았는데? 얘들아! 어디냐! 괜찮으냐!?”


그때, 저 멀리서 촌장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웅이가 목소리를 알아듣고 큰 소리로 외친다.


“오! 저 우렁찬 소리는 웅이로구나! 다들 이쪽이다! 빨리 움직여!”


사람들이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진다. 그에 하스트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제 때 오셨네. 생각해보니 지금은 너만 문제가 아니지. 우리도 빨리 안전한 곳에서 몸을 돌봐야 해.”


아직 불안한 점은 많지만, 지금은 우선 파괴자의 파괴와 카를의 생존을 축하하기로 한다. 축하는 도깨비 마을에서 전력으로 도와줄 것이 분명하다.


“그럼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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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 행방불명 (2) 19.01.24 113 2 10쪽
114 행방불명 (1) 19.01.23 163 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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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위대한 방관자 19.01.21 147 2 9쪽
» 예정된 죽음 (7) 19.01.19 163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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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 예정된 죽음 (3) 19.01.15 157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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