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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몽객 님의 서재입니다.

까페 출입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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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몽객
작품등록일 :
2013.06.06 06:25
최근연재일 :
2018.03.11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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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9,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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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04,083

작성
17.11.30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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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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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글자
13쪽

요정의 장난 1.

DUMMY

“……그 어제 이곳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던 그놈 말입니다.”

“아, 걔 이름이 볼라바드였어?”

“…….”

“찾을 수 있겠냐?”

“찾을 수는 있지만…….”

‘안 찾아도 무력부대를 데리고 복수한다고 돌아올 거 같은데요.’ 타르찬은 뒷말을 삼키며 준영의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준영은 타르찬의 시선을 오해했는지 다른 말을 꺼냈다.

“걱정하지 마. 넌 그래도 노력이라도 했지, 그놈은 내 까페를 엉망으로 만든 데다 도망치기까지 했으니 괘씸죄까지 더해서 보상금은 그놈한테만 받을 거야.”

슬쩍 짜증이 담긴 준영의 목소리에 타르찬은 냉큼 꼬리는 내리며 엎드렸다. 일족의 장로가 어째서 제13인간계만은 절대 가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는지 이제야 이해했다. 물론 자신은 시대의 반항아라 그런 장로의 말을 콧방귀를 뀌며 무시했고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었다.

그때 형체만 남은 문이 열리며 검은색 오피스룩을 쫙 빼 입은 여인이 안으로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마이너스 그룹 외판 사업부 소속 제13영업부 부장 자운희라고 합니다.”

트리시아와 타르찬은 마이너스 그룹이란 소리에 놀란 표정으로 여성을 바라보았다. 마계와 자유동맹으로 양분된 차원계에서 제 삼 세력으로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거대세력이 바로 마이너스 그룹이었다.

그런 마이너스 그룹의 영업부장이라면 전력이 약한 차원에선 외교대사급으로 대우할 정도로 꽤 끝발 있는 신분이다.

“우리 어디서 본 적 있나요?”

물론 그런 거에 관심 없는 준영은 꽤 낯익은 여성의 얼굴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준영의 반응에 운희는 양손을 허리에 척 올리고 눈을 가늘게 뜨며 준영을 향해 소리쳤다.

“아저씨, 내가 신간은 다 봤으면 빨리 반납하라고 했죠!”

그 소리에 준영은 운희가 누군지 깨달았다.

“아! 만화방 알바! 이야, 이거 신기하게 여기서 만나네?”

세상 참 좁다던 옛말이 틀린 게 없다 싶어 준영은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운희를 향해 말했다.

“알바 그만두고 취직한 거야? 그런데 벌써 부장이야? 이야, 출세했네?”

준영의 말에 운희는 뻐기듯 풍만한 가슴을 자랑하며 말했다.

“훗. 제가 좀 능력이 돼요.”

“그런 거야? 안 그래도 밥 먹고 전화하려고 했는데 진짜 대단하다.”

돈이면 안 되는 게 없단 옛 용병 동료의 말에 따라 일단 업체를 불러 청소와 인테리어를 다시 하려 했던 준영은 부르기도 전에 먼저 찾아오는 서비스에 이래서 영업직은 아무나 못하는 거구나 하며 감탄할 때 운희는 다시 비즈니스로 돌아와 정중한 태도로 꾸벅 허리 숙이며 준영에게 한 장의 봉투를 내밀었다.

“블러드 대공께서 어제 있었던 불미스러운 일에 대한 사죄의 편지를 보내셨습니다.”

운희의 말에 트리시아와 타르찬, 나비렌은 전부 새파랗게 질린 안색으로 덜덜 떨며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준영을 바라보았다.

마계 대공의 이름은 절대 가볍지 않다. 그런 마계 대공이 몸소 찾아온 건 아니라지만 마이너스 상단의 이름을 빌려 사죄와 보상을 하겠다고 하다니.

“블러드?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이름인데…….”

준영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기억을 떠올리려 하자 트리시아가 간신히 떨리는 음성을 부여잡고 말했다.

“브, 블러드 공작은 마계 대공으로 볼라바드가 섬기는 군주입니다.”

보통 RPG 게임에 등장하는 영웅에게 잡히는 마왕이 따지자면 마계 귀족, 그것도 하급인 남작이나 자작급이다. 그러니 마계 대공쯤 되면 언터처블. 인간계 하나의 힘으론 감히 대적조차 못하는 코스믹 호러급이다. 그런 마계 대공이 자신이 잘못한 것도 아니고 부하가 엮인 일인데 먼저 나서서 사과와 배상을 하다니. 트리시아의 상식으론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때 준영은 기억이 났다는 듯 손뼉을 쳤다.

“아! 생각났다. 밥보다 피가 더 맛있다는 미친놈이었지, 아마?”

“……예. 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죠.”

놀라움을 넘어 황당해지자 되레 허탈해진 트리시아가 맥 빠진 목소리로 대꾸하자 준영은 이제야 이해가 간다는 듯 감탄한 표정으로 말했다.

“부하 직원이 잘못했으니까 상관이 책임진다는 거네? 이야, 모기 새끼도 아니고 피가 더 좋다는 미친놈이라 상종을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봐야겠어.”

책임과 의무는 저버린 채 권리만을 누리려던 상관을 많이 겪어 보았던 준영인지라, 아무리 미친놈이라지만 부하의 잘못을 책임지는 상관으로서의 자세가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준영 님은 블러드 대공을 어떻게 알고 계십니까?”

“나? 용병 일 할 때 몇 번 봤어.”

대수롭지 않게 대꾸하는 준영의 태도에 트리시아는 자세히 묻고 싶은 마음이 산더미 같았으나 준영은 운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피해보상도 해 주는 거야?”

“그럼요. 실물 보상은 물론이고 정신적 피해 보상과 영업 중단에 따른 피해, 거기에 사죄의 뜻으로 배상금까지 지불하겠다고 했어요. 아. 물론 이번 사태를 일으킨 볼라바드에겐 철저하게 응징을 하겠다는 약속도 했고요.”

“보상을 해 준다면야, 뭐.”

다친 사람은 아무도 없고 가게를 엉망으로 만든 놈까지 혼내겠다고 하니 준영은 책임 있는 태도를 보이는 블러드의 행동이 마음에 들어 선선히 승낙했다.

“그런데 이거 많이 망가졌네요. 견적이 좀 나오겠는데요.”

준영이 승낙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눈을 반짝이며 까페 내부를 둘러보던 운희는 계산기를 꺼내 타닥타닥 두들기기 시작했다.

“많이 나올 거 같아?”

“그럼요. 일단 부서진 가구류랑 기타 등등은 물론이고 재구입 비용에 인테리어까지 다시 해야 하니까요. 거기에 재공사로 인한 영업 기간 손실에 따라 발생할 손해들과 정신적 손해배상에 배상금까지 합치면 꽤 쏠쏠할 거예요. 저 한번 믿어 보세요.”

씨익 의미심장하게 미소를 보내는 운희의 자신만만한 태도가, 마치 ‘호구 하나 잡았으니 탈탈 터는 게 예의 아니겠습니까?’ 하는 음성이 들려오는 거 같았다.




#



과연 마이너스 그룹이란 감탄이 나올 정도로 파견된 인부들은 단 하루 만에 준영의 마음에 들 정도로 모든 일을 해치워 버렸다.

트리시아는 이곳 제13인간계의 자세한 법칙은 모르지만, 준영처럼 장사했다간 망하기 딱 좋다는 건 안다. 그래도 어차피 손님 바라고 시작한건 아닌거 같으니 시간은 남아돌아야만 했다.

“저, 저기…….”

“자, 차 한잔하세요.”

“감사합니다.”

정장을 쫙 빼 입고 꽃다발을 든 채 전장에 나가는 병사처럼 각오 어린 표정으로 성큼 까페 안으로 들어왔던 청년은 트리시아의 말 한마디에 눈이 흐리멍덩하게 풀린 채 힘없이 소파에 앉아 스틱커피가 담긴 종이컵을 홀짝였다.

까페 출입 금지를 드나드는 가장 큰 단골손님들은 바로 배달부들이다. 준영 혼자 있을 때야 비웃음의 대상에 불과했으나 트리시아가 등장하자 진짜 손님으로 드나들기 시작했다.

“저자도 끝난 건가?”

“예. 더 이상 귀찮게 구는 일은 없을 거예요.”

“으음…… 안타깝구나. 그 족발이란 음식이 참 맛있었는데.”

나비렌이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며 중얼거리자 근처를 어슬렁거리던 타르찬도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이래선 끝이 없겠네요.”

트리시아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자화자찬하는 건 아니지만 요정종은 이상하게 인간종에게 인기가 많았다. 모든 것이 연구 대상인 상아탑의 현자들이 이 특이 현상을 연구할 정도였으나 결국 취향 차이라는 결론만 내렸다.

덕분에 음식 배달 왔다가 트리시아에게 반해 선물이라며 자기 가게의 음식들을 가지고 와 친분을 쌓으려는 배달부들 때문에 트리시아만 곤란했다. 물론 나비렌과 타르찬이야 좋아했지만.

트리시아도 공짜로 음식을 준다는 데 마다할 이유는 없어 감사히 먹다가 배달부들이 낌새만 보이면 기억 장애와 인식 변환을 사용해 배달부들의 기억에서 자신의 존재를 지워 버렸으나 그것도 한두 명이지. 소문이 퍼져 트리시아의 미모를 구경하겠다고 찾아오는 사람도 많아져 별 효과가 없었다.

“준영 님.”

“음?”

“배달 음식만 먹는 건 건강에 안 좋다고 들었습니다. 앞으로 식사는 제가 책임져도 될까요?”

트리시아의 말에 준영도 그런 말은 들어 본 적이 있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

“그럼 오늘 저녁부터 준비하겠습니다. 특별히 뭔가 드시고 싶은 게 있으신가요?”

“그런데 밥 잘해?”

“그럼요. 제가 나름 신경 써서 공부한 게 요리 관련 분야랍니다.”

은근히 자부심이 묻어 나오는 트리시아의 태도에 준영은 아무렴 어떠랴 싶어 말했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치킨이나 시켜 먹을까?”

“……종류별로 시킬까요?”

아무리 요리를 잘해도 치킨의 위력 앞에선 어쩔 수 없었다.


* * *


“이봐, 아가씨, 잠시만 기다려 봐.”

트리시아는 자신의 손을 낚아채려는 움직임을 피하곤 멀찍이 물러서며 말했다.

“죄송합니다만 그럴 수는 없습니다.”

“에헤. 잠깐 얘기만 하자니까. 아가씨 한 달에 얼마 벌어? 내 밑에서 일할 생각 없어? 아가씨 정도면 한 달 천 이상은 보장한다니까?”

“생각 없습니다.”

“에이, 그러지 말고 얘기만 들어 보라니까.”

“…….”

트리시아는 끈질기게 들러붙어 건들거리는 남자를 곤란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역시 외부로 나가선 안 됐던 걸까? 준영의 존재 덕분에 걱정 없이 나비렌을 맡기고 홀로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들러붙은 한 남자가 정말 끈덕졌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거부하겠습니다.”

“여기 까페에서 일하는 거 같은데 잘됐네. 얘기나 좀 들어 보라고.”

말릴 새도 없이 벌컥 문을 열고 까페 안으로 들어가는 남자를 보며 트리시아는 후회했다. 길에서 쫑알거릴 때 처리할 걸 마계의 수작인가 싶어 경계하다 기어코 까페까지 쫓아오게 만들었다.

인간이 자신을 이렇게까지 피곤하게 만드는 것도 참 오랜만이다. 다른 차원의 존재를 숨기고 있는 제13인간계의 특성상 어쩔 수 없다지만 이 정도로 찝쩍거리는 놈은 알아서 처분해도 아무런 재제를 받지 않는다. 오히려 제13인간계의 차원 관리자 격인 0과가 알아서 뒤처리를 해 줄 터였다.

다만 허가받지 않고 진입한 데다 준영에게 보호를 청한 처지다 보니 저 모가지를 꺾어 버렸다간 준영이 곤란해질까 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아직 영업 전입니다. 나가세요.”

남자를 뒤따라 안으로 들어간 트리시아가 굳은 목소리로 경고했으나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까페 내부를 둘러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휘유! 여기 멋진데? 이런 곳이 다 있었네.”

트리시아는 참을성이 부족한 요정종 중에서 특이하게 인내심이 강해 하나의 지파를 책임지는 자리에 오른 만큼 극도의 인내심을 발휘하며 남자에게 다시 한 번 경고했다.

“마지막 경고입니다. 나가세요.”

“에이, 너무 그러지 말고 커피 한잔만 하자고.”

들은 척도 안 하고 대충 소파에 앉으려는 남자의 목덜미를 향해 트리시아의 손이 날아갔다.

“컥!”

“확 모가지를 뽑아서 만두로 만들어 버릴까 보다. 사지를 잘라 벌레처럼 꿈틀거리게 만들어 버리기 전에 조용히 꺼져라.”

트리시아의 손에 이끌려 까페 밖으로 내동댕이쳐진 남자가 잠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허둥대다 곧 상황을 깨닫곤 시뻘게진 안색으로 트리시아를 향해 소리쳤다.

“이년이! 예쁘장하다고 해서 좀 봐줬더니만!”

“요정의 장난은 당하는 입장에선 민폐지.”

“뭔 헛소리야, 이년아!”

난데없는 말에 인상을 구기며 욕설을 퍼붓던 남자는 트리시아의 서늘한 시선과 마주치자 눈빛이 흐리멍덩하게 변하며 입을 다물었다. 그런 남자를 향해 트리시아는 선언했다.

“넌 앞으로 평생 독신으로 살며 모든 여자들이 널 싫어하게 된다. 장난을 끝내기 위해선 널 아무 조건 없이 받아 주는 진정한 사랑을 만나야 하며 그 대상의 성별은 남자로 한정한다.”

트리시아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남자는 휙 몸을 돌리더니 터덜터덜 힘없는 발걸음으로 멀어져 갔다. 그 뒷모습을 보며 트리시아는 아차 싶었다. 결국 못 참고 일을 벌였다. 요정종의 권능을 사용했으니 제13인간계의 차원 관리자들이 자신의 존재를 알아챌 거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언제부터 요정이 앞뒤 따지면서 행동했다고. 이럴 때만 요정이란 간판을 들먹이는 게 딱 요정의 무책임한 성격 그대로라는 걸 인지하지 못한 채 트리시아는 가뿐하게 다시 까페 안으로 들어갔다.

“아, 일어나셨나요? 곧 아침을 준비할 테니 씻으세요.”

“으음. 알겠다.”

활짝 웃는 트리시아의 미소에 나비렌은 목격해선 안 될 무언가를 목격해 버린 사람처럼 화들짝 놀라며 냉큼 화장실로 달려갔다. 그사이 트리시아는 아침을 준비하기 시작했고 골방에서 준영이 부스스한 머리를 긁적이며 나왔다.

“곧 아침 식사 준비는 끝나는데 씻고 드시겠어요? 아니면?”

“먹고 씻지, 뭐. 냄새가 좋네. 메뉴가 뭐야?”

“만둣국입니다.”

“히익!”

트리시아의 말에 씻고 나오던 나비렌이 곱게 빗은 털을 바짝 세웠다. 영문을 모르는 준영은 그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리다 아무렴 어떠랴 싶었다.


작가의말

늦어서 죄송합니다. 재미나게 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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