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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헤라

주먹 한방 최강 검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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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헤라
작품등록일 :
2022.10.27 17:34
최근연재일 :
2022.11.26 21:14
연재수 :
23 회
조회수 :
4,295
추천수 :
366
글자수 :
141,314

작성
22.11.16 22:53
조회
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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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014

DUMMY

#014


***[주인공]***


신관이 인자한 얼굴로 미소 지었다.


"저희 신전은 이 세상을 낳으신 어머니신을 모시고 있습니다. 때로 인간과 수인을 가르고 상대를 비방하거나 미워하는 자들이 있지만 그것은 잘못이지요. 우리는 모두 어머니신의 자식, 형제입니다."


지금까지는 나를 두려워하는 사람뿐이었지만, 이 세상에는 수인을 경멸하거나 적대시하는 자도 있는 모양이다.

하긴 같은 인간끼리도 그런 사람이 수두룩한데, 종이 다른 존재를 아무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고 평화로우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거겠지.

그나저나 신관하고도 말이 통하는구나.

뭐, 당연한 일인가.

돈 받고 통역 능력을 주는 곳에서 그걸 못하면 말이 안 되지.

신관이 거룩해 보이는 미소를 띠며 말을 이었다.


"우리 신전은 여러분의 기부금을 받고 있습니다. 아무리 작은 것, 적은 금액이라도 상관하지 않습니다. 어머니신께 바치는 거라면 길가의 돌멩이도 금화보다 소중한 것이지요."


말은 번드르르하지만 진짜로 돌멩이를 가져오면 차갑게 내쫓겠지.

그런 장면을 문득 떠올리고, 나는 피식 웃었다.

그나저나 기부라.

메뉴판까지 만들면서 통역 판매에 열을 올리는 신전이지만 나름대로의 체면은 차리는 모양이다.

신관은 부드럽게 웃으며 메뉴판을 내 얼굴에 바짝 밀었다.

나는 남보다 키가 머리 두 개 이상 크기 때문에 눈앞까지 내밀기 위해서는 두 팔을 위로 쭉 뻗어야 한다.

팔이 굉장히 아플 것 같은데 그래도 열심히 메뉴판을 내밀고 있는 걸 보면 내가 자신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신관이 내 옆에 있는 섭외담당에게 은근하게 눈짓했다.

설명하라고 재촉하는 것 같다.

시선을 메뉴판으로 옮기자, 알아볼 수 없는 글자와 익숙한 숫자가 눈에 들어왔다.

아라비아 숫자다.


'다행이다.'


이집트나 티베트 숫자처럼 생겼으면 어쩔 뻔했어.

적어도 숫자만이라도 알아볼 수 있으면 사기당할 염려가 조금 줄어든다.

고마운 일이다.

메뉴판의 숫자는 수백부터 수십까지 적혀 있었다.

아니, 천 단위도 있구나.

단위는 모두 같은 글자였다.

섭외담당의 말에 따르면 이 나라에서 기본적으로 사용하는 화폐 단위는 '리라'라고 하니, 아마 여기 적힌 글자가 리라일 것이다.

통역 이야기만 들었기 때문에 몇 가지 안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다른 축복도 하는지 메뉴가 생각보다 많다.

메뉴판은 얇은 나무판 같은 것을 몇 개 묶어 만들었는데, 빈 줄이 거의 없을 만큼 빡빡하게 적혀 있었다.


"저희 신전에서는 기부하시는 분들을 위해서 다양한 축복을 내릴 수 있도록 항상 노력하고 있습니다. 다른 신전에서는 불가능한 축복도 저희 신전의 신관들은 오랜 노력과 경험, 그리고 신앙으로 충분히 가능합니다. 나중에라도 필요한 축복이 있으면 언제든지 와주세요."


신관이 다시 한번 메뉴판을 내 얼굴로 바짝 밀었다.

팔을 한 번도 내리지 않고 올리고 있는 걸 보면 확실히 노력하고 있는 것 같다.

적어도 팔을 단련하기 위해서 상당한 시간이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소용없는 일이다.

아무리 메뉴판을 눈앞에 내밀어도 나는 글을 읽지 못한다.

섭외담당이 뭔가 말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입을 꾹 다문 채 조용히 서 있었다.

처음 신전에 들어와 메뉴판에 대해 설명하면서도 굉장히 소리를 작게 냈고 행동도 점잖고, 생긴 건 사기꾼 같고 실제로도 약간은 사기꾼 같은 행동을 하지만, 의외로 신앙심이 깊은 사람일지 모르겠다.

나는 메뉴판을 손톱으로 살짝 잡아 밑으로 내렸다.


"죄송하지만 저는 글을 읽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들과 말이 통하는 축복을 받고 싶은데, 기부는 얼마를 하면 좋을까요?"


신관의 얼굴에 거룩할 정도의 미소가 떠올랐다.


"그러시군요. 신자님께서 원하시는 통역의 범위가 어떤지가 중요합니다. 종이 다른 수인끼리의 통역이면 적은 기부금으로도 상관없지만, 인간과 수인 모두와 대화가 가능한 걸 원하신다면 이렇게... 금액이 올라가지요."


신관이 한 손으로 메뉴판을 받치고 다른 손으로 숫자를 짚었다.

250.

내가 가지고 있던 발톱은 1금화, 120리라에 팔았으니, 그것보다 금액이 두 배 이상 높았다.


"...."


과연.

우리 마을에 출입하던 늑대수인이 통화 축복을 받을 수 있는 행상인은 적다고 말한 이유가 있었구나.

단순히 도시나 이곳의 물가가 비싼 걸 수도 있지만, 신관의 미소가 깊어진 걸 보면 높은 금액일 거다.

그러고 보니 섭외담당과 함께 있던 수인도 검투사 출신이라고 들었는데 말이 통하지 않았다.

확실히 이건 평범한 사람이 내기 어려운 금액일 것이다.

신관은 내 표정을 보면서 다시 말을 이었다.


"하지만 방금 말씀드린 건 정말 말만 통하는 수준의 통역입니다. 제대로 통역되지 않는 단어가 상당수 있을 수 있고, 문법도 다소 엉망이 됩니다."


설명을 들어보면, 경우에 따라서는 주어 동사 모두 빼고 단어만 통역해 주는 수준인 것 같다.

신관이 정중하게 말을 끝낸 뒤 내 표정을 살폈다.

내 얼굴이 불만스러운 걸 깨달았는지 다시 말을 잇는다.


"기부금액을 조금만 더 높이시면 더 높은 수준의 축복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상대가 하는 말의 의미는 거의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죠."


신관의 손가락이 몇 줄 위에 있는 금액으로 이동했다.

430.

어이, 이건 조금 높은 금액이 아니잖아.

신관의 얼굴에 미소가 떠오른다.


"하지만 이 수준에 만족하지 못하신다면 더 신력이 높은 신관에게 축복을 받으셔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상대의 말을 정확하게 자신이 아는 내용으로 통역해주죠."


신관이 가리킨 금액은 1500리라였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신관의 말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이것보다 더 높은 수준의 축복을 받으시면 더 고급스러운 대화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거의 완벽하게 자신이 아는 말로 통역이 되죠. 왕족이나 귀족과의 대화에서도 내가 하는 말이 상대방 수준에 맞는 단어로 대체됩니다. 당사자가 하는 말 이상의 내용으로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단어는 조금 고급스러워지죠."


가격이 얼마인지 물어보기도 무섭다.

열이 담긴 눈동자로 나를 올려다보며 신관이 말했다.


"물론 이건 아는 것이 너무 적은 사람의 경우에는 별로 효과가 없습니다. 모르는 지식을 끌어내주는 축복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신자님처럼 이지적인 분의 경우에는 확실하게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금액은 다소 높습니다만,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신관의 손가락이 가리킨 금액은 3200 이었다.

진짜냐.

가난한 농민이 일 년에 120리라밖에 못 번다는데 통역이 이렇게 비싸다니, 같은 세상인 거 맞아?

잠자코 있던 섭외담당이 입을 열었다.


"검투장과 계약하시면 모자라는 비용을 지원해 드립니다. 처음 검투사를 시작할 때는 필요한 것들이 많지요. 무기와 갑옷도 필요하고, 숙소와 식사대라든가 청소, 빨래라든가, 정말 소소한 데에도 돈이 들어가요. 하지만 처음부터 돈을 충분히 가지고 계신 분은 매우 드뭅니다. 그래서 저희 검투장에서는 그런 분들을 위한 지원을 하고 있어요."


섭외담당이 나를 보고 빙그레 웃었다.


"당연히 통역도 지원해 드립니다. 강한 검투사에게는 후원자가 붙을 가능성이 큽니다. 당연히 고귀한 여성분과 접촉할 기회도 많지요. 당연히 높은 수준의 통역이 있으면 좋습니다."


섭외담당이 조용히 내 손을 잡았다.


"레오씨, 나는 당신이 엄청난 검투사가 될 거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나에게 당신을 키워 높이 올라갈 수 있게 지원할 기회를 주세요."


신전이라 경건한 마음을 품고 조용한 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다.

단지 이 말을 할 기회가 올 때까지 기다렸던 것 같다.


"...."


공짜로 지원해 준다면 마다할 이유는 전혀 없지만.

나는 섭외담당에게 잡힌 손을 빼고 물었다.


"대출인가요, 아니면 무상 지원인가요?"

"...."


섭외담당이 몇 번 눈을 깜박이더니 중얼거렸다.


"정말 당신은 나를 놀라게 합니다. 진짜 수인 같지 않아요."


섭외담당은 어깨를 조금 움츠리고 히죽 웃더니 뻔뻔한 얼굴로 말했다.


"저희는 직접적으로 돈을 건네는 일은 하지 않고, 검투사 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대신 납부하는 형식입니다. 저희가 납부한 금액의 30%를 이자로 받고 있지요. 설명할 겸 해서 말씀드리면, 대금업자한테 가는 경우에 40에서 50%의 이자는 흔해요."


나는 인간 사회에 나오면서 사기꾼을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다른 것 같다.

이 세계 자체가 사기꾼이다.

검투장 주인은 변경백이다.

한데 변경백이라는 영주가 버젓이 30%의 이자를 받고, 대금업자도 숨어서가 아니라 대놓고 간판을 내거는, 그리고 50%라는 이자를 받는 세상.

이게 사기꾼이 아니면 뭔가.

이런 식으로 지원을 받으면 결국 그 금액을 갚지 못해서 검투장을 떠나지 못하게 될 거다.

근데 그게 합법적인 세상이다.

이 세계 자체가 날강도야.

생각해 보면 나도 환생 트럭이라는 말도 안 되는 걸로 이 세계에 왔고, 게다가 준다던 가호는 뭔지도 모르겠고, 인간 아닌 리자드맨 환생이고, 신부터가 날강도 사기꾼이네.

불합리한 세상에 혼자 속으로 화내고 있는데 신관이 다시 입을 열었다.


"신자님, 어떤 축복으로 하시겠습니까?"

"...."


하아.

어쩔 수 없지.

어쨌든 통역은 필수다.

나는 묵묵히 메뉴판을 노려보았다.

당장 필요한 수준만을 생각하면 인간과 수인한테 말이 정확히 통하면 그만이고, 더 욕심 내봐야 1500리라짜리면 충분하지만, 검투사로 유명해져서 귀족 아가씨가 나를 좋아해 만나러 올지도 모른다.

그런 경우에 조금이라도 호감도를 높이려면 높은 수준의 통역이 필요하지 않을까.

물론 그런 일이 일어날 확률은 별로 없다, 랄까 없을 거다.

안다.

알고 있어.

하지만 그래도 혹시나, 라는 게 있으니까.

나는 잠시 고민한 뒤 입을 열었다.


"3200리라짜리로 받고 싶습니다만,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길드에 가서 마력석을 돈으로 교환한 뒤에 다시 오...."


내가 말하는데, 신관이 메뉴판을 들지 않은 손으로 덥석 내 팔을 잡았다.


"신자님. 저희 신전은 마력석도 받습니다."

"...."


신전을 나간 뒤에 마음이 바뀌는 사람이 많은 지도 모른다.

신관의 미소에 한 번 잡은 손님은 절대로 놓치지 않는다는 각오가 보이는 것 같았다.


"마력석의 양이 많으시면 길드 직원을 이곳으로 불러올 수도 있습니다. 길드가 바로 옆에 있으므로 이 자리에서 길드 일을 모두 보셔도 됩니다. 간혹 그런 분이 계시기 때문에."

"...."

"이곳으로 출장 오는 사람은 평직원이 아니라 길드 마스텁니다. 감정을 담당하는 직원은 길드에 머물러야 하니까요. 마스터라고 하면 감정을 속이거나 하지 않고, 믿을 수 있습니다."

"...."

"모험가 길드와 상인 길드, 원하시는 곳 어디라도 상관없이 마스터를 불러드리겠습니다."


박력에 졌다.

나는 고개를 약간 내렸다.


"그럼 상인 길드로 부탁드립니다."


마력석은 대부분 마도구에 사용된다고 들었다.

마도구를 판매하는 상인들은 상인 길드에 속해 있다고 하니 그쪽에 판매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내 말이 떨어지자 근처에서 지켜보던 어린 신관이 밖으로 뛰어나갔다.


"신자님, 길드 마스터는 금방 올 겁니다. 잠시 앉아서 차라도 한 잔 드시면 어떨까요?"


신관이 기쁜 얼굴로 안쪽 자리에 안내한다.

안쪽에 놓인 탁자에는 은은한 허브향이 풍기는 차가 이미 놓여 있었다.

주위에 있는 신관들의 얼굴이 모두 싱글벙글이다.

역시 3200리라나 주고 통역 축복을 받는 사람은 드문 것 같다.

탁자에 놓인 의자는 신관의 것보다 조금 컸다.

수인용 의자인 것 같다.

하지만 내 몸을 버틸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조금 불안해 보였다.

나는 보통 수인보다 몸이 크기 때문에 무게도 많이 나간다.

내가 앉지 못하고 서 있자 신관이 빙그레 웃으며 자리를 권했다.


"괜찮습니다. 이 의자는 신의 축복이 걸려있는 것이라서 쉽게 부서지지 않아요."


내가 의자에 앉자 신관은 소중히 품에 안고 있던 메뉴판을 다시 내밀었다.

손가락으로 숫자를 짚으면서 말한다.


"저희는 가구는 물론 무기나 갑옷에도 축복을 내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무기나 갑옷의 효과는 조금 미미한 편입니다. 그러나 가구 쪽은 저희가 특히 자신 있는 부분이에요. 이쪽만큼은 왕국 전체를 통틀어 저희보다 잘하는 신전이 없습니다. 신자님처럼 건장하신 분은 가구 때문에 멀리에서도 종종 방문하시지요. 가구의 크기가 클수록 기부금이 조금씩 높아집니다. 그리고...."


아주 쓸모없는 축복은 아닐지 모른다.

갑옷이나 무기 혹은 가구 같은 게 튼튼해지면 좋겠지.

하지만 들어보면 그 효과가 극적으로 큰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몇천 리라에서 몇만까지 내야 한다면 그건 돈을 땅바닥에 버리는 수준이 아닐까.

나는 길드 마스터가 올 때까지 신관의 가구 이야기를 계속 들었다.

신발이 튼튼해지는 축복도 있었지만, 내가 맨발인 걸 보고 신관은 다른 걸로 말을 돌렸다.

근데 신발 튼튼해지는 축복이 1000리라라는 건 정말 사기 수준인 것 같아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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