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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erior Strug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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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개
작품등록일 :
2013.01.31 09:36
최근연재일 :
2021.11.10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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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3,856

작성
14.05.09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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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11. 시작과 끝이 교차할 때. (4)

DUMMY

소렌과 재회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그동안은 아무런 일도 없었다. 너무 한가해서 오히려 따분할 정도였다. 소렌은 늘 바빠 보였고 저택에 머물고 있는 군인들은 은연중에 나를 경원시하고 있었기에 그들과 친교를 나눌 여건도 되지 못했다.

그나마 종종 소렌이나 크리스가 종종 찾아오지 않았다면 나는 따분함을 못 이기고 무작정 엠펠로니아로 향했을지도 모른다.

“그랬다가는 혼나겠지?”

나는 하인이 가져다 준 식사를 우물대며 중얼거렸다. 제피온을 쓰러트리는 건 쉽다 하지만 그 이후가 문제다. 나는 이미 소렌 휘하의 군인이었고 내가 멋대로 움직여서 공공의 적이 되면 소렌의 처지가 곤란해진다. 그렇기에 나는 내키지도 안는 여유를 부리며 이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물론 이렇게 여유를 부리는 이유는 또 하나 있었다. 엘프의 여왕이 보낸다던 그녀의 아이가 곧 나를 찾아올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제피온을 쓰러트리는 데는 별 영향이 없겠지만 나는 굳이 그 만남을 기다리며 이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엘프와의 악연이 만들어낸 그 인연은 그날 밤 시작되었다. 느닷없이 왕궁에서 초청장이 온 것이다. 심지어 나와 소렌을 지목해서 말이다. 명목은 드래곤을 물리친 것을 기념하는 연회였지만 실제 목적은 그게 아닐 것이다.

“엘프 쪽에서 온 사절(使節)이 나를 만나겠다고 했단 말이지?”

다소곳이 앉아 나를 바라보며 소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직감이 현실이 된 순간이다. 그 엘프는 엘프의 여왕이 보낸 게 틀림없다.

“응. 조금 갑작스럽지만 그래서 오늘 열리는 연회에 참석해야 해. 거기서 엘프가 너를 만난 다음 연합과의 관계를 재고g 보겠다고 한 모양이야.”

내가 만약 여왕의 의중을 거스르지 않는다면 엘프는 나를 적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럴 생각이 없다. 나는 내 운명이 두렵지 않다. 엘프의 여왕이 무슨 걱정을 하든 나는 내 힘으로 모든 것을 헤쳐 갈 자신이 있었으니까.


그런 이유로 나는 왕궁으로 향하는 길에 올랐다. 아무래도 이 연회는 제법 큰 규모 벌이는 모양인지, 마치 건국제처럼 거리 이곳저곳은 축제 분위기가 한창이었다.

“평화롭네. 저쪽에선 아직 적이 우글대는데.”

현실과 동떨어진 또 다른 현실을 보며 나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조금 퉁명스러운 이 말은 어쩌면 몸을 꽉 죄는 이 옷 때문인지도 모른다.

“불편해?”

소렌이 서슴없이 내 가슴팍에 손을 뻗어 단추를 하나 풀어주며 묻는다. 그녀가 보기에도 내가 꽤 불편해 보인 모양이다. 나는 내친김에 소매의 단추도 느슨하게 만들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은. 이런 옷을 입어본 적이 없어서.”

생각해 보면 단지 오래 입지 않아서 불편한 건 아니었다. 분명 내 몸에 맞게 수선한 옷인데도 이렇게 불편한 건 다른 이유에서였다.

장신구만 주렁주렁 달려 있을 뿐 검 한 자루 찰 수 없는 예복의 모양이 마음에 안 들었다. 몸에 딱 맞는 탓에 팔을 움직이기 힘든 것도 마음에 안 든다. 그리고 내 주위를 둘러싼 평화로운 분위기가 이 옷을 더욱 불편하게 하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작 진짜 위협은 아직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고 있는데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이런 옷을 입고 있는 것이 너무나도 불편했다.

“앞으로는 많이 입게 될 거야. 그런 옷도.”

소렌이 많은 것을 담아 말했다. 그래, 앞으로 이런 분위기도 견뎌내야 하겠지. 만약 내가 평온하게 살 수 있다면 말이다.

“만약에 엘프가 날 마음에 안 들어 하면 어쩔 거야?”

문득 앞날에 대해 생각하다 나는 혹시나 하며 소렌에게 물었다. 영문은 모르겠지만 엘프의 여왕은 내가 만들어낼 평지풍파를 걱정하고 있었다.

또한 그건 제피온을 물리친 다음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번에 이 일을 매듭짓지 못한다면 나는 결코 엘프와 평화롭게 공존할 수 없을 거라는 예감이 든다.

“나는 그런 일은 없을 거라 믿어. 만약 그렇게 된다 해도...”

소렌은 깊고 푸른 눈으로 뚫어져라 나를 바라보더니 말을 이었다.

“나는 언제나 네 편이 되겠어. 설령 온 세상이 너를 적으로 돌리더라도.”

언제나 내 편이고자 하던 이가 하나 있었지. 토리나 볼마르그. 그러나 그녀는 내 운명을 견뎌내지 못하고 비참하게 죽어버렸다. 그렇기에 어쩌면 소렌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곧 도착합니다.”

왕실에서 파견된 마부의 말이 들려옴과 함께 창 밖에서 환한 불빛이 흘러들어온다. 해가 진 다음이었지만 왕궁은 해가 뜬것처럼 환한 조명을 밝히고 있었다.

소렌의 잘 다듬어진 황금빛 머리카락과 푸른 눈이 그 빛을 받아 찬란하게 빛난다. 마치 전설 속에 나오는 영웅처럼 보이도록.

그 순간 나는 그녀는 위대한 드래곤 슬레이어이자 폰테일이라는 이름을 이어받은 긍지 높은 검사답다는 걸 다시금 실감했다.

그리고 새삼 깨닫는다. 소렌은 발에 치일 정도로 넘치는 이들과는 다르다. 그녀는 이미 한번 내 운명이 가져온 혼란을 극복해냈다. 어쩌면 그녀는 유일하게 내가 가져올 혼란을 이겨낼 존재일지도 모른다.

아니, 확실하다. 그녀는 결코 쓰러지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 모든 것을 뛰어넘어 오롯이 선 절대자가 되리라 확신한다. 소렌 폰테일은 내게 그런 존재였다. 그건 내 힘이 더 강해진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만약에. 정말로 만약에 소렌에게 모든 걸 밝힌다면. 그녀는 내 답답한 상황에 대해 답을 내릴 수 있지 않을까? 수많은 죄악을 저지르고 오만가지 인연이 얽힌 내 처지에 대한 답 말이다. 만약 그게 된다면. 그렇게 도움을 받고 나서 나는.....

“표정이 왜 그래? 빛이 너무 밝은가?”

소렌이 창문을 닫으며 나직하게 묻는다. 그제야 나는 정신을 차리고 빛을 받아 조금 시려오는 눈을 껌뻑였다. 소렌이 고개를 갸웃하더니 내 이마며 볼을 슥슥 쓰다듬으며 말했다.

“얼굴도 조금 빨갛게 된 것 같은데 괜찮아?”

“....빛을 받아서 조금 뜨거워졌을 거야. 괜찮아. 아무 이상 없어.”

찬란하게 빛나는 소렌을 보니 꽉 죄여두었던 마음이 풀어진다. 단단하게 굳은 응어리가 풀리기 전에 나는 그것을 다시금 조여매고는 뜨거워진 얼굴에 대해 대충 변명을 해 두었다.

그러나 나 스스로에게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또 누군가에게 의존하는 실수를 범할 뻔 했다. 나는 그저 강한 힘으로 포장했을 뿐인 둔재다. 다시 마음이 나약해지면 다시는 되돌릴 수 없다.

그리고 더는 누군가를 내 일에 끌어들여서는 안 된다. 아무리 소렌이 대단하다 해도 그녀는 아직 나보다 약하다. 먼 훗날이라면 모르지만 지금은 결코 그녀에게 의존해선 안 된다. 내게 다가올 운명은, 여태까지 그랬던 것처럼 분명 내 힘에 필적하는 위험일 게 분명하다.

“도착했습니다.”

마부의 말과 함께 천천히 마차의 문이 열린다. 단호하게 스스로를 꾸짖던 나는 문이 열림과 함께 모든 고민과 번뇌를 뒤로하고 마차에서 내렸다. 지금은 현실의 일에 충실할 때다 고민 따위는 마차에 잠시 두고 내리도록 하자.


“얼마 안 걸리는데 굳이 마차로 와야 해?”

한밤중이 다 돼서야 도착하고 나니 문득 그런 의문이 든다. 차라리 직접 달려왔다면 진작 도착했을 텐데 왜 굳이 느린 마치 따위를 탔는지 모르겠다. 덕분에 쓸데없는 번외에도 시달렸고 말야.

“예법이자 규칙이니까. 정문을 통과할 수 있는 것 왕실에서 내려준 마차뿐이야.”

소렌도 마차를 탄 것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조금 심기가 불편한 말투로 그렇게 말했다. 나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게 아니라 그런지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진다. 괜한 투정을 부린다고 스스로를 꾸짖으려던 찰나였는데 말이다.

“그보다 그 팔. 정말 감추지 않아도 괜찮아? 괜히 시선을 주목받는 거 싫어하잖아.”

소렌이 축 늘어진 오른팔 소매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느새 주위의 시선은 아무것도 없는 오른팔 소매에 집중되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 상처를 숨길 생각이 없다. 소렌이 마련해 준 의수를 거절할 때 들었던 마음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그럼 들어가자. 내가 앞에 설게.”

소렌이 정문을 지나쳐 앞장서고 나는 얌전히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연회장 가까이 도착하니 그 근처에 잔뜩 모여서 웅성대는 이들이 보였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방명록에 이름을 적는가 하면 사소한 것들을 지적받으며 연회장에 들어갈 준비를 하는 이들이었다. 이거 또 시간이 걸리겠군. 나는 느릿한 마차에서 보낸 지루함을 떠올리며 내심 혀를 찼다.

“어서 오십시오 공작각하. 입실하셔도 좋습니다.”

과연 공작이란 지위는 과연 허투루 볼 것이 아니었는지, 조금 거만하게 사람들을 맞이하던 중년인이 소렌을 보고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손수 문을 열어준다.

그와 함께 좌중의 시선이 소렌에게, 그리고 내게 집중된다. 예민한 귀로 수군대는 소리가 그대로 들려온다. 이상한 외팔이라. 맞는 말만 골라서 하는군.

“폰테일 공작각하께서 입장하십니다.”

연회장 문을 지키던 젊은 하인이 우렁차게 외치자 커다란 문이 열리고 웅장한 음악 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소렌이 마치 개선장군처럼 당당히 안으로 걸음을 옮긴다.

그리고 나 역시 소렌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허리를 곧게 펴고 앞을 바라보고 걸었다. 비록 외팔이 개선장군이라 모양은 조금 빠지겠지만 별 수 없지.

“오오, 폰테일 공. 강녕하셨습니까?”

“여전히 아름다우십니다.”

소렌이 나타나자마자 나이 든 귀족들이 일제히 소렌에게 몰려 와 인사를 건넨다. 달콤한 입 아래 얼마나 날카로운 검이 숨겨져 있는지 없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소렌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그들의 인사를 받아주었다.

“그런데 그 뒤에 서 있는 자는 누구인지요? 설마 새로 고용한 호위병은 아니겠지요?”

“어허, 말씀 조심하시오. 폰테일 공이 무엇이 두려워서 호위병 따위를 왕궁까지 데려왔겠습니까? 그저 외팔이 말동무이겠지요.”

이제 보니 입에 묻힌 꿀까지 점점 사라지는군. 일국의 공작에게 취할 태도가 아니기에 내가 무언가 한마디 하려는 찰나, 소렌이 내 말을 가로막았다. 그리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인사를 마치고 저들로부터 멀어졌다.

“뭐야 저 작자들은?”

“오래 전부터 우리 가문과 반목하던 이들이야. 저들 중 콧수염을 기른 자가 크리스의 백부(伯父)인 림벨 후작이지.”

“그래서?”아는 사람의 혈육이니 방약무인한 태도를 방관한다는 걸까? 그러나 역시 소렌은 소렌이었다.

“별 것 아니라는 말이야. 기껏해야 전쟁이 끝난 다음 생길 이권을 노리는 한심한 자들이지.”

조금은 후련한 말투로 내뱉은 그 말에, 나는 저들이 들을 정도로 크게 피식 웃고야 말았다. 이에 저 귀족들은 약이 올랐는지 조금 노골적으로 내 예의며 폰테일의 위신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소렌은 묵묵히 그 광경을 방관하고 있었지만 나는 무척 배알이 꼴렸다.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함부로 입을 놀리는 게 무척 마음에 안 들었다.

[닥쳐.]

오직 저들이 들을 수 있도록 내공을 조절한다. 그리고 내 모든 기세의 살의를 담아 한마디를 던진다. 이에 흥겨운 음악이 들려오는 연회에 어울리지 않게 저들의 표정이 싸늘하게 식는다. 아니, 공포에 질린다. 그리고 저들은 이내 연회장을 떠나갔다. 그야말로 가소로운 꼴이다.

“이제 조금 조용한 것 같아. 고마워.”

소렌이 내가 한 짓을 알아챘는지 느닷없이 감사를 표한다. 정말로 별 것 아닌 일이었지만 말이다.




감상이나 비평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작가의말

오랜만에 조금 내용이 루즈하게 흘러가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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