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일조사천억 평의 땅 주인 (18)
# 십일조사천억 평의 땅 주인 (18)
찰칵! 찰칵! 펑!
셔터를 누르는 소리와 플래시 터지는 소리가 가득했다.
아이고야,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
세계 각국의 기자들이 각자의 언어로 마구잡이로 질문을 던지고.
뒤늦게 검은 양복 차림의 남자들이 뛰어들려는 것을 경호원들이 막아선다.
무력으로 뚫고 나서려다 멈칫했다.
자신들을 향한 전 세계 기자들의 카메라 때문이다.
질끈 이를 악물며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비쳤다.
저거 중국 공안 놈들···이겠지?
아무리 막 나가는 중국이라지만, 기자들 앞에서 제 맘껏 날뛰긴 힘들 터다.
한쪽에서는 기자들의 질문 세례가, 다른 쪽에서는 경호원과 공안의 대치.
북새통이 따로 없구만.
하긴, 그럴 수밖에.
진 샤오밍이 기자회견을 한다라?
그가 무슨 말을 하건 간에 중국 정부로선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일 거다.
“그러게 주작은 적당히 했어야지. 크크.”
절로 웃음이 나왔다.
물론 신지애는 보내고 난 뒤였다.
디아나의 말(?)에 다급히 내린 축객령.
면접은 끝난 후라 최대한 부드럽게 말하고 내일 보자며 돌려보내긴 했지만, 적잖이 의아했을 터다.
어찌 됐건, 그녀를 돌려보낸 후, 소파에 반쯤 드러누워 스마트폰으로 진 샤오밍의 기자회견을 보는 중이다.
<중국 정부는 저에게 달의 주인이 되라고 강요했으며, 이를 위해 조작된 증거를···.>
- 진 샤오밍 씨! 그럼, 달의 주인이 아니라는 말씀입니까?
- 중국 정부라 함은 정확히 무얼 말하는 겁니까?
- 방금 강요라고 하셨는데, 혹시 대가성은 아니었나요?
- 증거를 조작했다는 사실! 확실합니까? 그럼 그 유물들은 다 뭡니까? 연대 측정도 조작한 겁니까?
진 샤오밍의 고백 아닌 고백이 끝나기 무섭게.
먹이를 노리는 하이에나 떼처럼 기자들이 달려들었다.
찰칵! 퍼펑! 찰칵!
쉴 새 없이 터지는 플래시 세례.
그 사이로 경호원들에게 막혀 차마 깽판을 치지 못한 공안···으로 보이는 정장 차림의 남자들은 으득, 이를 가며 진 샤오밍을 날카롭게 쏘아보았다.
그러더니 일제히 뒤로 물러났다.
이미 엎질러진 물을 주워 담을 수는 없으니까.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와씨, 진짜 디아나···.”
절로 터져 나오는 탄성.
대체 뭐냐고.
어쩜 이렇게 그녀가 말한 대로 딱딱 들어맞을 수가 있지?
물론 알고는 있었다.
마카오 쪽에서 진 샤오밍이 중국 공안인지, 첩보원인지 모를 이들에게 감금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자마자 세운 작전이다.
그 후의 얘기도 대충 들었지만, 진짜로 진 샤오밍을 구슬려 기자회견을 열 줄이야···.
하긴.
중국 놈들이 제시한 것보다 몇 배가 넘는 거액을 제시한 데다, 그가 필리핀에 몰래 숨겨놓은 처자식까지 들먹였다고 하던가?
뭐, 진짜로 어떻게 하려던 건 아니지만.
중국 쪽도 몰랐던 사실을 우리 쪽에서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위협이 되었을 거다.
거기에다···.
기자회견 후, 안전을 위해 완벽한 신분 세탁에 숨어 살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해주겠다고 했다던가.
그걸 진 샤오밍, 그놈이 믿을는지는 모르겠다만.
디아나라면 충분히 가능할 거다.
아니, 애초에 놈을 구슬린 것도 내 허락하에 대화 창(?)으로 제안을 한 것이었으니까.
캬, 그야말로 누구도 알아낼 수 없는 완벽한 보안망!
아무튼···.
띡!
실시간 중계 영상을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천천히 돌아서서 창밖을 내려다보자 낯선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강남 쪽과는 또 다른 풍경.
국회의사당의 모퉁이가 살짝 보이고.
그 앞에는 높다란 빌딩들이 휘황찬란한 빛을 뿌리고 있다.
도로를 가득 메운 차량은.
얼마 전 오픈한 유명 백화점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들어갔다.
줄지어 백화점에 들어가는 수많은 차량 사이로 제복을 입은 주차요원들이 이리저리 바쁘게 오가는 모습이 보였다.
한참 그걸 멍하니 보다 길게 하품했다.
“으하암···. 참··· 열심히들 산다.”
눈가에 맺힌 눈물 방울을 손등으로 훔쳐내며 말을 이었다.
“뭐, 남 말할 처지는 아니지만···.”
뭘 얼마나 산다고 저렇게 아등바등 사는 건지.
행운인지 조상의 공덕인지는 몰라도.
이번 일이 아니었다면 나도 저들 중 하나였을 터다.
하루하루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그래도 뭐, 지금은···.
“좀 나아진 거겠지?”
피식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창가에서 시선을 떼어냈다.
***
쾅!
커다란 소리와 함께 책상이 부서질 듯 부르르 떨렸다.
내려친 주먹의 아픔도 느끼지 못했다.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 얼굴이 시뻘게진 왕류메이가 으드득, 이를 갈았다.
그의 앞에서 고개를 숙인 채 첸춘은 눈치를 살폈다.
이내 귓가를 때리는 왕류메이의 엄한 질책.
“무슨 일을 그따위로 하는 건가!”
진 샤오밍.
달의 주인이 나서고, 중국 대륙에서 달을 볼 수 없게 된 시점에서 이미 폐기 처분이 결정된 사안이었다.
계획대로라면 진 샤오밍은 기자회견은커녕 그 존재 자체가 사라졌어야 했다.
지금쯤이면 어느 바다 심해에 가라앉아 썩어 가거나, 깊은 산속 구덩이에 파묻혀 거름이 되어야 했다는 소리다.
그런데.
“기자회견? 하! 진짜 미치겠군.”
혀를 차다 못해 입술까지 깨무는 바람에 왕류메이의 입에서 살짝 피가 흘렀다.
하지만 아무도 그런 것에는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대체 어쩔 텐가? 놈이 하나부터 열까지 다 나불거렸는데! 그것도 전 세계가 실시간으로 지켜보는 중에 말이야!”
수습 불가.
불길한 단어가 머릿속을 스쳤다.
“지, 지금이라도 역공작을···.”
콰앙!
더듬거리는 첸춘의 말을 잘라내듯, 왕류메이가 책상을 다시 한번 내리쳤다.
분노로 이글거리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첸춘을 쏘아보며 왕류메이가 맹수처럼 으르렁거렸다.
“역공작? 무슨 역공작?”
“······.”
할 말을 잃은 첸춘.
그를 씹어먹을 듯 노려보던 왕류메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금 놈에게 손을 댈 수는 없으니, 방법은 하나밖에 없겠군.”
“무슨 말씀이신지······?”
첸춘의 물음에 왕류메이가 대답했다.
“우린··· 속은 게야. 놈을 천하에 둘도 없을 사기꾼으로 만들어야 해. 무슨 수를 쓰든 놈의 설 자리를 잃게 만들란 말일세. 무슨 얘긴지 알겠나?”
움찔한 첸춘이 허리를 깊이 숙였다.
“무, 물론입니다.”
“혹 이번에도 실수를 한다면······”
말꼬리를 흐린 왕류메이의 서늘한 눈빛이 칼날처럼 첸춘의 심장을 꿰뚫는 듯했다.
***
<중국 정부는 조작 관련설을 부정······>
<진 샤오밍, 고대 미술품 위조범으로 밝혀져······.>
<칭화대 유물 감정 교수, 진 샤오밍에게 뇌물을 받아 결과를 조작한 사실이 드러나······>
진 샤오밍의 기자회견이 채 하루도 지나지 않을 무렵.
마치 기다렸다는 듯 반박 기사가 쏟아졌다.
중국 관영 방송에서도 외교부장이 나와 당국의 입장과 조작에 가담한 이들에 대한 처분에 대한 기자회견을 진행 중이었다.
- ㅅㅂ, 대체 뭐가 맞는 거냐?
- 진 샤오밍, 혼자서 그걸 다 조작했다고? 말이 됨?
- 보면 모르냐? 꼬리 자르기잖아. 중국 놈들, 클라스 어디 안 가네. ㅋㅋㅋ
- 날아오르라, 주작이여!!
- 진 샤오밍. 이제 뒤졌네. 걍 ㅈㅅ 추천.
- 나도 속았다! ㅅㅂ 진 샤오밍, 개새끼!
- 진 샤오밍, 조지러 갈 사람 모집합니다.
- 나! 1
- 나도! 22
- 이상 중국 놈들이었습니다. 댓글까지 주작이냐, 이 새끼들아!
- 댓글 하나에 얼마냐, 알바야? 나도 좀 소개시켜 주라!
인터넷 커뮤니티도 대폭발이었다.
명백한 의도적 방향성이 보이는 댓글 무리에게는 알바냐는 비아냥이 꼬리표처럼 뒤따랐다.
“와, 씨바. 이거 진짜! 크크크큭!”
절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코미디가 따로 없었다.
어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렇게 딱, 들어맞냐.
하여간 중국 놈들···.
뒤처리 확실하네.
<인간이란 원래 그런 거니까요. 한동안은 시끄러울 겁니다.>
디아나의 말에 나는 그저 낄낄거릴 수밖에 없었다.
배꼽 빠지는 줄···.
진 샤오밍이 혼자 다 뒤집어 쓰든 말든, 그런 건 아무 상관 없었다.
지들끼리 지지고 볶아 봤자, 해결될 문제가 아니거든.
그리고.
보복은 아직 시작도 안했거든.
기대해.
***
미국 캘리포니아.
일론 머스크는 막 서명을 마친 계약서를 조용히 갈무리했다.
종이 몇 페이지에 불과하지만, 일론 머스크에겐 황금보다 훨씬 가치가 높은 것이다.
계약 주체는 신생 회사인 JS 우주항공개발사.
일론 머스크가 아니라 이쪽이 갑이다.
“별다른 일이 없다면 프로젝트는 문제 없을 겁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죠.”
계약서를 서류 가방에 챙긴 최진수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일론 머스크도 웃으며 대꾸했다.
“제가 할 말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호의적인 관계를 유지했으면 합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다소 오만하고 제멋대로인 성격의 일론 머스크가 이리도 겸양을 떠는 이유는 하나다.
달의 주인.
그의 도움으로 그동안 골치를 아프게 하던 문제가 단숨에 해결된 탓.
그리고.
자신의 꿈을 실현 시켜 주겠다며 먼저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잡지 않는다면 멍청이일 것이다.
일론 머스크의 말에 피식 미소를 지은 최진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뒤따라 일어난 일론 머스크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최진수가 그 손을 맞잡자, 일론 머스크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런데··· 달의 주인은 대체 어떤 사람입니까?”
아, 그 새끼요?
노가다 뛰던 이혼 독거남···
······이라고 반사적으로 내뱉으려던 최진수는 입을 다문 채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곧 알게 되실 겁니다. 후후후.”
같은 시각 한국.
염병을 떠는 네 기운이 느껴지는구나, 진수야.
일론 머스크와 계약을 진행 중일 진수를 떠올리며 나는 히죽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대, 대표님. 정말 이대로 투자하실 건가요?”
서류 검토를 마친 신지예가 파리한 안색으로 질문을 던졌다.
“왜요? 불안해요?”
“그, 그게 아니라···. 여기 적힌 내용대로라면, 재정적자 수준이 76% 수준이라는 건데. 그 정도면 거의···.”
하긴, 첫 일거린데 똥 밟았다 싶겠지.
그래도 시키는 대로 하고 월급만 받아 가도 될 텐데···.
대표가 직접 진행을 지시한 일에 태클이라니.
성격도 좋은데 판단력과 강단도 겸비한 능력자네.
아, 회사가 망할 거 같아서 그런 건가?
하긴 막 회사에 들어왔는데 미래가 어두컴컴하다면 그럴 법도 하다.
그래도 무조건 해야 한다.
왜냐면···.
<성공 확률 98.932%입니다···.>
···라는 디아나의 장담 때문이다.
뭔가 묘하게 소수점 자릿수가 늘어난 거 같긴 하지만.
이젠 즐기는 건가?
디아나의 사악한 웃음소리가 들린 것 같기도 하다.
각설하고.
나는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거의 IMF 급이죠. 그 정도면.”
계획대로라면 국가신용등급 하락은 말할 것도 없고, 환율은 박살 나고 무역적자는 마이너스 확정.
사회가 무너지고, 경제가 박살나고······.
이 정도쯤 되면 중국은···.
파산선고라고 봐야겠지.
흐흐흐. 그러게.
누가 날 건드리라고 했나?
하지만, 이걸로 끝이라고 생각하면 섭하지.
내가 뒤끝이 좀 긴 편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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