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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송으노
작품등록일 :
2021.05.12 22:01
최근연재일 :
2021.05.14 07:00
연재수 :
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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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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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13 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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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단편 2 2화

DUMMY

나는 시선을 이리저리 두며 들어갈 만한 건물들을 찾았다. 몇 걸음 앞에 마켓 하나가 떡하니 있었다. 나는 최대한 빠르게 걸으며 그 마켓 안으로 들어갔다. 마켓 안으로 들어가도 사람들의 시선을 끌 수밖에 없었다. 몇몇의 사람들은 물건들을 고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마저도 내가 옆으로 지나가면 슬쩍 나를 볼 것이다. 마켓 문 밖에서 시위단들의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마켓 안으로 깊이 들어갔다.




‘어떡해야 하지?’나는 나지막히 생각했다. 일단 뭐라도 사야 할 듯이 마켓을 둘러보는 척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야 시위단이 이 마켓을 지나가는 동안에 점원에게 쫒겨나지는 않을 것 같다. 나는 마켓에 있는 식료품들을 지나가면서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살 의향은 없었다. 단지 사람들이 기계는 기름만 먹는다는 편견이 쌓여서인지 나한테까지 기름이나 먹으라는 말을 한다. 그런 편견을 좀 없애버리고 싶었다. 되도 않는 소리지만 말이다.




나는 어딘가에서 발을 멈췄다. 과일이 가지런히 쌓여 있는 곳이었다. 사람들은 내가 과일 코너에 멈춘 것을 보고는 놀란 듯이 웅성대기 시작했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고 과일 진열대를 보았다. 사과가 제일 많이 보였고, 그 다음으로 많은 것이 복숭아였다. 이상하리만치 복숭아가 먹고 싶어졌다. 몸이 이렇게 된 이후로는 복숭아를 먹은 적이 없지만 입 안에 침이 고였다. 나는 왼손으로는 복숭아를 들고 오른손으로는 청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어 남은 돈이 얼마인지 확인했다. 가격표를 보니 4000원이였다. 그것도 개당으로 말이다. 나는 애써 주머니 안에 있는 지폐들을 한 번에 집어 올렸다. 천 원짜리 다섯 장이 손에 들려 있었다. 나는 복숭아를 사기로 했다. 어차피 몇 달간 돈을 쓴 적이 한 번도 없기에 사도 될 것 같다. ‘어차피 돈은 별로 쓰지 않는데, 뭐.’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계산대 앞으로 걸어갔다. 사람들은 여전히 나를 보면서 웅성댔다. 신경이 거슬렸다.


계산대는 3개가 있지만 하나같이 줄이 늘어져 있었다. 나는 3개의 계산대 중 가장 오른쪽의 계산대에 줄을 섰다. 그 후로는 사람들은 내가 있는 계산대를 제외한 두 계산대에만 섰다.




내 앞으로 한 명만이 계산을 앞두고 있었다. 계산원은 ‘자본주의식 미소’를 띄며 내 앞사람의 물건을 계산하고 있었다. 세제와 샴푸 같은 생활용품들이었다. 내 앞사람은 지갑을 뒤적이며 돈을 찾고 있었다. 계산원이 계산을 끝내자 내 앞사람은 현금으로 값을 지불했다. 만 원짜리 세 장을 점원에게 주고는 계산한 물건을 봉투에 담아 마켓을 빠져나갔다. 이제 내 차례가 되었다. 나는 계산대에 비닐에 감겨 있는 복숭아를 내려놓았다. 그러자 점원은 내 얼굴을 보더니 표정이 찌그러져 있었다. 나 역시 점원을 바라보았다. 머리를 연한 노란색으로 염색한 남자였다. 딱히 어울려 보이진 않았다. 이름표에는 ‘정 완’이라는 글씨가 있었다. 이름마저 어색했다.


“어쩌지? 기계한테는 아무것도 팔지 않는데.”계산원이 비꼬듯이 말했다. 나는 한쪽 눈썹을 치켜들고는 오른손에 든 돈을 보여주었다.


“돈은 있는데요. 여기 사 천원 하고도 천원 더 있어요.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아직도 현금을 사용해?”


계산원은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지만 어이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나는 내 앞사람이 현금으로 지불한 것을 떠올렸다.


“제 앞사람도 현금으로 낸 것 같았는데요.”


점원은 썩은 표정을 지었다. 확실하다.


“그 사람하고 너하고 같아?”


“최소한 같은 인간 아닌가요?” 꽤 대담한 말대답이었다. 이 말 뒤에 어느 반응이 나올지 예상하지 못한 채로 홱 내뱉은 말이었다.


“너가 인간이라고? 하하 재밌네.” 계산원은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코웃음을 터트렸다. 다른 계산대에 있는 사람들도 이쪽을 바라봤다.




점원은 코웃음을 억지로 멈춘 뒤에 오른손 검지로 내 이마를 꾹꾹 밀어내며 말했다. “너는요, 인간이 아니라 단지 이젠 과거의 산물인 로봇이란 이름의 기계일 뿐이야. 단지 니가 천연기념물 같은 마지막 로봇일 뿐이라고.”




나는 지금 당장이라도 이 계산원의 손목을 잡아 비틀어버리고 싶었다. 사람들의 시선만 없었다면.


“빨리 계산이나 해줘요.” 나는 입술을 꽉 깨물며 말했다. 계산원은 오른손 검지로 내 이마를 누르면서 싫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계산원은 마지막으로 힘을 주어 나를 밀어냈다. 나는 한 발자국을 뒤로 뺄 수밖에 없었다.


내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를 것 같았지만 여기서 누구 한 명이라도 치는 순간 하는 순간 시위단이 나를 찾는 데에 기름을 븟는 격이다. 나는 마음속으로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오른손에 든 천 원짜리 네 장을 계산대에 두고 나머지 한 장은 청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천 원짜리 네 장 맞죠?” 나는 계산대에 내려놓은 복숭아를 들며 말했다. “그쪽이 계산한 것도 아니니 상관 없잖아요?” 마음 같아선 계산원의 얼굴에 주먹을 내리꽂고 싶지만 피로는 아직도 남아 있었다. 나는 애써 평안하게 말을 끝내고는 마켓에 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복숭아를 싼 비닐을 찢으며 걸었다. 한 입 정도는 먹을 정도로 비닐을 찢자 나는 입을 벌려 복숭아를 베어 먹으려 했다. 하지만 한 입 베어 물려는 순간, 나는 중심이 뒤로 쓰러지고 말았다. 계산원이 내 후드를 잡고는 뒤로 확 잡아당긴 것이었다.

나는 갑작스러운 휘청거림에 당하고 말았다. 내가 바닥에 쓰러지자 사람들은 피식 거리며 나를 비아냥 거렸다. 복숭아는 손으로부터 벗어나 마켓 바닥에 떨어져 뭉개지고 말았다. 천장을 보자 내 후드를 잡은 계산원의 얼굴이 보였다. 빛이 가려져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너 같은 기계새끼는 처 맞아봐야 되.” 계산원이 입을 열었다. ‘뭔... 개같은.’ 나는 인상을 찌뿌리며 생각했다.


계산원은 나를 어딘가로 끌고 가기 시작했다. 나는 양 손을 가지고 보이지 않는 계산원의 손목을 잡으려 애썼다. 계산원은 내가 손목을 잡으려 할 때마다 반대쪽 손으로 내 손을 쳐냈다. 나는 결국 마켓 바닥에 있는 뭐라도 잡으려 애써야 했다.




“뭐라도 잡고 싶은 거냐, 이 기계야?” 계산원은 나를 보며 비웃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는 욕을 중얼거렸다.


나는 순간적으로 손을 뻗어 과자 진열대의 모서리 부분을 잡았다. 계산원은 후드를 더 잡아당겨 내 목이 조였다. 숨이 턱 막혀버렸다. 그 와중에도 온 힘을 다해 손을 놓으려 하지 않았다. 목이 조일수록 손에 힘을 줬다. 내가 잡은 과자진열대 부분이 찌그려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점원은 후드를 살짝 뺐다가 다시 힘을 주어 후드를 잡아당겼다. 나는 순간적인 충격에 손을 놓고 말았다.




점원은 나를 마켓 끝 쪽 음료수 진열대에 떨궜다. 나는 그대로 몇 미터 가량을 미끄러져 갔다. 생각보다 미끄러운 바닥이었다.




“기계라는 녀석이 그렇게 약하면 쓰나.”


저 계산원과는 싸울 수는 없지만 체력부담이 커도 다음 공격 정도는 막을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일단 일어나는 것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무릎을 딛고 손으로 바닥을 짚었다. 팔이 후들거렸다. 나는 시선을 계산원 쪽으로 돌렸다. 계산원이 나에게로 걸어오고 있었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어떻게든 일어나고는 싶지만 이미 늦은 듯했다.




계산원은 내 얼굴을 잡더니 뒤통수가 바닥을 찍게 엎었다. 머리에 띵한 느낌이 퍼졌다. 그리곤 계산원의 손의 냄새가 맡아졌다. 생각보다 향기로웠다. 계산원은 내 얼굴을 잡은 손을 놓자마자 내 목을 잡았다. 다시 숨 막히는 고통이 올라왔다. 남은 한 손까지 내 목을 잡았다. 어디로도 숨이 쉬어지지가 않았다. 계산원은 내 목을 조른 채로 나를 들기 시작했다. 나는 다리를 허우적대며 고통에서 몸부림쳤다.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나는 입도 잘 열리지 않는 채로 말했다,


점원은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뭐? 왜 이러냐고? 너 같은 새끼들 때문에 우리 가족이 얼마나 생활고에 시달렸는지 알아? 3년 전 그때 일 아니었으면 우리 가족 이미 배고파서 죽었어. 로봇 때문에 인간들 다 죽을 뻔 했다고, 알아!”


계산원은 자신을 피해자라고 말하지만 나 역시 피해자다. 3년 전 ‘로봇 대학살’ 이후에 지금까지 의수나 의족을 달고 있었던 사람들은 몸의 일부분이 기계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기계라 불려왔고 억압을 받아왔다. 나 역시 그랬고.




계산원은 나를 뒤쪽 음료수 진열장에 부딪혔다. 쿵 소리와 함께 음료수 진열장의 통유리가 흔들렸다. 척추가 나갈 듯이 부딪혔다.




조금만 더 있으면 질식할 것만 같았다. 코든 입이든 산소를 들이마시려 하지만 산소는 기관지에도 닿지 않았다. 나는 무릎을 끝까지 당겨 올렸다. 계산원은 내 얼굴을 보고 있다. 지금이 기회다. 나는 들었던 무릎을 펴서 발로 계산원의 몸통을 밀어냈다. 계산원은 내 발에 밀려 목을 잡고 있던 손을 놓고 뒤로 떨어져 나갔다. 나도 그 여파로 다시 음료수 진열장에 부딪히며 바닥에 떨어졌다. 나는 눈을 부릅뜨며 최대한 빨리 숨을 들이키며 내쉬었다. 계산원을 보니 명치 쪽에 손을 갖다 대며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넘어질 듯이 일어서기 시작했다. 비틀거리며 중심을 잡았다. 그리고는 바로 마켓 밖을 향해 가기 시작했다. 걷는 것마저도 절뚝거리며 걸을 수밖에 없었다. 내 앞에 사람들이 핸드폰으로 나를 찍으며 겁에 질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그런 것을 볼 겨를도 없이 사람들을 지나 마켓을 나가야 했다. 내가 사람들에게 가까이 가자 사람들은 내가 가는 길을 비켜 주었다. 자신도 저 계산원처럼 될까 두려움에 비켜 준 것이다.




마켓 문에 가까이 다가가자 왼쪽 발에서 무언가 밟히는 소리가 났다. 먹으려다가 뭉개진 복숭아였다. 나는 뭉개진 복숭아를 보자 갑자기 눈물이 날 뻔했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마켓을 나가는 것이 급선무였다.




나는 마켓 문을 벌컥 열고 마켓 밖을 나갔다. 길가에 있는 사람들은 내가 마켓 밖을 나가자마자 나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나는 어디로든 도망쳐야 한다. 시위단이 나를 쫒아올 것이다.




나는 도로를 절뚝거리면서 걸어가며 주위를 끊임없이 쳐다보았다. 아직은 시위단이 보이지 않지만 마켓에서 사람들이 나를 찍은 것이 이미 시위단에게로 흘러갔을 수도 있다. 사람들이 나에게 야유를 보내는 것조차 신경 쓰이지가 않는다. 나는 시선을 한 곳에 두지 못한 채로 도로를 따라 걸어갔다.




하늘에 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하얀색 구름이 아닌 회색빛 비구름이었다. 저 멀리서부터 번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소나기라면 계속 가면서 숨을 곳을 찾으면 되지만 소나기가 아니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십 여분 정도를 걷자 물방울이 하늘에서 떨어지기 시작했다. 물방울들이 내 머리와 옷에 떨어졌다. 물방울이 회색 후드 티에 묻자 그 부분은 검은색으로 보였다. 손과 머리에도 비가 떨어졌다. 딱히 좋은 느낌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하나둘씩 우산을 피기 시작했다. 조롱과 야유를 보내던 사람들은 우산을 피느라 나에게 신경을 쓰지 않게 되었다.




비구름은 곧장 장대비를 내렸다. 구름이 이젠 온 하늘을 덮었다. 주위가 어두워졌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핸드폰 손전등으로 앞을 밝히며 걸어갔다. 몇몇은 우산에 자체적으로 있는 야광 기능을 뽐냈다. 도로에서 달리는 차들은 헤드라이트를 켜서 겨우겨우 속도를 줄이며 차도를 달렸다. 헤드라이트로 인해 보이는 장대비는 길이가 1미터는 되어 보였다. 장대비가 옷에 묻자 그 느낌이 피부로까지 느껴졌다. 비가 묻은 부분은 축축해지고 말았다.




옷이 모두 비가 묻어 축축해질 때 쯤, 나는 결국 지하철역 안으로 들어가야겠다는 위험한 생각을 하고 말았다. 지하철역 안은 CCTV로 도배되듯이 있는데다가 시위단이 이곳으로 들어오는 순간 나는 도망칠 곳도 없어지고 만다. 말 그대로 호랑이 굴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 하지만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라는 것처럼 정신만 제대로 차리면 어떻게는 버틸 수는 있을 수도 있다. 나는 결국 이 도로에서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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