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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일의 작업실

경무부의 수사고문, 성록 홍주

웹소설 > 일반연재 > 추리, 대체역사

고도일
작품등록일 :
2021.05.30 15:02
최근연재일 :
2022.09.08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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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036,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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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3.28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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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손된 금관(5) - 밝혀진 진실

DUMMY

벽난로 위의 거울을 힐끗 보더니 홍주가 말했다.


"이 정도면 될 것 같군. 자네도 함께 가면 좋겠지만 이번에는 그럴 수 없을 것 같네. 내가 지금 사건을 제대로 수사하고 있는지 도깨비에 홀린 것인지 모르겠지만 사건의 진실은 곧 밝혀질 거라네. 몇 시간 안에 돌아올 텐데 자네는 집으로 돌아갈 텐가?"


"아니. 아내도 지방에 내려갔으니 여기서 기다리겠네."


"좋을 대로 하게."


홍주는 그렇게 말하고는 찬장에서 육포를 꺼내 호주머니에 챙기고는 밖으로 나갔다. 내가 차를 마신 뒤 일어설 때 홍주가 굉장히 기분 좋은 얼굴로 낡은 장화 한 짝을 흔들며 돌아왔다. 그는 장화를 구석으로 던지더니 차를 한 잔 마시고는 말했다.


"지나가는 길에 잠깐 들린 거야. 바로 나가야 하네."


"어디로 말인가?"


"종로 쪽으로 가야 하네. 돌아올 때까지 시간이 꽤 걸릴지도 모르니 기다리지 말게."


"조사는 어떻게 되고 있나?"


"그냥 그래. 아까 집을 나선 후 다시 영등포로 갔는데 석 전무의 집을 방문하지는 않았네. 상당히 재미있는 사건이고 나는 이런 사건을 결코 놓치지 않지. 잡담이 길어졌군. 이제 이 변변찮은 옷을 갈아입고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 볼까?"


그의 태도를 보니 홍주가 자신의 말에 비해 지금 훨씬 더 만족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의 두 눈을 밝게 빛났고, 심지어 변장을 위해 누렇게 칠한 뺨에도 혈색이 돌았다. 그는 서둘러 방으로 들어갔고, 옷을 갈아입더니 잠시 후 현관문을 쾅 닫고 밖으로 나갔다. 다시 한번 그가 이 사건에 얼마나 빠져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나는 밤늦게까지 홍주를 기다렸으나 홍주는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아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날 아침 일찍 홍주의 하숙집을 찾았을 때 때마침 홍주는 아침식사를 하던 중이었다.


"자네 왔나? 자네가 올 줄 알았으면 조금 이따 먹을 것을 그랬군. 자네도 알다시피 석 전무가 오늘 오전에 방문하기로 하지 않았나? 그래서 그를 기다리는 중이네."


"그러고 보니 9시가 다 되어 가는군."


"맞아. 슬슬 도착할 때가 된 것 같은데... 아, 마침 현관종이 울리는군."


예상한 대로 찾아온 손님은 석흥덕 전무였다. 나는 완전히 달라진 그의 모습을 보자마자 충격을 받았다. 하루 사이에 통통하던 얼굴은 홀쭉해지고, 흰머리도 처음보다 훨씬 더 늘어난 것 같았다. 어제 아침의 격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완전히 지쳐서 축 늘어진 모습이 더 애처로워 보였다. 그는 내가 권한 안락의자 위에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제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런 벌을 받는지 모르겠습니다. 이틀 전만 해도 저는 세상 걱정 없이 승승장구하는 은행가였습니다. 이제 저는 늙은 몸으로 명예도 자식도 잃고 홀로 외롭게 살아야 되는 신세입니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미령이마저 집을 나가버렸습니다."


"집을 나가다니요?"


"오늘 아침 모습이 보이지 않아 방을 찾아가니 방은 비어있고, 거실 탁자 위에는 쪽지가 놓여있더군요. 어젯밤 저는 화가 나서가 아니라 슬픈 마음에 그만 인호와 네가 결혼했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고 모두 잘 지냈을지도 모른다는 소리를 해버렸습니다. 네... 경솔했죠. 쪽지에 적힌 내용도 그에 대한 겁니다."


그러면서 석흥덕은 홍주에게 쪽지를 건넸고 쪽지에 적힌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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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삼촌께.


삼촌께 폐를 끼쳐 송구합니다. 삼촌 말씀대로 하였다면 이런 끔찍한 불행은 정말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요. 그렇기에 이곳에서는 제가 더 이상 행복할 수 없고, 죄스러운 마음에 영영 이곳을 떠나야 할 것 같아요. 제 걱정은 마세요. 저를 찾지도 마세요. 이미 돌이킬 수 없고 찾는다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을 테니까요. 살아서든 죽어서든 삼촌께서 아끼고 돌봐주신 은혜만큼은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언제나 건강하시길.



박미령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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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자고 이런 편지를 쓴 것일까요? 혹시 극단적인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겠죠?"


"전혀요.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아마 이것이 가장 좋은 해결책이 될지도 모르죠. 이제 이 불행도 끝에 다다른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걸 보니 뭔가 알아내신 게로군요! 드리개는 대체 어디 있습니까?"


"장식의 찾는 대가로 삼십만 원이면 너무 비싼가요?"


"천만 원이라도 내겠습니다."


"그렇게나 많은 돈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사십만 원이면 충분합니다. 그리고 약간의 보수도 있어야 하니 오십만 원으로 하죠. 여기 지불 각서가 있으니 지장을 찍으시죠."


석흥덕은 얼빠진 얼굴로 각서에 지장을 찍었다. 그러자 홍주는 책상으로 걸어가 어제 본 다섯 개의 장식과 꼭 같은 곡옥이 달린 드리개를 꺼내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그것을 보자 석흥덕은 기쁨의 환호를 지으며 드리개를 움켜잡았다.


"찾으셨군요! 살았습니다! 살았어요!"


그동안 도난당한 장식 때문에 괴로웠던 만큼 기쁨의 반응 역시 격정적이었다. 그는 되찾은 장식을 가슴에 끌어안았고 그걸 보던 홍주가 꾸짖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전무님이 빚진 것은 또 하나 있습니다."


"성공 보수를 달란 말씀입니까? 말씀하십쇼. 얼마든지 더 드리지요."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 빚은 제게 진 것이 아니니까요. 전무님은 아드님에게 사과하셔야 합니다. 아드님은 명예로운 청년입니다. 만약 제가 아들이 있고 아드님처럼 행동했다면 굉장히 자랑스러웠을 테니까요."


"정말 인호가 훔친 것이 아니었군요!"


"어제도 범인이 아닐 것이라고 말씀드렸지만, 오늘은 확실히 범인이 아니라 말씀드릴 수 있겠군요."


"그게 정말입니까? 빨리 아들에게 달려가 사건의 모든 진상이 밝혀졌다고 알려야겠습니다."


"이미 아드님을 만나고 왔습니다. 사건의 진상이 드러난 뒤, 저는 유치장에 수감 중인 아드님을 만났습니다. 아무 말 없이 침묵하기에 제가 먼저 제가 밝혀낸 모든 사실을 말했고 결국 그도 제 추리가 맞다는 것을 인정하더군요. 그리고 제가 미처 놓치고 있던 두세 가지 정도를 알려주었고요. 오늘 아침 미령 양이 떠났다는 사실을 알면 나머지도 다 털어놓을지 모르죠."


"제가 이 수수께끼 같은 사건이 어떻게 된 영문인지 가르쳐 주십시오."


"알려드리죠. 일단 제가 결론을 낸 순서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직접 말씀드리기 무척 난감하지만 조재홍이란 청년과 당신이 아끼던 미령 양 사이에 뭔가 합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함께 도망쳤죠."


"미령이가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


"유감이지만 사실입니다. 수차례 집에 드나들었지만 전무님도 아드님도 그 자의 진짜 정체를 알지는 못했죠. 그는 이 나라에서 가장 위험한 범죄자 중에 하나로 노름으로 인생을 망쳐 지금은 인성도 양심도 없는 사람입니다.


미령양은 남자와 제대로 교제한 적이 없다 보니 조재홍이 수많은 사람들을 감언이설로 꼬드긴 것처럼 그녀 역시 쉽게 조재홍에게 넘어간 것이죠. 자신만을 사랑하는 줄 알고 말입니다. 그렇게 미령양은 조재홍에게 완전히 빠져 매일 저녁마다 몰래 그를 만나 왔습니다.


"미령이 그 아이는 결코 그럴 아이가 아닙니다. 믿을 수 없습니다."


창백해진 얼굴로 석흥덕이 소리치자 홍주가 말했다.


"어젯밤 전무님 댁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 말씀드리죠. 전무님이 아끼던 미령양은 전무님께서 침실로 들어가자 내려가서 현관 쪽 창문을 열고 찾아온 그녀의 연인, 조재홍과 밀담을 나누었습니다. 발자국을 보면 조재홍은 눈이 내리는 와중에도 오랫동안 창문 앞에 서 있었지요. 그리고 미령양은 금관에 대해 조재홍에게 말했습니다. 금관 이야기를 듣고 조재홍은 사악한 욕심에 빠졌고 그녀를 시켜 금관을 훔치도록 만들었습니다.


물론 미령양은 당신을 진정 사랑했을 테지만 연인에 대한 사랑이 주변의 다른 사람들을 잊게 만드는 건 매우 흔한 일이니까요. 미령 양도 마찬가지였고. 그와의 밀담이 끝나자마자 전무님이 아래층으로 내려오는 것을 보고 창문을 황급히 닫은 다음 하녀 유시영과 나무 의족을 한 애인이 밤마다 밀회를 나누는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실제로 그 역시 사실이었고요.


아드님은 전무님과 면담을 나눈 후 자신이 진 빚 때문에 불안한 마음이 들어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한밤중에 그는 문 앞을 지나가는 조용한 발자국 소리를 들었고 일어나서 밖을 내다보면서 그녀가 당신이 있는 위층으로 몰래 올라가는 것을 지켜보았죠. 그걸 보고는 급하게 바지와 셔츠만 걸치고는 조심스레 그녀를 따라 올라가 어둠 속에서 그녀가 뭘 하는지 지켜보았습니다. 곧 그녀는 서재에서 나왔고 당신의 아들은 그녀가 그 귀중한 금관을 손에 들고 있는 것을 보았지요.


그녀가 내려오기 전 아드님은 다시 계단을 내려와 아래층 커튼 뒤로 몸을 감췄습니다. 그곳에서는 아래층 전체가 훤히 보이니까요. 그렇게 숨어서 지켜보고 있는데 미령양이 살며시 현관 쪽 창문을 열고서 어둠 속에 누군가에게 금관을 넘겨주고 창문을 다시 닫더니 급히 자기 방으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바로 본인이 행동에 나선다면 자신이 사랑했던 여자를 범행을 스스로 밝히는 꼴이 되니 그녀가 방안으로 완전히 들어갈 때까지 기다렸지요. 곧 인호 군은 이게 아버지에게 얼마나 치명적인 문제가 될 것인지, 그리고 이 사태를 바로잡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금세 깨달았습니다.


그는 현관 맞은편 창문을 열고 맨발로 눈 속을 뛰어가 달빛에 비친 오솔길의 어두운 형체를 쫓아갔습니다. 조재홍은 뛰어오는 그를 보고 달아다려 했지만 인호 군이 조재홍을 붙잡았고 두 사람 사이에 몸싸움이 있었습니다.


두 사람이 금관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한쪽 씩 붙잡고 난투극을 벌였는데 조재홍이 잡은 곤옥이 달린 드리개 하나가 떨어져 나가고 말았죠. 아드님은 드리개가 떨어진 것도 모르고 금관이 자신의 손에 들어오자 집 쪽으로 다시 달렸고, 어쩔 도리가 없던 조재홍은 맞은편으로 사라졌습니다. 조재홍이 떠난 것을 알고 인호 군은 황급히 집안으로 들어와 전무님의 서재로 들어갔습니다. 그러고는 금관의 관테가 살짝 휜 것을 보고 똑바로 해놓으려던 순간 갑자기 아버지가 나타난 것이죠."


그 말을 들은 석흥덕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그 말이 사실입니까?"


"오히려 칭찬을 들어도 모자랄 판에 아버지는 자신을 도둑으로 몰며 온갖 모욕을 퍼부으니 그 역시 흥분할 수밖에요. 게다가 모든 사실을 밝히게 되면 미령 양이 저지른 범죄마저 밝혀야 하니 일단 그는 미령 양을 위해 비밀을 지키기로 한 것이죠."


"미령이가 금관을 보자마자 비명을 지르며 졸도한 것이 그 때문이군요. 세상에... 제가 인호에게 무슨 짓을 한 것입니까? 단 5분만 시간을 달라는 것도 무시하고 경찰에게 넘겨 유치장 신세를 지게 만들었으니. 아마 읽어버린 금관 장식이 바닥에 떨어진 것은 아닌지 확인하려 했던 것이겠죠. 무슨 얼굴로 아들을 봐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자책하는 석흥덕에 아랑곳하지 않고 홍주는 말을 이었다.


(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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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 마지막 사건(4) - 최후의 결투 22.09.08 64 0 7쪽
156 마지막 사건(3) - 안마군도(鞍馬群島) 22.07.28 38 0 12쪽
155 마지막 사건(2) - 쫓고 쫓기다. 22.07.27 29 0 14쪽
154 마지막 사건(1) - 서울의 범죄왕 22.07.11 44 0 17쪽
153 창백한 병사(5) - 사건의 결말 22.06.13 28 0 13쪽
152 창백한 병사(4) - 밝혀진 행방 22.06.13 30 0 11쪽
151 창백한 병사(3) - 임권필의 행방 22.05.26 27 0 13쪽
150 창백한 병사(2) - 조동주의 방문 22.05.19 31 0 13쪽
149 창백한 병사(1) - 홍주의 기록 22.05.14 33 0 15쪽
148 창원실업 민병덕(5) - 실현된 정의 22.05.03 29 0 14쪽
147 창원실업 민병덕(4) - 복면 강도단 22.04.26 30 0 8쪽
146 창원실업 민병덕(3) - 악당이 된 홍주 22.04.21 34 0 10쪽
145 창원실업 민병덕(2) - 만만치 않은 상대 22.04.19 46 0 10쪽
144 창원실업 민병덕(1) - 인간 도살자 22.04.18 40 0 11쪽
143 격랑 속으로(5) - 유물의 거취 22.04.12 37 0 17쪽
142 격랑 속으로(4) - 작전명 <화랑> 22.04.11 45 0 14쪽
141 격랑 속으로(3) - 극비 임무 22.04.01 44 0 15쪽
140 격랑 속으로(2) - 폭파된 다리 22.03.31 44 0 11쪽
139 격랑 속으로(1) - 북괴의 침략 22.03.30 51 0 15쪽
138 훼손된 금관(6) - 진정 소중한 것 22.03.29 35 0 13쪽
» 훼손된 금관(5) - 밝혀진 진실 22.03.28 46 0 12쪽
136 훼손된 금관(4) - 사건 현장 22.03.25 36 0 10쪽
135 훼손된 금관(3) - 의절을 앞둔 부자(父子) 22.03.24 41 0 11쪽
134 훼손된 금관(2) - 집으로 가져간 금관 22.03.23 49 0 10쪽
133 훼손된 금관(1) - 정신나간 은행가 22.03.21 49 0 14쪽
132 세 명의 승수(5) - 우정의 대가 22.03.14 35 0 11쪽
131 세 명의 승수(4) - 숨겨진 정체 22.03.11 35 0 9쪽
130 세 명의 승수(3) - 세번째 인물 22.03.08 37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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