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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일의 작업실

경무부의 수사고문, 성록 홍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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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일
작품등록일 :
2021.05.30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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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3.24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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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손된 금관(3) - 의절을 앞둔 부자(父子)

DUMMY

3. 의절을 앞둔 부자(父子)


그런데 그 정체가 아들인 걸 확인하자마자 저는 소리를 질렀죠.


[인호 네 이놈! 이 나쁜 놈 같으니라고! 이 도둑놈아! 어떻게 감히 금관에 손을 댈 수 있단 말이냐!]


가스등은 제가 놔둔 대로 반쯤만 켜져 있고 셔츠와 바지만 입은 몹쓸 아들 녀석이 손에 금관을 들고 불꽃 옆에 서 있었습니다. 그는 그걸 온 힘을 다해 비틀려고 하는 것 같이 보였습니다. 아들놈은 제가 외치는 소리에 깜짝 놀라 금관을 손에서 떨어트리고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습니다. 저는 떨어트린 금관을 집어 들었더니 곡옥이 달린 드리개 여섯개 중 하나가 없어졌더군요. 저는 화가 나서 소리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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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봉총 금제 드리개(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이 망할 자식 같으니라고. 네놈이 모든 것을 망쳤다. 내 명예를 더럽혔어! 훔친 드리개는 어디 있느냐?]


[훔치다니요?]


저는 그 말에 너무 화가 나 아들의 어깨를 흔들며 고함을 쳤습니다.


[그래, 이 도둑놈아!]


[아무것도 잃어버린 건 없습니다. 다 그대로라고요.]


[여기 달려있던 드리개 하나가 없어진 것이 보이지 않느냐? 훔친 네 놈이 더 잘 알겠지. 그리고 네 놈이 다른 장식도 떼어내려는 걸 내 눈으로 똑똑히 봤다.]


[모욕적이군요. 저도 더 이상 참지 않겠습니다. 이번 일에 대해서 더 이상 아무 말씀도 드리지 않겠어요. 날이 밝는 대로 집을 나가 따로 살겠습니다.]


저는 슬픔과 분노에 반쯤 미친 듯 소리쳤습니다.


[경찰을 부를 것이다. 이번 사건을 철저히 조사할 거야.]


그러자 아들놈도 지지 않고 격하게 맞받아치더군요.


[부르십시오. 아무 증거도 나오지 않을 테니. 만약 경찰에 신고하실 거라면 어디 최선을 다해 보십시오.]


제가 화가 나 소리를 질러 댄 탓에 집에 있는 온 식구가 일어나 달려왔습니다. 미령이가 제일 먼저 달려와 금관과 인호의 얼굴을 보자마자 사색이 되더니 자초지종을 듣자마자 비명을 지르며 그대로 기절했습니다. 미령이를 침실로 옮긴 다음 하녀 시영이를 불러 바로 경찰에 신고하라고 보냈고요.


경찰들이 수사를 위에 집에 도착했을 때 팔짱을 끼고 시무룩한 표정으로 서 있던 인호가 자신을 절도죄로 신고할 생각인지 묻더군요. 금관은 제 소유가 아니라 고객이 맡긴 물건이기에 이건 집안 문제가 아니라 범죄 사건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모든 일을 법대로 처리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비록 아들이 얽혀있더라도 말이죠. 그러자 인호가 말했지요.


[저를 체포하는 건 조금 뒤로 미뤄주시죠. 제가 5분만 시간을 주면 저 뿐만 아니라 아버지에게도 결코 나쁘지 않을 것입니다.]


[도망갈 셈이냐? 아니면 훔친 드리개를 감추려고?]


저는 제가 처한 상황이 얼마나 끔찍한 지 깨닫고 그에게 제 명예뿐만 아니라 제가 일하는 직장과 고객의 신뢰가 걸려있다며 드리개를 당장 내놓으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러자 아들놈이 이런 국보급 금관을 개인이 소유하는 것 자체가 불법 아니냐며 신문사에 제보하겠다고 협박하더군요. 그저 드리개가 어디 있는지 말해 준다면 이 문제가 해결될 텐데 말입니다.


[아직 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감이 오질 않느냐? 너는 현장에서 잡혔으니 이제 와 자백한다고 죄가 더 커지는 것도 아니다. 드리개를 어디에 숨겼는지 고백하고 반성한다면 모두 용서해 주마.]


그러자 인호가 등을 돌리며 저를 비웃더군요.


[저는 용서 받을 이유가 없으니 그 용서는 나중에 다른 사람에게나 하시죠.]


아들놈이 끝까지 고집을 부리자 저는 더 이상 말이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깨닫고 경찰을 불러 아들을 체포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아들의 몸부터 방, 그리고 집에 숨길만한 모든 곳을 조사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금관 장식은 나오지 않았고, 아들놈도 역시 아무리 설득하고 협박해도 단 한마디도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오전에 아들은 유치장으로 옮겨졌고 저는 모든 경찰 조사를 마친 후 서울로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고문님을 찾아온 것이죠. 드리개를 찾는데 들어가는 비용은 얼마든지 지불하겠습니다. 100만원이면 될까요? 정말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저는 하룻밤 사이에 제 명예도, 하나뿐인 아들도 잃고 금관도 망가져 버렸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말씀해 주십시오, 고문님."


석흥덕은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몸을 앞뒤로 흔들며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에 잠긴 아이처럼 혼자 중얼거렸다. 홍주는 그 모습을 보며 눈살을 찌푸리더니 난롯불을 바라보며 잠시 말없이 앉아있다가 마침내 말을 꺼냈다.


"집에 찾아오는 손님이 많습니까?"


"은행 직원들이 가족 동반으로 초대 받아 온 적이 몇 번 있고, 보통은 아들놈 친구들이 찾아오죠. 조재홍이란 청년도 최근에 몇 번 다녀갔고요. 그 외에는 아무도 오지 않았습니다."


"사교 모임 같은 데는 자주 나가십니까?"


"인호만요. 저나 미령이는 그런 모임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전무님이야 그럴 수 있지만 어린 아가씨가 모임을 싫어하다니 낯설군요."


"워낙 조용한 성격이라서요. 그리고 그렇게 어리지도 않습니다. 스물네 살이니까요."


"진술대로라면 이번 사건을 그녀에게도 굉장히 충격이었던 것 같군요."


"그렇습니다. 오히려 저보다 더 크게 충격 받은 것 같았습니다."


"두 사람 모두 아드님이 범인이라고 생각하고요?"


"금관을 들고 있는 걸 제 눈으로 직접 보았는데 의심할 여지가 있습니까?"


"저는 그것이 결정적인 증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금관이 휘어 있었다고요?"


"네. 살짝 휘어져 있었습니다."


"그걸 아드님이 바로 펴려고 하고 있었던 걸 수도 있지 않을까요?"


"고문님의 마음은 알겠습니다. 저와 아들을 위해 그렇게 배려해 주신다는 것을요. 하지만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도대체 아들놈은 거기서 뭘 하고 있었던 걸까요? 고문님 말대로 본인이 결백하다면 왜 이야기하지 않은 겁니까?"


"일리 있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자제분이 진짜 범인이라면 오히려 걸렸을 때 거짓말을 꾸며내지 않았겠습니까? 본인의 결백을 주장할 것이 아니라. 자제분의 침묵이 이번 사건 해결의 갈림길인 것 같습니다. 몇 가지 특이한 점이 있는데 잠에서 깼을 때 났던 소리에 대해 경찰은 뭐라 하던가요?"


"경찰에게 이야기했더니 아마 아들이 침실문을 닫을 때 난 소리일 수도 있다고 하더군요."


"참으로 그럴 법 하군요. 범죄를 저지를 사람이 집안 식구를 깰 정도로 문을 닫았다라... 그럼 드리개가 사라진 것에 대해서는 뭐라고 하던가요?"


"경찰이 바닥을 뜯어 조사하고 집안의 모든 가구 역시 수사했습니다."


"집 밖을 살펴보진 않았나요?"


"네. 드리개를 찾는데 무척 열중해서 마당 전체를 샅샅이 조사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홍주가 말했다.


"자, 전무님. 전무님이나 경찰이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사건 자체가 훨씬 심각해 보이지 않습니까? 전무님은 사건 자체는 단순하고 금관 장식만 찾으면 된다고 생각하시는 모양인데 제 생각으로는 훨씬 더 복잡한 사건입니다.


전무님의 말씀대로라면 자제분이 자기 침실에서 나와 전무님의 침실 앞으로 가서 문을 닫은 뒤, 금관이 보관된 장롱을 열쇠로 열고, 상자를 부순 뒤 곡옥이 달린 드리개를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곳에 숨긴 뒤, 발각될 위험에도 불구하고 다시 돌아와 금관을 구부리고 있었다는 거군요. 이게 상식적인 이야기라 생각하십니까?"


"그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합니까? 아들놈이 결백하다면 어째서 해명하지 않는 것이죠?"


"이제부터 그걸 밝히는 것이 저희의 일이죠. 괜찮으시면 지금 자택으로 함께 가서 한 시간 정도 사건 현장을 조사해 보도록 하죠."


홍주는 나에게도 함께 가자고 적극 권했고, 나도 사건에 대해 들으며 생긴 호기심과 동정심에 그리하겠다고 수락했다. 내가 보기에도 범인은 아들이 분명해 보였지만, 그와 별개로 나는 홍주의 판단에 대해서도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었기 때문에 홍주가 석흥덕을 통해 얻은 설명에 완전히 수긍하지 않는 한 뭔가 다른 쪽으로 해결될 희망을 가질 여지가 있다고도 생각했다.


홍주는 남쪽 시외로 나가는 내내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슴에 턱을 묻고 모자를 깊숙이 눌러쓴 채 깊은 사색에 잠겨 있었다. 석흥덕은 홍주에게서 한줄기 작은 희망의 불빛을 본 듯 뭔가 새로운 용기가 생긴 사람처럼 굴었고, 가는 동안 나와 사업 얘기로 잡담까지 나누었다. 짧은 여행 끝에 우리는 석흥덕의 영등포 자택까지 도착했다.


영등포역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석흥덕의 자택은 일제 당시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 적당한 크기의 2층 집으로 2차로가 눈에 덮인 마당의 넓은 잔디를 끼고서 현관의 두 철문과 연결되어 있었다. 오른쪽으로는 작은 오솔길이 있었는데 길가에서 부엌까지 놓인 울타리 사이의 좁은 오솔길은 아마 상인들이나 하녀들이 주로 다니는 길 같았다. 왼쪽에는 창고 건물로 이어지는 길이 나 있었는데 창고는 저택 부지 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왕래는 적을지언정 외부인들이 다니는 길가에 위치해 있었다.


홍주는 우리를 현관 앞에 세워둔 뒤 부엌 쪽에 집 주변을 천천히 돌아보기 시작했는데, 오솔길을 가로질러 뒤뜻을 돌아 찻길이 있는 곳까지 걸어갔다. 그의 조사가 길어지자 우리는 식당으로 가서 홍주가 들어올 때까지 난롯불을 쬐며 기다렸다. 문이 열리고 젊은 아가씨가 들어왔을 때 우리는 잠자코 앉아 있었다.


그녀는 평균보다 좀 더 큰 키에 날씬한 몸매, 그리고 흑발의 긴 생머리와 하얀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피부는 하얗다 못해 창백해 보일 정도였는데 나는 그렇게 창백한 여자 얼굴을 이전까지 본 적이 없었다. 입술에도 핏기가 없었지만 얼마나 울었는지 눈에 핏줄이 잔뜩 서 있었다.


그녀가 조용히 방으로 들어왔을 때, 석흥덕이 말한 대로 그보다 그녀가 더 큰 슬픔으로 애통해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분명 강한 의지를 가진 여성이었고, 엄청난 인내심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기에 더욱 안쓰러워 보였다. 그녀는 나를 본체만체하더니 곧장 석흥덕에게로 가서 그의 팔을 붙잡으며 사랑스럽게 안겼다.


(계 속)


[주석 1 - 드리개⁽¹⁾]

장식적인 효과를 높이기 위해 신체나 물건에 매달아 늘어뜨린 모든 것들을 통칭하는 것이며, 금관에 매달린 드리개는 금관 드리개라고 한다. 신라 금관의 경우 금관총이나 서봉총은 2개의 드리개를 가지고 있고, 황남대총 금관의 경우에는 무려 6개의 드리개가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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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 마지막 사건(3) - 안마군도(鞍馬群島) 22.07.28 38 0 12쪽
155 마지막 사건(2) - 쫓고 쫓기다. 22.07.27 29 0 14쪽
154 마지막 사건(1) - 서울의 범죄왕 22.07.11 44 0 17쪽
153 창백한 병사(5) - 사건의 결말 22.06.13 28 0 13쪽
152 창백한 병사(4) - 밝혀진 행방 22.06.13 30 0 11쪽
151 창백한 병사(3) - 임권필의 행방 22.05.26 27 0 13쪽
150 창백한 병사(2) - 조동주의 방문 22.05.19 31 0 13쪽
149 창백한 병사(1) - 홍주의 기록 22.05.14 33 0 15쪽
148 창원실업 민병덕(5) - 실현된 정의 22.05.03 29 0 14쪽
147 창원실업 민병덕(4) - 복면 강도단 22.04.26 30 0 8쪽
146 창원실업 민병덕(3) - 악당이 된 홍주 22.04.21 34 0 10쪽
145 창원실업 민병덕(2) - 만만치 않은 상대 22.04.19 46 0 10쪽
144 창원실업 민병덕(1) - 인간 도살자 22.04.18 40 0 11쪽
143 격랑 속으로(5) - 유물의 거취 22.04.12 37 0 17쪽
142 격랑 속으로(4) - 작전명 <화랑> 22.04.11 45 0 14쪽
141 격랑 속으로(3) - 극비 임무 22.04.01 44 0 15쪽
140 격랑 속으로(2) - 폭파된 다리 22.03.31 44 0 11쪽
139 격랑 속으로(1) - 북괴의 침략 22.03.30 51 0 15쪽
138 훼손된 금관(6) - 진정 소중한 것 22.03.29 35 0 13쪽
137 훼손된 금관(5) - 밝혀진 진실 22.03.28 45 0 12쪽
136 훼손된 금관(4) - 사건 현장 22.03.25 36 0 10쪽
» 훼손된 금관(3) - 의절을 앞둔 부자(父子) 22.03.24 41 0 11쪽
134 훼손된 금관(2) - 집으로 가져간 금관 22.03.23 49 0 10쪽
133 훼손된 금관(1) - 정신나간 은행가 22.03.21 48 0 14쪽
132 세 명의 승수(5) - 우정의 대가 22.03.14 35 0 11쪽
131 세 명의 승수(4) - 숨겨진 정체 22.03.11 35 0 9쪽
130 세 명의 승수(3) - 세번째 인물 22.03.08 37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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