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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완결

freein
작품등록일 :
2004.06.26 15:33
최근연재일 :
2004.06.26 15:33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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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04.06.09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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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쪽

지(池) 18장 (5)

DUMMY

스웨덴 공략이 있은 후, 이개월이 지나 본격적인 폴란드 공략이 시작되었다.

아직, 스웨덴 공략을 한 사람들을 제외한 많은 발라인, 집시, 그리고 유대인으로 구성된 부대가 실전경험이 전무하였으므로 첫 공략시에는 적에게 전략무기를 노출시키지 않고 철포와 뇌총 그리고 노부대를 이용한 일반적인 공격을 하였다.

폴란드군도 그동안 제법 준비를 하고 있었으므로 상당한 저항을 하였다.

특히, 천군은 처음으로 적의 화승총에게 기병들이 당하는 경험을 하기도 하였으며, 기병의 주 구성원이었던 이마가와가가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이 때문에 제법 많은 피해를 입었지만, 확실하게 실전경험을 시킬 수는 있었다.

더불어 그들 중에서 뛰어난 장수들을 얻을 수도 있었다.

아무리 폴란드가 준비를 했다고 하나 천군을 당해내는 것에는 무리가 있었다.

천군의 논공행상은 이전부터 철저하였으므로 민족에 관계없이 세운 공에 따라 공정하게 이루어졌다.

그러나, 아무리 공정하게 이루어졌다 할지라도 불만이 생겼고, 이런 불만세력이 오왕과 결탁을 하게 되었다.

이윤만과 지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모른 척하며 두고 보았다.

그러던 와중에 영왕 우에스기 겐신이 계속된 과로로 인하여 돌연사하였다.

또한, 자료를 총괄하던 다케나카 한베에도 갑자기 쓰러져 사망하였다.

이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이윤만과 지가 전면에 나서게 되었다.

이윤만은 죽은 겐신을 대신하여 양자인 우에스기 카케카쓰(上衫景勝)를 영왕에 임명하여 한국으로 돌려보냈다.

(주 : 우에스기 카케카쓰 - 유언도 없이 겐신은 갑자기 죽었고, 그 후 상속자 분쟁이 일어났으며, 결국 다케다를 아군으로 끌어들이는데 성공한 카케카스가 우에스기의 상속자가 됨. 노부나가 사망 이후, 시바타 가쓰이에와 적대하고, 히데요시와 우호를 맺었고, 집정 나오에 가네쓰구(直江兼續)의 도움으로 지배 체제를 확립. 1586년에는 오오사카성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신종의 예를 바쳤고, 에치고 통일 후의 1598년에는 아이츠 120만석으로 전봉되어, 오대로 중의 한사람이 되었음. 히데요시 사후, 세키가하라 전투가 도쿠가와 이에야스 인솔하는 동군의 승리로 끝나자, 서군에 붙었던 카케카쓰는 다시 궁지에 몰리지만, 유키 히데야스(結城秀康)의 중재로 나오에 가네쓰구가 히데요시로부터 직접 받고 있던 요네자와 30만석을 받고 아이츠의 영지는 몰수라는 하는 형태의 감봉으로 끝났음. 이 후 요네자와 번은 겐신 이래의 가풍을 끝까지 지켜, 그것을 메이지 시대까지 전했음.)

죽은 한베에를 대신하여 지가 자료를 정리하게 되었고, 이로 인하여 오왕은 즉각적인 자료 입수를 할 수 없게 되었다.

오왕은 자신에게 모든 군사권이 올 것이라 생각하다가 이윤만이 전면에 나서자 불안해졌다.

마치 자신을 초왕처럼 사지로 보낼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었다.

비록 이윤만이 그에게 토요토미라는 성(性)을 내렸고, 왕으로 임명을 하였지만, 그런 것은 이미 그의 머리에서 사라진 다음이었다.

초왕이 이윤만의 계략에 의해 죽었고, 그 자신도 그래서 여러 번 위험에 처했다고 생각하였으므로 이윤만에 대한 충성심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러나, 당장 역모를 도모하기에는 그 자신이 생각해도 무리가 있었다.

자신을 보좌하던 한베에와 히데나가가 사망하는 바람에 그에게 조언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사라졌지만, 그도 바보는 아니었다.

이윤만과 지의 능력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자신의 감정을 일단 잠재워둘 수 밖에 없었다.

대신에 그는 자신의 편을 만들기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다하였다.

그동안 주로 오왕이 전투를 직접 지휘하였으므로 천군이 아닌 발라 등의 현지 군사들은 그의 명령을 우선적으로 듣고 있었다.

스스로 판단하기에 이윤만과 지만 없으면, 모든 것을 장악하는 것에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구로다 간베에(黑田官兵衛)가 있었다면, 그의 생각이 얼마나 허황한 일인지를 알려줄 수 있었을테지만, 불행하게도 그는 한국에 남아 있었다.

(주 : 구로다 간베에 - 절름발이며 다케나가 한베에와 더불어 히데요시의 모사진을 이루었음. 한베에가 죽은 후 히데요시의 정책상대자로서 조언을 했으며, 또한 사신으로도 많은 활약을 하였음.)

일단, 자신의 부하들에게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해 두어야 했으므로 가신들을 모아 그에 대해 의논을 하였다.

그의 가신들도 그동안의 상황에 대해 알고 있었으므로 전부 토요토미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가모 우지사토가 이윤만의 명을 받아 새로이 초왕이 된 오다 노부타다를 데리고 한국으로 되돌아 갔으므로 당시의 상황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었고, 당연하게도 그들의 오해는 풀릴 수가 없었다.

" 이번 시기가 아니면 앞으로 기회가 없다. 제장들도 알다시피 지금 천군 중에서 조선인으로 구성된 부대는 십만 정도에 불과하다. 그 이외에 그를 도와줄 부대는 많아봐야 십만이다. 반면에 우리에게는 약 백만에 가까운 군사들이 있다. 그와 그 계집이 뛰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두 사람이 백만을 상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

그러자,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말하였다.

" 전하! 그렇다고 할지라도 그 두 사람을 잡기는 힘들 것입니다. "

(주 : 가토 기요마사 - 히데요시의 육촌. 그 인연으로 히데요시에게 발탁. 시즈가타케 전투(賤ヶ岳の合戰)에서 7본창 중 한명으로써 활약을 했고, 그 후 삿사 나리마사(佐佐成政)의 실정으로 어지러운 히고의 25만석을 받았음. 나리마사의 실정으로 일어난 농민반란에 대해 친히 진두에 서서 군을 이끌었고 이로 인해 국인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는데 성공, 국내를 안정시켰음. 세키가하라 전투에서는 동군측에 참전하여 서군의 고니시 유키나가의 우토(宇土)성을 함락시켰음. 1611년에 히데요리가 니죠성에서 이에야스와 회견했을 때에는 품에 단도를 숨기고 히데요리를 지켰지만, 회담이 끝난 후 갑자기 죽어 버렸음. 그가 쌓아 올린 구마모토(熊本)성은, 남쪽의 시마즈군을 견제하는 목적으로 대군을 상대로 한 공성전을 고려해서 세워진 유명한 성임. 임진왜란 출병시에 조선에서 본 성벽기술을 보고 놀라 따라 지었다고도 하는데, 이렇게 견고하게 지어졌기 때문에 350년 후의 서남 전쟁 때, 근대 병기를 가진 사이고군의 맹공에도 견뎌 낼 수도 있었다고 함.)

다른 장수들도 그의 말에 수긍을 하며 다소 두려운 표정을 하였다.

그런 모습을 보고 오왕은 화가 났다.

" 이런 멍청한 놈들!!! 어떻게 남자란 자들이 새가슴인가? 지금처럼 좋은 기회가 어디 있나? 생각해 봐라. 그들이 설혹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할지라도 다시 여기에 오기 위해서는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이미 제장들도 경험했지만, 여기에 오기 위해서는 수많은 난관이 필요하므로 그동안 천군이 보인 전략무기들을 가지고 올 수 없다. "

" … "

다른 장수들은 그의 말에 뭐라고 할 수가 없었다.

그들이 보기에도 그의 말이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문제점 때문에 그동안 천군이 상당한 피해를 본 것도 사실이었다.

불행하게도 그들은 영왕의 주도하에 전략무기가 만들어졌음을 모르고 있었다.

" 마지막으로 주조마라는 지역에 만족할 수가 없다. 전에는 남쪽으로 내려갈 수도 있을 것 같았지만, 지금은 독로의 남왕에게 막혀 더 이상 나갈 수가 없다. 답답하단 말이다. 그래서 여기에 나의 왕국을 만들기로 하였다. 일단, 저들만 제거하고 나면 폴란드왕국을 괴멸시키는 것은 금방이다. 그리고 죽은 한베에 덕분에 각 지역에 많은 간자들을 알고 있다. 그들을 이용하면, 앞으로 더 많은 지역을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만의 제국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

거침없는 그의 말에 그의 장수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빠져들었다.

이후로 오왕과 장수들은 자세한 것에 대해 논의를 하기 시작하였다.

후쿠시마 마사노리(福島正則)가 말하였다.

(주 : 후쿠시마 마사노리 - 히데요시가 어릴때부터 키워 온 무장. 시즈가타케의 싸움에서는 칠본창의 필두. 이후 히데요시의 일족으로서 도요토미성도 받아, 24만석을 받았음. 임진왜란에는 출진하지 않았음. 히데요시 사후, 아이즈 원정 때 이에야스에 종군, 곧 이시다 미쓰나리가 군사를 일으키자 이어 벌어진 군사회의에서 맨 먼저, 이에야스를 따르기로 선언. 세키가하라의 본 전투에서 3배에 가까운 우키타 히데이에(宇喜多秀家)의 군에 용맹히 맞섰음. 이에야스 사후, 막번체제 강화를 위한 희생양으로서 히로시마성 무단 개수를 이유로 개역(改易)되었음. 개역처인 카와나카지마에서 외롭게 생을 마감했음.)

" 이 일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두 사람입니다. 아무리 백만대군이 있어도 그 두 사람을 막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따라서, 그들에게 위기가 닥치거나 혹은 그 여인이 없어야 성공할 수 있다고 봅니다. 지난 전투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는 이십만에서 삼십만 정도의 군사만 있으면 제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 과인(寡人)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 계집만 다른 곳으로 사라지면 좋겠는데 말이야. 그런 기회가 앞으로 있을까? "

마사노리가 말하였다.

" 당분간은 그런 일이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앞으로 그런 일이 분명히 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과거에도 자주 자리를 비운 적이 있었습니다. "

" 좋다. 그 계집이 자리를 비우기 전에는 절대 조심을 하고 있기 바란다. 다음 모임은 그 계집이 자리를 비운 그 날 하기로 한다. 그 이전에 아무런 내색도 보이지 말라. 알겠나? "

" 네 "

조금만 잘못하면 이윤만과 지에게 발각될 가능성이 높았으므로 그들은 조심에 또 조심을 하였다.


폴란드와의 전투는 계속해서 오왕이 맡고 있었다.

다른 왕들과 수뇌부들은 모스크바 등에서 훈련을 하거나, 새로운 함선 건조 등에 대한 연구, 음양포 등의 제작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각기 하는 일이 달랐고, 지역이 달랐으므로 서로가 무엇을 하는지를 잘 알지는 못하였다.

모스크바와의 전투보다는 좋은 편이었지만, 폴란드와의 전투에도 전략무기들이 사용되지 않았고, 폴란드도 상당한 저항을 하였으므로 힘든 상황이 연출되었다.

그러나, 결국 거의 팔개월에 걸친 전투 끝에 폴란드를 점령할 수 있었다.

폴란드왕국 이외에 다양한 공국 등 조그마한 나라들이 있었으므로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폴란드의 병사들이 용감히 맞섰지만, 실전경험이 쌓일수록 전투능력이 늘어나는 천군을 당해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폴란드가 점령되자, 이윤만과 지는 금왕 이루하치의 군대와 더불어 폴란드에 입성하였다.

몇 일간의 논공행상과 축하연이 벌어진 다음에 폴란드에 대한 정리가 이루어졌다.

그 지역에 있던 모든 책자들과 귀족 및 포로들이 한 곳으로 집결되었고, 포로 중에서 일반 평민들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도록 하였다.

그리고 모스크바와 마찬가지로 평민과 노예들에게 군사훈련을 시켰다.

책자와 포로 등의 이동을 지가 맡기로 하였다.

한국에 가서 철왕으로부터 들어야 할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느 정도 정리가 이루어지자, 지는 책자와 포로를 데리고 모스크바로 향하였다.

그날 밤 오왕과 그 가신들이 모였다.

" 흐흐흐, 드디어 때가 왔다. "

그의 말에 모인 장수들 모두가 큰 소리로 웃진 않았지만, 기쁜 표정을 하였다.

" 지금 여기에 있는 군사들 대부분은 우리의 명령에 따르는 자들이다. 그의 명령에 따를 군사는 금왕의 군사와 일부 뇌총부대에 불과하다. 우리에게 천운이 주어진 것이다. 기요마사! "

" 네 "

" 그 계집에게 가라. 가서 호위하는 척하면서 모스크바까지 대동하라. 그리고 한국으로 떠나는 것을 보고 돌아와라. 네가 돌아오는 다음 날을 거사일로 하겠다. "

" 네 "

" 마사노리! "

" 네 "

" 훈련에 최선을 다하여라. 특히 발라인 등의 외병들을 중점적으로 훈련시켜라. 그들을 희생삼아 그를 잡는다. "

" 네 "

" 미쓰나리! "

" 네 "

이시다 미쓰나리(石田三成)가 대답을 하였고, 오왕을 그를 보면서 말을 하였다.

(주 : 이시다 미쓰나리 - 도요토미가의 문치파 대표. 주로 정치, 운수(運輸) 방면에서 도요토미가를 지탱한 그늘의 공로자. 히데요시는 그런 그를 소중히 했었지만, 무단파(武斷派)의 무장들은 화려한 전적 하나 없는 그가 중용되는 데에 불만을 품었음. 임진왜란 당시의 출병에 의해 문치파와 무단파의 대립은 극에 달하게 되었고, 마침내 세키가하라의 전투에서 그가 서군의 중심적 인물로서 참전하자 무단파의 가토 기요마사, 후쿠시마 마사노리들은 동군으로서 참전. 결과적으로 고바야카와 히데아키(小早川秀秋)의 배반으로 서군은 패하고 로쿠죠 강가(六條河原)에서 참수되었음.)

" 군사들을 움직이게 하려면 선동을 잘 해야 한다. 그것에 대해 연구를 하여 군사들 선동을 맡아라. 그들을 선동하는 것에 효과가 있다면 뭐든지 사용해도 무방하다. "

" 네 "

" 유키나가! "

" 네 "

좌측에 있던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짧지만 강한 어조로 답하였다.

(주 : 고니시 유키나가 - 사카이의 약 도매상 고니시 류사(小西隆佐)의 차남. 쥬고쿠로 출병나왔던 하시바 히데요시의 눈에 띄여 발탁이 되었음. 외교, 재정, 운수에 뛰어나 히데요시에게 사랑받아 이시다 미쓰나리와 함께 문치파의 대표적 존재가 됨. 임진왜란 당시에는 가토 기요마사와 대립, 세키가하라의 원인이 되었음. 세키가하라에서는 고바야카와 히데아끼의 배반에 의해 완패하여 패주. 크리스트교의 가르침상 자해 할 수 없기 때문에 스스로 포박 되어 역시 미츠나리등과 함께 로쿠죠 강가에서 참수되었음.)

" 그의 주위에 있는 금왕과 뇌총부대를 맡아라. 대충 오만 정도이니 이십만 정도의 군사면 충분히 제거할 수 있을 것이다. "

" 네 "

" 요시쓰구! "

" 네 "

오른쪽에 서 있던 오다니 요시쓰구(大谷吉繼)가 대답하였다.

(주 : 오다니 요시쓰구 - 뛰어난 기략과 용명으로 히데요시가 총애했으며, 이시다 미쓰나리(石田三成)가 이에야스에 대항해 다른 대명들을 규합할 때도 가장 먼저 친우인 요시쓰구에게 가담해 줄 것을 요청했음. 요시쓰구는 미쓰나리가 이에야스에 대항하려는 것을 그만두로록 권했으나 미쓰나리의 결심이 굳은 것을 알고 미쓰나리측에 가담.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고바야카와 히데아키가 이끄는 군세가 배신할 가능성이 있다는 예측을 하고 히데아키가 진치고 있던 산 아래 진을 치고 있었음. 결국 히데아키는 배신을 하고 요시쓰구는 몇배에 이르는 히데아키의 군세가 산아래로 돌격해 오는 것을 전력을 다해 막아내었지만 결국 역부족 전사함.)

" 폴란드와 발라의 접경을 맡는다. 일이 벌어진 후에 빠져나가는 모든 이들을 잡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아주 위험해진다. "

" 알겠습니다. 아무도 빠져나갈 수 없을 것입니다. "

"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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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지(池) 21장 (2) +1 04.06.17 2,236 18 15쪽
117 지(池) 21장 (1) +2 04.06.17 2,250 22 14쪽
116 지(池) 20장 (10) +4 04.06.17 2,245 21 15쪽
115 지(池) 20장 (9) +2 04.06.17 2,187 20 15쪽
114 지(池) 20장 (8) +3 04.06.16 2,135 22 14쪽
113 지(池) 20장 (7) +2 04.06.16 2,243 21 15쪽
112 지(池) 20장 (6) +2 04.06.15 2,169 21 15쪽
111 지(池) 20장 (5) +3 04.06.15 2,241 20 15쪽
110 지(池) 20장 (4) +3 04.06.15 2,289 22 14쪽
109 지(池) 20장 (3) +2 04.06.14 2,148 22 14쪽
108 지(池) 20장 (2) +2 04.06.14 2,254 21 14쪽
107 지(池) 20장 (1) - 2/2 +3 04.06.14 2,178 19 6쪽
106 지(池) 19장 (7) - 1/2 +2 04.06.14 2,053 20 9쪽
105 지(池) 19장 (6) +2 04.06.14 2,138 23 16쪽
104 지(池) 19장 (5) +4 04.06.12 2,224 20 14쪽
103 지(池) 19장 (4) +4 04.06.12 2,145 21 14쪽
102 지(池) 19장 (3) +2 04.06.12 2,248 21 15쪽
101 지(池) 19장 (2) +1 04.06.11 2,293 18 15쪽
100 지(池) 19장 (1) +3 04.06.11 2,450 23 14쪽
99 지(池) 18장 (7) +2 04.06.10 2,512 29 15쪽
98 지(池) 18장 (6) +2 04.06.10 2,546 23 14쪽
» 지(池) 18장 (5) +2 04.06.09 2,445 24 15쪽
96 지(池) 18장 (4) +3 04.06.09 2,450 24 15쪽
95 지(池) 18장 (3) +3 04.06.08 2,446 26 14쪽
94 지(池) 18장 (2) +2 04.06.08 2,636 25 13쪽
93 지(池) 18장 (1) - 2/2 +2 04.06.07 2,694 24 8쪽
92 지(池) 17장 (8) - 1/2 +3 04.06.07 2,652 26 6쪽
91 지(池) 17장 (7) +3 04.06.06 2,736 24 14쪽
90 지(池) 17장 (6) +4 04.06.06 2,851 2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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