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양준석 님의 서재입니다.

제작에 진심인 자본주의 네크로맨서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새글

양준석
작품등록일 :
2022.02.04 21:40
최근연재일 :
2024.05.23 20:00
연재수 :
45 회
조회수 :
40,599
추천수 :
1,046
글자수 :
260,269

작성
24.04.22 20:00
조회
866
추천
23
글자
12쪽

3장. 현대 마법사의 이세계 적응기

DUMMY



누가 네크로맨서를 두고 마법사라 했는가?


오후의 따스한 햇볕이 잘 드는 공방 한켠.

예리하게 날을 세운 조각칼을 쥔 민우는 작업대 앞에 얼추 형태가 잡힌 목재 두상 조각을 뚫어져라 노려봤다.



“하, 이걸 그냥 대충 만들 수도 없고 진짜······.”



민우는 앞으로 춘식의 것이 될 얼굴을 조각 중이다.

중급 마법인 ‘인형의 술’로 빚은 육신은 새롭게 소환하는 언데드 뿐만 아니라 이미 소환해 부리는 언데드에게도 새롭게 육신을 옮길 수 있게 해준다.


안의 내용물은 고르지 못해도 겉 포장만은 얼마든지 옮겨담을 수 있는 것처럼.


인형의 술 마법은 기존의 하수인을 보다 완성된 육신으로 옮겨 더욱 상위의 존재로 승격시킬 수가 있다.

그렇다.

이는 그저 포장지만 바꾸는 작업이 아니다.

태생적인 한계까지는 극복할 수는 없겠지만 좀비를 구울 내지는 스켈레톤과 같이 더 뛰어난 객체로 만들 수 있는 것.


사실 가장 좋은 방법은 따로 있긴 하다.


최고의 방법은 바로 막 죽은 사람의 시체를 쓰는 것.

굳이 술사가 어렵게 뭘 깎고 만들 필요 없이 사람의 신체 기관과 직접 만들 수 없는 혈관과 신경, 근섬유 다발 같은 게 전부 존재하지 않은가?


지금의 민우처럼 일일이 나무를 깎고 또 점토로 형태를 따로 잡아 만들고 부족한 건 최대한 구체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등의 부수적인 작업을 하등 할 필요가 없어진다.


기록에 남은 다른 네크로맨서들 중에서 사람의 시체를 구할 수 없으면 비슷한 아인종의 시체나 짐승의 시체를 대신 사용하고는 했다는데.

모두가 알다시피 민우의 생활반경 수백 킬로미터 내에 있는 짐승이라곤 처음 마주한 멧밭쥐 정도가 전부.


그마저도 민우가 좀비를 풀어 활동반경을 넓히자 얌전히 민우를 피해 다니던 다른 소동물들이 더 멀찍이 달아나버렸다.


그나마 아직 채 썩지 않고 남아 있는 뭍 짐승과 몬스터라 불리는 괴수의 뼈와 가죽을 찾아 회수하는 정도.

가죽은 질이 썩 좋은 편은 아니지만 워낙 질기고 또 가죽이란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단단했고, 마력이 깃든 뼈는 고작 몇 년 정도로 절대 썩지 않았다.



“너무 젊게 만들면 무게감이 떨어지고. 또 너무 늙어보이면 괜히 내가 싸가지가 없어 보이고.”



인생에서 몇 없는 고민이 시작됐다.

때문에 거침 없던 조각칼도 생기를 잃었는데.


언데드가 입는 육신의 외모는 순전히 술사의 재량이다.

먼저 이 육신의 기능적 차이는 순전히 망자의 수준과 육신의 구성물로만 정해진다.


그밖에 신체의 형태와 종족 같은 부분은 모두 술사의 선택에 따라 갈라지는 취향의 영역이었고, 그런 형태 중에서도 성별과 외모도 당연히 포함된다.


처음 이러한 사실을 깨달은 민우는 자신의 충직한 가신이자 그의 영역이자 지성소인 고목저택을 맡은 집사인 춘식의 외형을 잠정적으로 결정했었다.


흔히 멋있게 늙어 인자하면서도 은은한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유럽 명문가의 집사장.


그 미디어의 환상이 잔뜩 섞여 탄생한 힘을 숨긴 만능 재주꾼에 사연 깊고 충성스러운 백발의 백인 집사를 염두에 두고 이런저런 캐릭터 설정을 부여해가며 조각에 들어갔다.


하지만 누구나 그럴듯한 계획을 지녔어도 처맞는 순간 후회를 하듯.


하나하나 등신대 크기의 섬세한 조각을 시작하자 자신의 계획이 얼마나 미친 계획이었는지 크게 절감하고 말았다.

일단 사람의 외적인 특징에서부터 턱 막히는 걸 시작으로.

몸의 주름이나 한때 아프리카에 전쟁 용병이었다는 설정에 따른 총상 자국 같은 건 진즉에 철회했다.


예술혼을 불태워 만든 강철 뼈대는 최소한만 남고 모두 다시 주괴로 만들고.


인체공학적으로 깎던 목재 관절도 화덕의 연료로 던졌다.


일일이 심으려고 모아둔 짐승 털?

전부 이번에 만드는 침대 매트리스 재료가 됐다.


아무리 장인정신으로 무장하고 예술혼을 불태워도 현실의 암담함과 극한의 작업량을 맛보면 의지가 꺾인다.

하다못해 그렇게 체력과 시간을 갈아 만든 작업물의 퀄리티라도 생각대로 나왔으면 모르겠으나.



“···사람이라 하기엔 너무 조잡했지.”



그나마 다행인 건 어지간한 건 망령이 깃들면 스스로 알아서 술사의 마력을 끌어다가 부족한 부분을 보강한다는 점이다.


만약 그렇지 않았으면 당장 이 작업도 때려치우고 어디 유골 발굴이나 하며 춘식이를 스켈레톤으로 만들었을 거다.

그만큼 인체를 세밀하게 만드는 작업은 열정과 노력만으로는 할 수 없는 전문가와 장인 그 사이 어딘가의 작업이었고 민우는 깔끔하게 자신의 부족함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대대적인 계획 수정을 거쳐.


손과 얼굴을 제외한 모든 부위는 적당히 형태만 잡고 양손과 얼굴의 디테일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와이파이로 조각 강의 영상이랑 자료를 무한 반복해서 볼 수 있지 않았으면 이것도 포기했을 거야.”



손재주와 만들기엔 자신이 있었던 민우는 이번을 계기로 겸손함의 미덕을 체득하며 다시 어느 이름 모를 해외 크리에이터가 알려주는 조각 강의를 시청했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미남미녀로 만들 수 있는 걸 굳이 돌아서 흉측하고 너저분하게 만들 필요는 없지 않겠나?


당장에 춘식이는 전투에 나가 한 번 쓰고 버려질 그런 흔한 언데드가 아니라 집을 관리하고 그의 생활 전반을 돕는 생활형 언데드이니 더더욱 보기 좋게 만드는 게 이롭다.


그렇다면 차라리 미소녀로 만들라고 말하겠지만.


미소녀로 만들기엔 작고 여린 소녀를 마구잡이로 부려먹기엔 그의 현대 한국인 상식으로 불가능했다.


‘보기만 해도 흐뭇해지는 어린애가 자기 몸보다 크고 무거운 걸 들고 나르는 걸 그냥 지켜볼 남자가 있긴 할까?’



아마 한국인뿐만 아니라 세계 어느 남자라도 없을 거다.


이는 유교 사상이 뚜렷한 민우가 지금 춘식의 외적인 생김새에서 너무 나이 든 얼굴을 안 만들려는 것과 같은 이치.

그래도 거의 매일 곁에 두고 볼 얼굴인데 최소한 정겹고 편안한 생김새여야 하지 않겠나?


한참을 고민하고 또 수많은 영화와 만화 그리고 실제 배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얼굴 사진을 수집한 후.



“크으, 이거야! 진짜 AI가 대단하긴 대단하다니까.”



잔뜩 수집한 사진을 생성형 AI 사이트에 넣어 입체적인 실사 이미지를 생성해 생김새를 확정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보다 확실한 방향성을 위해 다시 AI의 도움을 받아 춘식이에 대한 자세한 설정을 짜임새 있게 구상해 확실한 RP(Role Playing)도 작성했다.

잠깐 언급했든 이러한 구체적이고 뚜렷한 설정을 부여하면 술사의 마력을 장시간 받으며 귀속된 망령의 자아가 자연히 그에 맞춰 변하는 걸 활용하고자 한 것.


꼭 이렇게 구상한 대로 언데드의 자아가 교정되는 건 아니지만 결국 망령은 술사에게 영혼으로 귀속된 존재.


술사의 생각과 인지에 따라 하수인의 성격이나 외형이 변하는 건 굳이 네크로맨시뿐만 아니라 정령학파, 테이밍학파 등 구분할 것 없이 하수인과 영적으로 결속되면 자연스런 현상이라고.



“이제 남은 건 이대로 내가 따라서 조각하면 되겠다.”



마음 같아서는 뽑은 이미지를 보다 3D로 보고 싶지만 그런 서비스는 어딜 가도 전부 유료였다.


비록 통신사도 잡히고 와이파이도 잡히지만.

실종 처리가 되면서 계좌를 비롯해 모든 온라인 계정이 정지된 상태라 결제를 시도할 수조차 없었다.

특히 처음에 행동대장인 민주에게 따로 전화를 걸어 가족을 안심시키고 전시된 차를 옮겨줄 것을 부탁하려 했었는데.



“설마하니 전화랑 문자도 막혀있을 줄은 몰랐지.”



긴급통화는 될 것도 같은데 그건 가족한테 전화를 거는 게 아니라 정부에게 자신을 잡아가라고 홍보하는 꼴이니.


그저 간편하게 만들 수 있는 이메일을 하나 생성해 그나마 노트북에 따로 남아 있는 셋째 민호의 이메일로 연락을 남겼다.


무료 문자 전송 사이트라거나 수신자 부담 문자 또는 인터넷 전화로도 연락을 시도는 해봤지만 요즘 시대에 인터넷 번호랑 익명의 문자를 누가 유심히 보겠는가?


더욱이 민주를 포함해서 가족들 모두 악의적인 장난전화나 문자를 무려 세계적으로 받는 상황인 것 같은데 말이다.



“에휴, 하다못해 이 번호 일시정지만이라도 풀렸으면. 하다못해 전자기기 중에 외국 브랜드라도 있었으면 문자 정도는 얼마든지 보냈을 텐데.”



업무 효율성 때문에 주로 국내 브랜드 제품을 쓰던 게 이제와서 후회가 되는 민우였다.


적어도 DSLR 카메라 대신 간단한 야외촬영용으로 사둔 공기계라도 가지고 있었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하며 아쉬움을 뒤로한 채 조각에 집중했다.


운이 따른다면 동생이 메일을 보고 일시정지를 해제해 통화가 가능할 테니까.


통화만 가능해지면 자신을 증명할 수단이야 차고 넘치게 있어 지금 전시된 그의 트럭을 집으로 가져오게 해 안전하게 지구로 넘어갈 수 있을 거다.

이미 기사로 다뤄졌던 사실이지만 가족들 대부분이 외할아버지가 이장으로 있는 본가로 귀촌해 살고 있다고 했다.


할아버지가 이장인 부분도 있지만 마을 내의 대부분 땅이 할아버지와 가족 명의이기도 한 만큼 과한 관심과 주목을 피하기엔 제격인 장소인 것.


특이점이 생긴 트럭만 마을 내 창고로 옮겨두면 남들 시선을 크게 의식하지 않고 자유롭게 오갈 수 있으리라.



“아, 너무 세게 팠다. 춘식아! 새 머리 퍼뜩 가져온나!!”



잡생각을 하다가 손에 힘을 준 나머지 목재 두상에 조각칼이 너무 깊게 들어가 버렸다.


아직 이렇게 섬세한 조각에 익숙하지 않아 앞으로도 많은 실패가 있을 테지만 아무런 걱정 없이 곧장 춘식을 불러다가 잘 깎인 두상을 새로 세팅했다.

표정이나 문양 같은 조각은 불가능하더라도 한 번 보여준 대로 비슷하게 두상을 깎는 건 춘식도 따라 깎을 수 있기에.


뭐가 됐든 시간은 결국 그의 편이다.

조각이 되었든 지구 귀환이 되었든 그 무엇이든지.



“아오!! 이거 다른 조각칼 더 만들어야겠네. 춘식아, 두상은 그만 깎고 얼른 화덕에 불 좀 올려라.”

“호, 화력!”

“오냐. 최고 온도로 팍팍.”



차츰 여유를 되찾으며 곧 완성될 화물용 나루터를 비롯해 강 전역에 퍼진 다른 생산기지를 떠올린 민우는 다시 이세계 라이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나흘이 지나고.


춘식의 새로운 육신 제작은 생각보다 진전이 느린 반면.

어느덧 상류의 구리광산 지역에서 시작해 강 하류에 삼각주가 형성되는 근방에 끝나는 나루터 시공을 완료했다.


모두 총 7개의 나루터를 지었고.


상류에 가장 가까운 구리광산 인근 광산 나루터부터.

철광산과 여러 공장이 들어설 예정인 공장 나루터.

집이 위치한 곳이자 심한 폭포가 있는 고목 나루터.


그 아래로 채석장이 있는 바위 나루터와 석회석 채석지의 석회 나루, 석탄 채굴장의 석탄 나루, 바다와 인접한 삼각주 근처의 삼각 나루터까지.


화물과 자원을 옮길 나루터가 완성되며.

각 지역마다 예정된 공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표현이 나루터라고 하긴 했으나 사실 흔히 생각하는 돛단배나 뗏목처럼 강과 강 사이를 건너는 용도의 작은 포구가 아닌, 얼마든지 항만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 가능성을 지녔다.


아마 별일 없으면 실제로도 항만시설로 발전할 테고.



“떠, 떴다아아──!!!”



공장 나루터로 나온 민우는 알람이 뜬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서 우렁찬 함성을 내질렀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제작에 진심인 자본주의 네크로맨서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작내 설정 및 오류 수정 알림 공지 24.04.20 67 0 -
공지 이전 공지 모음[2024.04.07] 24.04.20 47 0 -
공지 연재 안내 +6 22.02.04 5,030 0 -
45 5장. 거인들의 체스판을 뒤엎어라 NEW 5시간 전 80 4 12쪽
44 5장. 거인들의 체스판을 뒤엎어라 24.05.22 183 5 13쪽
43 5장. 거인들의 체스판을 뒤엎어라 24.05.21 226 10 11쪽
42 5장. 거인들의 체스판을 뒤엎어라 +1 24.05.20 249 9 12쪽
41 5장. 거인들의 체스판을 뒤엎어라 +1 24.05.19 311 12 13쪽
40 5장. 거인들의 체스판을 뒤엎어라 24.05.18 333 14 12쪽
39 5장. 거인들의 체스판을 뒤엎어라 +1 24.05.17 359 16 11쪽
38 5장. 거인들의 체스판을 뒤엎어라 +1 24.05.15 396 15 13쪽
37 5장. 거인들의 체스판을 뒤엎어라 +1 24.05.14 423 16 12쪽
36 5장. 거인들의 체스판을 뒤엎어라 +1 24.05.13 461 14 15쪽
35 5장. 거인들의 체스판을 뒤엎어라 24.05.11 513 15 12쪽
34 5장. 거인들의 체스판을 뒤엎어라 24.05.10 531 16 11쪽
33 4장. 폭풍을 부르는 귀환자 +1 24.05.09 554 17 13쪽
32 4장. 폭풍을 부르는 귀환자 +1 24.05.08 582 18 12쪽
31 4장. 폭풍을 부르는 귀환자 24.05.07 644 17 13쪽
30 4장. 폭풍을 부르는 귀환자 +5 24.05.06 684 21 13쪽
29 4장. 폭풍을 부르는 귀환자 +1 24.05.04 740 22 14쪽
28 4장. 폭풍을 부르는 귀환자 +3 24.05.03 750 23 13쪽
27 4장. 폭풍을 부르는 귀환자 24.05.02 785 21 11쪽
26 4장. 폭풍을 부르는 귀환자 24.05.01 813 23 12쪽
25 4장. 폭풍을 부르는 귀환자 +1 24.04.30 855 21 12쪽
24 4장. 폭풍을 부르는 귀환자 +1 24.04.29 870 27 12쪽
23 4장. 폭풍을 부르는 귀환자 +1 24.04.27 940 28 14쪽
22 4장. 폭풍을 부르는 귀환자 +1 24.04.26 963 26 15쪽
21 4장. 폭풍을 부르는 귀환자 +1 24.04.25 961 27 13쪽
20 4장. 폭풍을 부르는 귀환자 +1 24.04.24 1,054 25 13쪽
19 3장. 현대 마법사의 이세계 적응기 +1 24.04.23 949 27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