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현대 마법사의 이세계 적응기
민우는 천문학을 모른다.
누군들 천문학을 잘 알겠느냐만 학위를 취득하는 경우를 뺀 일반인이 가진 천문학적 지식은 대개 북두칠성이나 별차리, 그나마 오르트 구름을 포함한 태양계 구성 정도?
조금 더 관심을 가진다면 목성의 위성이나 가장 가까운 은하 같은 부분적인 지식일 터.
손으로 뭘 만들어 선보이는 걸 업으로 삼았던 만큼 여러 잡학에 능한 민우도 천문학 같은 복잡하고 난해한 학문은 그저 훌륭하신 분들의 영상 콘텐츠로나 즐겼다.
그런 민우여도 몇몇 천문학과 연관된 지식을 알고 있다.
고대 그리스의 학자인 에라토스테네스라는 인물이 지구의 둘레를 측정한 방법은 교과서에도 나오기에, 민우도 스마트폰의 여러 측정 앱과 나침반 앱을 활용해 측정했다.
측정의 기준은 그의 고목저택을 기점으로 하여 뗏목을 타고 강 하류로 이동해 측정해 대략적인 둘레를 측정한 결과.
“이세계는 지구보다 최소 8배 이상 더 크다.”
지구의 둘레가 4만 km 정도인 반면.
이세계 행성의 둘레는 무려 35만 km라는 수치가 나왔다.
측정에 있어 몇몇 오류나 기술적인 한계로 상당 부분의 오차가 생길 수는 있겠으나 그러한 변수를 따져도 최소한 지구보다 8배나 큰 행성인 것.
그렇다면 이 말도 안 되게 큰 동식물의 크기가 이해됐다.
이것저것 따지고 들 것도 없이 질량이 클수록 중력이 강해지니 계산을 해보면 무려 지구보다 8배 가량 높다는 것.
당장 건강한 성인 남성이 이세계에 넘어오면 8G의 중력에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실신할 터.
그만큼 이세계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물은 지구의 그것보다 더 강한 압력을 견딜 수 있어야 했고, 그에 따라 이세계의 생물은 몸집을 키우는 방향으로 진화한 것으로 보였다.
그렇다면 지구 태생의 일반인인 민우는 어째서 어떤 이질감도 없이 멀쩡하게 이세계에서 활동할 수 있는 걸까?
“다 마력 덕분이지. 물론 그런 마력이 처음부터 내 몸에 있던 건 아닐 테니까 소환된 순간 뭔가 조치가 된 거고.”
이세계에서 몇 달이 넘는 시간을 보냈다.
그동안 꾸준히 꿈을 매개로 어지간한 산맥보다 큰 드래곤이 잠든 공간에서 마법을 익히고 이세계 지식을 습득했다.
주로 이세계에 자생하는 동식물을 기록한 사전이나 요리 또는 약초학 등 식용과 약용으로 쓸 수 있는 식물 같은 정보를 긁어모았는데.
덕분에 이세계만의 독특한 식물이라거나 그런 식재를 활용한 요리법을 많이 알 수 있었다.
그러는 한편 마법에 대한 성취도 나날이 증가.
이제 이세계 기준에서도 어엿한 한 명의 마법사가 됐다.
근원을 생성해 고유한 마력에 특화되어 관련 마법을 다루는 마법사들.
우리의 생각과 달리 마력이란 그 자체로 초월적인 에너지이기에 성취가 높은 마법사는 수백 년을 늙지 않고 살뿐만 아니라 무협지에서 흔히 나오는 도검불침 같은 신체가 된다.
대충 동급의 마력 보유자가 아닌 이상 아무리 마력을 체내에 축적한 우락부락한 기사여도 폭삭 늙어 뼈밖에 없는 노마법사의 몸에 생채기 하나 낼 수 없다는 거다.
사실상 일정 수준 이상의 물리력에 완전한 면역을 갖는 것.
“책에서 묘사한 대로라면 정상급 마법사인 대마법사 정도 되면 곡사포나 함포 같은 포탄도 맨손으로 받아낼 수 있을 것 같았지?”
뭔가 마법을 써서 포탄을 막는 게 아니다.
순수하게 그 거대한 포탄의 물리력을 고작 피륙을 지닌 인간의 몸뚱이로 온전히 받아낼 수 있다.
사람은 통째로 갈아버릴 포탄의 물리력은 물론이고 고온 고압의 열과 충돌 시 발생할 막대한 반동까지 전부 마력 그 자체가 되어가는 대마법사의 신체에 상처를 낼 수 없다는 설명.
“이러니까 그 많은 웹소설에서 꼭 게이트를 넘어온 몬스터한테 총이 안 통하지.”
두루뭉술하게 마나 같은 초자연적인 힘 때문에 안 통한다는 묘사 때문에 많은 비판을 받았던 설정이었지만 직접 이세계로 넘어와 마력을 직접 겪고 느껴보니 충분히 이해가 갔다.
당장 마력의 힘을 체감한 자신조차 여러 역사서와 마법서에 적힌 그러한 황당무계한 사실을 지금도 온전히 믿는 건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막 나온 고블린한테도 총이 안 통하는 설정은 너무 가긴 했어.”
책에서 미사일도 맨몸으로 받아낸다는 대마법사 정도의 초인은 대양이라 불릴 만큼 넓은 바다 일대를 10년간 빙하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살아있는 재앙 그 자체인 존재쯤 돼야 이제 슈퍼맨처럼 눈으로 총알도 튕겨낼 수 있다는 거다.
말 그대로 수십억 중에 한둘 정도만 가능한 것.
‘그런 걸 고작 고블린 따위한테 패시브로 달아줬으니. 만약 이세계인들이 웹소설을 봤으면 욕을 바가지로 퍼부었을 거야.’
모르긴 몰라도 작가에게 저주 마법을 걸지 않았을까.
중요한 건 그만큼 마력과 마법의 힘은 전능에 가까울 만큼 다양하고 놀랍고, 그러한 마법을 체계적으로 익히고 연구하는 마법사는 재능과 노력 모든 부분에서 타고 나야 한다.
처음 민우가 네크로맨시를 익혀 좀비를 소환한 이후.
민우는 점차 자신만의 근원을 생성하면서 어느 순간 자신의 몸속에 또 다른 근원이 잠들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의 신체와 정신 그 어딘가에 잠든 특정할 수 없는 근원은 민우가 막 생성한 것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크고 거대했고 또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힘을 품고 있었다.
당장에 민우가 중심으로 삼은 네크로노미콘만의 고유 성질은 물론이고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물이나 화염 등의 성질도 지녔다.
민우는 자신의 마법적 성취가 그 잠들어 있는 근원과 자신의 근원이 연결되어 말도 안 되는 속도로 마법을 익힐 수 있었음을 깨달았다.
단지 마법적 성취뿐만이 아니었다.
정체불명의 근원을 인지한 후부터 민우는 전에 없던 활력을 느낄 수 있었고, 기초적인 수준이지만 다른 성질의 마법도 별다른 노력 없이 사용할 수 있게 됐다.
당장에 빛의 성질을 띠는 기초 마법으로 LED등보다 더 밝은 조명을 만들어낸다거나 바위나 흙의 성질로 땅을 파거나 쌓아올릴 수도 있게 된 것.
이러한 능력은 민우의 근원이 점차 커질수록 비례하여 다른 계열의 마법도 익힐 수 있게 해주었는데.
이 근원을 연구하던 중.
모종의 근원이 꿈속 정신세계에서 매일 보던 그 산만한 드래곤과 이어져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즉, 자신을 이세계로 소환한 유력한 용의자가 사실상 확정된 거나 마찬가지.
자신의 이세계 소환부터 기이한 마법적 재능과 너무 빠른 성취 등 여러 의문과 의혹이 해소되는 순간이자 새로운 의문이 무수히 많이 생겨나는 시발점이었다.
“그리고 이 정신세계의 정체도 알아냈지.”
민우가 그저 정신세계라고 부르는 이 꿈속의 공간.
이곳은 드래곤이 지닌 심상이자 영역이었다.
심상 또는 영역.
이는 무술을 익힌 기사나 전사나 마법과 주술을 익힌 마법사들이 각각 부르는 고유한 내면의 의식 공간이다.
일정 수준 이상으로 마력을 체내에 축적한 이들이 각자 자신의 가치관이나 자아를 투영하여 만드는 비물질적 세계.
자각몽이랑 다를 게 없는 것처럼 느낄 수도 있으나.
이 ‘영역’과 ‘심상’은 엄연히 실제하는 4차원 이상의 공간이자 시공을 초월해 현실에 간섭할 수 있는 실체를 지녔다.
마력이 일정 이상으로 응집한 것이 근원.
마치 가스구름이 뭉치고 압축되어 별이 되듯, 마력을 뭉쳐 다듬고 키운 근원은 마법사에게 고유한 영역을 내어준다.
육체적인 활동과 오직 본인에게 집중한 무인은 심상을 지닌 반면에 천지만물과 현상을 탐구하는 마법사의 영역은 각자 완전히 다른 형태의 기적으로 발현한다.
그리고 마법사의 영역은 마법사 본인에 대한 모든 위협, 가령 총알이라거나 폭발이라거나 하는 것에서 보호하고 나아가 마법사를 중심으로 일정 범위의 공간에서 마법의 위력을 증대하거나 현실의 일정 공간을 반영구적으로 장악할 수 있다.
이것이 무슨 뜻이냐면.
흔히 여러 서브컬쳐에 등장하는 각 캐릭터에게 극도로 유리한 공간을 현실에서 지정해준다는 뜻.
현실의 공간을 마법사의 것으로 물들인다고 볼 수도 있고.
늘 마법사를 보호하는 천혜의 요새가 생겼다 볼 수 있다.
이세계의 마법사들은 이 영역을 자신의 연구실이나 집에 전개하여 고정시키는 방식을 주로 사용했다고 한다.
그렇게 하면 다른 장소로 이동할 때, 멀리 이동할수록 영역의 이로운 효과가 감소하게 된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보다 더 많은 장점을 지녔기 때문.
가장 큰 장점은 당연히 마법을 수련하고 근원을 키울 때 압도적인 효율을 낸다는 점.
영역을 전개한 공간에서의 수련과 그렇지 않은 것과의 효율은 10배 그 이상의 차이를 보이기에 거의 모든 마법사가 영역이 생기면 일단 자신만의 공간부터 마련하고 봤다고 한다.
이걸 현대인이 쉽게 이해하기 좋게 비유하면.
마법사의 공방이나 던전, 혹은 성역이나 성소 같이 종교에서 신의 기적이 깃들거나 성스러운 장소로 보면 알맞을 터.
그래도 감이 영 안 온다면 어디 전대물이나 만화 등에서 미치광이 과학자의 연구실이나 최종 흑막의 은신처 내지는 마왕이 사는 마왕성 정도로 생각해도 좋으리라.
이 비유에서 알 수 있듯 영역은 마법사의 안전과 생명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고 행운이라거나 번뜩이는 영감 같이 창의력 등에서도 도움을 준다.
“결국 끝에 가서 마법사는 전문 생산직이 됐어.”
정말 많은 역사서를 읽고 또 확인했다.
그중에는 이세계에서도 고대라고 칭해질 만큼 먼 과거의 것부터 이세계가 온갖 파괴와 재앙으로 종말을 맞이해가는 비교적 최근의 순간까지 다양했다.
그리고 그 무수히 긴 세월 속에서 마법은 전투와 개인의 영역을 넘어 사회와 경제를 이끄는 가장 큰 동력이 됐다.
그러니까 마법은 지구의 과학과 그 위치가 같은 거다.
과학도 자연과학부터 시작해 공학이나 사회과학 같이 전분야에 걸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뿌리며 현대사회와 문명의 주춧돌 역할을 했듯이.
이세계에서 마법이 그런 과학의 자리를 대신했다.
실제로 이론마법학이라고 해서 우리의 고등수학이나 이론물리학 같은 자연과학 포지션의 이론과 논리만 다루는 학문이 따로 존재했던 것 같다.
‘그 마법학 서적을 찾아봤다가 바로 덮고 치워버렸었지.’
분명 민우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해석되어 읽힘에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외계어의 향연에 절로 머리가 어지럽더라.
그밖에도 마법사의 영역을 현실 공간에 고정하면 얻을 수 있는 이점이 더 존재하나.
“굳이 더 설명할 정도로 대단한 건 아니니까.”
물론 진짜 대단한 능력이 따로 있긴 하다.
손바닥만 한 주머니와 영역을 연결해 마치 게임의 인벤토리처럼 현실의 사물을 자신의 영역으로 옮겨서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다든지.
침입자가 있으면 영역을 폐쇄해 침입자를 영역에 고립시켜 영원히 가둔다든지.
아니면 영역을 여렷으로 나눠 각 나눠진 영역을 오가며 멀리 떨어진 장소를 마음대로 순간이동할 수도 있는데.
“그런 것들은 다 영역의 특성을 응용한 거니까.”
존재하지만 또 존재하지는 않는다는 마법사의 영역 특성을 응용한 거지 영역 그 자체의 능력은 아니다.
또 언급한 응용법도 자신의 영역을 현실에 전개했다고 해서 누구나 할 수 있는 방법도 아니고 특별한 재료와 높은 수준의 마법 성취가 필수다.
그러니까 지금의 민우에겐 그림의 떡이란 소리.
“그래도 그거 하난 확실해. 내가 잘 때마다 넘어가는 드래곤의 영역에 있는 온갖 보물들을 언젠가 나도 현실로 꺼내와 쓸 수 있다는 거!”
그게 언제가 될 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하지만 자신에게 티끌만큼이라도 드래곤이 준 것으로 추정되는 드래곤의 근원이 있는 이상 드래곤이 자신의 영역에 전시하고 또 쌓아둔 온갖 물건을 꺼내다 쓸 날이 온다는 미래만큼은 확실했다.
- 작가의말
2024.04.20 추가 수정
독자님의 도움으로 작중 이세계의 표면중력에 대한 묘사를 다시 수정했습니다.
처음 단순히 8배 큰 행성이라 중력도 8G라고 묘사했다가 이 부분에 대해 챗GPT로 해당 이세계의 환경을 설정으로 정리하던 중 512배라는 답에 도달해 한 차례 수정을 가했었는데요.
이 부분에서 관련 지식이 부족해 묘사에 치명적인 오류가 발생하여 이번에 다시 수정하게 되었습니다.
좀 더 자세한 부분은 공지로 독자님의 댓글를 첨부해 고정해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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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부피 증가에 따른 질량 증가를 염두하지 않아 잘못된 묘사가 있어 글을 내렸다가 다시 업로드합니다.
너무 1차원적으로 생각해서 별로 고민 없이 써서 크나큰 오류를 범할 뻔했습니다.
지구보다 8배 넓은 표면적이란 묘사에 중력도 8g 정도라고 묘사했네요;;
다시 계산해본 결과 8배이면 512배인 512g가 나와 급히 수정하여 재업로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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