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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담(松潭) 님의 서재입니다.

강호풍운록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완결

송담(松潭)
작품등록일 :
2007.06.26 18:12
최근연재일 :
2007.06.26 18:12
연재수 :
7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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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8,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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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6.17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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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글자
20쪽

강호풍운록(맹주 盟主 3)

DUMMY

“이놈! 네놈이 진정 사람이란 말이냐! 어찌 이런 극악무도한 행위를 거리낌 없이 저지를 수 있더란 말이냐!”

“아아, 진정하시구려. 흥분하면 몸에 해로운 것이오. 더구나 연로하신 몸인데 더욱 자중하셔야 되지 않겠소?”

제갈문이 입가에 비릿한 웃음을 머금은 채, 노화를 이기지 못해 펄펄 뛰는 노인에게 부채질을 해대고 있었다. 노인은 종리격이었다. 십대고수중 하나로 건곤신장(乾坤神掌)이라는 명호를 지닌 장법의 고수였다. 별호와 같은 이름을 가진 그의 장법은 천지를 장영(掌影)아래 가둔다고 알려져 있었다. 또한 그로인해 천고의 절예로 인정받고 있는 터였다.

“어린아이를 납치해서 볼모로 삼을 생각을 하다니, 흑도의 무리들도 이리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물며 무맹의 전주라는 작자가 벌인 행위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구나!”

종리격이 격분해서 제갈문에게 호통을 치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몸을 날리려는 것처럼 거친 기세를 보이는 것이다. 허나 그런 종리격에게 오히려 이죽거리며 성질을 돋우고 있는 제갈문이었다.

“허어, 지금의 상황을 아직도 이해 못하시는 모양이구려. 도대체 나이를 어디로 먹은 것인지, 쯪쯪 상황파악부터 좀 해 보시구려.”

“뭣이라! 감히! 네놈이 지금 나를 능멸(凌蔑)하려는 것이냐!”

“능멸이라... 그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아니, 그렇다고 해 둡시다. 어차피 이판사판이니 갈 데까지 가봅시다. 싫다면 나를 죽이시오. 그러면 간단히 끝나게 될 것 아니겠소. 물론 손녀 역시 죽겠지만 말이오.”

“이이!”

머리끝까지 노기가 치밀어 올랐지만 어찌 할 수가 없었다. 치켜들었던 손을 힘없이 떨어뜨리고 마는 종리격이다.

사랑스런 손녀딸을 납치하고는 천연덕스럽게 나타나더니, 대뜸 목숨을 걸고 흥정을 하자며 대드는 제갈문이었다. 그런 놈이 바로 눈앞에서 야비한 웃음을 보이며 느물거리고 있는 것이다. 처참하게 짓이기고 싶은 마음이야 간절했지만 결국, 속으로 삭일 수밖에 없는 까닭이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예쁘고 귀여운 손녀딸이었다. 그 아이가 잘못 되기라도 한다면 살아갈 의욕이 없다고 할 정도로 애지중지했던 만큼 선택의 폭은 전혀 없었다.

“어찌 하시겠소. 협조를 해 주신다면 털끝하나 건드리지 않고 곱게 모셔다 드리리다. 시간이 없으니 이 자리에서 결정을 해 주시오.”

“이익! 이번 일이 끝나고 나면 네 놈들은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고통을 맛보게 될 것이다. 내 무슨 일을 당하더라도 네놈들만큼은 반드시 그리 되게 만들고 말겠다.”

분기 가득한 종리격이 이를 앙다물고 하는 말임에도 제갈문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제갈문으로 인해 종리격의 떨림만 커져갈 뿐이었다. 몸을 부들부들 떨어가면서 제갈문을 노려보는 그의 눈빛에는 짙은 살심만이 가득 차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허어, 아직도 딴소리를 하고 계시네. 그건 나중에 따질 일이잖소. 그 때가서 얘기해도 될 일을 굳이 바쁜 지금 꺼낸단 말이오? 참으로 답답할 따름이외다. 나중에 구워먹든 삶아먹든 알아서 하시고 지금은 가부간의 결정을 해야 할 때란 말이오. 어찌 하시겠소.”

방법이 없었다. 눈빛만으로 살인을 할 수 있다면 제갈문을 여러 번 황천에 보냈을 종리격이었지만, 지금은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다. 얼마나 분했는지 입술이 터져 나가고 말았다.

“이놈! 내 한 시진 이내로 가겠다. 일 끝나고 난 뒤에 어찌되나 보자!”

“그럼 기다리고 있겠소. 손녀의 안위를 생각하시고 신속히 움직여 주기 바라오. 이만 가리다.”

“이익!”

“쾅!”

끝까지 이죽거리는 제갈문으로 인해 애꿎은 탁자만 박살나고 있었다.


무맹의 회의실이다. 이곳에 네 명의 인물이 모였다. 평생 한 사람도 만나지 못하고 강호를 떠나는 자들이 대부분인데 하나도 아니고 무려 넷이나 모여 있는 것이다. 모두가 제갈문으로 인한 때문이었다.

건곤신장 종리격

운룡대협(雲龍大俠) 사일

조화선옹(造化仙翁) 제순

탈혼검(奪魂劍) 서문화중

십대고수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각기 하나씩만 놓고 보더라도 적수를 찾을 수 없는 이들이다. 이렇게 모여 있다는 것만으로도 두고두고 회자될 일이었지만, 그들의 분위기는 험악하기만 했다. 각기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부분 육십 가까이 된 이들이었다. 손자 손녀를 끔찍이도 아끼는 이들의 성정이 결국, 제갈문에게 이용당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제공하고 말았다. 검왕을 상대할 목적으로 이들의 소중한 사람들을 납치해서는 인질로 삼고 협박을 가한 것이다.

“반드시 합공을 해야만 할 것이오. 둘도 안 되고 셋도 아니 되오. 그만큼 검왕을 제거하는 일이 절박한 상황이오. 둘이면 백중세, 셋이면 약간의 우세 그리고 넷이면 필승이라 생각하고 있소.

괜한 자존심으로 무인임을 내세우지 말기 바라오. 비무를 하는 것이 아니고 생사결인 것이오. 게다가 여러분의 행동하는 바에 따라서 내 손에 있는 손자 손녀들의 안위가 결정 된다는 사실을 반드시 명심하시오.

그럼 기대하리다. 아, 어차피 이틀정도의 여유는 있으니 그동안 푹 쉬시기 바라겠소.”

이마에는 검푸른 빛의 혈관이 튀어나오고 눈은 실핏줄이 터지기라도 했는지 온통 시뻘겋게 물들어 있는 고수들이었다. 얼핏 본다면 지옥의 야차라고 착각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모습을 하고 있는 네 명인 것이다. 그들이 눈을 부릅뜬 채 죽일 것처럼 노려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입술 끝을 비틀어가며 제갈문은 여유를 보이고 있었다.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얘기하리다. 하마터면 빠트릴 뻔 했소. 하하.”

네 명의 고수들이 분노한 와중에서도 제갈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혹시라도 아이들에 관한 얘기라도 하는가 싶었던 것이다.

“객고를 풀고 싶으면 언제든지 말씀 하시오. 기녀를 불러 달라면 불러 줄 것이고 지나가는 시비가 마음에 든다면 그 또한 얼마든지 제공하리다. 괜히 체면 차리느라 얌전떨다가 후회하지 말고 기회가 왔을 때 충분히 즐기도록 하시오. 몸을 최상의 상태로 만들어야 검왕을 죽이는데 도움이 될까 싶어 준비한 것이니 부디 사양치 마시기 바라오. 그래도 아이들이 제법 반반하다오. 하하하하.”

“이이익! 이노옴!”

“콰앙! 쾅!”

종리격이 결국, 분기를 참지 못하고 일장을 내지르고 말았다. 허나 제갈문을 향해 뻗은 그것은 옆으로 스쳐 지나며 벽을 후려 갈겼을 뿐이다. 뻥 뚫려버린 구멍을 통해 바깥의 신선한 공기가 몰려들었다. 썩은 냄새로 진동하는 회의실을 깨끗하게 만들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한바탕 휘돌던 바람이다. 하지만 이내 포기했는지 조용히 스러지고 말았다.

제갈문은 종리격의 일장이 곁을 스치고 지나가는 순간 가슴이 서늘해졌다. 놀란 것이다. 안색을 싸늘하게 굳힌 그가 종리격등을 둘러보며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말을 뱉어냈다.

“힘은 아꼈다가 나중에 쓰시오. 검왕이란 놈은 결코 만만히 볼 수 있는 놈이 아니오. 그리고 이번의 일장은 손녀에게 똑같이 되돌려 줄 것이니 기대하고 계시오.”

“이이노옴, 목을 잘 간수해라. 이틀 후에 네놈의 목을 칠 것이다.”

종리격이 이를 갈아대는 틈새로 무겁게 흘러나오는 소리였다.

“깨끗이 씻고 기다리고 있겠소.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주어진 임무나 잘 처리하시오. 하하하하!”

다시 한 번 다짐을 하고는 더는 볼일이 없다는 듯 통쾌하게 웃으며 밖으로 나가버리는 제갈문이다. 그런 놈을 보는 이들 네 명의 고수의 눈에 물기가 고이고 있었다. 피눈물인 것이다. 그 중에서도 종리격이 유난히 더했다. 나가는 제갈문의 형체가 뿌옇게 변하는가 싶더니 어느새 손녀의 모습이 투영(投影)되고 있었다.


“하아지, 쩌거 쩌거.”

이제 걷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손녀가 나비를 가리키며 연신 꼼지락 거렸다. 꽃술에 주둥이를 대고 연신 꿀을 빨아대느라 정신없는 나비가 아이의 눈에 신기해 보였나 보다.

손녀가 어찌 하나 궁금한 마음에 잠시 그대로 지켜보고 있었다.

“하아지, 쩌거 쩌거.”

뒤뚱거리는 걸음으로 나비에게 다가서는 손녀다. 어른의 보통걸음으로 서너 발이면 갈 것을 이 녀석은 오래도 가고 있는 것이다. 손은 계속 나비를 가리키며 꼼지락 거리고 있었다. 천진하기만한 손녀의 눈빛은 참으로 깨끗하기만 했다. 세상에 물들지 않고 저대로 컸으면 하는 바람이 잠시 들었다가 훌쩍 날아가 버렸다.

“하아지, 쩌거어 응, 하아지 쩌거.”

“풀썩! 우에에에엥!”

손녀의 걸음이 조금 빨라지는 듯 보인다 싶더니 기어코 넘어지고 말았다. 작은 몸에서 나오는 울음소리가 어찌나 큰 지 귀청이 따갑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웃음을 머금고 손녀를 안아들었다.

“어이구 우리 공주님, 누가 우리 공주님을 울린 것인지 할애비가 떼찌 해줘야지. 떼찌! 떼찌!”

땅을 두드려대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재미있기라도 한 것인지 어느새 울음을 멈추는 손녀였다. 든든한 우군이 옆에 있다는 사실을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손녀의 얼굴이 밝아지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품에서 벗어난 손녀가 다시 뒤뚱거리며 나비를 찾아 걸음을 옮겨갔다. 한 손은 나비를 가리키면서 여전히 꼼지락 거렸다. 그리고 나머지 한 손에는 할아버지의 바짓가랑이를 꽉 움켜쥔 채 걷고 있는 것이다.

“하아지, 쩌거 쩌거.”

“그래, 나비가 갖고 싶은 게로구나.”

“응, 쩌거 가꼬시퍼. 쩌거.”

“허허, 나비를 잡으면 엄마 나비가 슬퍼 할 텐데? 그래도 갖고 싶어?”

“쩌거 가꼬시퍼어, 쩌거.”

여전히 뒤뚱거리며 발을 옮기는 손녀다. 아직 슬픔이라는 말을 모르는 때문인지 할아버지의 바짓가랑이를 끌어대는 손에 힘이 들어가고 있었다. 손녀 모르게 나비를 날려 보냈다. 살짝 쏘아낸 압력이 나비의 가슴에 닿았는지 흠칫 몸을 떨던 녀석이 훌쩍 날아가 버린 것이다.

“우에에에엥! 쩌거, 우에에엥!”

날아가 버린 나비를 쫓아 눈길을 돌리는 손녀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어이차!”

울고 있는 손녀를 번쩍 들어 어깨에 올려놓았다. 떨어지지 않으려 할아버지의 머리를 꼭 움켜잡는 손녀다.

“우에에엥!”

하지만 아직도 울음은 그치지 않았다. 다만 울음의 강도는 조금 약해진 듯싶었다. 더 많은 것을 기다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손녀의 울음은 점점 건성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까르르르!”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흔들자 어느새 눈물을 멈추고 웃음을 터트리고 마는 손녀였다. 얼굴에는 환한 웃음이 가득했다. 한참을 손녀와 놀아주다가 품에 않고 토닥거리자 금방 잠이 들고 말았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랑스러운 손녀인 것이다.

친우들과의 자리만 아니었더라도 결코 그렇게 내보내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종복 몇과 함께 저잣거리 구경을 내보낸 것이 잘못 되었던 것이다. 며느리가 손녀를 잃어버리고는, 나중에 정신을 차린 뒤 했던 말을 생각한 끝에 나온 결론이었다.

종복들과 나들이를 간 며느리였다. 어미의 품에 안겨있던 아이가 칭얼거리자 잠시 땅을 밟으며 놀아보라고 내려준 것이 잘못되었다고 했다. 장신구에 정신이 팔려 아이를 종복들에게만 맡겨놓은 것 역시 그러했다. 문득 아이 생각에 급히 주변을 찾았을 때는 이미 늦었던 것이다.

그렇게 딸아이를 잃어버린 채, 저잣거리를 온통 헤집고 다녔지만 소용없는 일일 뿐이었다. 그리고 시아버님의 시커멓게 죽어버린 얼굴을 보았을 때 어미는 정신을 놓고 말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무맹의 정보전주인 제갈문이 찾아들었다. 놈은 자신이 아이를 데리고 있다고 당당하게 나섰다. 그러고는 시키는 일을 한 가지 해주면 손녀를 풀어주겠다고 협박을 해 왔다. 분노한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일장에 쳐 죽이려 했으나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아이를 찾아야만 했던 까닭이었다.

놈은 철저하게 준비를 한 것으로 보였다. 어찌 해 볼 도리가 없었다. 결국, 놈의 협박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던 자신이었다. 그리고 무맹으로 들어왔다. 평소 자주 어울렸던 친우들마저도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그들 역시도 자신과 같은 입장이었던 것이다. 모처럼 만나는 친우들이었다. 그동안 쌓인 회포를 풀기도 전에 느닷없이 봉변을 당하고 말았다.

다들 비슷한 시기에 혼인을 했던 터라 손자 손녀들도 고만고만했다. 아이들 재롱에 세월 흐르는 줄을 모르던 그들이었다. 당연히 친우들을 만나는 자리에 아이들을 데려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렇게 원치 않았던 자리에 모여 있게 된 그들이었다.

놈은 검왕을 죽여야 한다고 했다. 그것이 사랑하는 아이들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이었다.

검왕에 대한 소문은 익히 듣고 있었다. 십대고수 중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갈 실력을 지닌 것으로 여겨지는 검왕이었다. 그리고 그런 검왕이 행한 일도 알고 있었다. 잘 했다고 생각하던 터였다. 세상은 바뀔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허나 이제 자신들은 그런 검왕을 향해 칼을 들 수밖에 없었다. 세상보다는 아이들이 먼저였던 까닭이었다.


종리격이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그런 그의 눈에 섬광이 번쩍거렸다. 핏줄이 터져버린 때문인지 붉은색으로 보이는 섬광이었다.

“이놈들, 결코 그냥 두지 않을 것이다.”

다른 세 사람의 눈도 마찬가지였다. 이들 역시 혈광으로 비칠 수도 있는 눈빛이었다. 다들 애지중지 하던 손녀 손자들이 잡혀있는 것이다.

검왕의 죽음만이 아이들을 다시 볼 수 있도록 하는 길이었다. 의도했던 바는 아니었지만, 검왕을 죽일 수밖에 없는 그들인 것이다.


권절은 남충에 들어설 수 없었다. 남충까지는 백장도 채 남지 않은 곳에서 길이 막힌 때문이었다. 연휘를 비롯한 의혈문의 수뇌들이 관도를 가로막고 있었던 것이다.

“네놈이 연휘란 놈이냐!”

거칠게 내뱉는 권절의 말에는 손자를 사랑하는 만큼 분노가 담겨있었다. 얼굴 또한 그것에 걸맞게 온화했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일백의 은하장 무인들이 흉험한 기세를 풍겨대며 연휘를 압박하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도 권절과 별반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허어, 위진이라는 개 망종이 누구를 닮아 그리 못된 놈이었는지 궁금했었는데 이제야 답을 찾게 되었구려.”

어찌된 연유인지 연휘의 입심은 날이 갈수록 더욱 고매해지고 있었다. 굳이 자극할 이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위진을 빗대어 권절을 도발하고 있었던 것이다.

“뭣이라! 이놈! 네놈이 눈에 뵈는 것이 없는 모양이로구나!”

“아아, 흥분하지 마시오. 가뜩이나 오늘 낼 하는 노인네가 그리 흥분해서야 쓰겠소, 건강을 생각해서 조심하셔야지.”

계속해서 도발해대는 연휘의 말로 인해 권절은 피가 거꾸로 솟기라도 하는 것처럼 얼굴이 온통 시뻘겋게 변해가고 있었다.

“이놈! 알량한 재주를 믿고 강호에 피바람을 불러일으킨다더니, 입심만 살아있는 놈이었구나! 내 오늘 네놈을 그냥 두면 위덕이 아니다, 이놈!”

“형님, 잠시 고정하시지요. 격장지계에 당할 까닭이 없지요. 잠시만 흥분을 가라앉히고 진정하시기 바랍니다.”

격분한 권절이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기세를 보이며 흥분하고 있었다. 이에 급히 막아선 남욱이 권절의 흥분을 가라앉히려 애를 쓰고 있는 것이다.

“허어, 그래도 생각을 할 줄 아는 놈이 있기는 하네.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를 걸어 준 격이로다. 아깝군.”

“그래도, 저 놈이!”

“형님, 참으셔야 합니다.”

“아니다. 놔라. 내 저놈을 당장 요절내야 하겠다.”

“잠시만,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얘들아 형님을 좀 말려봐라.”

연휘의 이죽거림은 결국, 권절로 하여금 이성을 잃게 만들고 말았다. 남욱이 그런 권절을 막아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러자 아우들까지 불러대는 남욱인 것이다.

“조금만 더 하면 지 성질을 못 이기고 노기가 터져 죽게 생겼네. 그만해야지, 괜히 애꿎은 노인네 하나 골로 보내놓고 무슨 원망을 들을까.”

“이노옴! 네놈은 컥!”

“형님! 이런, 얘들아! 형님을 안정시켜 드려라. 가뜩이나 쉬지도 못하고 달려 온 터에 심화가 너무 깊어지셨다. 빨리 서둘러라!”

남욱이 권절을 부축이며 아우들을 재촉하고 있었다. 분노가 심하게 일었던 상태에서 지친 몸이기까지 했던 권절이었다. 이어지는 연휘의 도발을 감당하지 못한 그가 기어코 피를 토해내며 혼절하는 사태까지 발생하고 말았던 것이다.

남욱의 눈에 창백해진 안색을 한 채, 아우들에게 들려 물러나는 권절의 모습이 보였다. 연휘의 말 몇 마디에 천하의 권절이 어처구니없게도 무너지고 만 것이다. 남욱의 가슴이 쇳덩이로 만든 추라도 달아놓은 것처럼 무겁게 가라앉고 있었다. 상대는 보통이 아니었다. 상식을 뛰어넘는 괴물이었던 것이다. 얼핏 훑어본 바로 판단하기에는 이른 감이 있겠지만 무공 역시 자신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보였던 까닭이었다.

“네 놈이 어인 연유로 이리 격장지계를 쓰는지는 모르겠지만 결코 목숨을 부지하지는 못할 것이다.”

“허어, 그나마 좀 나은 놈이 있나 싶더니만 그것도 아니었구나. 이놈이나 저놈이나 다 거기서 거기였어.”

“무엇하러 그리 길게 말씀을 나누십니까, 그저 싹 쓸어버리면 편하지 않겠습니까. 가뜩이나 몸도 근질거리는데 손맛 좀 보게 해주시지요.”

남욱과 연휘의 얘기에 광도가 끼어들고 있었다. 허나 그의 말 역시도 상대방의 심기를 긁어대는 것에는 변함이 없었다. 남욱의 눈에 시퍼런 귀화가 솟구치는 것처럼 보이고 있었다.

“도무지 대화가 통하질 않는 놈들이로구나. 그래도 연유나 알아보려 했더니만 일단 반쯤 죽여 놓고 따져야 하겠다. 얘들아 쳐라!”

“잠깐! 그 전에 한 가지만 묻자. 네 놈들이 떼거지로 이렇게 몰려 온 것은 가상하다만 상대에 대해서 알고는 온 것이냐? 기껏 일백의 인원으로 한 번 붙어보자는 심사가 어찌 미친놈들처럼 보이기에 묻는 것이다.”

연휘의 주변에는 광도와 검마를 비롯해 대주급으로만 십여 명이 있을 뿐이었다. 팽완과 팽호 등은 자리에 나타나지도 않았다. 남욱이 보기에는 원래 들었던 것보다도 더욱 적은 인원이었던 것이다. 함정 따위는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남충으로 들어온 의혈문도는 고작 오십이 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었던 까닭이었다.

“네 놈의 시답잖은 말은 들고 싶지도 않다. 쳐라!”

“아, 정말 성깔 한 번 더럽게 급한 놈이네. 주변을 한 번 둘러봐라. 그러고도 덤빌 용의가 있다면 내 한 수 가르쳐주마.”

여전히 느물거리는 연휘의 말에서 뭔가 다르다는 것을 느낀 남욱이었다. 그를 비롯한 은하장의 무인들이 급히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낙담할 수밖에 없었다.

“헉! 언제!”

“이럴 수가, 도대체 어디서 저렇게 많은 자들이 나타났단 말이냐!”

남욱 뿐만이 아니었다. 팔숙의 남은 자들은 물론, 은하장의 수하들까지 모두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얼추 보아도 이천은 족히 넘어 보이는 자들이 활을 겨눈 채 그들을 포위하고 있었던 것이다. 앞으로 나서는 순간 고슴도치가 되어 죽어갈 판이었다.

“자, 이제 상황파악이 된 것 같으니 간단히 말을 하마. 모두 무기를 버려라. 그리고 순순히 제압당한다면 결코 목숨을 빼앗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나마도 네 놈들이 무인답다는 생각이 들어 이리하는 것이니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내 말을 따라야 할 것이야.”

“이놈이! 크으!”

이미 상황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권절마저도 혼절한 상태였다. 죽기를 작정하고 달려든다면 못할 것도 없겠지만, 말 그대로 개죽음을 당하고 말 것이었다. 그리되면 은하장은 끝이었다. 남욱의 일그러진 얼굴에 피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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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강호풍운록(호북 湖北 2) +11 07.05.31 13,972 73 16쪽
53 강호풍운록(호북 湖北 1) +12 07.05.30 13,779 73 14쪽
52 강호풍운록(검왕 劍王 5) +8 07.05.30 13,808 73 12쪽
51 강호풍운록(검왕 劍王 4) +11 07.05.30 16,143 99 14쪽
50 강호풍운록(검왕 劍王 3) +10 07.05.29 13,488 82 13쪽
49 강호풍운록(검왕 劍王 2) +14 07.05.29 13,271 81 15쪽
48 강호풍운록(검왕 劍王 1) +17 07.05.28 13,904 81 12쪽
47 강호풍운록(해남전 海南戰 8) +14 07.05.28 13,390 80 12쪽
46 강호풍운록(해남전 海南戰 7) +9 07.05.28 13,387 86 13쪽
45 강호풍운록(해남전 海南戰 6) +11 07.05.27 13,643 8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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