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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담(松潭) 님의 서재입니다.

강호풍운록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완결

송담(松潭)
작품등록일 :
2007.06.26 18:12
최근연재일 :
2007.06.26 18:12
연재수 :
7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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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2,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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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6.14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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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글자
20쪽

강호풍운록(맹주 盟主 1)

DUMMY

모용강이 다가섬에 따라 제갈천 역시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물러서고 있었다. 삼장의 거리가 어느덧 이장으로 좁혀진다 싶었다.

“쉬이익!”

그리고 어느 순간 모용강의 신형이 폭발적으로 제갈천에게 달려들었다. 화들짝 놀란 제갈천이 물러서려 했지만 이미 늦은 감이 있었다. 그만큼 모용강의 움직임이 빨랐던 것이다.

그렇게 다가선 모용강의 팔이 앞으로 휘감고 들어갔다. 검을 쥐고 있는 제갈천의 손목을 감으려 하는 것이다. 마치 잔뜩 독이 오른 뱀의 머리처럼 빳빳하게 날을 세운 손이었다.

“헉!”

기겁을 한 제갈천의 입장에서는 급하게 한 발 뒤로 물러서며 검을 틀어 막아갈 수밖에 없었다. 순간적으로 취한 동작이었지만, 경황없는 상태에서 펼친 것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절묘한 방어였다. 그리고 그것은 곧바로 공격으로 이어졌다. 검왕의 팔이 검의 궤적에 들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나름대로 만족해하는 제갈천이었다. 이에 고무된 그가 검에 힘을 불어넣으며 더욱 빠르게 검왕의 팔을 베어가고 있었다.

“차앗!”

허나 언제 팔을 들었었느냐는 듯, 어느새 검왕의 손은 검의 궤적을 벗어나 밑으로 내려져 있었다. 팔이 내려가는 탄력으로 인해 중심이 아래로 쏠린 검왕이다. 그 여파를 이용해 자세를 한껏 낮춘 검왕이 발을 들어 올리며 제갈천의 하체를 노리고 빠르게 쓸어갔다.

“허엇!”

이번에도 급박하기는 마찬가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틀어쥐었던 검을 아래로 향하며 검왕의 발을 베어가는 제갈천이다. 기선을 제압당한 것 치고는 아주 적절한 대응이었다. 그런 동작으로만 놓고 봤을 때, 그의 무위가 결코 낮은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한 수였다.

허나 갈수록 제갈천의 자세는 어렵게 꼬이기만 했다. 검왕이 두 번의 공격을 하는 동안 그의 보폭이 좁아지더니 어느새 다리 하나를 든 채, 몸이 비틀린 상태로 어렵게 중심을 잡고 있었던 것이다.

제갈천의 검이 무섭게 다리를 베어오자 검왕은 공격을 회수해야만 했다. 다리를 접어 들이는 검왕의 눈에, 중심을 잡기위해 외다리로 버티며 검을 쓸어가던 제갈천의 위태해 보이는 몸이 보이고 있었다. 재빨리 발을 빼내며 한 발짝 물러나려는 그를 그대로 내버려 둘 검왕이 아니었다. 하체공격을 막아내느라 검극(劒極)이 아래로 향했던 제갈천의 검이다. 자신이 다리를 접음으로 인해, 목표를 잃고 한 쪽으로 쏠리는 검의 뒤를 따라 팔을 뻗어냈던 것이다. 그 상태대로 진행이 된다면 제갈천의 손등을 치고 손목을 감아 돌리게 될 것이었다.

“흐윽!”

다급하게 숨을 들이마신 제갈천이다. 그만큼 검왕의 공격은 잘 짜놓은 틀처럼 빠르게 조여오고 있었다. 손목을 뒤집고 팔꿈치를 굽혀 급히 검을 걷어 올림과 동시에, 검날이 검왕의 팔을 향하게 만들었다. 팔이 뒤틀리기는 했지만 지금의 상황에서는 가장 적절하다고 볼 수 있는 대응인 것이다. 게다가 자칫 검날에 걸리기라도 한다면 검왕의 팔은 떨어져 나가고 말 것이었다. 그것으로 상황이 종료되었다면 자부심을 가져도 될 만큼, 제갈천의 임기응변은 대단하다고 할 수 있었다.

허나 상대는 검왕이었다. 십대고수로 칭해지고는 있었지만, 조심스레 천하제일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는 명실상부(名實相符) 최고수인 것이다.

검왕이 그 상태에서 한 발 앞으로 나서며 몸을 돌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동작은 실로 엄청난 것을 불러왔다. 순간적으로 제갈천의 검이 검왕의 뒤로 밀려나고 말았던 것이다. 검이 밀려난 만큼 둘의 간격이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 제갈천이 그토록 유지하려 애쓰던 거리가 사라진 것이다. 효용을 발휘하게끔 만들어 주는 거리를 이미 잃어버리고, 거추장스러운 물건에 지나지 않게 된 제갈천의 검이었다. 그리고 뒤에 펼쳐지게 된 결과는 누구나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수순을 밟고 있었다.

“크윽! 어찌... 이럴 수,,,”

검왕의 손끝이 제갈천의 복부에 틀어박히고 있었다. 이어서 검을 잡고 있던 제갈천의 손목을, 이미 복부를 가격하고 자리를 찾아 돌아오는 팔로 감아 들어갔다. 어렵지 않게 걸려드는 손목이었다. 복부에 가해진 충격의 후유증으로 인해 제갈천이 미처 피해내지 못한 것이다.

그렇게 자신의 팔에 감겨 속절없이 딸려오는 제갈천의 팔꿈치를, 반대편 손으로 누르자 마른나무 부러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뒤로 꺾여버렸다.

“뚜각! 챙그렁!”

“끄으!”

쇳소리를 내며 제갈천의 검이 떨어지더니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 순간 이미 승부는 결정 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헛! 맹주님!”

“맹주님!”

대경한 맹주수호대가 달려들려 했지만, 그들은 소리만 질렀을 뿐 움직임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미 제갈천이 완벽하게 제압당한 상태였던 것이다.

게다가 검왕의 공격은 아직도 끝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제갈천의 부러져버린 한쪽 팔을 그대로 잡고는 살짝 들어 올려 중심을 띄우더니 다리를 걸어 버린 것이다. 얼굴이 땅을 향할 수밖에 없는 상태였다. 저항을 하기에는 너무도 무기력하게 되어버린 제갈천이다. 그렇게 그의 얼굴이 바닥에 닿기도 전에 요란한 소리가 비명을 동반하고 터져 나왔다.

“뚜가가각!”

“끄아아악!”

부들부들 떨어대는 제갈천의 몸이 땅위에 내동댕이쳐진 물고기마냥 펄떡대고 있었다. 어깨뼈와 근육이 그대로 박살 난 고통이 그렇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어지는 검왕의 무릎공격이 그런 제갈천의 등판에 마지막 일격이라도 가하는 양 사정없이 가격하고 있었다.

“퍼걱! 컥!”

다시는 회복할 수 없도록 척추를 부숴버림으로 인해, 완전히 폐인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숨만 간신히 붙은 채 꿈틀거리며 고통에 허덕이는 제갈천이었다. 공포에 물들어 버린 눈에서는 아직까지 미련을 버리지 못한 듯, 욕망의 잔재가 진득하니 달라붙어 있었다. 그런 제갈천을 보는 모용강의 무심하기만 하던 눈빛이 갑자기 달라지며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덜컥!”

발을 들어 턱을 걷어 올리자 지저분해 보이던 제갈천의 눈이 감기며 혼백(魂魄)이 분리되고 말았다. 그렇게 목숨을 잃은 그의 입에서 검붉은 핏물과 함께 가느다란 쇠털모양의 암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우모침(牛毛針)이었다. 끝이 파르스름하게 변색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극독이 묻어있다고 여겨지는 것이었다.

맹주수호대는 굳어버린 듯 자리에서 움직일 생각도 못한 채, 그저 꿈틀거리다 목숨을 잃은 제갈천과 그런 그를 밟고 서있는 검왕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마치 홀리기라도 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서로 손을 섞은 것은 단지 삼합에 불과했을 뿐이었다. 그나마도 일방적으로 몰아붙인 것이었다. 이십년을 맹주라는 직위에 앉아 강호를 패악의 덩어리로 만들어 왔던 무맹주 제갈천의 끝은 너무도 허망하기만 했다.

모두가 장내의 상황에 얼이 빠진 듯 보였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제갈천의 급작스러운 죽음이 못내 믿기지 않았던 것이다.

검왕의 위세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어느새 모용경의 곁으로 다가섰는지 넋을 놓고 있던 그를 무자비하게 저며 대고 있었던 것이다. 반항할 엄두조차 내지도 못하고 바닥을 구르는 모용경이었다.

애원의 눈빛을 보내는 그를 무시한 모용강이 두 팔을 밟아버리더니 이어서 턱을 걷어 올렸다. 덜컥 소리와 함께 그대로 정신을 놓는 모용경이다. 그러나 제갈천과 다른 점이 있다면 가슴에 기복이 있다는 것뿐이었다.

이 많은 사람들 중에서 가장 강하다는 고수 둘을 해치우는데 걸린 시간은 대략 일각이 채 못 되고 있었다. 그렇게 전율(戰慄)이 일 정도의 무위를 보여준 모용강이었다. 잠시 호흡을 고르는가 싶더니 오만한 눈빛으로 사방을 둘러보며 기세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모두 들어라! 이 시간 이후로 기존의 무맹은 사라졌다. 앞으로는 나 모용강이 이끄는 무맹으로 거듭나야 하는 것이다. 패악을 절대 용서치 않을 것이며 약자에게 무력을 사용한 강압도 허용치 않을 것이다. 모용경과 이미 목숨을 잃은 제갈천을 하남의 본 맹으로 압송한다. 이번의 출정은 없었던 것으로 하겠다. 각 지부와 문파에 전서를 띄워 무맹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도록 하라! 정리가 되는 즉시 귀환하도록 한다!”

누구도 말을 할 수 없었다. 그 많은 사람들이 한 사람으로 인해 벙어리가 되어 버린 것이다. 검왕의 위세는 대단했다. 그의 말이 끝나고도 한참을 적막에 묻혀있던 가운데, 어디선가 작은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역시 검왕이야.”

그것은 매끄럽던 호면(湖面)에 작은 돌 하나가 던져진 것처럼 파문(波紋)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래, 맞아. 검왕이야.”

“이제 좀 달라질까...”

조심스럽게 앞날을 예측해 보려는 자들도 보였다. 대부분이 하급무사들이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제갈천의 죽음과 검왕의 등장은 결코 예사롭게 넘길 수 있는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어쩌면, 기대를 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어떤 하급무사의 작은 중얼거림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대다수 그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자들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모용강을 보는 그런 이들의 눈빛에 일말의 희망이 피어나고 있었다.


권절은 연휘가 머물렀던 고갯마루를 지나는 중이었다. 쉬지 않고 달린 까닭에 거리가 상당히 좁혀졌을 터였다. 일행들 모두가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달려왔기 때문인지, 까마귀가 사람의 형상을 빌리기라도 한 것처럼 온통 시커멓게 변해 있었다.

“형님! 여기서 싸움이 벌어졌던 것 같습니다.”

남욱이 싸운 흔적을 발견하고 멈춰 서며 권절을 부른 것이다.

“흠, 그리 오래되 보이지는 않는구먼.”

권절이 주변을 둘러보며 하는 말이었다.

“엄청난 접전이 벌어졌었구먼. 대체 어떤 자들이 이런 흔적을 남길 수 있단 말인고...”

연휘가 팽완과 접전을 벌였던 흔적을 발견하고 침음성을 흘리는 권절이었다. 그런 한 편으로 이들의 무위에 대한 흥미도 일고 있었다.

“아마도 연휘라는 놈과 도천이 벌인 일이 아닐까 합니다. 그들 외에는 이런 흔적을 남길만한 자들이 없습니다.”

“도천이 맞아. 뇌전기를 아낌없이 쏟아 부은 것 같은데, 연휘라는 애송이가 그것을 받아낸 모양이야.”

싸움의 흔적을 보며 권절이 유추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가리키는 곳에는 연휘가 밀려나며 생긴 두 줄기 고랑이 깊게 파여 있었다.

“도천이 밀렸구먼. 내상을 당한 듯 보여. 핏자국이 결코 작은 양이 아니야. 허허. 천하의 도천을 상대로 궁지에 몰아갈 인물이 있었다니, 보통 놈이 아니야. 진아가 비록 당했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어도 한 번쯤은 겨뤄보고 싶은 놈이구먼. 허허.”

혼자 팽완과 연휘의 싸움을 유추하며 흥분하는 권절이었다. 무인으로서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 할 것이다. 허나 그는 손자의 원수를 갚아야만 했다. 이번 출정의 목적도 그것이었던 것이다. 남욱이 그를 일깨우고 있었다.

“흔적으로 보아 하루 정도면 따라 붙을 수 있겠습니다. 놈들이 아직 우리에 대해 모르고 있는 것 같으니 빨리 따라 붙어야만 합니다.”

“그래, 서둘러야지. 빨리 가서 내 손자의 원수 놈에게 주리를 틀어줘야지. 가자.”

권절이 다시금 말에 오르고 있었다. 눈빛이 더욱 형형(炯炯)하게 변한 그가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대결장면을 좀 더 유추해 보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간절한 권절이었다. 허나 그보다는 속히 연휘를 따라 잡아야 한다는 것에 더욱 중점을 두고는 부지런히 말을 재촉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게 재촉하며 달린 까닭이었는지 연휘가 있는 곳으로부터 어느덧 반나절 거리까지 다가서고 있었다.


대충 보기에도 이천은 되어 보이는 무인들이 다급하게 달리고 있었다. 의혈문도들이 사천으로 진입한 것이다. 부지런히 움직였던 탓인지, 목적지인 남충까지는 얼마 남지 않은 거리였다. 그들의 선두에는 광도가 소혜를 업은 채 달리고 있었다. 언제 합류했는지 검마와 두 명의 장로들 역시도 부지런히 발을 놀리는 중이었다.

“힘이 드시면 잠시 쉬었다 가도록 해요.”

광도를 염려한 것인지 아니면 대원들을 걱정한 까닭인지는 모르겠지만, 소혜의 입에서 고운 소리가 나오며 휴식을 알리고 있었다.

“그럴까요? 하긴 쉴 때도 되었지요. 허허.”

광도가 전혀 힘들어 보이지 않는 모습을 한 채, 소혜의 말을 받았다.

“쉴만한 곳을 찾아봐라. 지난번처럼 요령피우다 저쪽 애들한테 뒤지지 말고 이번엔 좀 이겨보자. 빨리 서둘러.”

검마가 수하를 닦달하며 휴식처를 찾고 있었다. 저쪽 애들이라는 말은 광도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은연중에 광도의 수하들과 검마의 수하들이 경쟁을 하고 있는 까닭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열에 아홉은 검마의 수하들이 지고 말았다. 그것은 검마로 하여금 자신이 광도에게 밀린다는 느낌을 주고 있었다. 결국, 검마가 이런 사소한 일에서까지 승부욕을 태우게 만들었던 것이다.

“단주님, 찾았습니다. 진짜 기가 막힌 곳입니다. 이곳에서 저런 장소를 찾았다는 것은 기적일 겁니다.”

검마의 지극정성이 통한 것인지 그의 수하들이 광도의 수하들보다 먼저 소식을 가져왔다. 성격이 단순한 검마의 입이 귀까지 걸렸다.

“허허, 수고했다. 내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지. 광도야 우리 아이들 능력이 그래도 쓸 만하지 않더냐? 어서 가자, 모처럼 물에 발 좀 담그고 멋들어진 가락이라도 한 자락 읊어봐야겠다. 허허.”

검마가 모처럼 승부에 이긴 것이 좋았던지 원 없이 즐거워하고 있었다. 허나 광도는 그런 검마의 말에는 신경도 쓰지 않는 듯 했다. 경쟁이라는 것도 결국, 검마 혼자만의 생각이었던 것이다.

“조 단주님, 가시지요. 장로님들도 어서 가셔요. 물이 그립답니다.”

“허허, 진단주가 웃는 것을 얼마 만에 보는지 모르겠네.”

소혜가 광도와 장로들을 재촉해 대는데, 팽호가 검마의 웃는 모습을 보고는 광도 조찬에게 기분 좋다는 듯 말을 건네고 있었다.

“이보게나, 조단주. 어지간하면 가끔씩 지기도 하고 그러게, 진단주가 저리도 좋아하는 것을 보니 내 기분까지 덩달아 유쾌해지네 그려.”

“그러게 말 일세. 앞으로 자주 좀 저런 모습을 봤으면 좋겠네. 다 조단주 하기 나름일 것이야. 부탁함세. 허허.”

양위까지 검마의 웃음을 걸고 넘어가는 것이다. 머쓱해진 조찬이다.

“허, 저는 생각도 않고 있는 일입니다. 괜히 저놈 혼자서 경쟁이랍시고 수하들을 닦달하는 것이지요. 헌데 저리 좋아할 줄 알았다면 진즉 양보해 줄 것을 그랬습니다.”

이미 검마는 저만치 앞에서 수하를 따라 달려가고 있었다. 그가 이런 얘기를 들었다면 어떤 표정을 보였을지 모를 일이었다.

“단주님! 여깁니다. 정말 기가 막힌 곳이지요.”

수하의 자찬(自讚)이 계속되는 가운데, 어느새 기막힌 곳에 도착한 검마가 쌍심지를 돋우고 있었다. 얼굴마저 점점 붉어지더니 이윽고 그의 입에서 고함이 터져 나오고 말았다.

“이놈! 대체 생각이 있는 것이냐 없는 것이냐! 하이고, 내 이런 놈들을 믿고 같이 일을 해야 한다 생각하니 앞날이 훤하다, 훤해.”

“저, 좋지 않습니까? 물이 있고 나무그늘도 적당하니 이곳보다 좋은 곳을 어디서 찾을 수 있겠습니까?”

수하가 여전히 명당이라 주장하는 것을 보고 혀를 차는 검마였다.

“빠악!”

“크으! 아니, 단주님 도대체 왜 그러시는 것인지요. 이유나 알고 맞아도 맞아야겠습니다. 이유를 말씀해 주십시오.”

결국, 검마의 손에 의해 수하가 머리를 움켜쥘 수밖에 없었다. 허나 그 나물에 그 밥이라고 수하 역시 만만하지만은 않았다. 상관인 검마에게 꼬박 대들고 있는 것이다.

“허어, 말을 말자. 내 너하고 무슨 말을 하겠느냐, 하이고 내 팔자야.”

때 마침 두 명의 장로와 소혜 등이 그들의 곁으로 다가왔다.

“허어, 이곳이 그리 좋다는 명당?”

“기적적으로 찾아냈다더니 정말 둘도 없는 명당일세 그려. 허허허.”

두 장로가 명당이라는 말을 되짚어가며 허탈해 하는 한 편으로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있었다.

“호호, 정말 기막힌 자리이기는 하네요. 호호호호.”

“흐흐, 검마야 명당이다. 기막힌 명당.”

소혜와 광도마저도 어이가 없었는지 눈물까지 찔끔거리며 웃어넘기고 있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검마다. 그의 눈이 이곳을 발견하고 좋아하던 수하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허나 아직도 감이 잡히지 않는 듯, 한 술 더 뜨는 수하였다.

“정말 기막힌 자리 아닙니까, 하하. 제가 그래도 발품을 부지런히 팔았던 만큼 이런 자리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빠악!”

“크헉!”

“네 놈 눈에는 이곳이 진정 명당이라고 생각되는 것이냐? 어이구 내가 명을 다 채우지 못한 채 죽고 말 것이야. 어찌 저런 놈을 믿고 앞날을 헤쳐 나갈까, 아이고.“

검마의 넋두리가 애절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 옆에는 뒤통수에 주먹만 한 혹을 달고, 아직도 상황파악이 안 되는 까닭에 고개를 갸우뚱 거리는 수하가 있었다. 그 모습이 검마의 눈에 들었다.

“빠악!”

“에라 이놈아. 아직도 모르겠느냐?”

나름대로 이해하기 위해 애쓰고 있던 수하가, 또 다시 얻어터진 뒤통수를 만져가며 입술을 삐죽이고 있었다.

급박한 상황에서 정신없이 달려왔던 이들이었다. 온 정신을 남충으로 보내놓고 노심초사(勞心焦思) 길을 재촉하던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웃을 수밖에 없는 장면인 것이다. 참으로 모처럼 웃어보는 이들 이었다.

“단주님, 저쪽에 좋은 곳이 있습니다. 그리 가시지요.”

마침, 광도의 수하가 달려오며 제대로 된 장소를 찾았는지 일행들을 부르고 있었다. 한 바탕 웃어 제친 일행들이 장소를 옮기고 있는 동안에도 검마의 넋두리는 애절하게 울리고 있었다. 그렇게 신세한탄을 하는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명당의 모습이었다.

“허어. 이 민망함을 어찌해야 할까나.”

작은 개울가에 모래톱이 십여 장 길게 늘어진 채, 뒤편의 고목들이 드리워준 그늘에 젖어있는 그림 같은 풍경인 것이다. 명당은 명당이었다. 허나 모래톱을 제외하고는 엉덩이 붙일 자리가 보이지 않았다. 기껏해야 백여 명이 들어가 앉기에도 좁아 보이는 것이다.

이들의 인원은 이천이나 되었다. 수뇌들만 있는 자리였다면 진정한 명당이었을 것이지만, 지금의 이들에게는 화중지병(畵中之餠) 그림의 떡이었던 것이다.

잠시 웃음을 보였던 의혈문의 사람들은, 장소를 옮겨가는 동안 안색들이 어둡게 변해가고 있었다. 대책 없이 일을 벌인 연휘로 인한 때문이었다. 이미 행적이 다 드러나 버린 것이다. 어지간히 정보에 어두운 자가 아닌 이상은 그의 사천행을 알고 있었다. 무창에서 얼굴이 알려진 것과 하륜이 객잔에서 남궁기를 만나게 된 까닭이었다.

소혜가 수집한 정보에 의하면 권절 역시 남충을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검왕이 모용세가를 접수하고 밖으로 나왔다는 것과, 천수를 지나 섬서로 들어섰다는 소식까지 접하고 있었다.

강호의 소문은 그리 빨랐던 것이다.

잠시 휴식을 취한 그들이 남충을 향해 다시 몸을 날리고 있었다. 반나절이 채 안 걸리는 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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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강호풍운록(해남전 海南戰 7) +9 07.05.28 13,387 86 13쪽
45 강호풍운록(해남전 海南戰 6) +11 07.05.27 13,643 8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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