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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담(松潭) 님의 서재입니다.

강호풍운록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완결

송담(松潭)
작품등록일 :
2007.06.26 18:12
최근연재일 :
2007.06.26 18:12
연재수 :
7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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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6.05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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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9쪽

강호풍운록(풍운 風雲 2)

DUMMY

천수의 입구에서는 은하장의 무리들과 모용강이 한 판 어울리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등룡대는 싸움판에 뛰어들 기회조차 잡지 못하고 구경만하는 처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검왕의 신위가 워낙 대단했던 까닭이었다.

“스윽, 사사삭, 스윽.”

“끅, 끄윽, 큭!”

모용강의 신형은 가뭄에 말라버린 연못에서 물 만난 고기마냥, 사방이 좁다하고 누비고 있었다. 은하장 무리들은 어떤 공격으로도 그의 몸에 상처하나 낼 수 없었다. 스치지도 못하는 것이다.

“사삭, 스윽, 슥”

“크윽! 꺼억, 컥!”

한 번의 움직임에 보통 서넛이 쓰러지고 있었다. 큰 동작은 결코 보이질 않는 모용강이었다. 허나 그의 손과 발은 상대의 급소를 정확하게 치고 지나가는 것이다.

약간의 힘만으로도 사망에 이를 수 있는 것이 사혈이라는 곳이었다. 보통 급소라고 말하는 부분이다. 그렇게 사혈을 쳐가는 모용강의 행위에서 격한 움직임은 전혀 보이질 않았던 것이다.

‘어찌 저럴 수가... 하지만 우리도 결코 녹록치는 않을 것이다...’

고영의 생각이었다. 십대고수라는 말의 의미가 새삼 무겁게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일반적인 무인들로서는 옷자락 하나 어쩔 수 없었다. 큰 소음도 없이 그저 유유히 산보라도 하는 듯 보이는 그의 몸짓마다, 은하장의 수하들이 속절없이 쓰러져 가고 있었다. 모용강은 검왕이라는 이름과는 어울리지 않게 검을 들지 않고도 대단한 신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모두 물러서라! 다음 계책을 펼칠 것이다. 속히 물러서라!”

은하장의 총관 고영이 결국 수하들을 물리고 말았다. 그의 침통한 얼굴이 유독 두드러져 보이고 있었다. 뒤로 물러나는 수하들을 보는 고영의 눈에 결연한 의지가 스며들었다.

“명불허전! 과연 검왕이로다! 허나 이곳에서 뼈를 묻어야 한다는 사실만큼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제룡대는 뒤의 떨거지들을 맡아 한 놈도 벗어나지 못하도록 하라! 팔숙께서는 검왕을 상대해주시기 바랍니다.”

검왕과 모용세가의 정예 오백을 상대하는데, 기껏 일천의 무인들만 왔을 리가 없었던 것이다. 등룡대의 주위에서 뿌옇게 먼지가 일어난다 싶더니 어느새 사방이 포위되어 버렸다. 일견하기에도 일천이 넘어 보이는 자들이었다. 기세 또한 범상치 않아보였다.

모용강의 앞으로 여덟의 노인이 여유롭게 나타나고 있었다. 팔숙이라 했다. 권절의 의동생들이다. 개개인의 무위는 권절에 미치지 못했지만, 이들이 힘을 합하면, 아무리 권절이라 해도 승부가 어려울 것이라 전해지는 자들이었다. 허나 모용강의 얼굴엔 웃음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조금 강해 보이기는 했지만, 이들 정도로는 자신을 어찌할 수 없다는 자신감이었다.

“허어, 이런 곳에서 팔숙을 보게 되다니 의외의 성과라 하겠소이다. 그래 권절선배는 잘 계시오?”

“검왕의 신위에 감탄을 금할 수 없소이다. 역시 십대고수가 괜한 말이 아니었음을 실감했소이다. 형님께서는 아직 이곳의 일을 모르고 있소이다. 또한 굳이 알려드릴 이유도 없다는 생각도 있었지요.”

팔숙 중의 가장 맏이인 유성비폭검(流星飛瀑劍) 남욱이었다. 모용강을 보는 그들의 시선엔 긴장이 보이질 않았다. 권절 또한 검왕과 마찬가지로, 십대고수중에서도 수위에 속할 것으로 알려진 것이다. 그런 권절과 숱한 비무를 해왔던 팔숙이었다. 검왕이라해도 크게 부담이 없는 까닭이었다.

“갈 길이 바쁜 터이니 이만하고 어울려 보는 것이 어떻겠소?”

의혈문의 일로 인해 천수에서 쉴 여유가 없어진 모용강이었다. 팔숙을 대하는 그의 모습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좋소이다. 검왕의 경지를 한 번 견식해 보기로 하겠소이다. 모두 최선을 다하라. 결코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다.”

팔숙이 모용강을 에워싸고 있었다. 그리고 남욱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슈슈슈슉!”

순식간에 네 번의 찌르기가 들어왔다. 공격부위는 가슴과 목이었다. 단순한 찌르기가 아닌 것이, 그의 별호처럼 유성이 쏘아져 오는 듯 빠른 속도를 동반하고 있었다.

“대단한 검이오. 능히 일절이라 할 만 하외다.”

남욱의 유성검을 모용강은 어렵지 않게 피하며 평을 하고 있었다. 그만큼 여유가 있다는 뜻이었다. 남욱의 눈썹이 곤두섰다. 모욕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때를 같이해서 다른 이들의 공격이 들어오고 있었다.

“허허, 참으로 절묘한 협공이로다. 자칫하면 낭패를 보겠구먼.”

여전히 입을 놀리며 저들의 합공을 회피하는 모용강이었다. 말없이 공격을 회수하는 팔숙의 얼굴이 수치심을 참지 못해 붉어지고 있었다. 눈빛 또한 얼굴이 변해가는 만큼, 좀 전과는 비교도 안 되게 강렬해진 그들이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공방이 이루어질 터였다. 하지만 그들에게 그런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따당! 퍼버버벅!”

“끄으으윽! 쿠다다당!”

막 공격을 회수하고 다음을 대비하려던 팔숙의 막내가, 검면을 치면서 들어온 모용강의 손에 가슴을 맞고 뒹굴었던 것이다. 실로 순간적인 일이었다. 피하기만 하던 모용강이었다. 그런 행동이 팔숙으로 하여금, 작은 틈을 비치게 만들었던 것이다. 아주 작은 느슨함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느슨했던 생각은 막내가 뒹구는 것으로 결과를 보여주고 있었다.

모용강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저돌적으로 달려들고 있는 것이다. 저들의 공격 따위는 전혀 상관할 바가 없다는 듯, 일견 무모해 보이는 움직임이었다.

“쉬이익!”

“휘유웅! 쉬익!”

“따다당! 따당! 땅!”

팔숙의 넷째와 일곱째는 기겁을 하고 말았다. 호신강기였던 것이다. 검왕이라 불리는 자였다. 그런 그가 호신강기를 펼치는 것이야 말할 바가 아니었지만, 그 강도와 크기가 달랐던 것이다. 무려 반장이나 되는 거리까지 펼쳐진 그것에 의해 자신들의 검이 튕겨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그러한 짧은 틈은, 모용강에 의한 휴식으로 연결되어 버렸다.

“퍼벅! 퍼버벅!”

둘 모두 가슴을 정통으로 맞은 것이다. 막내의 뒤를 이어 바닥을 굴러야만 했다. 남욱의 공격이 시작되고 호흡 몇 번 지나지 않은 시간이었다. 이렇게 쉽게 당할 팔숙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이 당한 것은 현실이었다. 그것이 남은 팔숙의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계속 할 것이오? 그리 한다면 이제 살수를 사용해야 할 듯싶소만.”

모용강의 말에는 절대자의 힘이 담겨있었다. 남욱은 그것을 느꼈다. 그의 고개가 떨어지고 있었다.

“우리는 검왕을 감당할 능력이 없소.”

“허허, 고맙소.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시 어울려 봅시다.”

비감한 표정을 보이며 쓰러진 팔숙의 세 명을 부축하고 돌아서는 그들에게, 모용강의 말이 이어지고 있었다.

“헌데, 은하장에서는 강호 전역에 무성한 소문을 듣지 못한 것이오? 이리 한가하게 여유 부리고 있을 때가 아닌 듯싶은데 말씀이오.”

느닷없는 모용강의 말에 남욱이 의아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무슨? 이곳은 소문이 좀 늦는 편이라오.”

“허어, 발등에 불이 떨어져 전신을 휘감아 태울 기세를 보이고 있는데, 정작 당사자는 모르고 있다니 납득이 가질 않소이다. 혹시 위진이라는 자가 위덕 선배의 손이 아니오?”

“진아가 형님의 손인 것은 맞지요. 지금쯤 호북지부주로 갔을 터인데,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이오?”

이들은 아직 의혈문의 일을 모르고 있는 것이었다. 방을 붙인 곳이 모두 무맹의 지부가 위치한 곳이었기 때문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무맹을 중심으로 붙었던 까닭이었다. 감숙에는 방이 붙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무맹이나 호북지부에서 소식을 알려온다 해도, 빨라야 내일이나 될 것이었다.

“허허, 위진의 생사가 불분명한 상황이오. 호북지부가 어찌 될 것인지는 아직 알 수가 없는 일이지요.”

“무슨 말씀이오! 진아의 생사가 불분명하다니, 게다가 호북지부가 어찌 될 것이라니! 하남의 바로 턱밑이 호북지부요. 헌데 그곳에서 어떤 변이라도 생겼단 말씀인 것이오!”

위진의 변고라는 말에 잔뜩 흥분한 남욱이었다. 초연한 듯 보이던 그의 모습을 지금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는 것이다. 팔숙의 나머지 인물들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승부에서는 졌다 할망정, 탈속한 신선의 모습을 하고 있는 그들이었다. 하지만 모용강의 말로 인해 그런 모습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연휘라는 자와 의혈문이라는 문파를 들어보셨소?”

“그건 또 무슨 말씀이오. 속 시원히 말씀해 보시오.”

“허허, 귀주지부의 일과 해남의 패퇴에 대해서는 알고 있겠지요?”

남욱은 시간이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재촉하고 있었다.

“허면, 언가가 거의 멸문에 가까운 타격을 입었다는 사실은?”

“금시초문이오. 답답하오. 빨리 좀 말해주시오.”

남욱의 재촉에 재미라도 느끼고 있는지, 모용강의 얼굴엔 느긋함이 배어있었다. 그러던 그가 품에서 예의 방문을 꺼내들었다. 궁금함이 남욱의 몸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이것을 한 번 보시겠소? 조금 전에 들어온 소식이오.”

뺏듯이 모용강의 손에서 가져와 펼쳐보는 남욱이다. 점점 그의 몸이 떨리기 시작하더니 어느덧 그의 얼굴엔 온통 당혹함만이 남아 있었다. 나머지 팔숙이 황급히 그의 손에 들린 것을 돌려보기 시작했다. 그런 그들의 모습도 결코, 남욱과 다르지 않았다.

위진이 누구던가. 그들의 대형인 권절 위덕의 장손이었다. 또한 가장 강력한 파벌인 소림의 속가이기도 한 그였다. 그런 막강한 배경을 지닌 위진이 생사가 불분명한 상태에 처해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란 말씀이오? 도대체 어찌 이런 일이...”

“호북으로 가봐야 하지 않겠소?”

사실 마음이 급하기로 따지자면 모용강이 더했다. 의혈문의 일로 무맹이 어찌 변할지 모르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어차피 크게 달라질 것은 아니겠지만, 자칫하면 번거로움이 늘어가게 되는 까닭이었다. 허나 그의 표정에는 전혀 급함이 보이질 않고 있었다.

“일단 형님께 소식부터 전해야겠소. 그리고 고맙소. 검왕의 후의를 절대 잊지 않으리다. 아무래도 단순히 넘어갈 일이 아닌 듯싶소. 살펴 가도록 하시오. 가자!”

팔숙이 모두 신형을 돌리더니 순식간에 사라지고 있었다. 고수라 자부하던 그들이었지만, 얼마나 다급했는지 먼지를 풀풀 날리며 가버린 것이다.

허나 팔숙이 그냥 갔다고 해서 이곳의 일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고영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으며, 등룡대의 포위도 풀지 않았던 것이다.

“허어, 고총관. 상황파악이 아직 안 되는 것인가? 위진이 생사불명의 상황이라는데 이러고 있어도 되냐는 말일세. 속히 조치를 취하고 호북으로 달려가야 하는 것 아닌가?”

모용강의 말에 고영은 곤혹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마음이야 당장 돌아가고 싶었지만, 그의 임무는 검왕의 행보를 막는 것이었다. 아직은 동원령에 대해 알 수 없었던 까닭이었다. 만일 공각을 비롯한 장로들이 모두 참회동으로 끌려갔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지금과 같은 괜한 사단을 벌이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소식이 올 것이오. 그때까지는 막고 있을 수밖에 없소. 핑계에 불과할 뿐이지만, 어쨌든 이곳은 은하장의 영역이오. 결코 쉽게 지나갈 수는 없을 것이오. 팔숙께서 패퇴했다 해서 나의 임무를 저버릴 수는 없는 것이오.”

앞뒤로 꽉 막힌 고영이었다.

“허어, 내 갈 길이 워낙 바쁘다보니 그리는 안 되겠네. 어차피 자네들은 호북으로 가야 할 것이야. 최대한 전력을 유지하는 것이 좋을 것이네. 헌데도 굳이 길을 막겠다면, 뚫고 갈 수밖에.”

“다시 말 하지만, 결코 쉽지는 않을 것이오.”

“그럼 시작함세. 등룡대는 최대한 빨리 이곳을 지나도록 하라. 이미 사단이 일어나고 있으니, 무맹까지 쉬지 않고 간다.”

말을 마침과 동시에 모용강의 신형이 사라지고 있었다. 아까까지 보였던 그런 여유 있는 몸짓이 아니었다. 한바탕 폭풍이 몰아치듯 은하장의 무리들을 거세게 쓸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수하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제룡대가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한 파벌의 주축이었던 모용세가였다. 그런 중에서도 정예만 추린 등룡대였던 것이다.

두 배가 넘는 인원이었지만 등룡대는 결코 위축되지 않았다. 모용강의 말이 끝나자 바로 달려 나가며 은하장의 제룡대를 몰아 부치기 시작한 것이다. 허나 생각했던 것처럼 만만치는 않았다. 제룡대주를 비롯한 수뇌들의 병력운용이 심상치 않았던 까닭이었다.

그들은 직접적인 부딪힘을 자제했다. 등룡대가 덤벼들면 최대한 물러났다. 그리고 뒤에서 공격해 들어갔다. 등룡대가 방향을 틀어 대항해오면 그들 역시도 물러났다. 그리고 처음에 물러났던 자들이 다시 쇄도해 들어왔다. 철저한 차륜전인 것이다.

애초 은하장의 목적은 검왕의 무맹 행을 최대한 늦추는 것이었다. 공각이 무맹을 완전히 장악할 때까지 시간을 벌어주려는 생각이었다. 일단 그들의 작전은 잘 먹혀드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들은 모용강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었다. 그들이 모용강에 대한 평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던 것이다. 그저 십대고수라는 생각만으로 시행되었던 일이었지만, 그는 단순한 십대고수가 아니었다. 팔숙과의 대결을 보면서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던 고영이었다. 그러나 막상 직접적으로 대면하고 나니 도저히 감당이 되질 않는 것이다. 모용강이 전력을 펼친 까닭이었다. 모용강으로 인해 제룡대의 차륜전도 크게 소용이 없어졌다.

고영의 눈이 더는 커질 수 없을 만큼 커지고 있었다. 그에게 수십 명이 달려들었지만, 아이들이 팔 척 거한에게 달려드는 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던 것이다. 자칫하다가는 은하장이 궤멸당하고 말 것이었다.

“어찌 이럴 수가... 소문은 잘 못 되었다. 그는 십대고수라는 이름으로 불릴 수가 없는 자이다... 노장주님 조차도 그에게서 백 초를 버티지 못할 것이다.”

모용강의 무위에 경악한 고영의 말이었다.

“모두 후퇴하라! 싸움을 멈추고 후퇴하라!”

은하장의 무리들이 다급히 물러나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굳이 쫓을 생각도 않고 모용강은 천수를 가로질러 나갔다.

“최대한 빨리 달린다! 낙오자는 용서치 않을 것이다!”


호북을 떠나 사천으로 방향을 잡은 연휘다. 사천에서는 더욱 힘들어질 것이었다. 당문, 청성, 아미등 쟁쟁한 문파들이 우글거리는 곳이 바로 사천인 까닭이었다.

무창에서의 일을 마무리하고는 바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이미 무맹에서는 자신들을 잡기위해 척살대를 파견했을 터였다. 빠른 시간에 호북을 벗어나야 했다. 연휘와 의혈문도들의 신형이 날아가듯 움직이고 있었다. 큰일을 치룬 상태라고 보기에는 비교적 가벼워 보이는 걸음이었다.

호북지부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눈빛이 떠오르고 있었다. 뭔가 새롭게 해야 할 일을 찾은 듯 보이는 그들이었다. 그것이면 족했다. 그들이 그런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것만으로도, 연휘는 시름을 덜고 있었다. 사천으로 향하는 발길이 한결 가벼워 보이는 까닭이었다.

호북지부 수뇌들과 구십팔 명의 악질적인 자들의 무공을 전폐시키고 그들의 재산을 모두 몰수했다. 그리고 그렇게 몰수한 재물들을 빈민들이 자립하는데 쓰도록 지시한 연휘였다. 호북지부원 중에서 그나마 양식이 있는 자들을 골라 맡겨두었으니 크게 걱정할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위진과 단목우등은 식솔들과 함께 빈민촌으로 거처를 옮기도록 조치를 취하고 말았다. 애초 생각했던 것처럼 죽음을 내리지는 않았지만, 어쩌면 그들에게는 더욱 고통스러울 수 있는 조치였을 것이다. 폐인이나 다름없는 그들이었다. 재산마저 모두 빼앗기고 빈민촌으로 쫓겨 간 것이다. 어찌 살아갈지 막막할 것이었다. 잔인하다 할 수 있겠지만, 그들은 죽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 했다.


“부탁한다. 그리고 무사해라.”

“조심하십시오. 꼭 살아 남으셔야 합니다.”

무창을 벗어나는 지점에서 서로들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흔적을 지우기 위해 몇몇의 수하들은 남아야만 했던 것이다. 비록 눈물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들에게서는 진한 동료애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제 남게 되는 수하들은 그들의 일을 처리한 뒤 은밀하고 신속하게 홍구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지금쯤이면, 홍구와 운남에서 또 다른 수하들이 안휘와 사천으로 올라오고 있을 것이었다.

희생은 불가피 할 것이다. 더는 기습이 통하지 않을 터였다. 무맹에서 동원령이 내려지는 순간, 자신과 의혈문은 무림공적이 되는 까닭이었다. 자칫하면 천라지망에 빠질 위험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후회하지 않았다.

이미 한 번 죽었던 목숨이라 생각하는 때문이었다. 단지 연휘만이 수하들의 희생에 대해 안타까워하고 있을 뿐이었다.

연휘와 수하들의 신형이 무창을 벗어나고 있었다.


은하장이다.

깊숙이 자리한 권절의 처소에서는, 엄청난 한기가 치솟고 있는 중이었다. 팔숙은 안절부절 하는 모습으로, 자리에 앉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앞에 서있는 이는, 권절 위덕이었다. 평소 온화한 풍모를 보이던 권절이 아니었다. 그의 탐스러운 수염은, 마치 서리라도 맞은 것처럼 빳빳하게 굳어있었다. 남욱이 가져온 소식으로 인한 것이었다.

진위 여부를 가릴 여유가 그에겐 없었다. 얼마나 애지중지 하던 손자였는지는, 은하장 뿐만이 아니라 천수전체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강호에서도 웬만한 사람들은, 권절의 병적인 손자사랑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의혈문이라는 놈들이, 도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놈들이냐!”

“그것이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연휘란 놈도 처음 들어보았습니다. 형님. 일단 무창으로 가시지요. 거기서 확인을 한 후에 놈을 찾아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무창까지 최고로 빠른 길을 찾아봐라. 감히 어떤 놈들이기에 내 손자를 건드렸다는 말인가. 내 놈들을 찾아 사지를 부러뜨리고 말겠다. 놈들을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만들고야 말 것이다.”

십대고수 중에서 최고령인 권절이, 움직이려 하고 있었다. 그것도 다름 아닌 손자의 안위로 인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의 행보는 당연히 연휘를 향하게 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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