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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천후』 님의 서재입니다.

동전 한 닢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중·단편

완결

[악천후]
작품등록일 :
2016.04.01 18:27
최근연재일 :
2016.04.01 18:47
연재수 :
5 회
조회수 :
5,076
추천수 :
20
글자수 :
37,135

작성
16.04.01 18:46
조회
782
추천
3
글자
12쪽

동전 한 닢

DUMMY

10


“미안하게 됐네. 내가 그만 취중에 헛소리를 늘어놓은 듯하네. 뭐라 할 말이 없네.”

사진석은 송구스런 얼굴로 용서를 구했다. 막굉과 유일한 지기라 할 수 있는 사진석이었다. 때문에 막굉이 사지에서 돌아오고 난 후 술자리를 가졌고, 그때 막굉답지 않게 산골마을에서의 일을 지나는 말로 꺼냈던 것이다. 그런데 사진석은 그런 막굉의 모습이 낯설었기 때문에 흘리듯 지나쳐간 말을 기억하였다.

사진석은 나름대로 명성을 지녔지만, 무림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그것이 문제였다. ‘귀검의 동전’이라 이름 붙여진 동전에 관한 이야기가 그토록 큰 파장을 불러올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가 친우들과 모인 자리에서 자연스레 막굉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사진석은 막굉과의 친분을 과시하고픈 마음에 주저리주저리 이야기를 늘어놓았던 것이다.

그날 사진석과 함께 술자리를 한 사람들 대부분은 무림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지만, 그 중 한 사람은 그쪽 세계와 관계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사진석의 말을 들은 그는 그것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 대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지금 강호 전체가 들썩이게 되는 상황을 초래한 것이었다.

사진석은 막굉의 눈치를 살폈다. 비록 오랫동안 친분을 쌓아온 사이였지만, 막굉의 명성은 악행으로 쌓은 것이 대부분이었고, 그가 얼마나 무자비한 인물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사진석은 두려운 마음으로 막굉의 안색을 살폈다. 그러나 사진석의 우려와는 달리 막굉의 표정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그의 관심은 다른 곳에 있는 듯했다.

“그건 상관없네. 어차피 알려진 것이고, 혹 그것을 이용하려는 자가 나와도 상관없네. 분명 그 청년에게 내 별호를 새긴 동전 한 닢을 주었고, 소원 한 가지를 들어준다고 했네. 하지만 그것은 오로지 그의 것이지 다른 누구의 것도 될 수 없으니 말이야. 그러니 신경 쓰지 말게.”

막굉의 말에 사진석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막굉은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그의 말이 맞았다. 그 동전은 그 청년에게 준 것이다. 다른 누군가 그 청년을 해하고 동전을 가져와 막굉에게 요구한다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누군가 그 청년을 협박하여 막굉에게 무리한 요구를 한다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들자 갑자기 두려움이 엄습했다. 사진석은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식은땀을 느끼며 막굉이 내미는 술잔을 받아들었다.

‘설마 그런 일이 발생하지는 않겠지.’

애써 마음을 추스르며 억지웃음을 지어보이는 사진석이었다.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고즈넉한 달빛이 조촐한 술상을 마주한 두 친구의 머리위로 푸른 달빛을 쏟아냈다. 막굉은 그날처럼 밝은 달빛을 바라보며 청년과 아이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순간 그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모습은 사진석의 눈에 들어왔다. 사진석은 뜻하지 않은 그의 미소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막굉이 저런 미소를 지을 수 있다니. 사진석은 오늘 막굉의 또 다른 모습. 그를 알게 된지 삼십여 년 만에 처음 보는 미소에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그의 미소가 싫지는 않았다.

“그런데 자네 소문 들었는가?”

문득 생각난 듯 사진석이 물었다. 막굉은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사진석을 바라보았다.

아직 모르는가? 하긴 그럴 수도 있다. 사지에서 돌아온 막굉은 부상을 회복하느라 한 발짝도 밖으로 나가지 않았고, 평소에도 세상일에 그리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얼마 전부터 들려온 소문인데······.”

사진석은 뜸을 들였다. 막굉이 소문의 내용에 어떤 반응을 보일까 생각했다. 막굉은 친구가 왜 뜸을 들이는지 알지 못했지만, 결코 좋은 일은 아닐 것이라 짐작했다. 궁금하긴 했지만 재촉하진 않았다.

“해어화가 자네 목에 현상금을 걸었네. 단지 소문인 줄 알았네만, 알고 보니 그렇지 않은 모양이더군. 호화대의 대장이라는 노량이란 작자가 직접 공표한 내용이라네.”

막굉의 얼굴이 찡그려졌다. 기분이 나쁠 것이다. 누군들 그렇지 않겠는가? 자신의 목에 현상금을 걸었다는데. 그러나 막굉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술잔을 들어 마실 뿐이었다.

“그런데 그 현상금이란 것이 묘하다네. 다름 아닌 자신을 걸었다네. 자네의 목을 가져오는 자를 지아비로 삼아 평생을 바치겠다고 말이야. 덕분에 강호의 사내란 사내는 죄다 자네를 죽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을 지경이네. 물론 함부로 나서지는 않지만 말이야.”

막굉의 눈빛이 흔들렸다. 하지만 여전히 말이 없었다. 막굉은 술잔을 든 채 달빛을 바라보았다. 뭔가 생각에 잠긴 듯했다. 사진석은 술잔을 든 막굉의 손이 떨리고 있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무슨 사연이라도 있는 것인가? 해어화가 갑작스레 막굉의 목에 현상금을 걸다니. 그것도 자신을 걸고······.’

사진석은 머리를 굴려 보았지만 알 수 없었다. 해어화의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백년에 한번 아니 천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미녀에다 온갖 재주를 가진 재녀였고, 학문이 뛰어났으며 무예 또한 만만치 않아 문무를 겸비한 성녀로 추앙받고 있는 여인이었다. 누군가는 그녀의 손을 잡고 입을 맞출 수만 있다면 전 재산을 다 날리고 당장 죽는다 해도 여한이 없을 것이라고 너스레를 떨 정도였다.

그런 그녀가 왜 막굉의 목을 노리는 것일까? 사진석으로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오늘은 이만 하도록 하지. 먼저 들어가 쉬게. 난 달빛이나 더 감상해야겠네.”

침묵을 지키던 막굉이 사진석을 돌아보며 말했다.

“알겠네.”

사진석은 두말없이 일어나 숙소로 향했다. 걸음을 옮기면서도 연신 고개를 돌려 막굉을 바라보는 것을 잊지 않았다. 푸르른 달빛을 받은 그의 모습은 늠름했다. 나이에 걸맞지 않는 강인함과 불굴의 의지가 느껴졌다. 볼품없는 자신과는 너무도 비교되는 사내였다.

사진석이 자신과 막굉을 비교하며 감탄을 하고 있을 즈음 문득 그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사진석은 오늘따라 막굉이 많이 달라 보인다는 생각을 하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미웠소? 이젠 잊을 때도 되지 않았소? 아, 당신은 정말 포기하지 않는구려.”

사진석이 떠난 후 막굉은 달빛을 바라보며 나직하게 읊조렸다. 회한이 깃든 음성이었다. 마치 눈앞의 누군가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그의 몸 위로 서늘한 푸른빛이 쏟아져 음울한 기운을 풍겼다.


11


막굉이 달빛 아래 홀로 서서 감회에 젖고 있을 무렵, 해어화 역시 서글픈 눈망울로 달빛 아래 정원을 거닐고 있었다.

“당신에게도 소식이 전해졌겠지요? 이제 어떻게 하시겠어요. 저는 제게 남은 모든 것을 걸었어요. 당신. 이래도 날 모른 척할 건가요?”

해어화는 원망 섞인 음성으로 달을 향해 말했다. 화가 난 듯한 표정에 커다란 눈망울에서 당장이라도 투명한 액체가 흘러내릴 것만 같았다.

그녀의 뒤쪽 멀리서 그 모습을 바라보는 이가 있었다. 노량이었다. 노량의 눈빛엔 그리움과 경외감이 엿보였다. 달빛아래 그녀의 모습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하늘의 선녀가 강림한 듯한 모습이었다. 그녀의 뒷모습은 아름다웠지만 왜소해 보였다. 어떤 큰 상실감을 가진 듯한, 어떤 큰 그리움을 간직한 모습이었다. 노량은 그녀가 가진 그리움의 대상이 누구인지 짐작되었다.

‘막굉. 네놈을 죽이고 말리라.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어떤 희생을 치른다 할지라도.’

노량은 그녀의 상실감을 채워주고 싶었다. 악당 중의 악당 막굉이 아닌 자신이 그녀의 빈 공간을 채우고 싶었다. 해어화에 빠져 가문도, 문파도 모두 내던지고 그녀의 곁에 있은 지 벌써 십년이 넘었다.

젊은 노량은 분명 자신에게 기회가 올 것이라 생각했다. 언제고 시간이 흐르면 그녀의 마음속 텅 빈 공간을 자신이 채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십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녀와 그의 거리는 평행선을 유지하고 있었다. 평행선은 끝없이 이어져 영원토록 만나지 않았다. 노량은 그 평행선을 지우고 싶었다. 그 시작은 막굉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주먹을 움켜쥐며 다짐하는 노량이었다.


12


여느 때와 다름없는 날이었다. 날이 갈수록 무더워지는 날씨에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장호의 얼굴에 웃음이 가시진 않았다. 그토록 바라마지않던 일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선생님을 모셔온 것이다. 자신은 배우지 못해 허드렛일이나 하는 못난이이지만 아이들만은 반듯하게 키우고 싶은 장호였다. 비록 생계를 위해 아이들도 일을 하고는 있지만 배움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아이들의 배움을 위해 뭐든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세상은 냉정했다. 돈이 없는 사람에겐 배움의 기회마저 허락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당당하게 아이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비록 이름 난 학자를 모신 것도 아니고, 좋은 시설도 갖추지는 못했지만 선생님을 모셔와 번듯한 서당을 열게 된 것이다.

장호는 아이들이 공부하는 모습만 보아도, 책 읽는 소리만 들어도 기분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얻은 것 같은 기분. 장호에게 부러운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비록 이전보다 더 많은 돈이 필요해서 일을 더 많이 하게 되었지만, 그런 건 상관없었다. 그에겐 지금 이 순간이 그 어느 때보다 행복했기 때문이다.

장호 역시 배움에 목말라 있었기 때문에 틈만 나면 서당으로 달려가 불편하지 않은지 필요한 것은 없는지 물었고, 짧은 시간이나마 배움을 청할 수 있었다. 본래 총명했던 그였기에 늦은 나이에 시작한 공부지만 하나하나 알아 간다는 기쁨에 행복감이 충만했다.

장호는 아이들이 일을 하는 것을 반대했다. 배움에 열정을 다 쏟아도 부족한 시간에 일을 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완강했다. 지금까지 자신들을 위해 고생한 장호에게 더 큰 짐을 지을 수는 없다고 했다. 이제 자신들도 컸으니 생계에 보탬이 되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어릴 때 한 푼이라도 더 모아두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 말했다. 장호는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이 일하는 것을 허락해야만 했다.

오늘로 선생님을 모셔 온지 보름이란 시간이 지났다. 아이들이 일을 나가는 시간에 선생님은 텅 빈 마을을 거닐며 사색에 잠기곤 했다. 풍광이 좋고 공기가 맑아 나이 든 선생님에게는 아주 좋은 곳이었다. 특히나 선생님은 마을 뒤편 구릉에 오르는 것을 좋아했다. 그곳에 오르면 마을 전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기 때문이다. 그곳에 올라 마을을 내려 보면 막혔던 가슴이 펑하고 뚫리는 것만 같았다. 아이들이 일을 나간 후엔 을씨년스런 느낌도 들긴 했지만, 너무도 평화로운 분위기에 심신이 절로 안정되었다.

오늘도 구릉에 올라 마을을 내려 보며 서책을 뒤적이고 있는데 멀리서 누군가 손을 흔들며 달려오고 있었다. 아이들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선생님도 손을 흔들었다.

순간 어디선가 갑자기 검은 그림자가 여럿 나타났다. 그리곤 아이들을 하나둘씩 낚아채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비명이 들려왔다. 아이들은 거세게 반항했다. 하지만 검은 그림자들의 행동엔 거침이 없었다. 아이들의 여린 몸을 거칠게 다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들은 축 늘어진 채 검은 그림자들에게 떠메어져 멀어져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선생님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이제 점으로 화한 아이들과 검은 그림자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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