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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이후의 사냥꾼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도덕
작품등록일 :
2019.01.06 20:15
최근연재일 :
2019.01.22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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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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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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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1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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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생포 의뢰 (3)

DUMMY

“아주 난리가 났네, 난리가 났어.”

끔찍한 현장에 제인은 얼굴을 찌푸렸다. 괴물의 사체는 사라졌지만 인간의 시신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그중 전부가 하등 멀쩡한 것이 없었으며 짓이겨져 있고 끊어져있고 파괴되어 있었다. 이런 광경을 처음 본 것은 아니었다. 2년 전만 해도 거리에 시신이 가득했으니까. 그나마 어느 정도 정리가 된 지금 사냥꾼과 생존자들, 정찰조들이 거리에 널브러진 시신들을 전부 처리했기에 비교적 거리가 깨끗해진 것이다. 그렇기는 해도 이렇게 훼손된 시신을 보는 건 썩 거북해지는 일이었다.

“멀뚱히 서있지만 말고 좀 돕지 그래?”

도미닉이 배에 구멍이 뚫린 시체의 주머니를 뒤지며 말했다. 그의 옆에는 이미 놈들이 사용하던 탄창이 차곡차곡 정리되어 있었다. 죽은 사람의 물품을 산 사람이 노획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당장이라도 몸을 지키기 위해선 총알 한 발이 절실한 상황이고 장비와 무기들은 좋은 값에 팔아넘길 수 있을 테니까.

다만 끔찍하게 훼손된 시체를 뒤진다는 것은 조금 꺼림칙했다.

“으, 왠지 재수 옴 붙을 것 같은데.”

“어쩔 수 없지. 생포 의뢰를 실패한 이상 전부 챙겨야 수지 타산이 맞을 거다.”

맞는 말이었기에 두말 않고 작업에 동참했다.

“작은 주머니라도 전부 확인해. 스톤이 있을 수도 있고 식량이 있을 수도 있다. 전부 꺼내서 모아놔. 탄창은 말 할 것도 없고.”

세상은 멸망했고 물자는 점점 부족해졌다. 아무리 총알을 만들 줄 아는 사람이 존재하고, 식량을 제조할 수 있는 사람이 남아있다고 해도 모든 물량을 감당할 수 있지는 않았다. 그러니 죽은 사람의 물품을 노획해서 쓰는 수밖에.

“정말 악착같이 털어가는 구나.”

“나에게 총을 쏜 대가지.”

옷에 존재하는 수납 장소에는 온통 총알이 가득했고, 모두 가슴팍에 수류탄 하나씩을 매달고 있었다. 몇 개의 탄창이 괴물에 공격 때문에 구멍이 휑하게 뚫려있었지만 대체로 멀쩡했고 총알도 다수 확보 할 수 있었다.

“아참.”

제인이 몸과 떨어진 팔에서 총기를 분리하던 도중이었다. 한창 인상을 찌푸리며 작업을 하던 그녀는 불현 듯 떠오른 생각에 하던 일을 멈추고 도미닉에게 물었다.

“내 보수는 어느 정도야? 이정도면 스코프 가격의 절반 정도의 몫은 해냈다고 보는데.”

이번 의뢰의 보수는 제인의 스코프를 얻는 것과 여분의 수류탄, 약간의 스톤을 받기로 되어 있었다. 물론 의뢰는 실패했지만 어찌 되었든 슬레이어를 잡아 총기와 수류탄과 총알과 제인이 쏜 저격수의 스코프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제인 자신도 어느 정도의 도움을 주었으니 그녀가 받게 될 스코프의 반 정도 되는 몫은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욕심이 많군. 네가 한 몫은 스코프로 따지자면 삼분의 일 정도다.”

“고작 그 정도라고? 내가 댁 목숨을 구해줬잖아. 내가 아니었다면 얼굴도 모르는 놈한테 총을 맞아 죽었을 거라고.”

그 말에 도미닉은 하던 작업을 멈추고 입 꼬리만을 살짝 올리며 웃었다. 가소롭다는 듯 한 그 표정은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가장 위험한 일인 괴물의 생포 또한 나 혼자 진행했다. 또한 네가 적 저격수를 죽이기는 했지만 정확히 내 목숨을 구한 것은 아니야. 난 총알 한 두 방에 죽지는 않거든.”

그 자신만만한 태도에 제인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자신이 무슨 불사신이라도 된 줄 아는 표정과 말투였다.

“그 말, 진짜야?”

“물론. 왜, 한 발 쏴 볼테냐?”

도미닉은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이마를 툭 툭 쳤다. 사색이 된 제인은 “미쳤어?”하며 소리를 질러댔고 도미닉은 웃음을 터트렸다.

“농담이다. 스코프의 절반 가격은 빼주지.”

그렇게 말하며 도미닉은 다시 작업을 시작 했다.

어찌 되었든 목표로 했던 스코프 절반 값을 받았으니 제인도 두말 않고 작업을 다시 시작했다. 다만 한 가지 호기심이 들었다. 왜인지 도미닉이 정말로 총알 한 두 방에 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괴물을 들쳐 매고 달리던 도미닉의 모습은 인간답지 않은 신체능력이었다.

여러 가지 의문점이 들기는 했지만 깊게 관여하지는 않기로 마음먹었다.

제인은 시신을 뒤지면서 가장먼저 놈들의 목덜미를 확인했다. 혹여나 목 뒤에 하켄크로이츠가 그려져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시체 대부분이 괴물에 의해 목이 훼손되어 확인 할 수 없었지만 시신 한 구는 목 부분이 멀쩡했기에 확인 할 수 있었다. 다만 목 뒤 부분이 깨끗했기에 그녀가 쫓고 있는 슬레이어 무리는 아니었다.

“으음.”

제인이 작게 신음했다. 놈들의 문양은 오른쪽 가슴팍에 박혀있었다. 찢어진 옷 사이로 초승달 문양이 박혀있었다.

“이거 본 적 있어?”

제인이 도미닉에게 말했다. 그는 아직 찾을 것이 많았는지 시체를 샅샅이 뒤지고 있었다. 바닥에는 수많은 탄창들과 수류탄, 그리고 식량들이 잘 정돈되어 있었다.

“어디 보자.”

필요한 물품을 싹 다 털어낸 도미닉이 문양을 확인했다.

“처음 보는데.”

그 문양은 그 또한 처음 보는 문양이었다. 지난 시간동안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사냥꾼 노릇을 해온 도미닉이지만 처음 보는 슬레이어 집단이 있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슬레이어라는 놈들은 계속해서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것을 반복한다. 만들어진지 오래 되지 않은 집단이리라. 하지만 걸리는 점이 한 가지 있다면 놈들의 무장상태가 꽤나 좋았다는 것이다.

‘이정도 무력을 가진 놈들이 유명하지 않을 리가 없는데.’

도미닉의 의심은 그곳에서 비롯되었다. 무장상태가 좋다는 것은 세력이 꽤나 크다는 것이고 슬레이어의 세력은 악명과 비례하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다른 슬레이어 놈들끼리 뭉쳐서 새로운 집단을 만든 것 일수도 있었다. 그게 아니고서야 설명되지 않는 일이다.

문양의 확인을 마친 도미닉이 다시 시체를 뒤집어 놈의 가슴팍에 달려있는 수류탄까지 전부 회수한 후 제인에게 말했다.

“스코프를 가지고 있는 놈이 있다고 했지?”

“응, 저기 저 건물 보이지? 붉은색으로 칠해진 건물. 저기 3층에 있었어.”

“저기에서 나를 저격하고 있었다고?”

“응.”

“내가 너한테 조준경을 빌려줬나?”

도미닉의 말에 제인은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냐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갑자기 무슨 헛소리야?”

도미닉과 제인은 지금 제인이 사용할 망원 조준경을 얻기 위해 이 의뢰를 수행하고 있다. 제인에게 줄 조준경이 남아 있다면 하지도 않을 의뢰다.

‘저 먼 거리를 맞췄다고.’

어림잡아 250미터는 되어 보였다. 저 곳 창문에서 머리만 내밀고 저격을 하고 있었다면, 과장하나 보태지 않고 하나의 점처럼 보였으리라.

“맞춘 건 확인했나?”

“그럼, 발사 하자마자 놈이 쓰러졌는걸.”

도미닉 입장에서는 믿기 힘든 이야기였다. 도트사이트를 쥐어 주기는 했다지만 저 정도의 거리를 평범한 인간이 한 번에 맞춘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당연히 탄은 날아가며 중력의 영향을 받아 점점 밑으로 떨어질 것이고 바람과 습도 기타 다양한 환경 변수들에 의해 거리가 멀면 멀수록 조준점과는 영 다르게 피격된다. 그것이 장거리 사격이 어려운 이유와 더불어 망원 조준경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했다. 조준경에는 적어도 거리를 가늠하여 탄 낙차를 알 수 있으니 말이다.

아무리 오늘 바람 한 점 불지 않은 날이라고는 해도 총을 몇 번 쏴보지도 못한 사람이 해냈다기엔 불가사의한 내용 투성이었다.

“뭐, 그럼 일단 저기로 가보자고.”

도미닉은 제인이 무언가를 착각했다고 생각했다. 사람이 아닌 가구를 쐈다든지 때마침 우연히 거울에 반사된 빛을 보고 혼란을 일으켰다든지 말이다.

둘은 밑에 주차시켜둔 바이크로 가서 시동을 걸었다.

“그런데 그 의뢰한 사람한테는 뭐라고 말할 거야?”

뒷좌석에서 제인이 물었다.

“나중에 천천히 처리하겠다 해야지. 착수금을 받은 것도 아니니 뭐라고 하지는 않을 거다. 어차피 그런 말도 안 되는 의뢰는 의뢰 기간이 꽤나 길거든. 조건에 맡는 괴물이 나타나지 않는 이상 보류해두는 샘이지.”

“나중에 한다고 해도 이제 가면 망원 조준경을 얻을 테니 보상으로 조준경을 받는 건 싫은데.”

“여러 가지가 있을 거다. 야간투시경이라든지, 적외선 탐지기라든지. 꼭 조준경을 받을 필요는 없지.”

“오, 난 야간 투시경이 좋을 것 같아!”

“아니 보상은 내거다.”

“아니 왜? 나도 쓰게 해줘.”

“받고 싶으면 그에 걸 맞는 일을 해야지. 불만이라면 네가 괴물을 생포해. 그럼 보상은 양보하지.”

“그걸 지금 말이 되는 소리라고 해?”

“말이 안 되는 걸 알면서 억지를 부리는군. 네 몫은 탄알과 수류탄 한 개다. 보조하는 것 치고는 꽤나 짭짤한 보상이지.”

“싫어, 그냥 전부 스톤으로 받자. 내가 4 아저씨가 6. 어때?”

“양심도 없군, 9 대 1,”

“최저시급은 줘야지!”

제인이 뜨악하며 소리를 질렀다. 그녀 입장에서는 도미닉은 완전 악덕 고용주였다. 말이 그냥 보조 겸 주위를 살피는 일이지 오늘만 해도 총에 맞을 뻔한 것을 막아주지 않았나. 제인 나름에도 목숨을 걸고 하는 일이었다.

“7 대 3! 더 이상은 양보 못해.”

도대체 무엇을 양보한다는 건가. 도미닉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사실 제인의 의뢰를 해결하고 나면 더 이상 제인과의 볼일은 없었기 때문에 생포하는 의뢰는 도미닉 혼자서 할 게 뻔했다. 이런 논쟁은 사실상 의미 없는 것이다.

“그래. 네 맘대로 해라.”

“어, 진짜? 내 마음대로?”

“그래.”

도미닉은 지금 시끄럽게 쫑알쫑알 거리는 제인의 입을 다물게 하고 싶다는 생각만이 들었다.

“어, 그럼 처음대로 6대 4로 하자.”

“마음대로.”

도미닉은 자신이 그 말을 했다는 것을 3분 만에 후회했다.

“이게 아닌데...”

제인이 멋쩍게 웃으며 뒤통수를 긁적였다.

조금 전.

그녀가 말한 붉은 페인트를 칠한 건물에 도착한 그들은 곧장 저격수가 있던 장소로 올라갔다.

건물의 문을 열어보니 머리통에 구멍이 뚫려있는 남자가 쓰러져 있었다. 주위에는 피가 쏟아져 있었다.

그 모습에 도미닉은 한 번 놀랐다. 제인이 말한 것이 전부 사실이었고, 그녀는 먼 거리의 적을 고작 도트사이트 하나로 저격해내는 것에 성공한 것이다.

그는 제인이 사격에 조금 재능이 있는 수준이라 생각했지만 착각이었다.

조금 있는 수준이 아닌, 상당한, 아니 천재라고 불러도 될 정도의 감각을 지니고 있다고.

“오 저게 조준경인가?”

총 위에 달려있는 기다란 막대를 발견한 제인은 성큼성큼 그곳으로 다가갔다.

“이것 봐, 꽤나 커 보이는데?”

제인이 총을 집어 도미닉에게 보여줬다.

“얼마나 대단한 물건인지 볼까? 막 현미경 같이 보이는 거 아냐?”

그녀는 조준경에 대해 나름의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망원경 같이 확대되어 보인다는 것을 알고 있던 그녀는 조준경을 통해 밖을 관찰했다.

“어?”

정확히는 관찰하려 했다.

“이게 뭐야?”

조준경의 유리부분이 죄다 깨져있었다.

도미닉은 시신의 구멍이 어디에 뚫려있는지를 확인했다.

정확히 오른 쪽 눈이었다.

“이거... 고장 난 거 같은데?”

그 말은 제인이 발사한 총알이 정확히 스코프를 뚫고 오른쪽 눈을 맞췄다는 소리였다.

“하, 하하... 이게 아닌데...”

한마디로 총알 한 발로 괴물 몇 백 마리 분의 스톤을 까부쉈다는 거다.


작가의말

11시 50분에 하나 더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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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생포 의뢰 (4) +2 19.01.13 160 3 11쪽
» 생포 의뢰 (3) 19.01.13 148 4 12쪽
11 생포 의뢰 (2) 19.01.13 180 2 15쪽
10 생포 의뢰 (1) 19.01.13 165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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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상업지구 (1) +2 19.01.11 211 3 12쪽
7 제인 (4) 19.01.10 208 1 12쪽
6 제인 (3) 19.01.10 219 3 12쪽
5 제인 (2) 19.01.08 269 2 13쪽
4 제인 (1) 19.01.07 334 4 13쪽
3 도미닉 (2) +4 19.01.06 437 6 13쪽
2 도미닉 (1) 19.01.06 661 7 11쪽
1 Prologue +2 19.01.06 806 9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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