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ghway Star.
30분 후.
“크~.”
유진은 가만히 앉아서 숨 쉬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깨달았다. 다리에선 피가 안 통해 저릿저릿한 쥐가 났고, 구결을 암송하는 것도 기가 느껴지지 않으니 신이나지 않았다. 그러니 오만가지 잡생각이 절로 나서 도저히 계속할 수가 없었다. 대격변 후에는 명상만으로도 기를 느끼고, 그 기가 몸에 쌓일 때의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하찮은 운공법이었지만 몇 시간이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느낌이 없으니 더욱 더 힘이 들었다.
하지만 유진은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몸을 만들기 위해 처음 운동을 시작할 때를 상기했다. 몸을 크게 쓰는 동적인 운동인 달리기, 헬스, 스트레칭도 처음에는 힘이 들고 지루하기도 했다. 게다가 안 쓰던 근육을 쓰니 알이 베겨 몇 배는 더 힘들었다. 하지만 적응이 된 지금은 이력이 붙어서 오히려 운동을 하지 않으면 몸이 근질거린다. 이젠 스스로 빌리의 부트캠프 비디오까지 사서 따라하는 정도니 말이다.
운공법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앞으로 꾸준히 해서 이력이 붙을 정도로 열심히 하겠다고 결심을 한 유진은 쥐가 난 다리가 풀리자 다시 시작하려 했다.
-띵동~!
그러나 세상은 유진을 가만두지 않는 것 같다.
초인종 소리에 자세를 풀고 인터폰에 달린 CCTV를 보니 용산전자상가에서 부른 퀵서비스였다. 때문에 유진은 운공을 잠시 접어두고 퀵서비스 배달원을 집안으로 들여 컴퓨터와 부품을 받았다.
설치는 유진의 몫이었다. 본체는 용산의 가게에서 조립을 끝내 제품의 배치와 전선문제 말고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단지 프로그램 설치에 시간이 걸릴 뿐이었다. 유진은 새로운 컴퓨터를 거실에 놓았다. 늦어도 8월이 다 가기 전에 집을 팔고 전주로 내려갈 계획이기에 대충 설치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드웨어 설치에만 1시간이 걸렸다.
점심시간이라 근처 편의점에 가서 소고기덮밥 도시락을 사와서 먹으면서 운영체제 설치를 시작했다.
확실히 컴퓨터의 성능이 좋으니까 운영체제의 설치도 빨라서 비스타 울티메이트의 설치는 15분만에 끝났다. 다만 회귀 전에 썼던 개인용 양자컴퓨터에 비교하면 한숨이 나올 지경이다. 운영체제의 조약함도 이루 말할 수 없다. 다만 이 시대에는 개인이 쓸 수 있는 컴퓨터는 이 정도가 최고였기에, 2010년에 TR그룹에서 양자시스템을 채용한 새로운 시스템을 출시 할 때까지 감수할 수밖에 없다.
비스타 울티메이트 x64버전의 설치가 끝나고, 정품인증까지 마치자, 각종 장치 드라이버를 설치했다. 다음엔 제값주고 사온 그래픽 프로그램을 설치했다. 운영체제와 달리 응용프로그램은 순식간에 설치가 끝났다. 마찬가지로 인터넷에 연결해서 정품인증을 모든 작업이 끝났다.
소프트웨어 세팅도 완전히 마무리되자 유진은 인터넷 선을 뽑았다. 당연히 해킹을 경계했기에 취한 조치다. 블랙쓰론즈나 미국의 정보기관을 우숩게 보면 큰 코 다친다. 그들이 관심만 갖는다면 어느 컴퓨터에 있는 정보라도 손에 넣을 수 있다. 게다가 이들 기관에 속한 몇몇 신인류들은 전자기기를 수족처럼 부릴 수 있고, 대화도 나눌 수 있었다.
유진은 곧바로 오토데스크사의 오토캐드 프로그램을 실행했다. 과연 자신의 방에 있던 컴퓨터보다 확실히 반응속도나 처리능력이 훨씬 빨랐다. 여기에 고성능 컴퓨터가 필요한 이유가 있었다.
무아지경 속에서 원하는 정보를 찾아 직접 구연하는 능력은 작업의 속도가 일반인의 속도에 비해 몇 배나 빠르다. 그러다 보니 구형 컴퓨터는 입력을 받아 화면에 표시하기까지 렉이 발생한다. 그런데 렉이 발생하는 동안 입력을 잠시 멈추고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불가능했다. 때문에 복잡한 자료의 경우 제대로 만들어지지 못했던 것이다.
유진은 세팅이 완전히 끝나자 마음에 갈등이 일었다.
운공법을 다시 할 것이냐?
새로 컴퓨터를 장만한 기념으로 저번에 뽑아내다 실패했던 자료나 다시 한 번 뽑아볼까?
어차피 다른 일 하라고 강요하는 사람도 없는 유진이었기에, 둘 다 하기로 했다. 다만 운공법을 먼저 하는데 다리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저릴 때까지 하기로 했다.
30분 후.
역시나, 처음 운공법을 했을 때처럼 정확히 30분이 한계였다. 대신 호흡의 균일도가 많이 늘어서 모두 35회의 호흡으로 30분을 버틸 수 있었다. 게다가 뭔가 들어오긴 하는 느낌이 나면서 몸에 열도 났는데, 그게 호흡법이 힘들어서 열이 난 것인지 아니면 진짜 대우주의 ‘기’가 몸 안에 융합될 때 나오는 열인지 구분하기 힘들었다.
다음은 바로 새로 맞춘 컴퓨터 앞에 앉아서 정신을 집중하고 머릿속에 잠들어 있는 방대한 자료 중 하나를 꺼냈다.
순간 유진의 눈이 예전처럼 희멀어짐과 동시에 그의 두 손이 키보드와 마우스를 잡고 컴퓨터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역시나 전광석화 같은 동작으로 데이터를 입력하기 시작했다.
유진이 무아지경에서 깨어나 결과물을 확인하자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30인치의 널따란 화면에는 3D 모델링으로 구연된 아름다운 크리스털 막대가 떠 있었다.
엄지손가락 굵기에25cm길이의 크리스털 막대는 단순한 장식품이 아니다.
정식 명칭은 휴대용 에너지 크리스털. 용도는 기 혹은 에너지라 불리는 비물질에너지를 저장하는 물건이다. 여기에 기가 가득 충전된 상태라고 한다면 아파트 한 동이 1달간 쓰는 에너지량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전체적인 구조는 단순했지만, 실제로는 만들기가 아주 어려운 제품 중에 하나로 작퉁 제국 중국이 복제에 끝내 실패한 물건 중 하나다. 그것은 제조방식의 복잡성 때문인데, 크리스털 재료도 무척이나 특별한 재료지만, 표면에 그려야할 문양도 무척이나 정교했기 때문이다.
한 뭉텅이를 길게 늘인 후 엿가락처럼 탁탁 잘라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연필 심 같은 얇고 가는 크리스털을 핵으로 해서 한 겹 한 겹 씌워서 모두 9겹으로 되어 막대처럼 커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가느다란 핵의 표면과 덧씌우는 9겹의 공정 사이에는 그 표면에는 제각각 정교한 마도학적인 무늬가 양각과 음각으로 빽빽하게 그려야만 했다. 그 문양이 바로 비물질에너지 저장에 필요한 핵심적인 마도회로였다.
유진이 컴퓨터를 조작해 표면을 확대하자 복잡한 무늬가 선명하게 나타났다. 한 겹을 벗겨내자 또 다른 문양이 나타났다.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3D 폴리곤으로 구연된 문양이라 확대해도 질이 떨어지지 않는다.
이 정도면 완벽하다 할 수 있다. 역시 컴퓨터의 성능이 좋으니 인풋렉 없이 잘 뽑아져 나왔다. 유진은 모델링 파일을 저장한 다음 1024비트 암호화 인코딩 프로그램으로 철저하게 봉인했다.
유비무환의 정신이다.
그러다가 문뜩 유진은 머리에 두통이 오지 않았음을 알았다. 이렇게 한 번 작업을 하고 나면 머리가 깨질듯 한 두통이나, 코피가 팡 터지는 것이 일상다반사가 되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다. 게다가 복잡한 모델링을 한 번에 그려냈다.
운공법!
유진은 본능적으로 방금 전 다리가 저려 30분밖에 하지 못했던 2번의 운공법이 효과가 있음을 확인했다.
2008년 7월 29일 오후.
매물로 내놨던 유진의 집이 완전히 팔렸다. 예상보다 빨랐지만 잔금도 모두 들어왔고, 세금도 완납했다.
건물면적은 96평방미터로 작았지만,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넓은 정원을 가진 단독주택이라 값을 후하게 받을 수 있었다. 유진의 부모님은 정원 가꾸기를 좋아하셔서 건물을 작게 올린 대신 정원을 넓게 하셨다. 게다가 유진은 가지고 내려갈 몇 가지 물건 빼곤 인테리어와 가구들까지 한꺼번에 팔아서 +α로 1억 정도 더 받았다.
보통 집을 새로 구매한 자라면, 가구도 새로 들이고 인테리어도 새롭게 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워낙 보존이 잘되어 있었고 집과도 잘 어울렸기에, 유진은 어렵지 않게 끼워팔기를 할 수 있었다.
또한, 변호사를 고용해 미국에 있던 부모님의 유산도 모두 처분해서 국내로 들여왔다. 수수료를 20%나 뜯겼지만, 미국이란 나라엔 다신 가고 싶지 않았기에 감수했다.
이렇게 해서 유진이 마련한 목돈은 17억 정도가 되었다. 마음 같아선 이 집은 팔고 싶진 않았지만, 유진이 생각하고 있는 것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많이 모자란 상태라서 선물옵션을 해서라도 돈을 불려야할 판이었다. 그래도 17억 모두 현금이어서 가용성은 최고였다.
어쨌든, 서울에서의 할 일은 모두 끝나자 유진은 곧바로 떠날 준비를 했다. 컴퓨터와 그 부속을 빼면 가져는 짐은 얼마 되지 않는다. 옷가지와 책 몇 권이 전부라서 뒷좌석과 트렁크를 활용하자 모두 실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집의 전체적인 모습을 눈에 담은 유진은 몸을 돌려, 대문을 나섰다. 자동차를 차고에서 미리 대문 앞으로 대놨다.
남자는 블랙!
윤기가 잘잘 흐르는 검은색 명마처럼 새끈한 BMW M5가 유진을 기다리고 있었다. 고급스러운 외관은 차 안에 아무렇게나 쟁여놓은 짐 덩어리에도 훼손되지 않았다. 유진이 파산 후, 마지막 순간까지 팔기를 주저했던 물건이 바로 이 자동차다.
유진은 자동차에 올랐다. 운전을 위한 감은 몇 번의 드라이브를 통해서 되찾았기에, 불안감은 없다.
조수석에는 아름다운 아가씨 대신, 리치 블랙모어 시그니쳐 스트라토캐스터가 놓여져 있다. 곧바로 시동을 켠 유진은 미련 없이 출발했다.
차들이 가득해 복잡한 서울시내 도로를 타고 느릿느릿 전진하던 유진의 M5는 한남인터체인지를 통해 경부고속도로를 타자 뻥 뚫린 길이 나타났다. 육식동물의 울음처럼 우렁차고 날카로운 엔진소리가 터지면서 고속도로 한계속도까지 속도를 높인 M5는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한 순항을 시작했다.
이 길의 끝에서 곧 미래에 세계 제일의 대기업을 키움과 동시에 신인류로서 절대적인 능력을 가진 존재와 만남을 앞두고 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늦은 오후의 포근한 하늘처럼 편안했다.
유진은 시디플레이어의 재생버튼을 눌렀다.
Nobody gonna take my car
I'm gonna race it to the ground
Nobody gonna beat my car
It's gonna break the speed of sound
Oooh it's a killing machine
It's got everything
딥 퍼플의 전설적인 명곡 Highway Star가 강력한 사운드와 함께 재생되었다. 유진의 각오와 심정을 대신 말해주는 것 같은 노래였다.
여름의 푸른 하늘을 서서히 주황색과 보라색으로 물이는 신비한 노을의 가호를 받으며 유진의 M5는 남쪽으로 남쪽으로 빠르게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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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Highway Star가 마무리 되었습니다.
제2장 Smell like teen Spirit부터는 연재시간을 변경할 생각입니다.
밤 12시에 땡하면 올리 하겠습니다~.
그리고 꽃게님이
'유진의 능력은 히어로즈에 나오는 아이작 같은 능력에서 모티브를 얻은것 같은데 맞나요?'라는 질문 해주셨는데요.
답을 하자면
"맞습니다. 다만 아이작은 예지를 하는 것이지만, 유진은 머릿속에 숨겨진 정보를 끌어내는 것이 다릅니다."
또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물어봐 주세요.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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