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ghway Star.
폴더를 열어 휴대폰을 귀에 뎄다.
“여, 나다!”
바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몸은 반갑다고 반응을 하는데, 정신적으로는 매우 낯선 느낌이다. 다시 휴대폰의 화면에 뜬 발신자를 봤다. 한경수? 애써 기억을 더듬으니 같은 학과의 술친구 중 하나라는 것이 떠올랐다. 물론 절친한 친구는 아니다. 이 녀석도 유진이 돈이 바닥나자 연락을 끊었던 녀석들 중 하나다.
터벅터벅 집으로 걸음을 옮기면서 유진은 차갑게 말했다.
“아. 경수.”
“그래 짜사! 요즘 도통 학교에서 보이지 않는데, 무슨 일이냐?”
“자퇴했다.”
전화기 너머의 인물은 자퇴란 소리에 조금 놀란 모양인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뭐 자퇴? 왜?”
“알 거 없어.”
“흠. 뭐 각자 사정은 있는 거니까. 어쨌든 오늘 한 번 모이자! 애들이랑 송별회라도 크게 해야지. 내가 죽여주는 곳을 알았…….”
“됐다.”
유진은 바로 말을 끊었다. 이 녀석의 전화는 대부분 이런 식이었다는 것이 기억났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의 전화에 나가면 술값은 100이면 100 자신이 계산을 했었다.
“어?”
한경수의 기억엔 단 한 번도 자신의 제의를 거절 한 적 없었다. 때문에, 유진의 거절에 적잖게 당황했다. 그러나 유진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앞으로 다른 곳으로 이사 갈 거다. 그러니 다신 연락할 필요 없어. 다른 애들에게도 그렇게 전해.”
자기 할 말만 한 유진은 바로 전화를 끊었다.
뭔가 씁쓸하긴 했지만, 언젠간 해야 할 전화였으니 쓸모없는 통화는 아니었다. 마음 같아선 욕지기를 한바탕 해주고 싶었지만, 구차할 것 같아서 꾹 참았다. 앞으로 시간은 많다. 지금껏 사겨왔던 쓰레기 같은 녀석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진짜 인간적인 사람들과 만날 수 있다.
집으로 돌아온 유진은 땀복을 벗고 바로 욕실에 들어가 간단히 샤워를 하고 나왔다. 그리고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은 후, 체중계 위로 올라가 몸무게를 쟀다.
87kg.
불과 3달도 안된 사이에 15kg을 뺐다. 하지만 아직 모자라다. 유진의 목표는 72kg. 그래도 몸이 가벼워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예전에 입었던 옷이 헐렁해졌다. 그래서 지금 입은 옷도 커서 허리끈을 조여야 했다.
그날 밤.
유진은 쇼파에 앉아서 정면의 텔레비전 화면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화면에는 붉게 상기된 남녀 두 사람이 로또복권 추첨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다. 아마 저 두 사람도 복권을 다량 구입한 모양이라고 유진은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한두 푼도 아니고 무려 2천억 원이 넘는 거금이 당첨금으로 달려 있으니 전 국민이 대부분 로또복권을 샀을 것이다. 비단 우리나라 국민들뿐만이 아니라 외국에서도 많이 구입했다. 복권의 구입은 외국인도 가능했기 때문이다.
“추첨을~ 시작합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추첨기 안에 공들이 바람에 의해 마구 섞이며 돌기 시작했다.
유진의 두근거리는 심장은 그 박동이 점점 커졌다. 그리고 첫 번째 공이 나왔다.
“헉!”
21!
순간 유진은 자신의 눈이 잘못 되어 헛것이 보이는 것으로 알았다. 그러나 추첨기에서 나온 공엔 분명 21이란 숫자가 쓰여 있다. 그리고 이어서 추첨되는 번호들도 30, 5, 6 등등으로 완전히 빗나갔다.
과거가 바뀐 것이다.
유진이 써 넣은 숫자는 분명 대박 복권의 당첨번호였다. 당연하게도 무한 확장된 머릿속의 자료실(?)에도 그것이 남아 있어서 절대 착각하거나, 잘못알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나비효과? 하지만 이것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유진은 나비효과를 피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즉, 자신이 과거에 했던 행동들 중에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똑같이 했다. 다만 필요 없는 인간관계였던 술꾼들과는 연락을 끊었을 뿐이다. 무엇보다 이러한 유진의 행동들과 로또 복권 당첨번호 사이에는 연관관계가 하나도 없다.
유진의 걱정을 더욱 키우는 것은 당첨번호가 달라지면서 원래의 당첨자였던 김은동도 당첨되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였다.
근 3달간 유진이 세웠던 미래의 계획에는 김은동이 세울 TR그룹의 존재는 그 존재감이 엄청났다. 그런데 복권 당첨을 못한 김은동이 TR그룹의 설립을 못하면 계획의 존립근거가 사라지는 것이다.
100% 당첨을 확신하고 있던 유진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러나 몇 시간 후, 유진은 전율했다. 당첨번호가 나온 후, 1등 당첨자 수와 당첨로또복권을 구입한 상호가 뜬다. 그것을 보고 엄청나게 놀라버린 것이다.
1등 담첨자 수 1명.
당첨금은 2,542억 원.
당첨복권 구입처는 전주시의 ○○편의점.
로또 당첨번호만 다를 뿐 결과는 회귀 전과 똑같았다. 유진은 저 당첨자가 김은동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유진의 머릿속은 도대체 뭐가 잘못된 것일까 하는 생각과 앞으로 어떻게 움직여야 최적의 움직임이 될까 등등의 고민으로 복잡했다. 술과 담배 생각이 간절했지만 꾹 참았다. 지금 익히고 있는 에너지운용법이 깨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음 날 아침.
유진은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그만큼 앞으로의 계획에 깊은 고심을 했다. 많은 시간을 들여서인지 답은 나왔다.
2인자가 되자!
이것이 유진이 새롭게 세운 전략이었다. 사실 유진이 로또복권에 응모한 것이나, 전면에 나서고 싶었던 것은 다시 한 번 역사의 전면에 나서고 싶어서였다. 회귀 전에 미국에서 마이다스의 유진이라는 별명을 얻었지만, TR그룹의 회장 김은동과 비교하면 태양 앞의 반딧불이었다.
그게 무척이나 부러웠던 모양이다.
주체 못할 정도로 능력을 사용하며 허세를 부리다, 잡혀서 처참한 죽음을 맞이했다. 회귀 한 다음도 허세가 남아 있던 것인지, 김은동을 대신하려 했던 자신을 발견한 유진이다. 역시 그놈의 허세는 뼈 속까지 스며들어 있는 것 같다.
한편으로는 김은동에겐 뭐라 말 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로또당첨번호가 달라졌지만, 예전처럼 그가 대박 당첨금을 독식했다. 마치 하늘이 그를 선택했다는 것처럼 뒤를 봐주는 것 같았다. 그래서 유진이 내린 결론은 플랜B였던 김은동 밑으로 들어가자는 것으로 계획을 크게 수정했다.
유진이 생각해낸 김은동 밑으로 들어가는 방법은 간단했다. TR그룹에 취직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와 친분을 쌓은 다음, 대격변이 일어나 자신의 오버시어 능력이 깨어나면 치우부대로 자원한다. 그래서 이들을 활용해 블랙쓰론즈가 암중으로 벌였던 모든 작전을 저지 한 다음, 종말자의 소환을 막거나, 함께 무찌른다는 것이 유진이 새롭게 세운 계획이다.
치우부대의 실질적인 지휘관이자 최고의 대원이 김은동이었다. 여기에 자신이 알고 있던 블랙쓰론즈의 미래정보가 더해진다면 예전처럼 설치기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다. 첫 번째 개획처럼 자신이 전면에 나서는 것은 아니지만, 플랜B도 나쁘지 않는 것 같았다. 궁극적인 목적인 블랙쓰론즈의 파괴라는 목표는 같으니 말이다.
레토르트 식품으로 아침을 간단하게 먹은 유진은 집을 나섰다. 길가에 도착하자 손을 들어서 택시를 잡았다. 자신의 자동차가 있었지만, 유진의 정신은 무려 14년간 운전을 못해 감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게다가 회귀를 한 다음, 나돌아 다니지 않고 줄곧 집 근처에서 운동만 했던 터라 감을 익힐 시간도 없었다.
“어서 오세요! 어디로 모실까요?”
“용산전자상가로 가주세요.”
"네, 용산전자상가로 모시겠습니다.“
유진의 말에 택시는 용산방향으로 머리를 돌렸다.
아침부터 용산에 가는 것은 고성능 컴퓨터와 그래픽용 프로그램을 구입하기 위해서였다. 어도비 포토샵과 카티아, 오토데스크 3D Max같은 프로그램이었다.
TR그룹에서 모집하는 직원은 다방면에 걸쳐 수만 명에 달한다. 여기서 유진이 노리는 것은 디자인실이었다. 회귀를 하면서 선물로 받은(?) 머릿속 자료 중에는 TR그룹에서 출시하는 제품들의 각종 설계도와 컨셉 디자인이 가득했다. 이를 적극 활용할 수 있는 보직이 바로 디자인팀이었다. 게다가 디자인팀은 초기에 김은동 사장 직속에 속해있어 언제라도 얼굴을 맞댈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이렇게 친분을 쌓으면 치우부대에 들어가서도 특별한 사이가 될 것이고, 후에 발현하는 반신에 가까운 그의 능력을 조금이나마 얻어 쓸 수 있을 거란 계산이다.
그런 이유로 그래픽 프로그램과 이를 돌릴 수 있는 고성능 컴퓨터가 필요했고,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격언에 따라 바로 지금 구입하려 가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사람은 컴퓨터 같은 하드웨어는 제돈 주고 사면서도, 컴퓨터에 돌아가는 프로그램은 돈을 주고 사는 것에 인색했다. 그래서 지금 유진의 행동을 다른 이들이 알았다면 헛돈 쓴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나 포토샵, 카티아, 3D Max 같은 프로그램 가격은 수백만 원에 달하니 말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TR그룹에 무조건 떨어진다.
TR그룹은 직원을 모집할 때, 지원자의 능력도 보지만, 가장 많은 점수를 주는 것은 정직성과, 사상의 바름이었다. 수치를 환산할 수 없는 두 가지 가치를 어떻게 판단하느냐 할 수도 있지만, TR그룹에는 놀랄 만큼 잘 잡아냈다.
때문에 유진은 이에 대비해서 정품을 사기 위해 용산으로 가는 것이다. 물론 인터넷 쇼핑으로도 정품을 구입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쇼핑하는 기분이 나지 않는다.
지금 유진의 마음은 플랜A의 좌절로 심경이 복잡했다. 술과 담배도 에너지운용법을 익히느라 할 수 없으니, 이렇게라도 돈을 써서 스트레스를 풀고 싶었다.
“다 왔습니다. 손님.”
“아, 얼마에요?”
“8,100원입니다.”
유진은 지갑에서 만 원짜리 한 장을 내며 말했다.
“잔돈은 됐어요.”
택시에서 내린 유진은 용산전자상가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 그의 모습을 살피는 존재가 있었으나 유진은 전혀 눈치 채지도 못했다. 그러나 신인류의 능력이 깨어난 상태였어도 유진은 눈치 채지 못할 것이다. 유진을 살피고 있는 존재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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