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색
존댓말, 존칭 없습니다. 어른과 아이에 대한 구분도 모호한 세상, 위계가 흐릿한 기원전 4만년으로 안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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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이난나~”, “이난나~”
아이들이 이난나를 찾는 소리에 어른들이 몰려들었다.
“뭐야? 어떻게 된거야?”
역시나 도치가 제일 먼저 도착했다.
곧 발륵치와 초초이카도 쫓아왔다.
사리나는 여울의 손을 잡고 있었다.
“아카시아 숲쪽으로 걸어들어가는 걸 봤는데, 우리랑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진 않았어.”
행여나 혼날까봐 이시르는 얼른 둘러댔다.
“초초이카, 이쪽으로 와봐. 여기서 발자국이 없어졌어.”
발자국을 따라가던 발륵치가 잠시 후 고개를 들며 말했다.
이번에는 발륵치 곁으로 우르르 몰렸다.
“피 비린내가 나는데···”
예민한 여울이가 냄새의 방향을 찾는다.
사리나는 여울의 말에 손에 힘이 들어갔다.
발자국은 대여섯 걸음 떨어진 곳에서 다시 나타났다.
이난나의 발자국으로 보기에는 지나치게 컸다.
아니 평범한 사람발자국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응?! 여기다!”
여울이 스무 걸음쯤 더 걸어가다가 갑자기 외쳤다.
땅에는 핏자국이 흥건했다.
사리나는 손에서 핏기가 사라지는 것 같았다.
“사슴 발자국이야.”
사슴발자국 뿐만이 아니었다.
사람발자국으로 보이는 것들이 어지럽게 섞여 있었다.
조금 전에 봤던 발자국보다 더 큰 발자국도 발견했다.
‘한두 사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크기가 아니다. 사슴을 사냥한 흔적이야. 이 발자국과 이난나의 발자국은 무슨 관계가 있을까?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사슴도 이 사람들도 이난나도 모두 함께 사라졌어. 이난나를 데려간 걸까? 이난나는 왜 아무런 소리도 없이 갔을까?’
발륵치가 보기에 이상한 것은 한두 가지가 아녔다.
핏자국을 봐서는 마치 방금 죽은 것 같았다.
“이건 사냥 흔적이야. 게다가 방금 전이라고 해도 괜찮을 정도로 최근에 잡았어. 왜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었지?...”
발륵치는 발자국들을 한참 들여다 보다가 말을 이었다.
‘사슴을 소리도 내지 않고 잡았다···’
초초이카는 발륵치의 말을 들으며 생각에 잠겼다.
“큰 머리 인간?”
자신의 말에 동의를 구하는 뜻으로 여울의 얼굴을 쳐다봤다.
여울도 초초이카처럼 아므하에게 배운 적이 있었고, 그가 마을에 합류하기 전까지만 해도 대장 역할을 하고 있었다.
사리나의 오른팔이 여울인지, 여울의 오른팔이 사리나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였다.
그녀의 힘은 근육이 아니었다.
그녀의 꾀를 당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초초이카는 그런 그녀를 굉장히 높이 샀다.
“걔네도 웬만해서는 그렇게 못 잡을 걸.”
여울이도 이 상황이 이해 안되기는 마찬가지였다.
“잡을 수도 있다는 얘기네? 이난나를 데려갔을 가능성은?”
초초이카는 계속 여울의 의견을 물었다.
창을 잡고 있는 검지손가락은 창대를 빠르게 치고 있었다.
사리나와 도치는 입술이 말라가고 있었다.
“큰 사슴과 어린 사슴이라 그랬지? 이난나가 사슴과 같이 있는 걸 보고 사냥하러 온 사람들이 같이 다 덮쳤을까? 동시에 다른 방향으로 달아난다거나, 이난나가 소리라도 치면 사냥은 실패했을 테고, 이난나가 사슴을 지키려다 당한걸까?"
"아냐···이난나의 발자국과 사슴의 발자국이 너무 떨어져 있어. 사슴이 있던 자리에만 발자국이 한 가득이야. 일단 이난나가 없어진 건 사실이고 데려갔든 잡아갔든 아니면···어쨌든 이 발자국들을 쫓아가면 답이 나오지 않을까?”
발륵치와 여울의 대화가 이어졌다.
일단 여러 가능성은 제쳐 두고, 발자국들을 빨리 쫓아가 보는 것이 더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난나가 설마 쫓아간 건 아니겠지?”
“너라면 쫓아가겠니?”
수드라가 쓸데없이 거드는 댕기에게 눈치를 줬다.
“아니, 사슴 구하겠다고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
댕기는 한 마디 거들었다가 본전도 못 찾았다.
“일단, 이난나가 큰 머리 인간에게 잡혀갔다고 보고 움직이자. 발륵치가 한 말로 봐서는 금방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아.”
초초이카는 모두를 바라보며 말했다.
고민하지 않았다. 아니 그럴 생각도 없었다.
이난나가 사라졌다.
일단 최대한 빨리 찾는 것이 우선이었다.
“상대가 적어도 넷, 많다면 다섯 혹은 여섯이야. 우리도 최소 다섯은 되야할텐데, 나랑 같이 갈 사람?”
초초이카는 도움을 받고 싶은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씩 쳐다봤다.
도치, 발륵치, 아크만, 델베르, 마나쉬, 카라투, 아르체, 여울, 사르나 등이 손을 들었다.
“도치, 발륵치, 아크만, 델베르, 마나쉬 이렇게 가겠어. 다른 사람은 에르호에서 기다려줘”
초초이카는 서둘렀다.
발륵치는 가만히 듣고 있다가 문득 ‘뭣 하러 또 왔다갔다 하나’ 싶었다.
“창도 이제 충분하고, 어차피 아므하에게 가야하잖아. 에르호에 계속 있을 필요가 있어? 그냥 다 같이 가는 건 어때?”
“숲보다는 호수가 더 안전해. 에르호에 도착한지 며칠이나 됐다고, 아므하를 찾아가는 방향과 다를 수도 있어.”
초초이카는 빨리 움직이고 싶었다.
무기가 부족하고 지쳤다면 모를까 숲 속이 위험하다는 건 핑계다.
많은 사람이 움직이면 시간이 더뎌진다.
여울이 초초이카의 팔을 당겼다.
잠깐 따로 얘기하자는 신호였다.
여울은 초초이카를 네댓걸음 옆으로 나오도록 이끌었다.
“나는 왜 빼? 나도 가겠어!”
“네가 가면 여기는 누가 돌봐? 사르나는?”
“왜 네 멋대로야. 나도 이난나가 걱정돼, 사르나는 말할 것도 없고. 네 맘만 급한 줄 알아? 그리고 정말 큰 머리 사람들이면 어쩔거야? 그렇게 적어서는 갔다가 못 돌아오는 수가 있어”
나직하지만 힘이 실린 목소리였고, 일리 있는 말이었다.
“워워~! 진정해, 알았어. 그런데, 네가 가면 사르나도 가겠다고 하겠지? 사르나가 가면? 우리 중에 누가 또 사르나를 지켜? 그럴려면 또 몇 명이 더 붙어야 해. 그리고 조금이라도 더 빨리 쫓아가야 따라잡을 수 있을 거 아냐? 사르나 속도에 맞추려면 늦어질 수밖에 없어.”
“빨리 가서 따라잡으면? 이겨서 이난나를 무사히 데려올 자신은 있고? 누가 다치면 어쩔거야? 급해 죽겠지? 조금 느려도 제대로 준비하는 게 나아. 정신 차려 이 멍충아!”
여울은 초초이카의 이마를 톡 쳤다.
조용히 말해서 안 통하자 초초이카를 자극했다.
그녀의 도발에 발끈하여 이마에서 떨어지는 손을 잡고 위로 들어올렸다.
여울은 이 때다 싶어 눈웃음을 지으며 응수했다.
“왜? 날 한번 자빠뜨려 보려고?”
“이 아줌마가 왜 이래?”
사람들은 둘을 계속 쳐다보는 중이었다.
발륵치의 표정은 울그락불그락 험상궂게 변했다.
초초이카는 황급히 손을 다시 뗐다.
“좀 전에 손든 사람들은 모두 데려가, 중간에 맞닥뜨려도 그 정도 되면 우리에게 기회가 올지도 몰라. 그리고 여긴 아쿰에게 맡겨, 베르도 있고, 우리가 다녀올 동안 별 일 없이 잘 있을거야.”
초초이카는 다시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조금만 데리고 빨리 가려고 했는데, 여울이 기어코 가겠대, 그래서 좀 전에 손 든 사람들 모두 함께 가기로 했어. 사르나도 같이 가고.”
여울은 아쿰을 불렀다.
“아쿰, 애들이랑 잘 부탁해. 아마 오늘 밤 안에 돌아오기가 힘들지도 몰라. 불 잘 피우고.”
아쿰은 별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초초이카는 어차피 여울이 따라붙겠다 싶으니 초조한 마음은 내려놓기로 했다.
원래 사람 마음이란 게 뜻대로 잘 안된다.
“초초이카, 너무 어두워지면 발자국을 놓칠 수 있어.”
오히려 발륵치가 발걸음을 서둘렀다.
방금 전 사건으로 스스로도 알 수 없는 분노가 일었다.
여울이 몸에 손을 대다니! 발자국에 집중하자 마음이 겨우 누그러졌다.
“이난나의 발자국이 안보이네···”
도치는 초조한 마음을 그대로 드러냈다.
따라가는 엄마의 체력도 걱정이 됐다.
엄마의 마음이야 이해하지만 괜히 따라가는 게 아닌가 싶었다.
“이건 그냥 생각인데, 이 녀석들 아무래도 큰 머리 인간들 같아.”
발륵치의 말에 몇몇은 머리칼이 쭈뼛 섰다.
큰 머리 인간들과 부딪히면 일대일로 싸워서는 별로 가망이 없었다.
작전을 철저히 세워야 한다는 뜻이다.
부상의 위험도 컸다.
사르나가 같이 있긴 해도 가벼운 찰과상이 아니라면 그녀도 어찌 못한다.
- 작가의말
호모 사피엔스 주요등장 인물
(전원 호모 사피엔스 100%)
이난나 : 주인공, 호모사피엔스 100%, 여성, 만 13세
초초이카 : 사냥, 이동 시 대장 역할, 남성, 만 24세
발륵치 : 사냥, 이동 시 선두 역할, 남성, 만 23세
여울 : 발륵치의 현재 아내, 여성, 만 25세
사리나 : 이난나의 엄마, 아므하의 전처, 여성, 만 43세
도치 : 이난나의 이부 오빠, 남성, 만 18세
아쿰 : 초초이카의 이부 형, 남성, 만 29세
수드라 : 여성, 만 14세
댕기 : 여성, 만 12세
이시르 : 남성, 만 1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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