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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나나 님의 서재입니다.

검사딸살인사건

웹소설 > 자유연재 > 추리, 중·단편

배나나
작품등록일 :
2017.06.26 11:21
최근연재일 :
2017.07.24 07:01
연재수 :
38 회
조회수 :
6,207
추천수 :
254
글자수 :
154,888

작성
17.06.28 12:20
조회
285
추천
8
글자
10쪽

순희

DUMMY

" 망했네, 이제 우리 집안은 망했어... 그래서 이 결혼 안된다고 했잖아.. 빨갱이는 집안에 들이면 안된다고.. "


" 김씨, 니가 감히..감히.. 니가.. 은혜를 원수로 갚아.. 불쌍놈의 새끼 "


" 경찰 놈들은 뭐하고 있었던 거야.. 뭐한다고 자빠져 있었어.. "


" 내 새끼야... 내 새끼야.. 금쪽같은 내 새끼야.. 살려내.. 살려내 ... 내 새끼 살려내.. "


어머니 유씨는 구둘짝이 꺼져라 방바닥을 두들겼다. 아무도 없는 방안에서 그녀는 그렇게 누군가를 원망하는 말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어머니 유씨는 순희와의 결혼을 반대했었다. 순희는 똑똑하고 예쁘지만, 집안이 맘에 안들었다.


' 오빠는 공장 다니고, 아버지는 시장 노점 일하고, 게다가 몸까지 불편하고.. 순희 삼촌은 감옥에서 죽었다고 했는데... 흠.. 빨갱인 아닌가 ? '


맞다. 일명 빨갱이었다. 다들 그렇게 불렀다.


순희 삼촌은 대학 때부터 야학 일을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학교 선생님이 됐지만 야간에는 여전히 야학 일을 돕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삼촌은 경찰에 수배됐고. 도망을 다녔다. 고등학교 영어선생이던 순희 아버지는 경찰서에 잡혀갔고 삼촌이 도망간 곳을 말하라고 추궁받았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고 삼촌은 자수했다. 아버지는 그 이후로도 풀려나지 못하다가 어머니가 같은 마을 백형사에게 전 재산을 준다고 약속 한 후 아버지는 돌아왔다. 백형사의 사촌 형이 중앙정보부에서 일한다는 소문이 있었다.


아버지는 어떻게 고문을 당했는지 성한 곳이 없었다. 말 그대로 산 송장이었다. 숨만 겨우 붙어있었다. 동네 사람들은 곧 죽을 거라 했다.


마당에 큰 은행나무가 있던 순희네 집은 백형사가 살게 됐다. 순희네는 남이 버리고 간 산기슭 초가집으로 이사했다. 집에서 살림만 하던 순희 어머니는 졸지에 죽어가는 남편과 두 아이를 먹여 살려야했다. 하지만 빨갱이 집안이라고 찍힌 순희네에 선뜻 나서서 일자리를 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산 입에 거미줄 치진 않기 마련이었다. 밤사이에 동네사람들은 몰래 감자, 고구마같은 양식을 순희네 장독대에 놓고 갔다. 대놓고 도와주진 못했지만 순희네가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어머니는 새로 이사한 집에 텃밭을 일궜다. 파, 배추, 당근 같은 것을 심어 최소한의 자급자족을 하기 시작했다. 또 병아리 몇마리를 얻어 키웠다.


아버지는 눈만 떴다 감을 줄 알뿐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먹는 거부터 대소변까지 다 어머니가 대신 해주어야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한달 두달이 지나가면서 순희는 저러다 어머니마저 병이 들면 어쩌나 두려웠다.


순희 아버지는 경찰서에서 막 나와서 의식이 없을 때가 차라리 나았다. 점점 정신이 들수록 누워만 있어야하는 자기 처지가 부끄러웠다.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났다는 생각도 여러 번 해봤다.


하지만 저승 문턱을 넘는 건 쉽지 않았다. 송장 같은 아버지였지만 순희와 상희 그리고 어머니에게 아버지는 살아가는 힘이었다. 순희와 상희는 학교 갔다 오면 제일 먼저 아버지에게 달려가 오늘 있었던 일을 말했다. 기뻤던 일, 속상했던 일, 모두 아버지에게 말하는 수다꺼리였다.


" 울 아버지한테 이를꺼야 "


순희는 이 말을 곧 못하게 될까봐 하루하루가 두려웠다. 순희 어머니는 아버지가 야학에서 가르치던 학생이었다. 그래서 결혼 후에도 순희 어머니는 아버지를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두 사람 사이는 애뜻했다.


저승으로 넘어가는 깔딱 고개에서 그렇게 가족들은 아버지를 붙잡고 있었다. 순희 아버지는 저승 문턱 앞에서 이승에 남아 있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끼니도 겨우 해결하는 순희네에게 병원은 엄두도 낼 수 없는 사치였다. 그렇다고 앉아서 죽을 순 없는 일이었다. 방법을 찾아야했다.


순희는 집 텃밭에서 당근을 한 광주리 뽑아서 옆 마을 봉사선생을 찾아갔다. 뜸과 침을 잘 쓰는 선생인데 다 죽어가던 사람들도 많이 살렸다고 소문이 난 명의였다.


" 선생님... 저희 아버지 좀 살려주세요~ "


약값이라고 가지고 온 당근 광주리를 대청마루에 올려놓고는 순희는 떼를 쓰기 시작했다.


" 지금은 저희집에 이것 밖에 없어요 "


" 약값 대신에 제가 이 집에서 종살이를 할께요 "


봉사선생은 마당에서 악을 쓰며 보채는 순희 목소리가 듣기 싫진 않았다.


" 너.. 한글은 읽을 줄 아냐 ? "


" 네, 한글은 읽을 수 있어요 "


" 고것 참 영특하구나.. 공짜로는 못 고쳐준다. 나한테 책을 읽어주라.. "


" 네, 읽어 드릴께요. 백권이고 천권이고 읽어 드릴께요 "


" 좋다. 그럼 앞장서라 "


뜸과 침 장비를 챙겨서 봉사 선생은 순희네로 길을 나섰다. 나뭇가지 하나 서로 앞뒤로 쥐고 한참을 걸어 둘은 산을 넘었다.


봉사 선생은 아버지 항문에 뜸을 놓았다. 큰 고무대야에 피 똥을 엄청 많이 뽑아 버렸다. 검붉은 핏덩어리에서 썩는 냄새가 났다. 죽은 피라고 했다.


감사하게도 일주일에 한 번씩 선생은 순희 아버지를 치료해 주었다. 와서 치료할 때마다 순희보고 읽어달라며 이야기책을 가져왔다. 책 한권 변변히 살 수 없었던 순희랑 상희는 덕분에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침과 뜸을 놓는 지루한 시간을 순희가 읽어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보냈다. 어쩔 땐 노래를 불러 보라고도 했다. 누워있는 아버지는 순희 목소리를 들으며 차츰 오감을 깨웠다.


어머니는 진이 빠져나가 껍질만 남은 아버지의 원기 회복을 위해 초가지붕을 뒤져 구더기를 잡아 끓여 먹였다. 개구리, 미꾸라지, 붕어 등 원기를 도울 수 있는 먹을 거는 다 잡아 약으로 다렸다.


이런 정성 때문인지 아버지는 조금씩 회복했고, 나중엔 겨우 걸을 수도 있었다. 아버지가 회복된 건 기적이었다.


그 때쯤 아버지 친구 제이슨 아저씨가 찾아왔다. 제이슨은 미군부대에서 일하는 흑인이다. 영어 선생이던 시절 아버지는 통역을 해주러 미군부대에 다녔다. 제이슨은 그 때 안 친구다. 생계가 어려운 순희네를 위해 제이슨은 미군부대에서 나오는 중고물품을 아버지가 팔 수 있게 해주었다. 고마웠다.


오빠 상희는 자기가 고등학교에 들어가면 순희가 공장에 가야한다며, 학교를 포기하고 돈을 벌었다. 공부는 순희 대학간 다음에 하겠다고 했다. 여자가 험한 곳에 가면 험한 꼴 당하며 산다며 자기는 남자라서 괜찮다고.. 장남인 자기가 돈을 벌어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다.


부모님 가슴이 무너졌지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맞는 말이었다. 인물이 반반한 여자 애들은 시내 공장 다니다가도 다 그렇고 그런 곳으로 흘러들어갔다. 학교는 안전한 곳이였다.


상희는 정말 순희가 시집간 이후, 태경이가 태어나던 해 대학에 들어갔다. 법대에 들어가서 사법 고시를 봤고 지금은 사법 연수원에 있다.


연좌제 때문에 판검사 임용은 생각도 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연수원 수석은 언제나 상희 차지이다. 책 살 돈도 없고 공부할 시간도 없는 주경야독, 고학생 생활을 한 덕분에, 상희는 집중력이 정말 좋았다. 한번 본 책은 다 씹어 삼킬 욕심으로 책이 뚫어져라 집중해서 읽었다.


머리는 정말 좋은 집안이다. 순희도 명문 대학에 장학생으로 들어갔다. 집안 형편이 어려운 순희에게 대학은 무리였지만 교장선생님께서 순희 같은 수재가 대학 꿈을 접는 걸 무척 가슴 아파하셨다. 그래서 장학금을 알아봐주셨다.


교장선생님 방에 걸려있는 액자에는 공부하는 여학생 그림위에 이런 문구가 쓰여 있다.


' 한 남자를 공부시키는 것은 한 사람을 공부시키는 것이지만, 한 여자를 공부시키는 것은 한 가정을 공부시키는 것과 같다 '


교장선생님은 입학식 첫 날부터 이 말씀을 해주시며 여성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었다.


학비 4년 장학금제도는 많은 대학에서 운영하고 있었지만 생활비가 문제였다. 4년 생활비까지 받을 수 있게 학교측에 요청했지만 여학생에게 그렇게까지 후한 장학금을 주는 대학은 없었다.


" 내가 니를 업고라도 서울 가줄테니깐 공부만 열씨미 하그라.. 걱정 붙들어 메고 "


교장 선생님은 늘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다행히도 순희가 대학가던 해 4년 장학금에 생활비까지 주는 장학제도가 몇 대학에서 생겨났고 순희는 그 중 가장 좋은 대학에 들어갔다.


하지만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다. 오빠 상희에게 미안했다.


" 내 취직해서 돈 벌어야 하는데 오빠야한테 미안해.. "


대학 입학통지서를 받고, 순희는 오빠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4년 내내 장학금을 받았지만 순희는 어느 고학생들처럼 늘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하며 대학생활을 보냈다. 차곡차곡 돈을 모아 오빠에게 줬다. 순희가 조금씩 모아주는 돈으로 오빠는 검정고시 공부를 했고, 고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


순희 고향 사람들은 순희네가 착하게 살아서 복을 많이 받는다고 했다. 그리고 그간 고생했으니 이제 좀 떵떵거리며 편하게 살라고도 했다.


그런데....


나나가 없어진 후 순희의 모든 것이 멈췄고, 무너지고 있었다. 다시 일어날 수 있을까..?순희는 깨어날 수가 없었다. 입원실에 온 옥희를 본 이후로 까만 암흑 속에 갖혀버렸다.


' 저 좀 살려주세요. 나가서 할 일이 있어요. 저 좀 누가 구해주세요 ! '


순희는 기도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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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사랑 +4 17.06.29 187 7 10쪽
» 순희 +6 17.06.28 286 8 10쪽
3 고통 +6 17.06.28 306 8 8쪽
2 은폐 +6 17.06.27 354 7 7쪽
1 시체 +6 17.06.26 599 7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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