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배나나 님의 서재입니다.

검사딸살인사건

웹소설 > 자유연재 > 추리, 중·단편

배나나
작품등록일 :
2017.06.26 11:21
최근연재일 :
2017.07.24 07:01
연재수 :
38 회
조회수 :
6,195
추천수 :
254
글자수 :
154,888

작성
17.07.06 02:32
조회
122
추천
7
글자
9쪽

사이비 종교

DUMMY

예선이 담임 선생님은 말을 이어갔다. 여자들은 원래 두괄식 화법보다는 미괄식 화법을 쓴다. 결론이 나오려면 한참 걸렸다. 보통 시간 순서대로 쭈욱 나열하기 때문에 마치 파노라마 영상을 보는 것 같다.


장기자는 선생님 말씀을 들으면서 예선이의 동선을 쭈욱 연상했다. 그래서 힘들었다. 감정이입이 되서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장기자는 담배를 연신 피워대며 선생님 말을 들었다. 도저히 가만히 듣고 있을 수가 없었다. 뭐라도 해야 했다. 독한 담배를 피우며 장기자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식혔다.


" 그래서 경찰에 신고는 했데요 ? "


" 아뇨... 그게 "


선생님은 무척 속이 상한지 코끝이 빨개지더니 이내 눈까지 붉은 핏 기운이 올라왔다.


" 부모님께 거기서 자기가 당한 거를 말하니깐.. 엄마는 처음에는 울고불고 난리치더니.. 나중에는 어디 가서 말하지 말라고 하더래요. 그러더니 지방으로 이사가자고 하더래요. 아버지는 아예 자길 안 보구요 "


" 그래서 저를 찾아 왔더라구요. 자기는 너무 억울하다구요 "


" 지금 예선이 어디 있나요 ? "


선생님은 망설였다.


" 예선이가 집을 나왔어요. 그래서 제가 데리고 있어요 "


" 근데 하루 종일 집에만 있지 나가려고 하질 않아요. 사람들 눈에 띄는 걸 싫어하구요 "


선생님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예선이가 지금 사는 게 얼마나 힘든지 그리고 아이가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데도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무기력하다는 말을 했다.


선생님이 예선이 엄마를 찾아가서 경찰에 신고하자고 설득했지만 펄쩍뛰며 반대했다고 한다. 소문나면 망신스럽다고.. 그리고 선생님보고도 어디가서 말하지 말라고 했단다.


장기자는 장황하게 이어지는 담임선생님 말씀을 선생님쪽에서 그만 할 때까지 옆에서 끝까지 들었다. 이렇게 하는 게 힘들게 말을 꺼내준 그리고 자신을 신뢰해준 제보자에 대한 예우라고 장기자는 생각했다.


예선이도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할 때가 담임선생님밖에 없었지만 선생님도 그런 예선이의 억울함을 호소할 곳이 없었다. 이런 말을 꺼내는 건 장기자가 처음이었다. 선생님께 빵과 사이다를 내밀었지만 드시지 않고 사양했다. 혹시 예선이가 먹을지 모르니 가져가시라고 했다.


예선이를 한 번 직접 보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지만.. 참았다. 구체적으로 자신이 예선이를 도울 방법을 찾게 되면 꼭 예선이를 만나게 해달라는 말은 남겼다. 선생님께서도 예선이에게 그 말을 전해준다고 했다.


선생님이 집으로 들어가는 걸 보고 골목입구까지 걸어 나왔다. 가로등 밑에서 수첩을 꺼냈다. 그리고 아까 인터뷰한 내용을 순서대로 적었다.


‘ 임예선, 18세, 세민고등학교 2학년, 올 3월 20일 부터 선교원에서 접대부생활, 5월 20일 탈출, 집에서 나와 담임선생님과 동거 중 ’


‘ 문소영, 18세, 수진고등학교 1학년, 올 4월 1일 부터 선교원에서 접대부생활, 5월 20일 탈출, 인터뷰시도예정 ’


수진 고등학교 취재 때 적어놓은 소영이네 주소를 확인했다. 전화번호도 있었다. 전화를 먼저 해보았다. 학교라고 하면서.. 소영이를 찾았다.


“ 딸칵, 뚜뚜뚜 ”


어머니가 받는 거 같았는데, 소영이를 찾자 전화를 황급히 끊었다.


‘ 내일 아침에 찾아가봐야겠다. ’


장기자는 마음이 바빴다.


장기자는 오랜만에 집으로 갔다. 오늘 차형을 만나면 정말 죽도록 퍼 마시고 뻗을 것 같았다. 정리할 내용이 많았다. 죽더라도 이번 취재 끝나고 죽어야 한다는 사명감이 생겼다. 이 세상에 태극선교단에 대해 자기만큼 잘 아는 사람은 없으니깐 말이다.


장기자는 양말만 벗어서 구석에 던져 놓고 책상에 앉아 노트에 적기 시작했다.


‘ 태극선교단 개요 ’


‘ 교회 , '애국' '구국' 단체, 최고 지도자 나경재 목사, 70세 ’


‘ 나경재 이전 행적, 남대문에서 신발장사, 사기 – 부도 – 구걸, 노숙 1년 정도 ’


‘ 5년전 목사로 태극선교단 설립 ’


장기자가 태극선교단에 대해 알아본 내용은 노트 한권도 넘었다. 새벽까지 꼼짝 안하고 기록했다.


태극선교원은 처음에는 옷, 음식, 담요 같은 걸 사람들에게 나눠줬고, 거처가 없는 사람들을 재워 주기도 했다. 믿으면 복이온다고 '기복'을 강조했지만 아주 이상한 논리는 아니었다.


그러다가 점점 교세가 확장되자 나목사에 대한 신격화가 진행됐고 신도들을 종부리듯 부리기 시작했다.


" 나는 한국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이 보내주신 예수입니나. 단군의 동생이죠 "


" 저한테 잘 보여야만 하나님께 잘 이야기해줍니다. 이미 여기 수첩에 다 기록해두고 있어요. 누가 무슨 복을 짓고 사는지... 복 많이 지으세요. 제가 하나님께 이 수첩 넘길 겁니다. "


" 일제 때 우리 것을 다 빼앗아갔어요. 그것을 다시 뺏어서 주인에게 돌려주려고 내가 이곳에 보내졌어요 "


" 지금 잘 살고, 많이 배우고, 시집 잘 가고,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 .... 우리것을 빼앗아서 그렇게 된 사람이 많아요. 내가 그것을 신도들에게 돌려줄꺼에요. 당연하잖아요. 아버지가 나타났는데 자기 자식이 남한테 사탕을 빼앗겨서 울고 있으면 당연히 도로 돌려주겠지요 "


솔깃한 내용들이지만, 실상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하지만 신도들 대부분이 노숙자거나 무지렁이 들이거나 적어도 현대화와 산업화 사회의 루저들이었다. 지금 사회가 이해도 안됐고 점점 소외되는 자신들의 처지에 대해 불만들이 많았다.


그리고 신도들은 우리 사회의 피해자들이었다. 한국 사회가 산업화, 현대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우리가 지니고 있던 기존 가치들은 쓸모가 없는 것으로 취급됐다. 일명 가치관의 혼란이 일어났다. 해방이후 친일파 청산이 안돼서 사회 정의도 제대로 세우지 못한 상태에서 빠르게 산업화까지 이뤄지니깐 가치관의 혼란은 극에 달했다.


태극선교단 같은 사이비 종교가 판을 키울 수 있는 이유도 이런 가치관의 혼란 때문이었다. 사회의 급변화로 인한 가치관의 혼란때문에 상처입은 사람들은 위로받을 곳이 필요했다. 그런데 태극선교단은 사탕발림을 미끼로 신도들을 휘어잡은 다음,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철저히 이용했다. 상처입은 자들은 결국 더 병들게 됐다.


기존의 가치에 머물러있거나, 예를 들어 신식 학교교육을 받지 못하거나, 산업화에 빠르게 동참하지 못하거나 역시 예를 들면 농사짓는 것만 알고 기계를 사용해서 천을 만들거나 건물을 지어서 돈을 버는 방법을 모르면 무시당하고 사기당하기 딱 좋았다. 당하지 않기 위해서 늘 조심해야했다. 그러나 순박한 사람들은 그것 조차도 몰랐다.


이전에는 농촌에서 씨족들이 모여 농사만 짓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도시화의 물결 속에서 생판 모르는 사람들만 가득한 도시로 흘러들어와 일용직 노동자가 됐다. 배운 거 없고 가진 거 없이 도시로 모여든 사람들은 도시빈민으로 전락하기 쉬웠다. 그들의 생활은 비참했다.


그래서 나목사 이야기를 틀렸다고 판단하지 못하고 점점 사이비 종교에 빠져 들었다. 그 결과 교회에서 진행하는 각종 토목공사에 신도들은 동원됐고, 재산이 있는 사람들은 전 재산이 털릴 때까지 이런저런 명목으로 헌금을 강요당했다.


더러는 너무 맹신해서 자식을 갖다 바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옛날 궁에 입궐하듯 어린 소녀들이 부모 손에 이끌려 선교원으로 들어갔다.


태극 선교원 신도들은 교회 일만 하는 건 아니었다. '구국운동'이라는 미명하에 정치인들 밑 닦는 일을 했다. 일명 정치깡패가 해야 할 일들을 대신했다. 깡패들을 동원하면 티도 금방 나고 이미지도 안 좋기 때문에 일반 지지자인척해서 신도들을 분란이 생긴 현장에 투입했다.


여기서 공을 세운 신도들에게는 계급이 주어지듯 군복을 입혀주고 ' 장교 '라는 칭호도 붙여주었다.


" 나랏일을 하는데 당연히 군복을 입어야지.. 이젠 사병이 아니라 장교에요. 장교님~ “


" 우리 태극선교단 신도들은 다 장교가 되고 선생님이 될꺼에요. 이렇게 열심히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데 당연히 대가를 받아야죠.. "


남자는 장교, 여자는 선생님이 그 시대의 로망이었다. 배운 거 없고 가진 거 없는 사람들은 결코 될 수 없었다. 그 로망을 교주에게 충성만 하면 실현시켜준다고 사람들을 현혹했다.


‘ 약간 모잘라다고 해야 하나... ’


신도들은 이런 치켜세움에 금방 넘어가는 어리숙한 사람들이었다. 아니면 자신들 욕심이 신도들을 더 눈멀게 했는지도 모른다. 신도들는 나교주가 시키는 일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무서운 집단이 되어갔다.


장기자는 새벽이 오는 걸 보고 잠시 눈을 붙였다. 오늘 아침 일찍 소영이네를 가봐야 했다. 책상에 엎드려 쪽잠을 잤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4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검사딸살인사건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검사딸살인사건 작품 소개 17.07.12 224 0 -
38 생명을 살리는 힘 +4 17.07.24 141 5 12쪽
37 각설탕 +4 17.07.21 123 7 9쪽
36 펜은 칼보다 강하다 +4 17.07.20 115 7 7쪽
35 박선택의 몰락 +4 17.07.20 114 7 7쪽
34 개과천선 +6 17.07.19 118 7 9쪽
33 장기자와 예선이 +4 17.07.19 107 7 8쪽
32 공개수사 = 사냥 +4 17.07.18 139 7 13쪽
31 뒤집기 +4 17.07.17 113 6 14쪽
30 증거인멸 +4 17.07.14 110 6 14쪽
29 불안한 동업 +4 17.07.13 102 6 11쪽
28 협박전화 +4 17.07.13 92 7 10쪽
27 더러운 거래 +4 17.07.12 95 6 10쪽
26 실종 D-day +4 17.07.12 90 7 11쪽
25 음모 +4 17.07.11 100 7 8쪽
24 해결사 +6 17.07.11 91 7 9쪽
23 집안의 보물 +4 17.07.10 95 7 9쪽
22 한끼 식사 +4 17.07.10 115 7 10쪽
21 갓난이 +4 17.07.09 114 7 9쪽
20 혈액형 +4 17.07.09 98 7 7쪽
19 상희와 옥희 +4 17.07.08 115 7 10쪽
18 가족 +4 17.07.08 107 7 9쪽
17 암살 +4 17.07.07 152 7 11쪽
16 복수 +4 17.07.07 129 6 9쪽
» 사이비 종교 +4 17.07.06 123 7 9쪽
14 탈출 +4 17.07.06 114 8 9쪽
13 예선이의 고백 +4 17.07.05 227 7 7쪽
12 천도제 +4 17.07.05 138 6 7쪽
11 집안의 우환 +4 17.07.04 241 6 8쪽
10 돌아온 여고생 +4 17.07.03 248 5 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