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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한스그레텔 님의 서재입니다.

검마전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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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그레텔
작품등록일 :
2024.01.23 19:39
최근연재일 :
2024.07.16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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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23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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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용을 끌어내리다(9)

DUMMY

무림맹주 운허는 살면서 처음으로 서류 더미에 파묻힌다는 게 뭔지 느끼고 있었다.


물론 맹주로 지내면서 서류와 몸싸움을 해본 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중원 무림은 넓고 광대하여 그 안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사건들만으로 맹주 앞으로 오는 서류만 적어도 수백 개 이상이었다.

이마저도 당사자들과 알아서 해결하고, 자신은 서류만 재가하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걸 어떻게 끝낸단 말인가."


옆에서 함께 서류에 파뭍힌 취걸개와 제갈극 또한 맹주의 말에 공감했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이마저도 아직 한참이나 남아있으니."


매일 맹주실로 올라오는 서류 더미만 해도 족히 성인 남성 수준의 크기였다.

그나마 제갈극과 취걸개의 도움으로 간신히 버티고 있기 망정이지.


"...차라리 지금 맹주직을 넘길까.“


맹주의 중얼거림을 들은 두 사내는 살기 어린 눈빛을 잔뜩 쏘았다.


"그런 소리를 하지도 마십시오."

"저희한테 일 다 떠넘기고 본인 혼자 도망치기라도 하실 생각입니까?"

"미, 미안하네. 내 실수로 그만···."

"잔말 말고 어서 서류부터 재가하십시오."

"아, 알겠네."


두 사내의 따가운 시선을 애써 회피하며 서류에 집중하려던 그때.


"맹주님···."


문밖으로 청년 한 명이 조심스럽게 서류 더미를 들고 찾아왔다.


"이번엔 또 뭔가."

"호북성에서 올라온 재가 사항입니다. 그리고

···."

"그리고 또 뭐?"


신경질적으로 묻는 취걸개.

청년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무한에서 올라온 보고서입니다."


맹주는 청년이 내민 보고서를 받자마자, 빠르게 훑어보았다.


"뭐라고 적혀 있습니까?"

"···무한상단이 무너졌다더군."

"예?!"

"무한상단이라면?"

"무림맹의 후원자 중 한 곳이 아니었나?”


무림맹의 자금은 대부분 세가나 문파, 그리고 상단의 후원으로부터 나온다.


그중 무한상단은 무림맹의 오랜 후원자이자, 중원 내에서도 알아주는 거대 상단 중 하나였다.


그런 무한상단이 사실 살문의 자금줄이었다?


만약 이 일이 사실이라면, 무림맹 내부에 첩자가 있을 수도 있다는 소리다.


"총군사. 호남에 있는 비연각주에게 연통을 넣으시오. 호남의 일은 잠시 접어두고, 호북의 무한상단을 처리하라고."

"알겠습니다."

"취걸개 원로. 개방주에게 직접 연통을 넣어, 호북의 감시망을 전부 통제하라 이르시오."

"명 받들겠습니다."


판단은 빠르고 신속했다.


혼란한 판국 속에서도 맹주는 빠르게 결단을 내렸다.


‘호남뿐만 아니라 호북에서도 일이 벌어졌다.’


그것도 제갈세가의 영역인 무한에서.


‘대체 일이 어떻게 되려는 건지.


맹주는 눈을 질끈 감은 채 탄식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이런 판국 속에서도 움직이는 자들은 더 있었으니···.


***


"어이 신입, 와서 이것 좀 받아 가라!"


서류 더미에 파묻혀 지내던 고참 하나가 신입을 불러 세웠다.


"예, 갑니다!"


창백한 인상.

광대가 드러날 만큼 말라비틀어진 신체를 가진 사내가 우렁차게 답했다.


무한에 위치한 제갈세가의 제연각(齊聯閣).


호북의 모든 정보가 제갈세가의 제연각으로 흘러간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신입은 이곳에서 정보를 담은 서류를 고르는 작업을 맡고 있었다.

오늘도 평소와 같이 열심히 서류를 고르고, 붓질을 하고 있을 때.


제연각의 고참 중 하나가 신입에게 다가왔다.


"어이, 신입."


움찔.


고참의 목소리에 사내는 잔뜩 긴장했다.

제연각의 고참들을 전부 엄하기로 유명했다.

정보를 다루는 조직이니만큼, 당연히 성격 자체가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예, 부르셨습니까?"


고참의 말에 대답하면서도 서류 정리를 멈추지 않았다.

한 손으로 붓을 놀리고, 한 손으로는 적은 서류를 차곡차곡 모아 옆 상자에 몰아넣고 있었다.


"네가 들어온 지가 1년이 다 되어 가는구나."

"하하. 벌써 그렇게 됐군요."

"오늘 회식 있는데, 가서 이거나 할래?"


고참은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술 마시는 자세를 보였다.


"하하. 오늘은 피곤해서···."

"하긴. 무한상단이 무너질 줄은 누가 알았겠냐."


고참 역시 무한상단의 일을 알고 있었다.

호북 3대 거대 상단 중 하나인 무한상단의 궤멸은, 제갈세가에게 큰 골칫거리로 다가왔다.


무한상단은 제갈세가의 후원자 중 하나였다.


제갈천이 제갈세가를 일으켜 세울 때 도움을 준 자가 바로 무한상단이었다.

그런 무한상단이 궤멸했다는 소식에, 제갈세가는 한동안 갈피를 잡지 못했다.

지금은 어느 정도 혼란이 잠잠해지니, 여유가 생길 수 있었던 거고.


"그래, 오늘은 가서 푹 자라. 내일 할 일도 어마무시할 텐데."

"알겠습니다."


사내는 고참에게 고개를 숙이고 퇴근했다.

사내의 걸음을 제갈세가에서 점점 멀어져만 갔고.


어느 낡은 폐가에 이르러서야.


"···살문주를 뵙습니다."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인영이 말했다.


"수확은 있었나?"

"그렇습니다."


사내의 정체는 3호.

십이신장 백후의 사후, 새로운 차기 살문주가 된 특급 살수였다.


"설명해라."

"예, 무한상단의 일은···."


그 뒤로 3호는 살문주에게 무한상단과 관련된 일을 모조리 설명했다.


"···해서 제갈세가 내부에서 직접 나선다고 합니다."

"주동자는?"

"얼마 전에 폐관수련에서 풀려난 제갈린이라고 합니다."

"아, 날개가 꺾인 전 봉황을 말하는 건가?"


살문주는 흥미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위선자라고 해도 그 머리가 어디 간 게 아니겠지."

"죽일까요?"


3호의 말에 살문주는 고개를 저었다.


"됐다. 다른 보고 사항은?"

"한 가지 의심스러운 구석이 있습니다."


3호는 특이 사항을 보고했다.


"추가 보고에 따르면 무한상단을 궤멸한 자들은 단 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단 한 사람이라고?"

"제연각 내에서 추가 검증된 사실입니다."

"어떻게 알아냈지?"

"무한상단의 본관이 무너지기 직전, 그 축을 이루는 기둥 10개 모두가 파단면이 없이 일체 반듯하게 잘렸다는 점. 그리고···."

"그만. 보고는 이만하면 됐다. 네 생각은 그자의 경지가 어떻다고 생각하지?"


살문주는 보고의 내용을 함축하라며 일갈했다.


"최소 화경. 그 이상일 것으로 생각됩니다."

"화경이라···."


살문주는 3호의 말에 긍정 어린 시선을 보냈다.


"현재 남은 녀석들은?"

"호남은 이미 전멸했고, 호북엔 신주세가와 제갈세가 내에 아직 남아있습니다."

"그들을 모두 집결시켜라."

"어찌하시겠습니까?"


3호의 물음에 살문주가 즉시 답했다.


"언제까지 당하고만 살 수는 없는 노릇이지."

"그렇다면···!"


살문주의 두 눈에서 도깨비불과도 같은 흉흉한 안광이 번들거렸다.


"간만에 피의 축제를 벌이자꾸나."


상천십삼좌 살왕.

살수들의 왕이자, 살인귀들의 우두머리.

그가 직접 몸을 일으켰다.


무림의 혼란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


"후우···."


이토록 진심으로 수련한 건 오랜만이었다.

목검 자체를 만져본 경우는 전생을 통틀어 거의 없었다.

그마저도 어렸을 때나 휘둘러 본 경험이 전부였다.


이후로 낭인으로 살면서 돈을 벌기 위해 누군가를 죽이고 다녔다.


20살이 넘어서 마교에 납치되었을 때도, 무현의 손에 쥐어진 것은 한 자루의 진검이었다.


죽을 때까지 꼬리표처럼 달라붙던 진검.


"후우."


무현은 목검을 휘두르는 걸 멈추고 숨을 골랐다.


무한상단 일 이후로, 현재 호북은 잠잠했다.


그 뒤로 수하들을 시켜 호북 일대를 탐문시켰으나, 살문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 꿍꿍이가 있는 것처럼.


"···엿같네."


명분.

그놈의 명분.

사람이 몇천몇만 명 이상이 죽어 나갈지도 모르는 판국에.

그놈의 명분 따위에, 정도 무림이 소극적인 자세로 빌빌 기고 있었다.


무현은 그런 정도 무림이 싫었다.

그나마 자신과 뜻을 함께하는 이들이 있기에 망정이지, 그조차 없었으면 이미 홧병으로 죽었을 거다.


'그냥 날뛸까?'


명분이고 나발이고 다 죽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나도 마교 놈들과 다를 바가 없겠지.'


과거의 검마는 죽었다.

지금은 성검련의 련주이자, 남궁무애의 스승이며, 한 명의 검수로서 있을 뿐.

과거를 답습해서는 안 된다.


'다른 방도를 갈구하는 수밖에.'


그렇게 목검을 내려놓은 채 터벅터벅 눈길을 걷던 중.


"무현 님이십니까?"


멀리서 푸른 색의 무복을 입은 사내가 오고 있었다.

사내가 말했다.


"지금 가주님께서 오시라고 하십니다."

"무슨 일인데?"

"살문이 움직였습니다. 그리고···."


사내는 설명을 듣던 무현의 눈이 커졌다.


"지금 호남과 호북 지방에 대규모 학살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


"···왔나."


잔뜩 피로에 젖은 남궁혁이 손가락으로 연신 미간을 짓눌렀다.


"살문이 움직였다고 들었습니다."

"나도 그 때문에 골치가 아프네."

"무림맹과 제갈세가에선 뭐라고 했습니까?"

"지금 그 때문에 자네를 부른 것일세."


남궁혁은 허공섭물로 보고서를 무현에게 내밀었다.


"···제갈세가가 무너졌다고요?"

“주축을 이루는 제연각과 진법각이 각각 7할, 6할 정도 소실되었다더군.”

“내부의 배신자 때문입니까?”


남궁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신각은요?”

“다행히 식솔들과 함께 은신처에 몸을 숨겼다고 하더군. 하지만 이번 일로 제갈세가는 제기하는 건 힘들걸세.”


세가의 주축이 되는 제연각과 진법각이 대부분 무너지고 소실되었으니, 제아무리 신각이라고 해도 무너져 가는 제갈세가의 재기는 요원할 것이다.


"...수는 파악이 됐습니까?"

"첩자들 때문에 비연각과 제연각 또한 마비 상황이네. 그나마 개방이 나섰으니, 정보는 어느 정도 들어오겠지만···."

"놈들이 작정하고 숨으면 개방과 비연각도 못 찾을 겁니다."


살문은 항상 소수 정예로만 움직인다.

일반적인 명문정파에서 무인을 양성하기 위해서 많은 양의 자금이 든다.

살수는 이보다 배 이상으로 든다.


이유는 단 하나.


살수를 키우는 과정에서 폐기되는 사람들의 숫자가 제법 많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살문의 수는 항상 적을 수밖에 없고, 소수 정예 방식으로 살수들을 키우는 것이었다.


"후우. 맹주가 네게 개인적으로 연락을 했네."

"뭐라 합니까?"

"무림맹으로 직접 오라고 하더군. 거기서 할 이야기가 있다고."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입니까?”


생각만 해도 어이가 없었다.

이제 와서 일을 수습하려는 것도, 뒤늦게 명령이랍시고 직접 나서긴커녕 무림맹 밖으로 나올 생각도 안 하니.


"거절하십쇼."

"맹주의 명령일세."

"어차피 무림맹에서 거의 손 뗀 사이 아닙니까. 맹주도 다 이해해 줄 겁니다."

"...자네는 어지간히도 맹주를 싫어하는 모양이군."

"이 지경이 되도록 일을 내버려둔 걸 생각하면, 때려죽여도 시원찮을 놈입니다."


남궁혁은 못 들은 척했다.


"방도가 있나?"


남궁혁이 물었지만, 무현은 쉽게 결론을 낼 수 없었다.


만약 살문이 이를 눈치채 작정하고 숨는다면, 무현도 방도가 없었다.

그렇다면 놈들을 유인할 방도가 필요하다는 건데···.


“살문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현재 이곳을 거슬러서···.”

남궁혁은 지도를 펼쳐 한 곳을 손으로 짚었다.


“놈들은 교구(硚口)에서 승부를 볼 생각이다.”


무현은 지도를 살펴보며 생각에 잠겼다.


‘왜 굳이 교구지?’


교구는 다른 도시들에 비해 크기가 작아 살문이 숨기엔 적합하지 않았다.


‘설마···.’


그 순간.

무현의 머릿속에서 뇌리가 스쳐 지나갔다.


‘하···이 새끼들 봐라?’


살문의 속셈을 눈치챈 무현은 속으로 헛웃음을 삼켰다.


"위험하겠지만···한번 시도해 볼 방도가 있긴 합니다.“


남궁혁은 눈빛을 빛내며 물었다.


"뭔가?"

"제갈세가에게 서신을 보내 이곳으로 오라고 해주십시오. 그리고···."


무현은 지도를 펼쳐 교구의 한 지점을 딱 짚어서 말했다.


“교구를 중심으로 천라지망을 구축해 주십시오. 진을 구축하는 사이, 제가 가서 놈들을 막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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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용을 끌어내리다(10) +2 24.04.24 1,804 29 12쪽
» 용을 끌어내리다(9) +3 24.04.23 1,830 29 13쪽
65 용을 끌어내리다(8) +1 24.04.22 1,855 28 12쪽
64 용을 끌어내리다(7) +4 24.04.19 1,933 29 13쪽
63 용을 끌어내리다(6) +3 24.04.18 1,968 30 13쪽
62 용을 끌어내리다(5) +4 24.04.17 1,954 31 13쪽
61 용을 끌어내리다(4) +1 24.04.16 2,003 30 12쪽
60 용을 끌어내리다(3) +1 24.04.15 1,961 32 12쪽
59 용을 끌어내리다(2) +1 24.04.12 2,120 33 13쪽
58 용을 끌어내리다(1) +1 24.04.11 2,175 36 13쪽
57 지부 소탕(3) +2 24.04.10 2,153 32 13쪽
56 지부 소탕(2) +2 24.04.09 2,111 35 13쪽
55 지부 소탕(1) +3 24.04.08 2,206 34 12쪽
54 형산파(3) +1 24.04.05 2,183 34 12쪽
53 형산파(2) +1 24.04.04 2,101 33 14쪽
52 형산파(1) +3 24.04.03 2,257 32 13쪽
51 태동(3) +1 24.04.02 2,277 32 13쪽
50 태동(2) +2 24.04.01 2,268 32 13쪽
49 태동(1) +2 24.03.29 2,394 37 14쪽
48 무녀(2) +1 24.03.28 2,373 31 13쪽
47 무녀(1) +3 24.03.27 2,522 38 14쪽
46 귀환 +3 24.03.26 2,567 36 13쪽
45 정리 +1 24.03.25 2,530 37 13쪽
44 쥐새끼 소탕(3) +1 24.03.22 2,638 36 14쪽
43 쥐새끼 소탕(2) +1 24.03.21 2,559 33 14쪽
42 쥐새끼 소탕(1) +1 24.03.20 2,688 39 14쪽
41 청룡상단(3) +1 24.03.19 2,696 36 14쪽
40 청룡상단(2) +3 24.03.18 2,678 37 15쪽
39 청룡상단(1) +1 24.03.15 2,825 31 14쪽
38 정서시(2) +1 24.03.14 2,757 3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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