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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향님의 서재입니다.

마계왕은 참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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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향
작품등록일 :
2022.08.04 02:01
최근연재일 :
2022.08.26 12:20
연재수 :
2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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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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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0
글자수 :
123,383

작성
22.08.05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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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글자
12쪽

배신당하다

DUMMY

절망은 끝나지 않는다. 목숨이 경각에 달하는 감각은 피부가 떨릴 정도로 생생했다.


우주 최강의 괴물 ‘자르곤-아우르’는 배신당했다.


그것도 자신이 키우던 가축에게 배신당한 거다. 주위에서 자르곤-아우르를 비웃는 소리가 들렸다.


비웃는 소리가 결국 멀어지고, 몸이 불안정한 차원문을 통과했다.


빛을 잡아먹는 고밀도의 수축판, 물리력만 봐도 압도적인데, 한발 더 나아가 시간 역행까지 발생했다. 차원문에 갇혀 잔혹하게 학대당했다.


차례로 10분 후, 10초 전, 10년 후, 1000년 전.


규칙성 없는 시간선이 거름망처럼 자르곤의 의식을 두들겼다. 정신이 파편처럼 쪼개지는 걸 느꼈다.


한번 시작된 분열은 멈출 생각을 안 했고, 떨어져 나간 정신도 새롭게 갈라졌다. 의식이 암세포처럼 퍼져나간 것이다.


고등한 존재의 분열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낳는다.


이성 잃은 괴물로 허무하게 죽어버리기 직전, 육신을 제물로 바쳐서 이성을 되찾았다.


절대자로 군림한 소중한 몸이 찢어졌지만, 무력하게 비명을 지르는 대신, 권능을 아낌없이 방출하는 걸 선택했다.


줄기처럼 뻗어간 권능은, 기어코 환경을 조금씩 바꾸기 시작했다.


안타깝게도 금방 한계에 직면했다. 거대한 몸이 허물처럼 바스러지더니 몸 크기가 축구공보다 작아졌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마지막 남은 정신마저 소멸하려는데, 그토록 원하던 차원문 밖을 빠져나왔다.


고통에서 해방됐지만, 자르곤-아우르는 기뻐하지 않았다. 얼마 안 가 죽을 몸이란 걸 알았기 때문이다.


고생 끝에 얻은 보상은, 하루살이 보다 짧은 생이 다였다. 지독한 허무감이 끊어질 듯한 의식을 괴롭혔다.


현대식으로 개량된 기와집 지붕이 보인다. 자르곤-아우르는 중력을 받은 몸으로 기와집 지붕을 산산이 조각냈다.


지붕이 뚫리고, 다 타버린 잿더미 몸이 내부로 들어갔다.


- 욱, 뭐, 뭐야?!


내부에 있는 인간이 갑작스러운 재난에 비명을 질렀다. 유약하고 겁이 많아 보이는 목소리였다.


‘생명체다!’


삶을 포기했던 괴물이 마지막 기회에 정신을 바로잡았다.


- ···테러? 계승 실패? ···아니면 야생 동물?


인간은 방패막이로 사용할 의자를 들고, 조심스럽게 자르곤-아우르에게 다가왔다.


- 다음 주가 계승식인데..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생기는 거야..


유약한 동물이 중얼거린다. 자르곤-아우르는 도약할 힘을 비축했다. 기회는 한 번뿐, 다음 기회는 없었다.


‘조금만 더..’


인간이 식탁을 손으로 짚고 얼굴을 불쑥 내밀었다.


자르곤-아우르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마지막 남은 힘으로 대포처럼 도약했다. 인간이 반응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인간의 입구멍을 강제로 파고들었다.


- 읍, 읍!!


‘육신을 빼앗는다.’


자르곤은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연약한 살을 찢고 길을 만든다. 미물의 애처로운 비명 따위는 가볍게 무시했다.


꺼져가는 의식을 뒤로한 채, 몸을 완전히 장악했다. 인간의 정신으로는 자르곤-아우르를 잠시도 이겨내지 못했다.


인간은 죽으면 가죽을 남긴다.


“후우..”


열을 식히려고 내뱉은 가벼운 숨.


자르곤-아우르가 원하자, 미물이 대신해서 움직였다. 죽어가는 와중에 시도했음에도 완벽에 가까운 강탈이었다.


운명은 죽음을 회피했다.


자르곤-아우르는 미물의 몸을 세심하게 관찰했다.


머리통에 징그러운 구슬이 두 개나 박혀 있고, 고름 같은 살구색 피부에,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하게 박힌 털가죽까지.


‘징그럽게 짝이 없는 유기 생명체다.’


심히 불만족스럽지만, 다른 생명체로 갈아탈 만한 힘은 남아있지 않았다.



- 아즈크레샤가 역모를 저지른 날, 마계의 왕은 인간의 껍데기를 뒤집어썼다.





* * *





“···콜록콜록!”


몸을 급하게 강탈한 탓인지, 뇌수액과 핏물이 섞인 액체가 강제로 뱉어졌다. 끈적하게 떨어진 액상은 바닥을 더럽히며 빈대떡처럼 퍼질러졌다.


“이렇게 나약한 생명체라니..”


자르곤이 차지한 몸은, 같은 종족인 인간의 평균보다 뒤떨어지는 몸이었다.


낯선 신체에 낯선 환경이었지만, 자르곤-아우르는 방심하지 않았다. 행성에서 느껴지는 에너지만 봐도, 이곳이 평범한 행성이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애초에 자르곤은 이곳이 어떤 행성인지 알고 있었다. 역사상 최초로 발견된 전투 종족의 행성이었다.


‘전투 종족’은 강력한 에너지 생명체다. 100년에 한 번 발견될 정도로 희귀한 존재인데, 어째서인지 이곳 행성은 전투종족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우주 역사상 이런 행성은 없었다.’


자르곤은 강함과 희열을 추구한다. 그에게 있어서 전투 종족은 흥미로운 존재였다.


배신자에 대한 끓어오르는 분노는 잠시 외면했다. 안타깝게도 현재의 자르곤은 감히 복수를 꿈꿀 수 없을 정도로 격이 하락한 상태였다.


‘피의 복수를 이룰 거다. 그때까지 마계에서 얌전히 기다려라, 아즈크레샤.’


아즈크레샤는 내가 살아있을 거라고 상상하지 못할 거다. 방심은 곧 죽음이다.


‘우선, 이곳을 파악하는 게 먼저겠지.’


자르곤은 약화된 권능으로 인간의 기억을 강제로 끄집어냈다.


강한 두통과 함께 얼굴이 일그러졌다. 두뇌를 온전한 소유물로 만들 수 없었다. 미물의 뇌는, 짐승치고는 쓸데없이 복잡한 구조로 되어 있었다.


힘을 잃지 않았다면 이런 굴욕은 겪지 않았을 거다. 자르곤의 권능이 바람에 맞은 촛불처럼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침착하게 행동하자.’


권능을 쪼개고 쪼갠 끝에, 인간의 뇌를 거미줄처럼 섬세하게 구분할 수 있었다. 침착한 행동 덕분인지 드디어 기억의 일부를 읽어낼 수 있었다.


지구의 다양한 정보를 읽어내렸다.


‘마계와 같은 압도적인 다양함이라니!’


지극히 한정된 기억이지만, 자르곤은 흥미를 감출 수 없었다. 지구는 자르곤 조차 처음 보는 에너지가 많았다.


호기심으로 머리가 뜨거워졌다.


차츰차츰 인간과 감각을 동기화했다. 권능이 약해진 이상, 현지 동물의 감각기관은 유용하게 사용될 거다.


맹인처럼 멍했던 눈동자에 생기가 돌고, 달팽이관에 음압이 들어갔다. 약간의 고통과 귀울림이 일어났다.


동기화를 마치자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기계식 화면에 송출되는 앵커의 목소리였다.



- 적령기에 결혼하지 않거나 늦추는 추세 '심각' 수준 - 더 강해져서 좋은 배우자를 얻겠다.


- 구진(句陳) 방위 출신 훈련생, 동기를 격살하다. 담당자는 폐관 수련에 들어가 있어 책임 의식 논란.



자르곤은 뉴스의 반도 이해하지 못했다. 일부 단어만 해석할 수 있을 뿐, 정보 습득은 불가능했다.


TV 화면은 주파수에 문제가 생긴 건지 주기적으로 지지직거렸다. 자르곤이 낙하하면서 생긴 충격이 TV를 망가트린 거다.


눈꺼풀을 열었다. 익숙하지 않은 구조의 눈이지만, 사용법을 따로 배울 필요는 없었다. 그저 원하는 곳을 응시하면 끝났다.


‘빛에 의한 시각 정보라.’


주변을 보면, 이곳은 나름대로 문명화를 이룬 행성으로 보였다. 그리고, 문명화를 이룬 행성은 정보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권능이 바닥나는 한이 있어도 뇌를 장악하는 게 먼저다.’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고, 지체없이 행동에 나섰다.


티끌만큼 남은 권능을 아낌없이 사용했다. 뇌에서 세포를 잇는 강줄기를 발견했다. 그 강줄기를 야만적으로 덮쳤다.


괴물이 인간의 기억을 훔치려고 한다. 강제로 진행한 탓인지 기억의 60%가 손상됐다. 힘에 여유가 없어서 발생한 어쩔 수 없는 손실이다.


정보가 손실됐지만, 괴물은 얻어낸 정보에 만족했다. 유용한 정보를 구했기 때문이다.


- 자르곤이 차지한 미물은 귀족 가문이다. 대주술사의 성을 이은 가문으로, 국립 교과서에도 한 줄 정도 등장한다.


‘주술사가 된다면, 권능을 사용해도 정체를 의심받지 않겠군.’


마지막으로, 자르곤은 인간 본체의 이름을 알게 됐다.


“성령.. 기분 나쁜 이름이군.”


성령이 자신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 * *





성(成)씨 가문의 집사 이찬은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남자다. 불량한 인상이지만, 옷차림은 말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이찬은 모임에 지각한 도련님을 데려가기 위해서, 그가 기거한 전셋집 초인종을 눌렀다.


“안에 계신 거 압니다. 좋게 말할 때 빨리 나오시죠. 가주님께서 화가 많이 나셨습니다.”


가주는 인정머리가 없고 성질이 더러운 것으로 유명했다. 무리가 자연히 따르게 만드는 리더가 아닌, 강압적인 방식으로 권위를 지키는 권위주의자였다.


성령은 대답이 없었다.


“······하, 시발.”


집사가 조용한 목소리로 욕설을 뱉었다. 태도가 믿을 수 없을 만큼 무례했다.


‘계승품만 찾으면, 이 벌레 같은 몰락 가문은 상대하지 않아도 되는데..’


그는 감정이 실린 주먹으로 현관문을 두드렸다.


“빨리 나오셔야···”

벌컥!

“···아악!”


예고도 없이 문이 열렸다. 밖으로 나온 성령이 이찬을 생경하게 쳐다봤다.


심연을 닮은 빛깔 없는 눈빛이었다. 자르곤과 융합된 성령의 눈이었다.


이찬은 성령의 눈동자를 보고 기묘한 감각에 휩싸였다. 그는 고통도 잊었는지 본능적으로 눈을 피했다.


성령이 이찬에게 물었다.


“너는 누구냐?”

“···성령 도련님?”


분위기가 평소와 달랐다. 이찬의 두뇌 회전이 빨라졌다.


‘내가 욕한 걸 들은 건가?’


들었다면 도련님의 반응을 이해할 수 있었다.


‘가족한테도 무시당하는 주제에.’


이찬은 기가 찼지만, 어린 시절부터 단련된 사회생활 짬밥으로 눈치껏 행동했다.


“저는 성씨가문의 비서이자, 도련님을 모시러 온 충실한 종입니다.”


허리를 45도로 숙였다. 극진한 예의를 차려서 앙심을 품지 못하게 하는 동시에, 소심한 도련님에게 부담감을 주려는 속셈이었다.


“마침 잘 됐군.”


성령은 고개 숙인 미물의 머리채를 잡았다.


“ ? ”

“어디로 가면 전쟁터가 나오는지 안내해라.”


이찬은 머리가 바닥에 끌리는 걸 느꼈다. 성령의 원초적이고 우악스러운 힘에 반항할 틈도 없이 끌려간 거다.


“전투 종족의 전쟁은 별미지.”

“이이.. 뭔 개짓거리야!”

“음?”


성령이 악을 쓰는 미물을 무감각하게 쳐다봤다. 그는 잡기 좋게 뻗은 털가죽을 잡았을 뿐이다.


‘굽히는 모습을 보고 약자라고 생각했는데, 단순한 피식자가 아니었나?’


가지고 있는 에너지가 별거 없어서 무시했는데, 성격이 마계의 들개처럼 사나웠다.


손을 놓자, 이찬이 바닥에 쓰러졌다. 그는 화가 난 표정을 추스르고, 딱딱한 목소리로 협박했다.


“가주님이 기다리십니다. 따라오지 않으면 전셋집 지원을 끊을지도 모릅니다.”


그로서는 최선의 대응이었다. 감정적으로 행동하기에는 성씨 가문에 투자한 것이 너무 많았다.


성령은 이찬에게 경멸이 깃든 걸 알아봤다. 경멸의 대상이 자신이라는 것 역시 어렵지 않게 파악했다.


성령은 이찬의 경멸이 기꺼웠다. 그동안 자신을 두려워하는 모습만 질리도록 봐왔다.


앙칼진 상대일수록 능욕했을 때 오는 희열감은 비대해진다. 성령은 이찬을 따라가기로 결심했다.


“어서 가시죠.”

“그러지.”

“ ··· ”


이찬은 성령의 말투가 거슬렸다.


‘이곳 행성은 힘을 우선시하는 사회 분위기가 깔려있지. 본체의 기억이 맞다면, 귀족은 전투종족이 확실하다. ···아마도.’


성령은 자신의 나약함을 보고 섣불리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


“가문에 포함된 구성원은 총 몇 명이지?”

“성령님까지 5명입니다.”

“수가 적군.”

“···?”


성령은 가족에 대한 기억이 없었다.


사용하는 언어는 어렵지 않게 복구할 수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가족에 대한 기억은 대부분 복구하지 못했다.


마치, 몸의 원래 주인이 가족을 싫어하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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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야망과 세력 +3 22.08.22 575 25 11쪽
19 자연의 계승자 22.08.21 579 22 10쪽
18 성무르의 진정한 힘 +3 22.08.20 628 25 11쪽
17 집단을 자살시키는 자 +1 22.08.19 636 23 12쪽
16 계승자 범죄자 +1 22.08.18 685 22 12쪽
15 왕의 무게감 22.08.17 724 31 12쪽
14 아시아의 새로운 귀족 +2 22.08.16 723 26 11쪽
13 가문의 진실 22.08.15 733 31 11쪽
12 성령의 약혼녀 +1 22.08.14 760 27 10쪽
11 빗살 판을 계승하다 +1 22.08.13 797 30 11쪽
10 특별 자치 사무소 22.08.12 786 34 10쪽
9 가문으로 귀환하다 22.08.11 816 37 12쪽
8 계승자 성령 +1 22.08.10 836 41 11쪽
7 독보적인 존재 22.08.10 878 35 13쪽
6 지랄맞은 시험 +1 22.08.09 959 28 10쪽
5 가장 특별한 존재 +3 22.08.08 986 36 13쪽
4 계승식의 실체 22.08.07 1,030 33 12쪽
3 아시아 계승식 22.08.06 1,089 35 14쪽
2 과거의 영광 +2 22.08.05 1,303 33 11쪽
» 배신당하다 +7 22.08.05 1,998 4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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