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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투수는 언제나 성장기.

웹소설 > 일반연재 > 스포츠, 현대판타지

조자남
작품등록일 :
2024.02.28 15:12
최근연재일 :
2024.06.28 21:10
연재수 :
13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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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1
글자수 :
785,640

작성
24.03.03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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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가을은 춥기만 하진 않다 근데 춥긴 하다.

DUMMY

성태 주위로 학생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몇 달 전 용문중하고의 연습경기 이후 성태의 위상은 많이 달라졌지만 그래도 주전에는 간당간당했다는 게 주변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타격에선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더라도 압도적이지 않았고 수비도 잘했으나 역시 이 또한 압도적이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지금같이 투수 공백기이고 성태가 투수로서 능력을 보여준다면 또 다른 별개의 이야기였기에 학생들은 궁금증을 풀기 위해 모였다.


“오 성태 뭐야? 이젠 투수까지 하는 거야?”

“몰라? 그냥 던지라고 해서 던졌지.”

“근데 너 공 개느리잖아.”


같은 초등학교 출신이었기에 서로의 장단점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성태는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왁자지껄 떠드는 학생들에게 상현 선배가 소리를 외치자 개미같이 흩어지는 학생들.


“야! 마무리 운동 안 해?”

“죄송합니다!”


상현은 성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처음부터 싫어했던 건 아니었다.

맨 처음 성태를 봤을 땐 그냥 존재감 없는 1학년일 뿐이었는데 연습경기 이후 주전 포수인 자신을 제치고 정일과 배터리를 이루었다.

그게 한두 번이면 상관없었지만, 대회에서도 정일이가 던질 때면 성태가 포수를 맡았고 자신의 위치가 위태로워지자 성태에게 위기감을 느꼈다.

이번 일도 코치 앞에서 자신에게 쪽을 주려고 일부러 말도 안 되는 공을 던졌다고 생각했다.


“야! 김성태 너 더 빨리 안 뛰어?”

“죄송합니다!”


이미 선두로 달리고 있던 성태였지만 괜히 시비를 거는 선배에게 정일이가 다가왔다.


“선배님. 고생하셨습니다.”“어 이제 들어가려고?”

“네 아버지가 일찍 들어오라 해서요.”

“그래? 코치님한테 인사드리고 들어가.”


1학년 때부터 부동의 에이스인 박정일.

심지어 감독조차 그에게는 함부로 할 수 없었기에 마무리 운동과 정리는 뒷전이고 선배들 또한 그를 터치하지 않았다.

상현은 성태 못지 한 게 정일이가 맘에 들지 않았지만 내색하진 않았다, 그는 박영호 선수의 아들이었으니까.

앞으로 걸어가던 정일이 몸을 돌리자 욕을 하던 상현은 깜짝 놀랐다.


“싸가지, 어? 왜?”

“선배님 근데 성태 공 받아보니 좀 어떻습니까? 괜찮습니까?”

“봐서 알잖아. 느린 똥볼이야. 구속이 나오지 않으니까 제멋대로 공이 떨어지지.”

“떨어져요?”


정일이는 오히려 공이 떨어지기보단 떠올랐다가 더 맞는 표현이라고 생각했지만,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아리랑 볼이라고.”

“아. 네. 투수로서는 별로 매력이 없단 뜻이죠?”

“미쳤냐? 저런 애 투수로 올리면 타자들이 대체 몇 점을 내줘야 이길 수 있다는 거야? X신이 아니면 쟤를 투수로 쓰겠어.”

“네에. 알겠습니다. 선배님.”


상현은 은근히 자신을 무시하는듯한 정일이의 뒷모습을 노려보았다.


“새끼 싸가지가 없어.”


아무리 박영호 선수의 아들이라곤 해도 기분이 나쁜 건 나쁜 거였다.

엄연히 주전 포수인 자신을 두고도 성태에게 공을 잡아주라는 정일의 모습은 좋아 보일 수 없었다.

물론 몇 번 실수해서 공을 제대로 받지 못했지만 스스로 생각하긴 그런 건 사소한 실수라고 치부해버렸다.

기분이 나빠진 상현이 마무리 운동을 하는 후배들에게 괜한 시비를 걸었다.


“빨리빨리 하라고! 집에 안 갈 거야? 야! 뒤질래?”



***



쉬이익!!

빠악!!!


정일이가 한곳에 마련된 간이 마운드에서 공을 던지고 있다.

집 뒤편 넓은 마당에는 각종 야구 훈련 도구들이 즐비했고 정일이는 단정하게 정리된 프로 규격 마운드에서 뭐가 불만인지 인상을 쓴 채 자신의 손가락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공을 받아든 남자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무미건조하게 말을 걸었다.


“공이 영 시원찮은데? 어디 아파?”

“아니.”


정일이에게 다가오는 사람은 현역 프로선수 이젠 노장이라 불리는 박영호였다.

그는 나이를 먹는 만큼 프로에서 살아남기 위해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아 군살 없는 탄탄한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


“근데 왜 이래? 정신 안 차릴래?”


최근 들어 성장이 더뎌지는 아들을 보자 그는 괜히 짜증이 치밀었다.

자신이 못다 한 꿈을 아들이 이뤄주길 기대했던 만큼 돌아오는 배신감.

아들을 위해 모든 걸 다 해주었다.

돈이 있어도 받기 힘든 가장 잘나가는 전 프로선수의 개인지도와 자신이 쉴 때마다 아들의 훈련을 직접 도왔기에 그는 누구보다 아들의 상태를 잘 알고 있었다.

오늘도 마찬가지 자신의 훈련이 끝나자 서울에서 집까지 차를 끌고 도착해 아들의 훈련을 도왔건만 아들은 훈련에 집중을 못 하고 있었다.

아무런 대꾸가 없는 아들을 향해 자신의 진심을 말하는 박영호.


“지금 너 정도 피지컬이면 140KM는 던져야지 왜 구속이 자꾸 떨어지는 거야.”

“...”

“쯧 여기선 안 되겠다 너 서울로 이사할 준비해.”


고등학교 선배의 부탁으로 아들을 주원초등학교로 입학시켰다.

그리고 중학교는 서울에 있는 명문 중학교로 보내려고 했을 때 이곳에 남겠다고 한 건 아들의 선택이었다.

아들의 부탁으로 수락했지만, 결과가 나오지 않으니 박영호는 자신의 판단이 틀렸다고 생각했다.

가만히 듣고만 있던 정일이 입을 열었다.


“나 여기서 계속 야구 할 거야.”

“뭐? 지금 내 말을 뭐로 들은 거야!”

“구속은 올라갈 거고 나 여기서 계속 야구 할거라고.”

“뭐 인마?”


평소 토를 달지 않던 아들의 반항적인 모습에 박영호는 인상을 쓰곤 아들을 노려봤다.

하지만 정일 또한 지지한고 글러브를 까닥거렸다.


“다시 앉아봐. 제대로 보여줄 테니까. 내가 던질 수 있는 전력으로.”


미세한 팔꿈치의 통증.

그로 인해 전력투구하지 않던 정일.

하지만 그 누구에게도 팔꿈치 통증에 대해서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지금 에이스 자리에서 내려오면 누군가가 자신의 자리를 대체할 거라는 공포심.

그리고 그 누군가가 성태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현재의 박정일을 움직이는 원동력이었다.

다시 앉아 공을 받을 준비를 하는 아버지를 향해 그는 자신이 던질 수 있는 최선의 공을 던졌다.

그리고.

쉬이익!!!

빠악!!


공을 받아낸 박영호는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



코치가 성태의 투구를 점검하고 며칠 후 감독까지 나서서 성태의 투구를 확인했다.

결과는 합격점.

최고구속이 120km밖에 되지 않았지만, 특유의 테일링으로 인해 3학년 타자들이 공을 때려내도 플라이나 땅볼이 되기 십상이었다.

함 감독은 그 공의 진가를 판단하지는 못했지만 중간 계투나 마무리 정도면 쓸만하겠다며 기분이 좋았다.


“오 쓸만한데?”


성태 또한 자신이 인정받았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지만 그런 좋은 기분은 오래가지 못했다.

박정일은 마운드에서 내려오는 일이 거의 없었고 박정일이 투수로 던질 땐 성태는 언제나 포수로만 출장했다.

문제는 성태의 포수 능력치가 올라가는 만큼 주전 포수였던 신상현의 출전시간이 줄어들었고 이는 성태를 괴롭히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겉으로는 건들지 않았다.

그저 그 누구도 성태에게 말을 걸거나 훈련 시간만 되면 잡무를 시켰을 뿐.


“야 김성태 외야 공 좀 주워와.”

“코치님이 연습하라고 하셨는데요.”

“그래서, 안 줍겠다고?”


코치는 멀었고 선배는 가까웠다.

결국, 1학년들이 해야 할 일을 도맡아 하기 시작한 성태.

훈련량이 줄어들자 실책도 늘어나기 시작했고 그런 악순환은 반복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정일이가 공을 던질 때는 무조건 성태가 포수를 봐야 했기에 경기출장은 꾸준히 이루어졌다.


주원중학교는 8월 중순에 시작되는 대통령배 중학 야구 선수권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연습에 매진했다.

하지만 7월 초부터 시작된 늦은 장마가 주원 군을 덮쳤고 대회까지 약 한 달 남은 상태에서 선수들은 훈련을 이어나갈 수 없었다.


“오늘 비가 많이 오니까 오후 연습 없대. 다들 집으로 가래.”


교실에서 수업이 끝나기만을 기다린 정일과 성태는 훈련이 취소됐단 소식에 가방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는 점점 더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고 정일이가 우산을 펴며 교실 밖으로 먼저 발을 내디뎠다.


“넌 안가?”

“나 우산을 안 가지고 왔어.”


정일이는 피식 웃으며 성태를 바라봤다.


“장마철인데 우산을 안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어딨어?”

“그러게. 습관이 되었나 봐.”

“습관?”

“응 습관.”

“별 습관이 다 있다 나간다.”

“조심히 가, 내일 보자.”


정일이 우산을 쓰고 교문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고 성태는 가방을 머리에 이고 교문으로 뛰어갔다.


“푸하하.”


작은 가방으로 대체 무슨 비를 막는단 말인가.

정일이 온몸이 젖어가는 성태를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누군가 성태의 머리 위로 우산을 씌워주는 모습을 보곤 올라갔던 입꼬리가 천천히 내려왔다.


“야이 멍충아 너 또 우산 안 챙겨갔더라? 내가 여기까지 와야 해?”

“아 미안 가방에 넣은 줄 알았는데 까먹었어.”

“옛날엔 우산을 잃어버리더니 이젠 우산도 안 챙겨가냐? 이 정도면 병 아니야?”


우산을 가져온 건 미래였다.

키가 큰 그녀는 팔을 자연스레 성태의 어깨에 얹고선 우산을 같이 쓰고 걸어갔다.

그 모습을 보던 정일이는 발을 빠르게 움직여 그들에게 다가갔다.


“미래 안녕.”

“어 안녕. 근데 이젠 누나라고 부르지?”


성태의 어깨동무를 한 채 고개만 살짝 돌린 미래의 인사.

정일이는 어째선지 가슴속에 끓어오르는 알 수 없는 기분에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리고 그 감정이 질투라는 것을 깨닫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걸음을 재촉한 정일이 우산을 함께 쓴 두 사람 앞에 멈춰섰다.


“야 공 좀 받아라.”


성태는 우산 밖으로 손을 뻗어 내리는 비를 맞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비 오는데?”

“비오니까.”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비 오는데 비 맞으면서 야구를 하겠다고?”


미래는 질린다는 듯 야구 바보 둘을 보며 화를 냈지만, 성태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리며 야구부실로 향했다.


“어쩔 수 없잖아, 정일이의 공은 내가 받아야지 배터린데.”

“배터리 같은 소리 하네! 또 비 맞고 감기 걸리려고? 야 멍청아!”


힘들게 이곳까지 데리러 왔건만 공 좀 받아달라는 소리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어가는 성태를 보며 미래는 질렸다는 듯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내리막길을 내려가던 미래는 우산을 흔들며 허공에 소리를 지르고 입술을 삐쭉 내밀며 훈련장으로 향했다.

정일은 미래가 따라오는 모습을 흘깃 쳐다보곤 성태의 어깨에 팔을 얹었다.


“둘이서는 오랜만이네?”

“그러게.”


성태는 오랜만에 정일이와 둘이서만 연습을 한다는 게 기분이 좋았다.

상현 선배가 훈련 때마다 계속 잡일만 시켰기에 포수 연습할 시간도 필요했고 왠지 서먹해진 정일이와 이야기를 나눌 좋은 시간이라고도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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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1) +1 24.03.04 883 15 11쪽
» 가을은 춥기만 하진 않다 근데 춥긴 하다. +1 24.03.03 906 17 11쪽
5 가을은 춥기만 하진 않다. (5) +1 24.03.02 930 15 13쪽
4 가을은 춥기만 하진 않다. (4) +1 24.03.01 989 17 13쪽
3 가을은 춥기만 하진 않다. (3)+ +1 24.03.01 1,054 15 13쪽
2 가을은 춥기만 하진 않다. (2)+ +1 24.02.29 1,275 1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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