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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코코 님의 서재입니다.

온새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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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코코
작품등록일 :
2018.06.24 23:48
최근연재일 :
2018.07.22 00:54
연재수 :
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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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39

작성
18.07.22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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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쪽

30,, 슬픔은 파도를 지나

\여배우/




DUMMY

침대 맡에 앉아 뜬눈으로 밤을 지샌 가온은 한결의 인기척이 없는 틈을 타 욕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간밤의 기억을 지우려는 듯 쏟아지는 샤워기의 물을 맞으며 잔잔히 떨고 있었다.

한결은 지난 밤 가온과의 키스로 몸이 달아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아무런 다툼도 없이 가온의 저항과 거부도 없이 예전처럼 오롯이 자신만의 가온과 심원하고 뜨거운 키스를 나누었었다. 얼마만의 쾌거인가!

하지만 그대로 잠이 들 수가 없었다. 가온의 가쁜 숨소리와 자신의 입술 앞에서 속삭이던 가온의 뜨거운 목소리가 귀에서 자꾸 맴돌았다. 극도로 불안해진 한결의 인내는 결국 다른 여자의 집으로 발걸음을 옮겨 놓았다. 오랜 유학생활의 위로가 되어 주었던 환각제와 주사도 그녀에게서 처음 배운 것이었다. 며칠 전 가온의 소식을 듣던 날 같이 있던 금발의 그녀가 바로 그 여자였다.

"제시? 제시카?"

한결은 그녀를 부르며 아주 자연스럽게 그녀의 집으로 들어갔다. 그 곳엔 이미 몇몇의 사내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고 한결은 늘상 겪던 일인 거처럼 아무렇지 않게 그들 곁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주사와 환락으로 이끄는 약기운이 남아 한결은 늦은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나체의 금발녀를 떼어놓지 못하고 그녀의 몸속에 자신을 담고 있었다. 한참 동안을 엉켜 뒹굴던 한결은 그녀가 키스를 하려는 찰나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돌연 가온의 부드러운 키스를 받고 싶어졌다. 으례 그러한 듯 한결은 특별한 인사도 없이 그녀의 집을 벗어나 가온에게로 자신의 집으로 달려 들어갔다.

"가온아? 홍 가온?"

씻고 나오던 가온은 그제서야 한결이 집에 없었음을 알아차렸다. 한결은 온집안에 가온의 향기로 가득 채워져 있다는 사실에 격앙되어 가온을 힘껏 끌어 안았다.

"니가 가버린 줄 알았어! 키스해 줘!"

가온을 품속에서 떼어놓으며 한결은 그녀의 입술을 찾았다. 한결은 가온의 입술을 집어삼킬 듯 밀고 들어갔다. 가온은 아무런 감정없이 그를 받아들이고 있었지만 왠지 눈물이 났다.

밤새 어디서 헤맸을 한결일까? 자제력을 잃어가는 불안정한 마음을 어디에다 기대고 온 것일까? 한 때는 좋아하고 존경했던 남자였다. 똑똑하고 영리한 사람이었다. 음악 뿐만 아니라 미술에도 조예가 깊어 작품전이고 전시회를 데리고 다니며 설명을 해주곤 했었다. 어쩌면 음악보다는 미술이 한결 자신과 더 잘 어울렸을 거라고 심심찮게 떠들기도 했었다. 자신의 별명을 칸딘스키로 정한 것도 그 때문이라고 했었다. 예전의 한결은 그렇듯 좋은 사람이었다. 적어도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런데 변해 버렸다. 가온은 자신 때문은 아니기를 바랐지만 자신도 어느 정도는 그의 변화에 기여는 한 듯 했다. 나쁜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 악의적인 변화. 한결의 눈가에는 시커먼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그녀의 두 뺨을 움켜잡고 있는 손들도 그것을 감지하고 있는 것처럼 무의식적으로 떨고 있었다. 그리고 주삿바늘 자욱들과 멍투성이 팔들. 가온은 그를 향한 동정과 연민에 목이 메어 왔다.

한결은 가온의 눈물을 발견하고 그녀에게서 떨어졌다.

"무슨 일이야? 내 키스가 마음에 들지 않았어?"

가온은 고개를 내저으며 그의 뺨을 쓰다듬었다.

"그렇지 않아요. 다만 ......."

"다만 뭐야? 빨리 말해!"

"다만 ... 배가 고파요. 뭐라도 좀 먹어야겠어요."

가온은 하려던 말은 그대로 묻어두고 한결에게서 빠져나오며 눈물을 훔쳐냈다. 그리고 차분한 표정으로 온화한 미소를 띠며 부엌으로 향했다.

"뭐라도 해먹어야 할 텐데 ... 먹을 건 좀 있을까요? 장을 봐야 하는 거예요?"

"으응 ... 글쎄 ......."

한결은 얼른 쫓아가 가온의 손을 잡았다.

"그냥 ... 오늘은 나가서 먹자. 여기 맛있는 프랑스 식당이 있어. 유명한 집이야. 팬케잌도 맛있고 토스트랑 샌드위치 그리고 라떼도 끝내줘. 가자, 응?"

"그럼 오는 길에 마켓에 들려요. 매일매일 나가서 먹으면 돈 아까우니까."

"......."

한결은 오랜만에 가식없이 웃음을 지었다. 서로의 마음을 나누고 사랑했었던 예전의 가온이처럼 말하고 있었다. 경제관념 없는 한결을 탓하며 개념 있게 쓴소리로 꾸짖던 자신의 작업실 알바생 가온이로 돌아온 건 같았다.

"이제야 나의 가온이 같다. 잔소리꾼 살림꾼 나의 가온이."

한결은 가온이를 다시 꼬옥 안았다. 기분좋은 전율과 설렘이 가슴을 포화 상태로 만들고 있었다.

세훈은 가온의 외박에 불안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호텔 근처 유니언 스퀘어에서 조금 떨어진 경찰서에다 신고를 하고 또 한참을 달려서 주한 영사관에도 들러 사정 얘기를 하였다. 일단 거주자라 경찰에 신고했으면 됐다고 자신들의 업무 조항과는 무관하다며 냉정하게 잘라 말하는 한 직원에게 화풀이도 했다.

"....... 같은 한국 사람이 실종 됐다구요! 국민들의 세금으로 버젓이 해외까지 나와 월급 따박따박 받아 챙겨가며 일 같지도 않은 일이나 하고 앉아 있으면서 이런 민원 하나 신경 못써줍니까?"

"죄송하지만 저희 쪽에서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없는 것 같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 죄송하단 말만 벌써 몇 번짼 줄 아십니까? 사죄할 시간에 조금이라도 좀 알아봐 달란 말입니다!"

세훈은 그렇게 억지를 부리고 내쫓기듯 영사관을 나왔다. 세훈은 가온의 집으로 걸음을 내디디며 심사숙고 끝에 아버지 주 명철에게 전화를 넣었다.

"웬일이냐, 니가?"

명철은 퉁명스럽게 응답했지만 내평은 아들의 전화가 반가웠다.

"다시는 애비 얼굴 안보고 살 것처럼 엄포를 놓고 나가더니 ... 뭐가 아쉬웠던 게냐? 용건이 뭐냐?"

"....... 아닙니다."

세훈은 힘들게 올린 전화를 그냥 끊어버렸다. 힘들 때마다 그의 원조를 받다가는 그게 또 약점으로 남아 자신과 가온이 힘들어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어쩌면 가온이 이미 집으로 돌아와 있을 수도 있는 일이고. 단지 자신이 이렇게 갈팡질팡 하는 것은 괜한 노파심일 수도 있을 테니까.

세훈이 가온의 아파트 근처에 도달했을 때 칭밍의 모습이 아파트 안에서 나왔다. 그녀의 얼굴 빛을 보아 하니 가온은 아직 아무런 소식도 없고 나타나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세훈? 왔어요?"

칭밍은 세훈을 알아보고 그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녀의 얼굴에도 수심이 가득 했다.

"전화도 그대로 두고 나갔나 봐요. 집 안에서 전화가 울려요. 집 앞에 나왔다가 홈리스한테 끌려간 걸 수도 있어요. 지난 번에도 한 번 홈리스한테 당할 뻔 했거든요."

"정말요? 그런 일도 있었어요?"

세훈은 심각한 표정으로 시선을 떨구었다. 그리고는 이내 그녀의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네. 경찰에 신고라도 해야겠어요."

"제가 하고 오는 길이에요. 근데 혹시 칭밍씨가 잘 모르는 친구가 또 있을까요?"

세훈은 혹시라도 다른 친구와 함께 있으면 하고 기대를 했다. 하지만 칭밍은 단박에 부정했다.

"있다면 내가 눈치 챘을 거예요. 거의 나와 시간을 보내다시피 했어요. 공부 뿐만 아니라 자전거 라이딩이라든지 차이나타운 구경이라든지 야경이라든지 ... 거의 모든 일을 나와 같이 했는 걸요. 자신이 평범하지 않기 때문인지 사진 한장 찍는 일도 조심스러워 했구요."

"사진요?"

"네. 지난 번 차이나 타운에 갔을 때 우리 삼촌이 하시는 중국집에서 사진을 찍었었는데 그게 SNS를 통해 인터넷에 떴나 보더라구요. 내가 미안해 하기는 했는데 걱정하는 눈치긴 했어요."

세훈은 윤아가 자신에게 보여준 사진이 그거였구나 생각하며 자신이 봤다면 다른 사람도 봤을 수도 있겠구나 겁이 덜컥 났다. 가령 윤 초롱이나 윤 한결, 두 사람이 안 봤을 거란 부정은 쉽게 할 수가 없었다. 한결은 칭밍을 얼른 보내놓고 김 기태 국장에게 전화를 넣었다.

"국장님?"

"으으응 ......."

김 국장은 전화를 받아놓고 다른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느라 정신이 없는 듯했다. 세훈은 소리를 내지르며 그를 자신과의 대화속으로 다시 불러 들였다.

"국장님? 뭐하세요?"

"으응... 세훈아?"

뭔지는 몰라도 국장 역시 다급하고 분주했다.

"무슨 일이야? 나중에 통화하면 안되겠니?"

"급한 일이라 ... 부탁드릴게 있어서요!"

"여기도 지금 난리야! 박 소영이 윤 현철 감독을 죽였어. 아니 지금 윤 현철은 뇌사 상태야. 의사 말로는 가망이 없대!"

"뭐라구요?"

가온의 집으로 올라가던 세훈은 계단에서 멈칫 했다.

"잉꼬 부부라더니 무슨 난리래요?"

"그러게 말이야. 윤 초롱이랑 박 소영도 지금 병원에 있는데 ...윤 현철한테 맞고 터지고 장난 아니었던 가봐! 정당방위라나 보더라구! 윤 한결인지 뭔지... 그 아들이 홍 가온을 그렇게 팼다더니 거짓말이 아니었던가봐! 부전자전이었어!"

"그 아들도 병원에 있어요?"

"아니! 그 아들은 지금 연락두절이라는데 ... 지인 말로는 박사 학윈지 뭔지 때문에 샌프란시스코에 가 있다나 봐! 꼴에 그 자식이 버클리 수재라잖아! 하긴 수재면 뭘해. 인격이 쓰레긴데 ... 안그래?"

"어디라구요? 샌프란시스코 ... 라구요?"

"확실한 건 아닌데 ... 그래, 그렇다나 봐!"

세훈은 전화기를 떨어뜨리며 망연자실 층계에 무너져 내렸다. 김 국장의 목소리가 세훈을 애타게 부르다가 사라지자 세훈은 가온의 실종이 단순한 실종이 아니라는 것을 그제서야 느꼈다. 아닐 수도 있겠지만 십중팔구는 가온의 행방불명의 배후에는 윤 한결이 있음이 틀림없었다. 세훈은 이제부터 정말 정신 바짝 차려야 할 때라고 스스로를 다그치고 있었다.

"이게 뭐야?"

수희도 뒤늦게서야 스포츠지 일면 기사에 놀라고 있었다. 그녀는 신문지속으로 들어갈 기세로 박 소영과 윤 현철의 기사에 몰입해 있었다.

"박 소영이 윤 현철을? 윤 현철이 딸과 아내를 상습적으로 폭행해 왔다고? 성적 모욕에 수치심까지 ... 자기 영화를 위해 아내와 딸을 성상납까지 시킨 몰지각하고 파렴치한 ... 이었다고? 점잖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 완전 개자식이었구나. 나는 운이 좋은 여자였어."

수희는 신문을 덮으며 베란다로 걸어나갔다. 그리고 아련하게 홍 경욱을 떠올렸다.

"당신이 나를 망친게 아니라 홍 경욱 당신이 나를 살린 거였어요. 겉만 번지르르한 쓰레기 괴물을 나한테서 떼어내준 당신이 새삼 고맙네요. 홍 경욱씨! 그리고 죄송했어요. 가진 것 없는 당신을 무시하고 저주했던 나를 용서해 줘요. 이제부터라도 가온이 내가 잘 돌볼게요. 당신이 살아 있을 때 이런 말을 전하지 못해 미안해요. 감사해요, 홍 경욱씨!"

수희는 내내 전화를 받지 않던 가온이 세훈을 만나 좋은 시간을 갖고 있다고 예상하며 전화기만 바라볼 뿐 전화는 걸지 않았다.

샌프란시스코 이스트 베이의 대표되는 버클리와 오클랜드 두 곳을 드라이브하면서도 가온은 어두운 표정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은 여느 평범한 연인들처럼 차를 타기도 하고 걷기도 하며 하루를 온통 두 사람한테만 몰두했다. 하지만 가온은 그냥 그런 척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친구 칭밍이 많이 걱정하고 있을 거란 생각은 미처 전화기를 챙기지 못한 자신을 책망하게 만들었다.

페리 선착장을 돌아 와이너리에 들러 약간의 포도주를 마신 탓인지 아니면 아예 잠을 못잔 탓인지 가온은 잠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결과 함께 있는 한 어쨌든 반듯한 정신을 챙기고 있어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가 언제 또 돌변할지 모르는 상황에서의 수면은 돌이킬 수 없는 사태로 이끌 수도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환각제나 주사를 사용하는 사람은 잘은 모르지만 일촉즉발의 시한폭탄과도 같으리라 짐작했다.

가온은 한결이 하루종일 늘어놓는 학교 자랑에 오늘 하루의 마지막 코스로 캠퍼스 방문을 감행했다. 늦은 오후의 캠퍼스는 젊음으로 들끓었다. 두 사람은 관광객들에게 열려 있는 버클리 캠퍼스에 있는 새더 타워(Sather Tower)에 올라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 꼭대기에서 바라본 샌프란시스코 만의 풍광은 가온의 마음을 쥐고 흔들었다.

얼마나 살았다고 어느새 그리운 것들이 생겨 있었다. 칭밍의 웃음과 그녀와 같이 먹던 피자 햄버거 질긴 스테이크와 스파게티. 블루 보틀의 커피와 잘 구어진 베이글. 함께 탔던 케이블카, 지하철, 전차, 버스. 그리고 비탈지고 가파른 길은 또 왜 이리도 다시 걸어보고 싶은 건지 ... 롬바드 스트리트를 힐난했고 피어 39의 물개들에 냉소적이었다. 부딘과 클램 차우더를 먹으며 미래를 구상했고 기라델리 초컬릿의 고마움을 고행길이었던 트윈 픽스에서 느꼈었다.

깍지를 끼고 있던 한결의 손이 가온의 허리를 감고 들어오지 않았다면 눈물까지 발동할 뻔 했다. 그는 하루종일 가온의 손을 놓지 않았었다. 마치 어린 아이처럼 가온의 손을 놓치면 영영 미아가 돼버리기라도 하는 듯이 운전 중에도 꼬옥 쥐고 있었다. 그런데 그 손을 놓고 허리로 들어온 것이다. 아름답게 노을이 지는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려니 한결도 감상적이 되었나 보다.

한결은 가온의 허리를 감싸 안고 키스를 유도했다. 노을에 젖은 가온의 아름다움에 도취된 한결에게는 풍광도 경치도 중요하지 않았다. 가온이 온전히 자신만의 소유로 곁에 있는 것만으로 만사형통이었다. 그는 가온을 자기 앞으로 바짝 당겨 안으며 주변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에게 입을 맞추었다. 주변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가온은 한결을 떼어내려고 그를 밀어내 보았다. 하지만 한결은 꼼짝도 하지 않고 그녀의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었다.

"한결 ... 오빠 ......."

가온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돌렸다. 한결의 웃음에 신경질이 배어 나왔다.

"이젠 키스도 안돼?"

"여긴 ... 우리만 있는 곳이 ... 아니에요. 제발 ... 이성을 놓지 말아요, 오빠?"

가온은 그저 염려스러웠다. 그가 극도의 흥분 상태가 되어 마음대로 안되는 것에 잔인하고 난폭한 폭력을 휘두르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리고 그가 약을 요하거나 주사를 꽂아야 버텨낸다는 것을 어렴풋이 인지한 이상 그를 단단하게 이겨낼 수 있도록 도와 주고 싶었다.

"오빠? 그만 내려가서 시원한 음료라도 마셔요, 우리!"

"왜? 내가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아? 냉수 마시고 속차리라구?"

"그런 뜻이 아니라는 건 오빠가 더 잘 아시잖아요? 제발 ... 그만 내려가요. 부탁드려요."

한결은 또다시 가온을 잃고 싶지 않다는 간절함과 무력해가는 몸 상태에서의 짜증 사이에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이럴 때 주사 한대면 기운이 펄펄 끓어오를 텐데 .......

집으로 돌아온 한결은 나태한 몸을 소파에 고정시켜 놓고 가온의 움직임만 좇았다. 전화벨이 그렇게 울려대는데도 외면하면서. 표정은 이미 극도의 예민한 상태까지 치달은 듯했다. 가온은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그가 언제 헐크가 돼버릴지 겁이 났다. 그의 저녁을 준비하면서 가온은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가 가련하고 불쌍하긴 했지만 그와의 결혼은 안될 말이었다.

"가온아 ......?"

도망칠 궁리에 정신이 팔려 한결이 부엌으로 들어온 줄도 몰랐다. 한결은 가온의 가슴께로 팔을 둘러 뒤에서 끌어 당겨 안으며 귓속에다 키스를 했다. 가온의 몸은 갑작스런 포옹에 온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긴장 풀어. 안 잡아먹을 테니까."

"오빠 ......."

가온은 한결을 불러놓고 빠져 나오려고 몸을 비틀었다. 하지만 한결에게 더 깊숙이 기대는 꼴이 되고 말았다.

"그러니까 가만히 있으라니까!"

한결은 가온의 가슴으로 손을 밀어넣으며 그녀를 옥죄었다.

"넌 ... 가슴도 여전히 탄탄하니 내 손아귀에 가득 차는구나? 만지기만 해도 아름다워!"

"오빠 ... 저녁이 ... 고기가 ... 다 ... 타겠어요 ......."

가온은 한결의 손길에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썼다. 한결은 가스를 꺼버리고 가온을 돌려세웠다. 그리고 가온의 입술을 힘껏 머금고 식탁 위로 밀쳐 눕혔다.

"오늘 ... 내 저녁은 ... 너 하나면 돼!"

"안돼 ... 요 ......! 이건 ... 이러면 ... 전 ... 감독 ... 님이 ... 계세요 ......."

"아니 ... 넌 ... 그 자식 게 아니라 ... 내 꺼라구, 알겠니? 처음부터 ... 내 꺼였다구!"

가온의 블라우스가 찢겨나갔다. 한결은 마침내 참고 있던 인내심을 내려놓았다. 세훈을 들먹이는 순간 결혼식은 끝나버린 것이었다. 이렇게 잔인한 첫날밤만 있을 뿐이었다. 가온은 그에게 느꼈던 연민과 동정을 후회했다. 무슨 식으로든 도망칠 수 있을 때 달아났어야 했다. 이제와 후회는 부질 없음이었다. 모든게 끝났으니까.

세훈은 백방의 수소문 끝에 한결의 대학시절 기거했던 집을 알아냈고 웃돈을 얹어 가장 빠른 우버를 불러 탔다. 앞뒤 잴 것도 없고 아무런 계산도 필요없었다. 무작정 달려야만 했다. 해가 뉘엇뉘엇 지고 있었고 그 곳에 도착하면 어둠이 몸을 휘감아 돌 것이다. 어둠이란 놈은 세상 모든 불빛을 아름답게 수놓기도 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훔쳐 감정을 들끓게도 만든다. 그 미친 자식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자신의 아버지가 생사의 기로에서 기계에 의존해 겨우 숨쉬기 운동만 하고 있는데 자식이란 놈은 남의 애인을 못잡아 먹어서 안달복달 발광이라니 ....... 그의 포악함과 폭력성이 어둠을 뚫고 일어나지 않기를 그리고 부디 가온이 무사하기를. 세훈은 차창을 통해 붉게 물들어가는 바다를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기도라는 것을 하고 있었다. 어떤 종교도 믿지 않는 그가 세상의 모든 신들을 죄다 불러 모으고 있었다.

벌거벗겨 놓은 여린 가온의 흐느낌에 잠깐 주춤거리던 한결은 무슨 생각에서인지 뒤로 한발짝 물러났다. 그는 씩씩대고는 있었지만 조금은 차분해진 것 같았다.

"옷 입어!"

격하게 채스르며 눈물을 멈추지 못하던 가온은 몸을 일으켜 두 손으로 가리며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기 시작했다.

"결혼식은 예정대로 모레 주말이야. 두 번 다시 그 자식은 들먹이지 않겠다고 맹세해. 그리고 그 목걸이 당장 풀어! 그 자식 눈 같아!"

그랬다. 한결은 가온의 목에서 반짝거리며 빛나는 세훈의 목걸이가 자신을 노려보는 것 같아 폭력을 멈추었던 것이다. 직접 뜯어버리면 될 것을 가온의 손으로 없애게 함으로써 가온 스스로 세훈을 잊게 하려는 어리석음의 발로였다. 찢어진 블라우스를 손으로 움켜잡고 있던 가온은 잠시 망설이다가 목걸이를 풀었다. 하긴 이젠 의미도 약속도 뭣도 아니니까.

한결은 목걸이를 풀은 가온에게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가온은 풀은 것을 그에게 줄 수는 없었다.

"내놓으라구!"

가온은 고개를 내저으며 침묵으로 대신했다.

"내놓으라니까?"

가온은 또다시 고개를 내저었다. 강제로 빼앗으려 덤벼드는 한결을 피해 가온은 뒤로 물러섰다. 대문 두드리는 소리가 아니었다면 한결의 폭력은 다시 가해졌으리라.

문짝이 부서져라 두드리던 세훈은 급기야 어깨로 문을 박살을 내버렸다. 벌거벗은 채로 문을 열러 나오던 한결은 세훈을 발견하고 인상을 있는대로 쓰며 그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하지만 벌러덩 나자빠진 쪽은 한결이었다.

"미친 자식! 가온이한테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가온아? 가온아?"

세훈이 가온에게로 가는 것을 저지하려고 그의 다리를 잡아챈 한결은 세훈의 발길에 다시 나뒹굴었다.

"바보 등신 같은 자식! 니가 이러고 가온이를 괴롭히고 있는 동안 니 아버지는 지금 사경을 헤매고 있다구!"

"웃기는 소리! 나더러 그 말을 믿으라구?"

"그럼 인터넷을 뒤져 보시던가? 부전자전이라고 내일 일면 기사에 오르내리기 싫으면 정신 차리라구, 알겠어?"

한결은 얼른 기어가 탁자 위에 핸드폰을 집어들었다. 수십통의 부재중 전화를 무시하고 연예 기사부터 열었다. 온통 박 소영과 윤 초롱 그리고 윤 현철 기사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기사들을 하나하나 읽어내리던 한결은 망연자실 넋을 내려놓고 있었다. 자업자득이란 말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왜밀 까? 한결은 눈물을 글썽이며 쓸쓸하게 웃었다. 그리고는 곧 간단하게 옷을 챙겨입었다.

세훈은 방들을 기웃거리다가 부엌에서 가온을 발견했다. 가온은 부엌 한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세훈이 앞에 와 서는 줄도 몰랐다. 그녀는 눈 앞에 서 있는 다리가 또다시 한결일 거라 생각하고 두려움에 몸을 옆으로 옮기며 더 조그맣게 움츠렸다.

"가온아 ......?"

가온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세훈의 목소리일 리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고개를 들어 올려다본 곳엔 세훈이 다정하게 웃고 서 있었다. 세훈은 가온을 붙잡아 일으켜 세웠다. 옷이 찢기고 눈물에 젖어 몰골이 말이 아니었음에도 그녀는 여전히 사랑스러웠다. 그는 파르라니 떨고 있는 가온을 꼬옥 안았다.

"내가 좀 늦었지?"

가온은 기쁨의 눈물과 함께 고개를 내저었다.

"사랑해, 가온아 ......."

두 사람이 사랑의 키스를 나누는 동안 엔진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한결이 차를 끌고 사라졌다. 그리고 그의 자동차는 다음 날 골든 게이트 교각 아래서 발견되었다.




\P/사랑 삶\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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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4,, 사랑이 무섭다 18.07.06 302 0 17쪽
13 13,, 천륜 18.07.05 72 0 17쪽
12 12,, 첫경험 18.07.04 86 0 17쪽
11 11,, 아버지의 이름으로 18.07.03 73 0 17쪽
10 10,, 불청객 18.07.02 66 0 17쪽
9 9,, 라이벌 18.07.02 69 0 17쪽
8 8,,사랑이 걸어오다 18.07.01 67 0 16쪽
7 7,,또다른 사랑이 보인다. 18.06.30 73 0 16쪽
6 6,,성인이 되다 18.06.29 93 0 16쪽
5 5,, 홀로서기 2 18.06.28 88 0 16쪽
4 4,, 홀로서기 1 18.06.27 84 0 16쪽
3 3,,슬픈 이별 18.06.27 87 0 15쪽
2 2,,운명적인 만남 18.06.26 168 0 16쪽
1 1,,세상의 중심이 되라 18.06.25 208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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